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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 취재

고리 1호기 계속운전 논란 속에 둘러본 일본 원전

“한국 원자력은 일본을 절대 따라잡지 못할 것”

  • 이정훈 동아일보 신동아 편집위원 hoon@donga.com

고리 1호기 계속운전 논란 속에 둘러본 일본 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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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란한 한국, 조용한 일본

다카하마 원전을 찾아간 것은 한국보다 항상 앞서 나가는 일본인들의 원자력 정책을 견학하기 위해서였다. 일본이 비교적 조용하게 원자력 정책을 발전시켜왔다면 한국은 ‘외세(外勢)’에 휘둘려가면서 요란하게 원전 정책을 펼쳐왔다.

1971년과 1978년, 한국은 최초의 원자력발전소인 고리1호기의 기공식과 가동식을 거창하게 열었다. 그리고 월성 1호기와 고리 2호기의 기공식도 대대적으로 열었는데 이 시기 한국 정부는 원자력을 한국의 미래 에너지원인 ‘제3의 불’로 보고, 적극적으로 친핵정책을 펼쳤다. 그런데 1979년 미국 스리마일 섬 원자로가 용융(熔融)되고, 1986년 소련의 체르노빌 원자로에서 화재가 일어나면서 한국 사회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원자력 분야에서 강력한 반핵운동이 터져 나온 것이다. 여기에 그린피스를 비롯한 외국 단체가 가세함으로써, 한국은 20여 년 동안 방사성폐기물 처분장(방폐장) 후보지를 결정하지 못하고 표류했다. 2003년에는 또 다른 외생 변수에 의해 원자력 정책은 극적인 변화를 맞는다. “고향인 부안을 발전시키겠다”며 방폐장 유치에 나선 김종규 당시 전북 부안군수가 주민들에게 폭행당하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 계기였다.

김 군수 피습 사건 이후 원자력에 대한 한국 사회의 인식이 180도 표변해 각 지방자치단체가 서로 방폐장을 유치하겠다는 경쟁에 나섰다(2005년).



일본은 세계 유일의 핵 피폭(被爆) 국가이니 핵에 대한 관심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들은 대체로 조용히 움직였다. 일본인들은 ‘1940년대 중반 일본이 먼저 핵을 개발했다면 일본은 지금의 미국 이상으로 강한 나라가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본능적으로 했을 것이다. 일본인들은 섬에 갇혀 살아서인지 본심을 뜻하는 ‘혼네(本音)’는 감추고, 체면성 겉치레인 ‘다테마에(建前)’를 앞세우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인지 ‘핵을 갖고 싶다’는 혼네를 결코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일본의 원자력 정책은 미군정이 끝난 직후 훗날 총리가 되는 나카소네(中曾根) 의원 등이 절치부심하며 원자력 관련 법안을 만듦으로써 시작되었다. 그리하여 1970년, 일본의 10개 전력회사 가운데 하나인 일본원자력발전(주)이 후쿠이현 쓰루가(敦賀)시에 일본 최초의 원전인 ‘쓰루가 원전 1호기’(35만7000kW) 가동식을 ‘조용히’ 치렀다.

일본에서 배워온 특별교부금 지원

원자로를 갖게 된 피폭 국가 국민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이후 일본은 원자력 정책을 일관성 있게 추진했다. 1992년 12월 롯카쇼무라(六ケ所村)에 방폐장을 완공하고, 2006년 3월에는 같은 곳에 사용후 핵연료에서 플루토늄을 뽑아내는 재처리 공장을 완공하기에 이르렀다. 그때까지 재처리 공장은 제2차 세계대전 승전국이자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다섯 나라만 갖고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패전국인 일본은 5대 핵보유국 이외의 나라로서는 최초로 재처리 공장을 갖게 된 것이다.

현재 시운전 중인 이 공장은 올해 7월부터 정식으로 가동에 들어가, 매년 플루토늄 8t(지난해 10월9일 북한이 실험한 것 같은 조악한 핵무기라면 무려 1000여 개를 만들 수 있는 양)을 생산하게 된다. 롯카쇼무라에 재처리 공장을 지을 때 일본에서는 반핵운동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린피스를 비롯한 외부세력이 찾아와 약간의 반대운동을 했을 뿐이다. 그에 앞서 방폐장을 지으려 할 때 반핵운동이 터져 나왔지만 그 강도는 한국보다 훨씬 미약했다.

한국의 방폐장 후보지는 주민들의 반핵시위에 밀려 여러 곳을 떠돌다 경주로 결정되었지만, 일본은 롯카쇼무라를 방폐장 후보지로 선정한 후 단 한 번도 후보지를 바꾼 적이 없다. 롯카쇼무라 주민이 이를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걸렸고, 그 사이 대표적인 반핵운동가인 ‘히로세 다카시’씨의 선동으로 반핵 단체들이 몰려와 몇 차례 시위를 벌였을 뿐이다.

이때 일본 정부는 결정권을 쥐고 있는 롯카쇼무라 주민의 결심을 촉구하기 위한 ‘당근’을 던지는 ‘재치’를 발휘했다. ‘전원(電源) 3법’이라는 특별법을 만들어 방폐장이 들어설 예정인 롯카쇼무라와 인근 지역에 423억엔(약 4200억원)의 특별교부금을 지원하겠다고 한 것. 그로 인해 롯카쇼무라에서는 방폐장을 유치해 지역을 발전시키자는 공약을 내건 후보가 단체장에 당선돼, 어렵지 않게 방폐장을 짓게 되었다.

한국도 방폐장을 유치하는 지역에 3000억원을 특별 지원하고 추가로 양성자가속기를 설치해주겠다고 했으나, 김 군수 피습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그 어떤 지역도 방폐장 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한국의 원전 정책은 요란하나 진척이 더디고, 일본은 ‘용각산’ 광고처럼 소리가 나지 않는 가운데 실속을 채워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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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동아일보 신동아 편집위원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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