
빈 종이상자를 몸에 걸고 악기 삼아 두드리는 사람들. 이런 음악치료 과정을 통해 그동안 드러내지 못했던 억눌린 감정들을 표출할 수 있다.
그런데 이제 김씨의 ‘사랑관’은 완전히 달라졌다. 남편의 빠듯한 벌이를 보충하기 위해 두 아이를 출산한 후부터 뷰티컨설턴트, 보험설계사 등을 하며 생활전선에 나섰다. 하지만 시집식구들은 수시로 김씨의 생활에 끼여들어 참견했고, 번갈아가며 도와달라고 손을 내밀었다. 게다가 남편은 현실감각이 뒤처지는 사람이라 툭하면 일을 벌였고, 그러면 수습하는 것은 대부분 김씨의 몫이었다. ‘누구를 원망할까. 다 내 탓인걸’ 하고 19년 동안 내면을 억누르고 살았던 김씨는 결국 마음의 병을 얻고 말았다.
예술치료를 받으며 김씨는 그간 드러내지 못하고 차곡차곡 쌓고만 살았던 눈물과 분노를 조금씩 쏟아내기 시작했다. 콜라주 작업을 동원한 치료 과정에서 김씨는 잡지 등을 찢어 붙이며 무수한 마이크를 만들었다. 특히 시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비좁은 아파트에 시어머니가 들어오면서 더욱 자신을 억눌렀던 김씨는 마이크들 앞에서 남편, 시어머니, 시누이, 시동생, 동서 그리고 세상을 향해 속시원하게 고함을 쳐댔다.
남편의 외도로 심적 고통을 겪고 있는 40대 후반 주부 이모씨 역시 예술치료를 받고 있다. 그는 잡지에서 여러 명의 여자 사진과 립스틱, 권총을 오려낸 뒤 찢어 붙여 콜라주로 표현한 후 “남편에게 여자가 너무 많다”면서 한동안 눈물을 펑펑 쏟았다.
“결혼해 사는 23년 동안 길거리를 오가는 모든 여자가 남편의 여자로 여겨질 만큼 남편은 무수히 바람을 피웠어요. 저는 늘 집에서 웃음을 잃은 채 지냈지요. 하지만 남편은 밖에서 여러 여자들에 둘러싸여 늘 웃으며 살았죠.”
립스틱은 남편이 ‘집 밖의 여자’들에게 선물로 준 물품. 남편의 여성편력에 신물이 났다는 이씨는 권총이 있다면 남편을 쏴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움이 깊어 그렇게 표현했다고 털어놓았다.
심리적인 어려움을 극복하고 정신적인 안정감과 자신감을 북돋워 심신의 질병을 개선하고 극복하는 심리치료인 예술치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다시 정보사회, 지식산업사회로 급변하면서 현대인들은 ‘하루하루를 버텨내기 어렵다’고들 한다. 이런 불안과 혼란은 심리적인 위축과 마음의 병으로 이어지고, 방치하면 신체의 병으로 나타나거나 정신질환으로 악화돼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없게 만든다. 이것은 거꾸로 신체의 병이나 정신질환을 치료하는 데 심리상태의 개선이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우울증, 정신분열, 자폐증, 치매, 아동학대, 성폭행으로 인한 후유증 등으로 대인관계에 장애를 겪고 있는 환자들은 대부분 자신의 상태를 말로 표현하는 것 자체를 부정합니다. 매우 어려워하죠. 이럴 때 언어가 아닌 예술매체를 이용한 건강관리법인 표현예술치료가 큰 도움이 됩니다.”
명지대 사회교육대학원 김진숙 교수(예술치료학)는 “창작예술을 통해 개인이나 집단의 안녕과 심리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예술인들과 정신건강 전문가들 사이의 오랜 관심사였다”고 설명한다. 그러던 것이 최근의 사회현상과 맞물리며 예술치료가 더욱 주목받게 됐다는 것.
비언어적인 예술로 표현
예술치료는 미술치료, 음악치료, 연극치료, 무용치료에서 독서치료, 원예치료 등으로 점차 그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일반적인 심리치료와 동떨어진 게 아니라, 심리학 이론을 바탕으로 하되 치료의 수단을 언어가 아닌 비언어적인 예술매체로 확장한 것이다.
“사람의 정신은 창조성을 근원으로 합니다. 창조성이 발휘되는 자유로운 환경에 있지 못할 때 사람은 자기 내면의 욕구와 외부에서 요구하는 역할 사이에서 갈등하며 고통을 느끼게 됩니다. 예술활동을 통한 심리치료가 효과적인 것은 자유로운 창작활동을 통해 억압됐던 창조성이 발휘되고 그 과정을 통해 내면의 정신세계가 현실세계 속에서 작품이라는 구체적인 모습으로 표현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면세계의 외면화 과정을 통해 개인의 심리나 정서 상태를 파악하고, 거기에 연루된 갈등 요소를 창작을 통해 조화롭게 해결하도록 도와줌으로써, 갈등을 완화하거나 정신구조를 재편성하는 것으로 치료가 이뤄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