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앨런 로버트슨, 톰 모리스, 제임스 브레이드가 설계한 ‘지구상에서 가장 가혹한 코스’ 커누스티. 거듭 꼬인 개울과 불규칙하기 이를 데 없는 바람 앞에 선 골퍼는 누구나 인생에 회의를 품을 만큼 괴로워진다. 이 험악한 코스에서 열린 올해 브리티시 오픈 마지막 날 경기를 지켜보며 되새긴 6년 전의 추억, 그리고 골프와 삶.
세인트앤드루스에 와서 사흘째다. 어젯밤에는 초저녁에 잠이 들었다가 새벽 3시 무렵에 깼는데, 일기를 쓴답시고 노트북을 여는 바람에 7시까지 앉아 있었다. 개잠이라도 청해볼까 망설였지만 아까운 시간만 허비하는 것 같아 샤워를 하고 차를 몰았다. 어제 오후 봐두었던 커누스티로 향했다. 오늘은 어제와 달리 40분 정도밖에 안 걸렸다. 미리 와보았던 게 크게 도움이 된 듯하다. 바람이 제법 강하게 분다. 가끔씩 빗방울도 떨어진다. 하긴 이곳에 와서 햇볕이 쨍쨍 나는 날을 보지 못했다. 서울은 천고마비 최고의 계절인데 말이다. 세인트앤드루스에 도착한 첫날 오후 올드코스(Old Course)에서 라운드하는 동안에도 바람이 있기는 했지만 비교적 약했고, 하늘은 청명했으며 가끔씩은 해도 볼 수 있었다. 아마도 이 지방에서는 그런 날씨는 뜻하지 않은 ‘사고’이고, 오히려 오늘 같은 날씨가 일상인 듯하다. 그러고 보니 이 지방 사람들이 우리네처럼 벼, 보리를 재배하지 않는 것은 감자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기후 탓인 모양이다. 이 지방이 골프의 발상지로 불리는 것은 등산할 수 있는 산이 전혀 없는 지형적인 특성 때문으로 추정된다. 바다는 별로 멋있어 보이지 않는다. 바다가 멋있으려면 눈부신 태양과 쪽빛 나는 바닷물이 있어 금방에라도 뛰어들고 싶어야 하는 법인데, 이 고장의 바다는 그저 우중충하다. 뛰어들고 싶기는커녕 오히려 피하고 싶은 마음이 절로 난다. 이런 환경 속에 사는 사람들이 여가를 무엇으로 보내겠는가.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아마도 골프가 아니었을까. 그런 운동이 미국을 거쳐 일본을 들른 다음 한국에 와서는 부자들의 전유물로 변질된 것이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천지사방에 산이 가득 차 있어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오를 수 있다. 등산이 귀히 여겨지지 않는 까닭이다. 상대적으로 좁은 땅덩어리에 많은 사람이 모여 사는 한국에서 결코 작지 않은 땅을 필요로 하는 골프로 여가를 보내는 일이야말로 보통사람으로서는 넘보기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거꾸로 이곳 스코틀랜드 사람들에게 등산을 해본 적이 있느냐고 물으면, 몇 차례 해봤다는 사람도 흔치 않을 것이고 오히려 등산이라는 것 자체를 모르는 이가 적지 않으리라. 그렇다면 한국에서 골프가 대중화하기는 불가능한 일이다. 골프 대중화를 운운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속임수에 불과하다. 서울에 사는 사람이라면 아무나 할 수 있는 북한산 등산이 이곳 사람들에게는 아무에게나 가능한 일이 아닌 것과 같은 이치다. |
프로골퍼가 아니라서 고마운
내 기억으로, 커누스티에서 골프는 세인트앤드루스에서보다 훨씬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운동이었다. 세인트앤드루스보다 상대적으로 시골이지만 골프장 숫자는 적지 않았던 때문으로 추측된다. 스타터에 들렀더니 곧바로 조인을 허락하는 것이었다.
그날 만난 일행은 이름표에 밀러라고 써붙인 한 사람과 그의 동료로, 모두 이곳 사람들이 아니었다. 이름표에 쓰인 ‘LACC’라는 글자로 보아서는 아마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인 모양이었다. 나처럼 회원권 하나 없는 골퍼야 어느 곳이든 마찬가지지만, LACC의 멤버가 여기까지 날아온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코스에 들어서면서 세인트앤드루스에서와는 달리 캐디를 불렀다. 스타터의 반 강요도 있었고, 이곳의 캐디피는 얼마나 되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기왕이면 좋은 스코어를 내보려는 욕심 때문이다. 애초에는 한국말을 할 리 없는 캐디로부터 조력을 제대로 받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고, 거리 정도는 야데이지 책을 사서 보면 족할 것이므로 캐디는 공연한 사치라고 여겼던 것이다.
예를 들어 커누스티 챔피언십 코스의 14번홀 468야드 파4홀에서의 일이다. 141야드의 파3홀인 13번홀에서 5번 아이언으로 티샷을 했더니 겨우 온그린될 정도로 강한 맞바람이 몰아치고 있었다. 심지어 11번홀에서는 티샷하기 전 커피잔이 바람에 날려 마시다 남은 커피가 몽땅 쏟아졌을 정도였다. 드라이버로 티샷을 했는데, 엄청난 벙커 턱에 가린 블라인드 홀이라서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홀컵까지 남은 거리가 260야드 이상으로 보였다. 스푼으로 아무리 잘 보내봐야 평상시 비거리가 210야드인 내가 무엇을 망설이겠는가. 그저 스리온이나 해서 운 좋게 파세이브를 기대하는 수밖에.
그런데도 캐디는 홀 주변에 위치한 벙커가 어떤지를 설명하면서 어느 클럽을 사용하겠느냐고 묻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주고받은 이야기로 보면 캐디가 멍청한 사람은 아니었기 때문에 그가 나를 비아냥거리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래서 못하는 영어나마 입을 열기로 결심했다.
“I don´t need thinking about TWO ON.”
7월22일(현지시간), 메이저대회 도전 39번째 만에 정상에 오른 파드리그 해링턴이 브리티시 오픈 우승의 상징인 ‘클라레 저그’를 안은 채 기뻐하고 있다.
‘處處有種眞趣味 人人有皆大慈悲.’
언제인가부터 내가 자주 인용하는 글귀 가운데 하나다. 애초에 이 글을 지어낸 이는 다른 뜻을 생각했는지 모르지만, 나로서는 ‘땅은 곳곳마다에 나름의 아름다움을 지녔고, 사람은 저마다 타고난 재주를 지니고 있다’는 믿음을 표현하는 말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커누스티에서 보낸 하루는 정말 이 글귀를 회의하지 않을 수 없게 했다. 코스는 길고 터프한데다 바람이 휘몰아쳐 나로서는 도저히 파온을 시킬 수 없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런 코스에서 언더파를 치는 프로들을 생각하니 그저 변호사로라도 먹고사는 현재의 내가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인생이란 이런 것이다
커누스티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일이 또 하나 있었다. 대체적으로 바람을 등지고 돌았던 전반 나인홀을 41타로 마무리하고, 새로운 각오로 맞이한 후반 10번홀에서의 일이다. 10번홀은 425야드의 파4홀. 역시 맞바람이 심하게 불고 있었다. 티그라운드에 올라서기도 전, 스코어카드에 표시된 야데이지와 코스 상황을 종합해 판단하건대 도저히 투온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캐디가 그린 직전에 개울이 있노라고 말한다.
생각보다 그리 나쁘지 않은 드라이버샷을 날려놓고 일행 두 사람이 티샷을 마친 뒤에 볼이 있는 곳으로 가보았다. 예상했던 낙하 지점과는 달리 티그라운드로부터 190야드 지점에 위치한 커다란 벙커의 가장자리에 내 공이 앉아 있다. 볼과 벙커 가장자리 끝 사이의 거리는 발을 대고 서 있을 수도 없을 만큼 좁았다. 오른손잡이인 내가 볼을 홀 쪽으로 보내기 위해 스탠스를 취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뒤로 빼내거나 옆으로 빼내거나, 4온을 해야 했다.
홀을 등지고 스탠스를 취해 오른쪽으로 볼을 보내려고 하니 러프가 있다. 옆으로 빼내더라도 반드시 왼쪽으로만 보내야 하는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바로 옆에는 또 다른 벙커 둘이 비스듬하게 나란히 연결돼 있다. 퍼터를 잡고 옆에 있는 벙커만 넘기자고 쳐냈으나 그만 벙커로 들어가고 말았다. 더욱이 벙커에 들어가서 샷을 할 수 없을 만큼 공이 턱에 바싹 붙어 떨어졌다.
옆으로 빼내려고 벙커샷을 했지만 턱에 부딪히고 튕겨 나온 볼이 다시 벙커 한가운데에 떨어지는 것 아닌가. 이번에는 오른쪽으로밖에 레이업하지 않을 수 없는 위치였다. 레이업했지만 이번에는 러프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다시 레이업을 했다. 그리고 그린을 향해 볼을 날리자 개울에 들어갔다. 드롭하고 어프로치하자 생크볼이 나왔다. 아홉타 만에 온그린했지만, 볼은 아직 홀에서 열한 발자국은 떨어져 있었다. 결국 11타 만에 홀아웃한 것이다.
인생은 이런 것이다. 누구에게나 이런 때가 오고야 마는 것이다. 내가 불행의 늪을 빠져나오려 아무리 고개를 숙여도 조물주가 허락하지 않는 한 닥쳐오는 불행을 어찌할 수 없는 법, 구약성경의 욥이 그랬던 것처럼 그저 받아들이는 수밖에. 그렇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불평한다. 평등하지 않다고, 자신은 불행하다고, 재수가 없다고 말한다. 우리 모두 조물주의 꼭두각시일 뿐이라는 사실을 잠시 잊는 것이다.
136회 브리티시 오픈 마지막날
그때 악몽 같은 경험을 하고 6년이 흐른 지난 7월22일, 136회 브리티시 오픈의 마지막 날 경기가 바로 그 커누스티에서 예정돼 있었다. 나는 밤중에 일어나 중계방송을 볼 요량으로 다른 날보다 훨씬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날이 바뀐 0시40분쯤 예정대로 일어나서 거실에 나와 텔레비전을 켜니, 9언더파로 출발이 예정되어 있던 가르시아가 스코어를 두 타 줄여 7언더를 만들어놓고 10번 446야드 파4홀에서 플레이하고 있었다.
커누스티 골프장은 세계 최초의 프로골퍼인 앨런 로버트슨이 10개 홀을 설계해 지어졌다. 커누스티 골프클럽이 설립된 것이 그 무렵이다. 그 후 1857년 클럽 이사회로부터 초빙을 받은 톰 모리스는 에든버러에서 마차를 타고 와서는 3개월이나 주위를 돌아다니며 지형에 은밀하게 손을 대 커누스티를 18홀로 확장했다. 다음으로 초빙된 이는 ‘골프 거인 삼인방’ 가운데 하나인 제임스 브레이드. 그는 6개월간 땅을 기어다니다시피 하며 지구상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가혹한 챔피언코스를 완성하고는 커누스티를 떠났다.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 영국의 모든 링크스 코스들과 마찬가지로, 커누스티가 던지는 최고의 난제는 변덕스러운 날씨다. 그 결정적인 요소는 바람. 또한 물살이 빠른 두 개의 개울은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되는 해저드다. 우선 ‘저키의 개울(Jockie´s burn)’은 처음 여섯 홀 가운데 네 홀을 지난다. 특히 3번홀 358야드 파4홀에서 개울은 언듈레이션이 많은 퍼팅그린을 가로질러 흐르면서 골퍼들이 어프로치할 때 정확한 클럽을 선택할 것을 강요한다. 악명 높은 ‘배리 개울(Barry Burn)’은 후반 9홀 중 첫 홀인 10번홀에서 나타났다가 사라진 다음, 다시 17번홀에서부터 홈홀인 18번홀의 페어웨이까지 꾸불꾸불 맴돌듯 흐른다.
이렇듯 난해하기 이를 데 없는 커누스티 챔피언코스는 홀마다 별명이 붙어 있다. 10번홀의 별명은 ‘남아메리카(South America)’다. 별명에 얽힌 뒷이야기에 대해, 이곳에서 네 번째로 열린 1968년 브리티시 오픈의 우승자 게리 플레이어는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인코스 10번홀에서는 허리가 빠지는 줄 알았다. 자그마치 거리가 452야드나 되는 파4홀. 이 홀의 별명이 ‘남아메리카’인데 그 의미가 무엇인지 캐디에게 물어보았다. 그 대답이 걸작이었다. 옛날 이곳에서 캐디로 일하던 이가 외국에 가서 골프를 전도할 계획으로 사표를 냈다고 한다. 송별회장에서 술을 마신 채 기념으로 마지막 플레이를 했는데, 10번홀에서 그만 잠이 들어버리고 말았다는 것. 잠에서 깬 그는 그곳이 자신의 목적지인 남아메리카로 착각하고 야단법석을 떨었단다. 그래서 그런 별명이 붙었다는 옛 이야기다.”
7월23일 0시40분, 위성을 타고 지구를 반 바퀴 돌아 내 집 거실 TV에 도착한 가르시아는 문제의 10번홀에서 플레이를 하고 있었다. 그 무렵 아일랜드의 영웅 파드리그 해링턴은 12번홀 499야드 파4홀에서 플레이하고 있었다. 그 앞에서 아르헨티나의 안드레 로메로는 12번홀에서 더블보기를 했지만 파3 13번홀과 ‘안경(Spectacles)’이라는 별명이 붙은 14번홀 514야드에서 모두 버디를 기록했다.
특히 로메로는 전반 아홉 홀 중에 보기 없이 버디 3개만을 주워 담아 33타를 기록한 다음 후반에 들어와서 마의 10번홀과 ‘둑(Dyke)’이라는 별명이 붙은 11번홀 383야드 파4홀에서도 연속 버디를 기록했다. 이후 그는 ‘러키 슬랩(Lucky Slap)’이라는 별명의 15번홀 472야드 파5홀에서 또다시 버디를 잡음으로써 공동 선두로 올라섰다. 그런 다음에는 ‘배리 개울’로 불리는 16번홀 248야드 파3홀의 티그라운드에 올라섰다. 커누스티의 16번홀에 관해, 1975년에 이곳에서 다섯 번째로 열린 브리티시 오픈에서 우승한 톰 왓슨은 이렇게 회상한 적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쇼트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쇼트홀은 어디인지 순위를 매기는 일은 분명 난센스이지만, 커누스티의 16번홀이 그중 하나임은 틀림없을 것이다. 별명만 봐도 알 수 있듯 아웃코스에서 진로를 방해하던 조그만 개울이 중간에서 사라졌다가 다시 이 16번홀에서부터 노골적으로 플레이를 방해하기 시작하는 구조가 끔찍하게 싫었다. 공략 루트도 좁은데다 그린 주위는 개울로 둘러싸인 248야드의 쇼트홀이 어떤 모습일지 한번 상상해보라.”
로메로가 티샷한 볼은 홀 오른쪽에 안착했는데, 로메로는 이것을 원퍼트로 홀아웃함으로써 또다시 버디를 기록하며 마침내 8언더파로 단독 선두로 뛰쳐나가는 기염을 토했다. 로메로는 자신의 눈부신 플레이에 스스로도 놀라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섬(Island)’이라는 별명이 붙은 17번홀 461야드 파4홀의 디그라운드로 이동했다.
그 사이 파드리그 해링턴은 14번홀에서 이글을 잡음으로써 9언더파로 단독 선두가 됐다. 이렇게 로메로와 해링턴이 선전하는 사이 사흘 내내 선두를 질주해온 가르시아는 ‘사우스워드호(Southward Ho)’라는 별명이 붙은 12번홀에서 위기를 맞았으나 간신히 파로 마무리했다. 위기 뒤에 기회가 오는 법. 가르시아는 이어지는 13번홀 168야드 파3홀에서 멋지게 버디를 함으로써 해링턴에게 바싹 다가선 다음 해링턴이 이글을 기록했던 14번홀에 이르렀다.
그 순간 필자는 가르시아가 이 홀에서 버디를 기록하면 우승을 차지할 확률이 높다고 생각했다. 가르시아는, 이곳에서 세 번째로 열린 1953년 브리티시 오픈의 우승자인 벤 호겐처럼 이번 대회 기간 줄곧 티샷을 할 때 드라이버를 사용하지 않고 아이언으로 티샷을 날림으로써 페어웨이를 지키려는 전략을 철저히 실행해왔다. 그런 모습이 약간 지루하게 느껴질 정도로 가르시아는 침착하게 게임을 풀어 나갔다.
그런데 그가 세컨샷한 볼은 길쭉하게 생긴 그린의 뒤쪽 끝까지 굴러가서 겨우 멈추어 섰다. 이글은 도저히 불가능하고 버디를 할 수 있도록 붙이는 것조차 쉽지 않아 보였다. 가르시아로서는 이 홀이 우승의 기로가 될 수밖에 없었다. 아니나다를까 그가 첫 퍼트한 볼은 약 2m 정도 홀을 지나갔고, 버디를 노린 그가 두 번째로 퍼트한 볼은 홀을 살짝 비켜섰다. 그 모습을 보며 필자는 우승의 향방이 해링턴과 로메로의 승부에 달려 있다고 섣부르게 판단했다. 그 순간 카메라는 17번 홀에서 세컨샷을 준비하는 로메로의 모습을 비췄다.
커누스티의 17번홀은 배리 개울 때문에 페어웨이가 3등분돼 있다. 그럼에도 이 홀은 얼른 봐서는 편평해 보인다. 트러블이 어디에 있는지도 쉽게 보인다. 티그라운드에 서면, 개울이 우선 그린에서 약 144야드 떨어진 페어웨이 오른쪽에서 흘러들어와 그린에서 약 177야드 떨어진 페어웨이 중간지점을 거쳐 왼쪽으로 페어웨이를 비스듬하게 가로질러 흐른 다음, 페어웨이 왼쪽 부분을 따라 티그라운드 쪽으로 흘러오다가 티그라운드 바로 앞을 가로질러 다시 페어웨이 오른쪽을 따라 티그라운드에서 약 162야드 지점까지 그린 쪽으로 흘러간 뒤 페어웨이 오른쪽으로 흘러나가는 광경을 볼 수 있다.
또한 페어웨이 양쪽이 러프 지역인 것도 쉽게 눈에 들어온다. 그래서 골퍼들은 티샷을 할 때 개울 물이 들어왔다가 나가면서 만들어놓은 페어웨이의 오른쪽 부분을 선호하게 된다. 하지만 그 지역에는 제멋대로인 러프가 있어서 결코 방심할 수 없다.
로메로의 안이함, 해링턴의 당당함
로메로도 그곳을 겨냥해 티샷을 날렸다. 그러나 그의 티샷은 너무 오른쪽으로 치우쳐서 러프로 들어가고 말았다. 더욱이 로메로의 세컨샷은 예기치 않게 OB가 났다. 아이언을 사용했는데도 OB가 난 것이다. 로메로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우드를 잡고 세컨온을 시켰으나 더블보기를 범함으로써 순식간에 3위로 밀려나고 말았다. 설상가상으로 로메로는 18번홀 499야드 파4홀에서 보기를 범해 6언더파로 경기를 마쳤다.
조금 다른 얘기지만, 로메로의 플레이를 지켜보는 동안 필자는 그가 우승할 자격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16번홀에서 버디를 함으로써 선두로 치고 올라왔을 때 당당한 모습을 보이기보다는 자신의 선전을 의아해하는 듯한 표정을 짓는 것이나, 17번홀에서 더블보기를 기록한 뒤 18번홀에서 세컨샷을 할 때에 신중하지 않은 듯한 태도 때문이었다.
결과론이긴 하지만 그가 17번홀에서 OB를 내고 더블보기를 기록했다고 해도 18번홀에서 파를 함으로써 7언더파만 유지했다면 연장전에 나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마치 체념하는 듯한, 혹은 커누스티에서 4언더파를 기록한 것만으로도 자신으로서는 대단한 업적이라고 여기는 듯한 태도로 18번홀에서 안이하게 경기를 펼쳤다. 모두 아홉 개의 버디를 잡을 만큼 눈부신 플레이를 하고도 우승하지 못했다면 천추의 한이 될 수밖에 없을 것 같아 안타까웠다.
우승 문턱에 섰던 로메로가 이처럼 무너져 내리는 사이, 14번홀에서 이글을 잡으며 단독 선두로 올라선 파드리그 해링턴은 17번홀까지 무난하게 파로 마무리하고 18번홀의 티그라운드에 올라서고 있었다. 나는 평상시 해링턴의 시원스러운 플레이에 찬탄을 보내곤 했다. 그는 볼을 앞에 놓고 망설이는 법이 한 번도 없었다.
이 때문에 나는 그를 볼 때마다 “레슨서를 읽어 골프 실력이 늘어난다면, 100권을 읽으면 프로가 될 수 있다는 거냐”고 되받으며 ‘정석’과 ‘폼’으로부터의 자유를 구가하는 아일랜드 골퍼들 특유의 문화를 떠올리게 된다. 어떤가? 독자는 해링턴의 스윙을 떠올리면 그의 플레이가 크리스티 오코너나 해리 브래드쇼, 테즈 스미스, 조 커, 로난 라파디, 프레드 데일리 같은 선배들의 가르침을 그대로 실천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가? 나는 늘 해링턴의 플레이가 아일랜드식 골프의 살아 있는 교본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6년 전의 그 말
생각이 여기까지 미칠 무렵, 해링턴은 단독 선두로 마침내 18번홀 티그라운드에 섰다. 그리고 거침없이 드라이버를 꺼내들었다. 커누스티의 18번홀은 티그라운드 앞에서부터 배리 개울이 페어웨이 오른쪽을 따라 그린 쪽으로 흘러가다가 티그라운드로부터 250야드 떨어진 지점에서 꺾여 티그라운드 쪽으로 거슬러 흘러 들어오면서 페어웨이를 가로지른다. 이어서 개울은 티그라운드로부터 220야드 떨어진 페어웨이 왼쪽지점에서 꺾여서 그린 쪽으로 페어웨이 왼쪽을 따라 흘러가다가, 다시 그린에서 23야드 떨어진 지점에서 오른쪽으로 꺾이며 페어웨이를 가로질러 흘러 나가면서 그린을 가로막는다. 결국 티그라운드에서 그린까지 볼은 세 차례나 개울을 건너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칫 잘못하면 티샷한 볼이 개울의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고, 그래서 많은 선수는 18번홀 티그라운드에 올라서서 어떤 클럽으로 티샷할지 망설이게 된다. 이런 홀에서 한 타 앞서 간발의 선두를 달리고 있는 선수가 조금도 주저함이 없이 드라이버로 티샷을 날린다니, 도대체 그는 얼마나 강심장이란 말인가.
그러나 해링턴이 티샷한 볼은 개울의 재물이 됐다. 허나 해링턴은 그다지 동요하지 않은 채 꺼덕꺼덕거리는 특유의 걸음걸이로 세컨샷을 할 지점을 탐색했다. 아뿔사! 해링턴이 드롭하고 친 볼은 이번에는 그린을 가로막고 흐르는 배리 개울로 빨려 들어가고 말았다. 그제서야 해링턴의 얼굴이 일그러지며 긴장하는 기색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 순간 나는 골프 규칙에 따라 다섯 번째 샷이 되는 해링턴의 어프로치샷이 그날의 우승을 가를 것임을 직감했다. 얼른 그의 표정을 살폈다. 어프로치샷을 준비하던 해링턴의 표정은 그에 앞서 자멸함으로써 우승권에서 사라진 로메로와는 확실한 차이가 있었다. 그는 실망하거나 포기하기보다는 오히려 비장한 각오를 내비치고 있었다.
아니나다를까 해링턴이 어프로치샷한 볼은 홀컵에서 1m 안쪽에 멈추어 섰다. 더블보기! 그것은 트리플보기와 달리 뒤쫓아오는 가르시아로 하여금 심리적 압박감을 갖게 하기에 충분한 스코어였다. 더욱이 18번홀에서 가르시아가 파를 노리고 퍼트한 볼이 홀의 가장자리를 타고 돌아나오는 모습을 보며 가르시아와 해링턴의 연장전 결과가 이미 예견되는 것 같았다.
그 순간 나는, 문득 2001년 9월24일 커누스티의 10번홀에서 느낀 감정을 다시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인생이란 이런 것이다. 내가 불행의 늪을 빠져나오려 아무리 고개를 숙여도 조물주가 허락하지 않는 한 닥쳐오는 불행을 어찌할 수 없는 법, 구약성경의 욥이 그랬던 것처럼 그저 받아들이는 수밖에. 그렇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불평한다. 평등하지 않다고, 자신은 불행하다고, 재수가 없다고 말한다. 우리 모두 조물주의 꼭두각시일 뿐이라는 사실을 잠시 잊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