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 재건축 아파트 주민들이 지난 3월말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다. 앞서 강남에서 부동산 투자자들로 북새통을 이룬 또 다른 모임이 있었다. 해외부동산 중개업체가 개최한 투자설명회였다.
8·31 부동산 대책에 이어 최근 3·30 대책 발표로 이제 국내에서 부동산으로 돈을 벌기는 어려울 것 같다. 게다가 4월5일부터 주택담보대출 한도를 크게 줄여 은행돈으로 집을 구입하거나 늘려가는 ‘내 집 마련’ 전략은 사실상 물 건너갔다. 그동안 불패신화를 이어온 투기꾼도, 한 가닥 희망을 놓지 않았던 집 없는 서민도 갈수록 패색(敗色)이 짙어가는 상황에 한숨짓고 있다.
8개월 동안 3차례 규제 완화
국내 부동산 전선이 소강상태에 들어갔다면 이제는 해외로 눈을 돌려보는 것이 차라리 승산(勝算)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부동산 거품을 확실하게 빼겠다는 정부의 정책이 강화된 반면, 해외 부동산 취득에 대한 규제는 급속도로 완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내국인의 해외 부동산 취득 규제 완화조치는 지난해 7월부터 올 3월까지 무려 세 차례나 나왔다.
지난해 7월 발표된 부동산 정책은 해외 부동산 취득요건을 대폭 완화했다. 해외 부동산 취득자금 신고액이 기존 30만달러에서 50만달러로 크게 확대되면서 소액 투자의 길이 열렸다.
올초 정부는 또다시 해외 부동산 투자 규제를 완화했다. 해외거주자의 주거용 해외 부동산 취득 한도를 개인은 50만달러에서 100만달러로, 개인사업자는 300만달러에서 1000만달러로 대폭 확대한 것이다. 이는 지난해 7월의 완화조치가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여론을 받아들인 조치로 보인다. 실제 법 개정 후 6개월간 한국은행에 신고된 주거용 해외 부동산 취득 건수는 26건에 불과했다. 송금액도 854만6000달러에 그쳤다. 국가별로도 미국 8건, 캐나다 12건, 호주 1건, 뉴질랜드 5건 등 몇 지역에 편중됐다. 대부분이 자녀 조기 유학에 따른 부동산 취득이었다.
해외 취업·유학 등 해외 부동산 취득 수요가 증가하는데도 제도상 제약은 개선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그동안 해외 부동산 투자가 불법 및 편법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투자자들은 한국은행에 신고하는 규정을 위반하거나, 분산 외화송금, 증여성 송금, 국내 예금을 담보로 한 현지 대출 등의 편법을 동원해 해외 부동산을 매입했다.
결국 3월1일 정부는 주거용 해외주택 취득을 위한 송금한도를 폐지하는 것을 골자로 한 외환거래 규제완화 방안을 발표했다. 핵심은 2년 이상 주거 목적으로 해외에서 부동산을 살 때 적용되던 규제가 모두 풀린다는 것. 이에 따라 100만달러까지였던 주택 매입 한도가 없어져 고가 주택도 얼마든지 살 수 있게 됐다. 미국 베벌리힐스의 고급 주택이나 맨해튼의 메가콘도를 이제 거주 목적으로 구입할 수 있다.
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 살다 한국으로 귀국하면 3년 이내에 해외 주택을 팔아야 하는 제한도 없앴다. 부모가 유학생 자녀와 함께 출국할 경우 부모의 비자 종류에 관계없이 2년 이상 체류했다는 사실만 증명하면 현지에서 주택을 구입할 수 있다. 여기에 투자용 부동산 매수도 허용했다. 이처럼 외환거래가 신고제로 바뀐 데 이어 송금한도가 없어지고 취득절차도 간소화되는 등 규제가 완화되면서 해외 부동산 투자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물론 정부의 이런 해외 부동산 투자 규제 완화조치는 국내 부동산시장 과열과는 별 관련이 없다. 남아도는 외환을 조절하려는 취지가 더 크다. 국내에서 투자처를 찾지 못한 시중의 유동 자금이 해외로 빠져나갈 길을 재정경제부가 열어준 셈이다.
당국의 취지야 어떻든 국내 부동산에 별다른 기대를 걸지 못하는 투자자에게는 지금이 해외 부동산을 취득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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