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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마도 보시 20년, 석주 이종철 화백의 일갈

“달마도는 부처의 마음일 뿐, 달마 이외의 것은 바라지 말라”

  • 최영철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ftdog@donga.com

달마도 보시 20년, 석주 이종철 화백의 일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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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마도 보시는 利他行의 길”

달마도 보시 20년, 석주 이종철 화백의 일갈

2003년 2월 발생한 대구지하철 참사를 그대로 예견한 석주 이종철 화백의 그림 ‘지옥기차’(위)와 그가 그린 달마도.

석주 화백은 이내 마음을 다잡고 또 다른 선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가 그리는 그림은 달마도가 아니라 복돼지였다. 그는 모 일간지의 신년호에 독자를 위해 황금 복돼지 그림을 그려줬다 뜻밖의 ‘봉변’을 당했다고 한다. 독자를 상대로 그냥 몇 작품 그려주겠다고 한 것이 화근이 되어 647명에게 복돼지 그림을 그려주게 된 것. 작품 하나하나에 혼신의 힘을 기울이고 기를 불어넣다보니 몸은 지칠 대로 지쳤다. 그러나 자신의 그림이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시름을 잊었다. 금을 갈아 만든 금 물감 값은 모두 그의 몫이었다.

그는 개인전과 시연회에서 들어오는 수익을 지체장애인 복지시설과 복지센터에 기증했다. 대학 입시철이 되어 수험생 달마도를 그려달라면 그려줬고(1만여 장 이상), 난치병 환자 치료 모금행사가 있으면 달려가 거침없이 붓을 놀렸다. 그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인 이타행(利他行)을 수행하는 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가 그린 달마는 국가적 경사나 우환이 있을 때 국민과 함께 웃고 울었다. 달마가 축구공을 들고 있는 2002년 월드컵 4강 기원 달마도를 그렸는가 하면 2003년 대구 하계 유니버시아드 때에는 대회의 성공을 기원하고 지하철 화재 희생자를 위로하기 위해 250m에 이르는 초대형 달마도를 그렸다. 이 작품은 국내에서 그려진 달마도 중에서 가장 긴 작품으로 지금도 대구시 산하기관에 전시되어 있다. 당시 석주 화백은 2173(개최연도 2003+당시까지의 희생자 170)명의 달마를 250m 화폭에 담았는데, 달마 제각각의 포즈와 표정이 모두 달라 시민을 놀라게 했다. 그리고 달마도의 화룡점정 격인 눈은 시민들이 하나씩 직접 그려 넣게 하는 퍼포먼스를 연출했다. 대회가 끝난 후 그에게 대통령 표창이 상신됐지만 그는 수상을 거부했다. “할 일을 했을 뿐”이라는 게 이유였다.

2005년 9월 청계천 복원공사가 완공됐을 때에는 청계천의 길이(5602m)에 맞춰 달마도를 그려 5602명에게 나눠줬다. 맑은 물을 보면서 달마의 맑은 마음을 느끼게 하고 싶어서였다. 그 몇 달 뒤인 11월 부산에서 열린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회의 때에는 각국 정상이 우리 달마도의 기상과 한국인의 순수함을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대규모 전시회를 열었다.



화실 월세도 못 내

그는 특히 지체장애인과 노인에게 관심이 많다. 지난해 3월 경남지체장애인애호협회 초청으로 달마도 전시회를 열어 수익금을 전달했으며, 대전·충남지역의 지체장애인 시설에는 수익금이 생길 때마다 보내왔다. 또한 지난해 5월 서울 조계사에서 열린 달마도 시연행사를 통해 모인 540만원을 노인복지협회에 기부하고, 노인 3000명에게 점심을 무료로 제공했다. 석주 화백은 “정신지체아들은 이런저런 계산을 하지 못하지만 순수한 인간성을 지녔다. 바로 그들에게서 달마의 진면목을 느낀다”고 했다.

석주 화백 주변에는 연예인과 정치인이 많이 모여든다. 달마도를 그리면서 쌓은 마음의 여유와 경험을 바탕으로 인생 상담까지 마다하지 않기 때문이다. 법조계에도 이름만 대면 알 사람들이 그에게 달마도를 받으러 오지만 석주 화백에게 그들은 불법(佛法)을 알려야 할 대중일반일 따름이다. 그가 정치인에게 써주는 문구에는 뼈가 담겨 있다. “권력은 눈밭을 걸어간 기러기 발자국이니 이 땅을 살아가는 모든 분들에게 달마의 모습이 비치어 반목을 거두어주시기를….” 그는 “최근 자살한 가수 유니와 같이 정신적으로 어디에도 의지할 곳이 없는 사람에게 달마도를 그려주며 인생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이렇게 달마도를 무료로 그려주고 전시회에서 거둔 성금을 이리저리 나눠주면서 어떻게 생계를 꾸려갈까. 그는 달마도의 대가답지 않게 몹시 가난했다. 그는 최근 서울 충무로에 있는 화실의 월세를 내지 못해 대전의 화실로 내려왔다. 대전의 화실도 그의 사정을 딱하게 여긴 후배가 무료로 빌려준 곳이다. 화실 월세조차 못 내는 사람이 금 물감으로 복돼지를 그려주다니. 종이며 붓, 먹을 대는 것도 만만치 않을 텐데…. 그 사정을 물었다. 그의 대답은 간단했다.

“달마도는 가난해야 더 잘 그려집니다. 불자들이 선원에 들러 얼마씩 넣어두고 가는 돈으로 생활하지만 더는 욕심이 없어요. 달마도를 받고 행복해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만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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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철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ftdo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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