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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횡무진, 21세기 중국 문화 4 - 대중음악

‘花樣的年華’에서 ‘一無所有’까지, 대륙의 노래 100년

  • 신현준 성공회대 연구교수·대중음악 homey81@gmail.com

‘花樣的年華’에서 ‘一無所有’까지, 대륙의 노래 1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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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20년대 재즈의 세례를 흠뻑 받으며 탄생한 상하이의 대중음악은 정치적 격랑을 온몸으로 떠안으며 홍콩과 타이완을 거쳐 끊임없이 새 옷을 갈아입었다. ‘몽중인(夢中人)’과 ‘야래향(夜來香)’의 감미로운 멜로디는 덩리쥔과 천치우샤를 거쳐 장궈룽과 알란 탐의 ‘칸토팝’으로 이어지고, 다른 한편에선 중국 대륙의 격변과 함께 추이젠(崔健)으로 대표되는 록 음악이 젊은 피를 달군다. 공산당 선전매체이던 CCTV가 자본주의의 첨병 MTV와 함께 대중음악시상식을 성대하게 개최하는 2000년대의 중국, 그 속에서 꿈틀대는 ‘汎중화권 대중음악’의 뿌리를 추적했다.
‘花樣的年華’에서 ‘一無所有’까지, 대륙의 노래 100년

한국인이 사랑한 가수 천치우샤는 상하이에서 건너온 중국 대중음악이 홍콩에서 전성기를 맞이한 1970년대의 아이콘이었다. 그의 노래 ‘One Summer Night’은 이 시절 홍콩에서 꽃핀 영어 팝의 대표곡이다.

중국에 대해 접근할 때 누구나 느끼는 첫 번째 어려움은 중국이라는 나라가 너무 큰 데다 ‘중국인’으로 묶을 수 있는 사람의 숫자가 너무 많다는 점이다. 세계 인구의 20%가 중국인이고 보니 중국에 대해 무언가를 말하려면 세계의 5분의 1을 설명해야 한다는 강박이 다가온다. 게다가 그 가운데 90% 이상은 죽(竹)의 장막 아래서 30년 이상의 시간을 보냈다. 이들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확보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따라서 누구도 과감하게 ‘내가 중국에 대해서 안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대중음악도 마찬가지다.

다행히 대중음악, 나아가 대중문화 전반의 경우에는 ‘잃어버린 30년’을 일단 무시할 수 있다. 대중문화를 산업에 의해 생산되고 소비되는 대량문화(mass culture)로 정의한다면, 그 30년의 시간은 이런 정의와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또한 안이한 생각일 수 있지만, 일단 이 글에서 다룰 대중음악은 ‘자본주의적 산업’에 의해 생산되고 소비된 대중음악으로 국한하기로 하겠다.

두 번째 어려움은 중국, 중국인과 더불어 ‘중국어’라는 범주 역시 그리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중국어란 중국에서 ‘보통화’라고 하고, 영어로는 ‘mandarin’이라고 하는 일종의 표준어를 말한다. 부연하면, 타이완에서는 이 언어를 국어(國語)라고 하고, 싱가포르에서는 화어(華語)라고 한다. 중국과 중국인의 사회 생활 전반을 지배하는 이 언어가 대중문화, 대중음악에서도 당연히 통용되고 있다고 생각하면 충분할까. 2000년대에 들어선 현재 화어 대중음악, 즉 만다린 팝(mandarin pop)이 중국권 음악시장의 주류를 이루고 있기는 하지만, 중국 대중음악의 전개과정은 화어 대중음악이 일방적으로 승승장구해온 것과는 거리가 있다.

이제 그 역사 속으로 들어가보자. 그 여정은 중국 대중음악의 중심지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지리적으로 이동해온 궤적을 따른다. 상하이에서 시작되어 홍콩으로, 홍콩에서 타이완을 거쳐 베이징으로, 그리고 다시 어떤 곳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 긴 여정의 시작으로 가장 적절한 사례는 누가 뭐래도 1920~30년대의 상하이다.

상하이의 시대곡(時代曲)



1920~30년대라는 시기는 이제 아득한 옛날이 됐다. 당시를 경험한 사람들 대부분은 이제 고인(故人)이 됐거나 아주 흐릿한 기억으로만 당시를 추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기억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할 수는 없다. 왕자웨이(王家衛) 감독의 2000년작 ‘화양연화(花樣年華·In the Mood for Love)’만 해도 이렇듯 아스라하지만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기억을 다뤘다. 영화 속 한 장면에서 라디오 수신기로부터 흘러나오는 소프라노 음색의 여가수가 부른 노래가 바로 ‘화양적연화(花樣的年華)’다. 이 곡은 본래 1946년에 제작된 영화 ‘長相思’에 수록된 곡으로 노래의 주인공은 가수이자 배우인 저우쉬안(周璇)이다. 본래의 가사는 1945년 이후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중국인의 애국의 심정을 담은 것이지만, 영화 속 의미는 달랐음을 모든 관객이 느꼈을 것이다.

‘황금의 목소리(金桑子)’, 혹은 그녀가 출연한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천애가녀(天涯歌女)’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저우쉬안은 20세기 초반 중국에서 탄생한 대중음악은 물론 대중문화 전반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굳이 비유하자면 중국인에게 그녀의 목소리는 한국인에게 이난영의 목소리가 갖는 정감과 유사한 감흥을 제공한다고 할까. 레코딩 테크놀로지가 초보적이던 시절이지만, 그의 노래들은 ‘테크놀로지란 그저 소리의 질감을 날라주는 것이지 소리 그 자체를 대체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해준다.

당대를 상징하는 인물이 그녀 하나였던 것은 아니다. 저우쉬안과 더불어 ‘7대 가후(歌后)’라고 하는 바이광(白光), 우잉인(吳鶯音), 궁치우샤(·#53859;秋霞), 야오리(姚莉), 바이훙(白虹), 리샹란(李香蘭) 등이 함께 시대를 풍미했다. 이들 외에도 많은 여가수가 곱고 우아한 자태를 뽐내며 당시 조계지였던 상하이의 즐비한 바와 클럽에서 노래를 불렀다.

물론 남자가수들도 있었지만 이들은 작곡이나 연주에 더큰 비중을 둔 것 같다. 그 대표주자로는 천거신(陳歌辛)과 리진광(黎錦光)을 꼽을 수 있다. 천거신은 위에서 언급한 ‘花樣的年華’의 작곡자일 뿐 아니라 한국에서 ‘꿈 속의 사랑(손석우 작사 현인 노래)’으로 번안된 ‘몽중인(夢中人)’ 같은 클래식풍의 가요들을 남겼다. 리진광도 수많은 명곡을 남겼는데,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중국의 오래된 노래의 상징’처럼 되어버린 ‘야래향(夜來香)’이다. 뒤에 등장하겠지만, 타이완 출신의 디바 고(故) 덩리쥔(鄧麗君·Teresa Teng)이 리메이크해 아시아 전역에 퍼졌고, 심지어 최근에는 문근영도 영화 ‘댄서의 순정’에서 불렀던 바로 그 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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