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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김지하, 시대를 논하다

“박근혜 ‘인혁당 인식’, 민주주의 기본도 몰라” “치명적 재앙 부를 ‘이명박 운하’ 폐기해야”

  • 조성식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airso2@donga.com

시인 김지하, 시대를 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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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김지하, 시대를 논하다
2월8일 그를 만나러 경기도 일산으로 가는 동안 시대의 혼돈처럼 안개비가 내렸다. ‘타는 목마름으로’ ‘애린’ ‘밥’ ‘대설 남(南)’ ‘생명’ 등 오래전에 읽었던 그의 작품이 기억의 저편에서 꼬물거렸다. 이미 한 시대의 전설이 된 그에게는 시인, 투사, 사상가라는 꼬리표가 붙어 있다. 1970년대 대표적인 저항시인으로 유신정권에 온몸으로 맞서 싸웠던 그는 1980년대 이후 생명운동을 주창하면서 사상가로 거듭났다.

그가 사는 오피스텔은 대로변에 있었다. 거주한 지 4~5년 됐다고 한다. 시인이 오피스텔에 살고 있다니…. 왠지 어색하다. “불편하지 않냐”고 묻자 그가 껄껄 웃으며 말했다.

“외국 기자들이 그러더군. 조그만 채마밭 딸린 데서 사는 줄 알았다고. 내가 원래 그런 데를 좋아하긴 하죠. 해남에 내려가 있을 때는 그런 집에서 살았죠. 그런데 큰 도시에 올라오니 단독주택에 살기가 어려워요.”

그는 말을 할 때 눈살을 찌푸리는 습관이 있었다. 숯덩이 같은 눈썹에서 발산되는 거칠고 강인한 기운을 온화한 눈빛과 여유로운 말투가 지그시 누르고 있었다. 세월은 흐르고 사람은 늙는다. 시인도 투사도, 그 누구도 예외가 아니다. 시간은 어느덧 그를 삶의 내리막길로 이끌고 있다. 나이 든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자꾸 외롭고 쓸쓸해져요. 아, 그래서 자식을 낳는구나, 그런 생각을 해요. 자식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차이가 큰 것 같아요. 자식이 있다는 것에서 내 생명이 이어진다는 느낌을 받거든요. 자식한테 무슨 도움을 받는다든가 하는 차원을 떠나…. 나이 들수록 생명이 무엇인가, 시간이 무엇인가 자꾸 생각하게 돼요. 젊은 시절의 용기도 사라지고 마음도 약해지고. 그래선지 요즘 평론가들이 내 시에 외롭다는 표현이 많다고 지적해요. 아이들을 보면서, 내가 이 세상에 나온 자취는 남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지요. 젊은 시절엔 그저 살다 가면 그만이지 생각했는데, 나이 드니 그렇지 않더라고요.”



“훤칠한 처녀가 자꾸 울어”

강물처럼 흘러가 만질 수 없는 시간의 기억을 우리는 과거라 부른다. 최근 법원의 재심 판결로 화제가 된 인혁당 사건은 과거가 뭔지 역사가 뭔지 새삼 되돌아보게 한다. 32년 전에 사형당한 사람들에 대해 무죄가 선고됐다. 시간의 부질없음, 삶의 덧없음, 역사의 허망함을 이보다 더 극명하게 보여줄 수 있을까.

“내가 일전에 영남대에서 강의를 끝내고 나오는데, 키가 무지 큰 여자가 자꾸 울더라고. 왜 우냐고 물으니 하재완씨 딸이라고 해요. 세월이 30여 년 흘렀는데 참, 가슴이 아프다고 하기도 뭣하고…. 훤칠한 처녀가 자꾸 그렇게 울더라고.”

그가 인혁당 사건을 회고하면서 꺼낸 일화다. 하재완은 1975년 4월 8일 대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된 지 18시간 만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인혁당 사형수 8인 중 한 사람이다. 이 사건은 1964년의 1차 인혁당 사건과 구분해 2차 인혁당 또는 인혁당 재건위 사건이라 불린다.

김 시인도 이 사건 피해자 중 한 사람이다. 그는 인혁당 사건과 ‘형제 관계’인 민청학련(전국민주청년학생연맹) 사건에 연루돼 사형선고를 받았다. 1974년 4월 중앙정보부는 학원가 반(反)체제조직이라는 민청학련 사건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그 배후로 북한과 연계됐다는 인혁당 재건위를 지목했다. 대구·경북 지역의 혁신계 인사들이 1964년에 적발돼 와해됐던 인혁당을 재건해 민청학련의 유신반대 투쟁을 조종하고 북한의 사주를 받아 정부 전복활동을 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민청학련의 상부조직이 인혁당이라는 얘기였다.

민청학련·인혁당 사건으로 구속된 사람은 253명에 이른다. 긴급조치 4호 위반, 국가보안법 위반, 내란 예비음모, 내란 선동 등의 혐의였다. 1, 2심은 군사재판(비상군법회의)이었다. 인혁당과 관련해 기소된 사람은 모두 23명. 그중 8명에 대해 사형선고가 확정됐다. 민청학련 관련자들도 사형 등 중형을 선고받았으나 나중에 모두 감형되거나 무죄로 석방됐다.

김 시인의 경우 사정이 조금 복잡하다. 당시 민청학련 주모자급으로 기소된 그는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무기징역으로 감형된 후 1975년 2월 대부분의 민청학련 관련자와 함께 형집행정지로 석방됐다. 하지만 석방 직후 ‘동아일보’에 ‘고행…1974’라는 옥중수기를 실었다가 반공법 위반혐의로 재구속돼 1980년 형집행정지로 풀려날 때까지 6년간 복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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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식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airso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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