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텔레비전의 일기예보 순서만 봐도 알 수 있습니더. 옛날엔 서울 다음에 부산 날씨를 알려줬는데 지금은 대구, 인천을 먼저 해요. 그러다 보니 어떨 때는 부산 날씨가 나오기도 전에 지역 자체방송으로 넘어갈 때도 있다니까예.”
농담으로 하는 말이지만 부산 시민들, 그리고 부산 출신들에게 부산은 더 이상 뿌듯한 자긍심의 도시가 아닌 듯했다. 국제도시로 발돋움할 것인가, 한국의 지방 군소도시로 전락하고 말 것인가. 기로에 선 부산의 성패에 대한민국 지방화의 성패가 달려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부뚜막에 얼라 앉혀놓은 것 같다”
부산역에 내려서자 제법 거친 바람이 가장 먼저 객을 맞았다. 짭조름한 바다 냄새가 섞여 있다. 여행가방을 든 30대 중반의 사내가 코끝을 벌렁거리더니 “이 냄새가 어찌나 그립던지…” 하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부산 하면 바다 아입니까. 바다는 스케일이 있어요. 부산영화제 때 외국인들이 영화 보고 나서 해운대 백사장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며 소주를 곁들여 밤새도록 이야기꽃 피우는 걸 평생 못 잊을 추억이라고 한다잖아요. 부산은 놀기도 좋은 곳입니다. 다른 관광지와 달리 대도시의 편의성을 다 갖췄으니까요.”
그렇다. 부산은 원래 이렇게 낭만적이고 놀기 좋은 곳이었다. 하지만 오늘의 부산은 그리 여유로워 보이지 않는다.
“망했지예. 나아질 기미가 보이질 않아예. 빨리 (정권이) 바뀌기만 바랍니더.”
역전에서 만난 택시기사 오경윤(62)씨가 내뱉은 첫마디다. 역 앞엔 손님을 기다리는 빈 택시가 길게 늘어서 있었다. “노 대통령이 부산을 위해 많이 노력하지 않았냐”고 하자 정색을 하며 “해준 게 뭐가 있냐”고 쏘아붙였다. 옆에 있던 젊은 택시기사는 “부산에서 노무현에 대한 평가가 많이 안 좋다”며 “손님들과 이야기를 나눠 보면 지지하는 사람이 20%도 안 되는 것 같다”고 했다.
“지금 부산 경기가 안 좋은 걸 다 대통령 책임으로 돌려요. 지 생각엔 꼭 그런 것 같지는 않은데 말이지예. YS(김영삼)보다는 노무현이 부산 생각 더 많이 해줬을 거라예. 노무현으로선 억울한 면도 있을 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