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한 시인이 윈난에서 티베트까지 차마고도를 여행하고 쓴 ‘하늘에서 가장 가까운 길’(넥서스)
“여행은 두고 갈 것에 미련을 두면 떠나지 못하고 머물 수밖에 없습니다. 인터넷의 편리함도 안마기가 딸린 안락의자의 편안함도 잠시 버려야 합니다. 그 비워진 만큼은 여행이 알아서 채워줄 것입니다.”(‘걸어서 세계속으로’ 선임 프로듀서 박흥영)
‘아이고, 감사합니다. 떠날 용기를 주셔서.’ 나는 그렇게 몽골로 떠났다. 다녀오니 여행에 대해 궁금해하는 이가 많다. 10박11일의 몽골 여행 일정이 결코 간단치 않지만, 정말 궁금한 사람에겐 이렇게 요약 정리해준다.
“몽골의 북서쪽에 있는 울기라는 소도시를 중심으로 몽골 알타이 유적지를 돌아보는 코스야. 그곳은 돌궐, 흉노 등 유목민족의 중심지였어. 자동차로 한참 달리다가 밤이 되면 적당한 곳에서 야영을 하는 거야. 캐러밴이지. 5대의 차가 줄지어 가고 맨 뒤에는 큰 트럭 한 대가 따라오는데, 이 트럭에는 숙소로 쓰는 천막집 게르(ger) 2채, 2인용 텐트 4개, 간이 화장실과 샤워용 텐트 4개, 부엌용 텐트 1개, 몽골 인부 숙소용 텐트 1개, 일주일치 식량, 그리고 맨 꼭대기에 양 한두 마리를 싣고 가는데 ‘양고기로 에너지 보충하자’ 하는 얘기가 나오면, 양 한 마리가 조용히 사라지지.”
‘저 푸른 초원’이 자연화장실
이쯤 되면 사람들의 눈은 호기심으로 반짝인다. “그래서 뭘 봤는데? 말은 탔어?” 물론 말도 실컷 탔다. 왕복 4시간 넘게 말을 탔으니 초보자에게는 실컷 정도가 아니라 무리한 일정이었다. 말을 타고 해발 3000m 정도의 타반보르 산을 올랐다! 가파른 고갯길을 오르고, 돌밭을 지나 너른 초원을 달리고, 가끔 말들도 빠져 죽는다는 늪을 조심스럽게 지나자 군데군데 얼음덩어리가 보이는가 싶더니 고원 끝에 만년설을 뒤집어쓴 타반보르 정상이 나타난다. 바지를 두 벌이나 껴입고 점퍼에 장갑까지 꼈지만 무방비인 귀는 떨어져 나갈 듯 아프다. 수건으로 귀를 친친 동여맸더니 영락없이 시장통 생선가게 아줌마다.
비 갠 뒤 하늘을 가르던 세 쌍의 무지개, 말 타고 오른 산, 그림책 속에서처럼 노랗게 빛나던 달, 밤마다 하늘을 수놓는 은하수, 산 전체를 뒤덮은 바위그림, 코끝과 볼이 발갛게 타버린 천진난만한 몽골 아이들, 양떼와 염소떼를 지나 간간이 어슬렁거리는 야크와 낙타까지 몽골의 볼거리에 대해서는 할 얘기가 너무나 많다.
하지만 감탄 뒤의 질문이 예리하다. “제대로 씻긴 한 거야?” “당연히 못 씻었지요.” 하루 종일 털털거리는 밴을 타고 비포장도로를 달리면 입 안에서 흙먼지가 서걱서걱 씹힌다.
그나마 물가에서 씻을라치면 빙하 녹은 물에 손끝이 아려 찍어 바르는 정도로 세수를 마쳐야 했고, 쌀뜨물처럼 허연 석회수에 발을 담글 엄두가 나질 않아 안 씻은 채 침낭 속에 들어가 자버린 게 여러 날이다. “그럼 화장실은?” “주변이 온통 자연화장실인데 뭐가 걱정이람.” 이틀쯤 지나면 바위 뒤에서 시원하게 엉덩이를 드러내고 큰일까지 볼 수 있게 된다. 냄새를 없애주는 몽골의 쨍하고 건조한 날씨에 감탄하면서!
여기까지 떠들고 주위를 둘러보며 묻는다. “내년에도 비슷한 코스로 갈 건데 같이 갈래?” “절대로 안 간다”며 고개를 젓는 이는 있어도 “나 갈래” 하며 따라나서는 이가 없다.
시간의 미아가 되는 여행자들
솔직히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아도 가슴에 담아온 몽골의 파란 하늘과 쏟아지는 별빛의 감동을 그대로 전할 방법이 없다. 그것을 담아내기엔 나의 표현력이 너무 빈약한 탓이다. 그 참에 이용한 시인이 쓴 ‘하늘에서 가장 가까운 길-티베트, 차마고도를 따라가다’(넥서스)가 나왔기에 냉큼 샀다. 내년쯤 가려는 코스가 들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윈난에서 티베트까지 제목 그대로 ‘하늘에서 가장 가까운 길’이라 하는 차마고도를 시인은 어떻게 담아냈을까 궁금했다. 아, 그런데 이 책에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다 있다. 시인은 차마고도의 황토색 강물과 먼지 날리는 비포장도로, 그 위로 펼쳐진 눈부시게 푸른 하늘을 보며 이렇게 쓴다.
“누군가는 이곳에서 ‘허무’를 보았다 하고, 누군가는 ‘영혼의 풍경’을 보았으며, 또 누군가는 ‘오래된 미래’를 보았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 나는 ‘시간의 미아’가 된 기분이다. 내 앞에서 멀고 아득한 지층연대의 풍경이 가물거렸다. 산은 산대로 출렁거렸고, 물은 물대로 가랑이졌다. 고갯마루에 올라앉은 마을은 희미한 종교처럼 빛났으며, 양떼를 몰아가는 목부의 뒷모습은 환영처럼 아른거렸다. 냉정함을 잃지 않은 봉고차만이 현실적인 티베트의 길을 터덜터덜 달려가고 있었다.”
몽골에서도 그랬다. 몇 시간이고 비슷한 풍경을 바라보다 보면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착각을 하게 된다. 며칠 지나면 날짜도 요일도 잊어버린다. 그곳에서는 시간의 흐름이 우리와 다르기 때문이다. 시인은 이렇게 썼다.
“티베트의 시간은 비유하자면, 말과 야크가 걷는 속도로 흘러간다. 한국에서는 서울에서 목포까지 4시간 반이 걸리지만, 여기서는 그 정도의 거리를 가자면 꼬박 하루가 걸린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서두르는 법이 없다. 우리는 한 시간 늦는 것에 안달을 하지만, 여기에서는 한 시간쯤 늦는 것은 늦는 것이 아니다. 비행기도 제시간에 떠나는 적이 없고, 버스는 아예 시간표가 무의미하다. 티베트에서 급하다고 발을 동동 구르는 사람들은 십중팔구 외국인들이다.”
시인이 해발 5008m 둥다라산을 넘으면서 시동이 제대로 걸리지 않는 차를 타고 배터리가 떨어질까봐 전조등을 켜지도 못한 채 천길 낭떠러지 위의 좁은 길을 마음 졸이며 갔다고 할 때, 울란바토르에서 하르호린으로 가는 도중에 버스(첫 이틀 동안은 대형관광버스를 타고 다녔다)가 비포장도로를 달리다 진창에 빠졌던 일이 떠올랐다. 그때 우리는 차에서 내려 그 큰 버스를 무모하게 밀어보기도 하고, 지나가던 지프를 세워 밧줄로 연결해 끌어도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오히려 바퀴는 더 깊이 진창에 박혔다. 결국 운전사와 가이드가 마을로 걸어가 트랙터를 빌려와서 ‘몇 초 만에’ 버스를 꺼냈다.
서두르지 않아도 인생은 짧다
그 뒤로도 버스는 타이어가 펑크 나고, 왼쪽 쇼바(쇼크업소버)가 나가서 30도쯤 기울어진 채로 거의 기다시피 해서 밤길을 갔다. 우리는 별빛밖에 안 보이는 초원에서 날밤을 새우는 게 아닐까 싶어 마음을 졸였지만, 그 와중에도 이내 눈꺼풀은 중력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처졌다. 어느새 몽골의 시간이 몸에 밴 것일까.
밴을 타고 이동할 때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야트막한 언덕만 나와도 끄윽끄윽 트림하는 차를 위해 내려 걷는 일이 다반사이고, 비포장도로의 뾰족한 돌에 채이고 채인 낡은 타이어는 수시로 이상 신호를 보냈으며, 갑자기 불어난 물에 급류가 흐르는 강을 차가 한 대씩 무사히 건널 때마다 우리는 박수로 환호했다.
그러니 티베트의 란창강을 따라 포우싼 마을로 가는 비포장도로에서 흘러내린 토사물로 길이 막히자, 불도저가 치울 때까지 무작정 기다리던 시인의 심정을 이해하고도 남는다. 그곳서 여행자가 기다리는 것 외에 무엇을 할 수 있으랴.
“애당초 차마고도를 따라가는 여행은 ‘느림’과 ‘불편함’을 경험하는 일이다. 차마고도에서 너무 늦게 가는 것을 탓한다면, 차마고도를 따라갈 이유가 없다. 서울에서 출근하듯 여행하기를 바라는가. 그렇게 서두르지 않아도 인생은 충분히 짧다. 마땅치 않은 숙소를 탓하거나 입에 맞지 않은 음식을 탓해서도 안 된다. 본래 여행이란 제 입맛대로 굴러가기가 어려운 법이다. 다른 건 몰라도 차마고도에서 나는 느림과 불편과 덜컹거림과 숨참을 즐긴 것만큼은 확실하다”(‘하늘에서 가장 가까운 길’의 에필로그).
사람들은 대부분 여행을 떠나기 전에 여행책을 본다. 하지만 ‘하늘에서 가장 가까운 길’은 집 떠나 고생해본 뒤 느긋하게 읽어야 제맛이 나는 책이다. 아니, 떠나기 전에 보는 여행책과 돌아와서 다시 보는 여행책에서는 확연히 다른 맛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요즘 여행책에는 성수기, 비수기가 따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