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9월호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남북정상회담서 핵 폐기·군축·평화협정 기대하는 건 난센스”

  • 황일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입력2007-09-12 20: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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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상회담 결정만으로 ‘北 핵 포기 결심’ 추론은 무모”
    • “군축 문제, 남이나 북이나 군 설득 쉽지 않아”
    • “초기 정상회담 전략회의 멤버는 통일부 장관, NSC 사무차장, 국정원 3차장·담당국장”
    • “고영구, 김승규 원장은 대북전문가 아니라서…”
    • “‘중개역’ 자임하고 찾아온 사람들, ‘교통정리’해야 했다”
    • “림동옥 사망 후 논의 종합할 北 ‘중간결정자’ 없어”
    • “감정 실린 비판 있었던 건 내가 덕이 부족해서…”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 1958년 경기 남양주 출생 <br>▼ 성균관대 행정학과 졸업, 동 대학원 박사(정치외교학) <br>▼ 세종연구소 남북관계연구실 연구위원 <br>▼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 수행원 <br>▼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제1분과(정치·행정) 위원 <br>▼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 센터장 <br>▼ 제16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외교·통일·안보분과 위원 <br>▼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 <br>▼ 통일부 장관, NSC 상임위원장(겸임) <br>▼ 現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뜻밖에도 그는 다소 지쳐 있었다. 남북정상회담 합의가 발표된 후 관련 당국자들의 인터뷰가 전면 중단된 상황에서 사실상 정상회담에 관한 정부측 시각을 설명하는 ‘비공식 대변인’ 노릇을 하느라, “한동안 누리던 여유를 빼앗기고 있다”고 했다. 노무현 정부 초기부터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과 통일부 장관을 지내며 대북정책을 총괄했던 이종석(李鍾奭·49)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재임 기간에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해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정부 공식라인의 책임자로 일했던 그에게서 정상회담 추진과정의 뒷이야기와 회담 전망을 듣기 위해 8월10일 연구실 문을 두드렸다.

    정상회담을 앞두고 갖가지 장밋빛 청사진이 쏟아져 나오고 정치권은 물론 정부 당국자들도 이에 동참하고 있는 형국이지만, 이번 정상회담에 대한 그의 평가는 한결 냉정했다. 한 번의 정상회담으로 남북간의 모든 이슈가 해결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는 것. 북핵 문제 해결과정에 대한 한국과 미국 당국자들의 ‘시한 설정’ 역시 무리가 있다고 지적하는 그의 말은 사뭇 예상과 달랐다. 재임 기간 ‘자주파’라는 비판을 무수히 받았던 것과는 달리, 야당의 정상회담 거부 못지않게 여권의 과도한 정치적 활용을 경계하는 목소리 역시 뜻밖이었다.

    “환상을 심어서는 안 된다”

    예정시간을 넘겨 2시간30분가량 진행된 인터뷰의 첫 질문으로는 북한의 핵 포기 의사를 골랐다. 김대중 정부의 대북정책을 총괄했던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8월8일 ‘프레시안’ 인터뷰) 등 많은 인사가 이번 정상회담 개최가 북한의 핵 포기 결심을 의미한다고 분석한 바 있기 때문이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핵 문제에 대한 분명한 언급이 있어야 한다는 주문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 김정일 위원장이 왜 정상회담에 응했는지에 대해 많은 관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6자회담 진전이나 BDA(방코델타아시아) 문제 해결 같은 환경변화는 충분히 설명이 된 듯하고, 구체적으로 과연 김 위원장이 핵을 포기하기로 결심했다고 보시는지요.



    “북한이 핵을 포기하기로 결심했느냐에 대한 답은 저도 자신은 없습니다. 북한이 핵을 포기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게 우리의 목표이긴 하지만, 포기할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을 갖고 한 것은 아니니까요. 다만 지난 7년 동안 북한이 남북정상회담을 지연시켜온 건 뒤집어 말하면 ‘정상회담을 하면 상황을 진전시키는 구체적인 뭔가가 필요할 것’이라는 부담을 갖고 있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정상회담에 응한 것을 통해 김 위원장이 자신감을 갖고 대외관계를 해보려는 의지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러나 그것만 갖고 핵 포기 결심 여부를 추론하는 것은 무모한 일이라고 봅니다.”

    ▼ 이번 정상회담에서 핵 폐기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 있을 것이다, 혹은 있어야 한다는 분위기가 만만치 않은데요.

    “남북 정상이 핵에 대해 합의할 수 있는 범위는 제한돼 있습니다. 6자회담의 틀이 있고, 이 문제는 북한과 미국이 핵심 당사자니까요. 핵 폐기를 약속하거나 핵 불능화 시점을 설정하는 문제는 남북이 만나서 합의할 수 있는 범주를 넘습니다. 이를 촉진하는 계기를 만들고 영향을 미칠 수는 있겠지만, 원칙적인 언급 이상은 어려울 겁니다. 정상회담은 만병통치약이 아니니까요.

    다만 2단계 불능화로 넘어가고 있는 프로세스에 모멘텀을 주는 수준이라고 보는 게 정확할 겁니다. 북미 간에 정상회담이 열린다 해도 핵에 관한 한 ‘6자회담에서 이렇게 하기로 했다’는 수준 이상의 언급이 나오기는 어려울 겁니다. 하물며 남북정상회담에서 나오는 선언문이나 합의문에서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그건 도를 넘어선 기대이고, 할 수 없는 일을 욕심내는 겁니다.”

    ▼ 그러나 핵 폐기에 대한 구체적인 진전이 어렵다면 무엇 때문에 회담을 하겠느냐는 의문이 생깁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구체적인 성과가 나오지 않는다면 오히려 역풍이 거셀 가능성도 적지 않습니다만.

    “구체적인 진전이라는 것도 기준이 모호합니다. 그 목표를 너무 과도하게 잡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고요. 정상회담을 하면 대단히 큰 진전이 있을 것이라는 만능론이나 정상회담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것 아니냐는 과도한 경계 모두 적절치 않다고 봅니다.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1차 정상회담이 남북관계의 판을 새로 짜는 효과가 있었다면 이번 회담은 새 판을 공고히 하는 것입니다. 1차와 같은 무게를 기대할 수는 없죠. 정례화라는 말을 하는 것도 정상회담을 일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이자는 뜻입니다. 지금의 여론은 마치 정상회담을 한 번만 하고 말 것 같은 분위기인데, 이건 문제가 있습니다. 그간 정상회담이 계속 지연되면서 신비화된 측면, 환상이 된 측면이 있는 게 사실이지만 정상회담은 시기나 국면에 상관없이 어느 때나 필요한 것 아니겠습니까.”

    ▼ 그러나 정상회담에 대해 기대가 지나치게 커진 것에는 이러한 분위기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흐름 탓도 있는 것 아닙니까. 특히 최근 1년 동안 정치권에서 그러한 뉘앙스의 발언이 적지 않게 나왔고요.

    “제가 정치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적절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2·13합의 이후 한반도 평화체제에 대한 논의가 갑자기 쏟아질 때도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지만 당장 무슨 일이 벌어질 것처럼 환상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를 몇 차례 한 일이 있습니다. 정상회담은 정파(政派)를 초월해 모두의 성과가 되어야 하는 것이고, 그러자면 국내 정치적 맥락에서 정상회담을 무조건 반대하는 것이나 반대로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것은 모두 경계할 필요가 있는 거죠.”

    “4자 정상회담, 가능성 있다”

    ▼ 예정된 북핵 문제 관련 일정에 정상회담이 어떤 영향을 끼칠 거라고 보십니까. 9월 초순 예정돼 있는 6자회담 본회의, 이후 6자 외무장관회담은 물론 4자 정상회담 개최방안을 거론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나 김정일 위원장의 캐릭터로 볼 때 (핵 문제에 관해) 국민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허심탄회한 이야기가 오갈 겁니다. 정상회담이 필요한 이유가 그런 허심탄회함에 있는 것이니까요. 그 논의 결과가 6자회담 협의에 탄력을 주고 이를 통해 북핵 불능화 스케줄이 합의되면 한반도 평화체제 포럼이 본격적으로 거론될 수 있겠죠. 그 틀 안에서 6자 외무장관 회담 같은 일들이 이어질 겁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최소한 불능화 합의에 대해 북한이 의지를 갖고 있다는 확신 혹은 전망을 갖게 되면 미국도 4자 정상회담을 마다하지 않을 것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이는 4자 정상회담의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는 것이지, 남북정상회담이 필연적으로 4자 정상회담으로 연결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4자가 만나면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는 문제를 논의할 수밖에 없는데, 이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니까요.”

    “연내 북핵 불능화는 무리한 목표”

    ▼ 눈여겨볼 것은, 이 부분에서 서울과 워싱턴 사이에 온도 차이가 느껴진다는 점입니다.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대사나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의 발언을 보면 미국측은 평화체제 논의에 대해 ‘연내’ 정도로 시한을 설정하고 있는 반면, 우리 정부는 상대적으로 서두르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버시바우 대사는 7월11일 “미국은 한반도 평화체제 협상의 과정을 올해 안에 시작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한 바 있다. 2·13프로세스의 2단계 조치인 북핵 불능화가 연내에 이뤄지길 희망한다고 밝혀온 힐 차관보 역시 7월16일 “우리는 평화체제 논의를 비핵화의 실질적 진전에 맞춰 진행하길 원한다”면서 “비핵화 이슈를 해결하기 전에 평화체제를 달성할 수 없다”고 말해 속도조절론에 무게를 실었다).

    “사견임을 전제하고 말씀드리면, 2단계 불능화 이행계획 합의에 적잖은 시간이 걸릴 테지만 그 합의만 나온다면 이 때부터는 한반도평화체제 포럼을 출범시키는 본격적인 논의가 가능하다고 봅니다. 북핵 문제보다 평화체제 논의가 먼저 갈 수는 없겠지만, 불능화가 끝날 때까지 평화체제 논의를 미룰 필요도 없다는 것이지요.”

    ▼ 미국이 시간표를 상대적으로 길게, 특히 ‘연말’을 염두에 두고 있는 듯한 발언을 내비치는 데에는 이 문제가 한국 대선에 이용되는 것을 경계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 있습니다. 2·13프로세스나 평화체제 논의의 급속한 진행이 한국에서 이슈가 되어 정치적으로 활용되는 것을 염려한다는 것이지요.

    “글쎄요. 저는 6자회담 프로세스는 한국의 정세와는 관계없이 흘러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시점에서 정상회담이 열리는 것에 대해 국민 다수가 지지하는 것만 봐도 관계가 깊다고 보기 어렵고요. 또 과연 한국의 대선이 미국에 그렇게 큰 이슈일까요?(웃음) 미국이 고려할 수 있는 유일한 정치적 스케줄이 있다면 내년의 미국 대선 정도겠죠.

    북핵 불능화나 폐기 같은 기술적인 사안을 합의하고 이행하는 데는 엄청난 시간이 걸릴 겁니다. 9월 6자회담에서 논의될 불능화 절차도 한 번 논의로는 해결되지 않을 수 있고요. 그렇기 때문에 불능화의 시한이 언제다라고 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겁니다. 다만 유일 초강대국이자 당사국인 미국의 대통령이 강한 의지를 갖고 있으니까 조기에 해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정도이지, 실제로 그렇게 된다면 매우 예외적인 겁니다. 아무리 긍정적으로 잡아도 불능화가 연말까지 이뤄진다고 보는 것은 지나친 것이죠.”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2005년 6월17일 정동영 당시 통일부 장관(왼쪽 두 번째)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면담 기념사진. 장관 귀환 직후 통일부에서 배포한 이 사진에는 그때까지만 해도 비공개 신분이던 서훈 당시 국정원 대북전략국장(오른쪽 끝)의 모습이 담겨 있어 뒷말을 낳았다.

    ▼ 정상회담 직후에 나온 미국측의 여러 반응을 종합하면, 돌발변수를 만났다는 인식이 엿보입니다. 정상회담을 통해 경제적 지원 등이 구체적으로 약속되면 북한에 대한 관련국들의 공조에 균열이 생겨 6자회담 프로세스에 부담을 주는 것 아니냐는 우려겠지요.

    “우리가 상반기 중에 정상회담을 한다고 했다면 미국이 미온적일 수 있었겠죠. 그러나 이제는 미국도 정책을 전환했고, 이를 위해 대미협조에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2·13합의 이후에도 대북 쌀 지원 중단이 한동안 유지된 것도 그러한 조정이 있었던 것이고요. 그 때문에 남북관계가 북미관계 진전에 비해 반 발짝 물러나 있는 상황도 있었지만, 이제 그 부분은 해소된 것 아니겠습니까. 때문에 현 상황에서는 도리어 미국도 남북정상회담에 기대할 만한 부분이 있다고 봅니다.

    물론 미국과 우리가 100% 생각이 같을 수는 없지만, 2·13프로세스에 대해 북한이 미온적으로 나온다면 한국이나 중국도 그에 대응할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우리가 미국을 그렇게 설득해왔고요. 남북간 경제협력 확대는 어쩌면 2·13프로세스보다도 더 오랜 시간이 걸릴 일입니다. 당장 올해 안에 북한에 엄청난 경제적 지원이 이뤄진다든가 하는 일은 불가능한 것이죠. 미국이라고 해서 이를 모를까요.”

    “군축 논의? 동북아를 생각해야”

    ▼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1차 정상회담에서 논의되지 못한 군사부분 의제가 나올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입니다. 서해 북방한계선(NLL)이나 주한미군, 비무장지대 관리, 더 크게는 군비통제나 군축에 관한 합의가 이뤄질 것이라는 예상도 나오고요.

    “일단 주한미군에 대한 언급은 없을 거라고 봅니다. 그간 남북회담을 하면서 거의 나오지 않은 이슈가 주한미군이고, 1차 정상회담에서도 그에 대한 김 위원장의 입장이 흐릿한 형태로나마 나왔습니다. 정상회담에서 그 얘기가 나올 수는 있겠지만 김 위원장이 이 문제로 고집을 피울 것이라고 보는 건 상투적인 비판 아닌가 생각합니다.

    NLL 문제는 대통령께서도 관심이 많은 사안입니다. 제가 NSC에 있을 때도 서해에서의 평화정착에 대해 특별지시를 하셔서 2004년 6월 장성급회담에서 관련 합의가 나온 적이 있고요. 그 후 북한이 NLL을 이른바 ‘근본문제’로 내걸었기 때문에 이번 회담에서도 어떻게든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을 겁니다.

    반면 군비통제나 군비축소 문제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군대를 몇km 뒤로 빼는 것은 물론, 서로 교류하거나 연락을 주고받는 정도도 합의하기가 만만치 않습니다. 하물며 군대를 줄이거나 국방력 강화를 중단하는 등의 구조적인 군비통제는 더더욱 어렵죠. 지금 상황에서 양 정상이 군대를 얼마 줄이자고 논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과도한 기대입니다. 북한은 북한대로 자기 군대를 설득해야 하고, 우리라고 해서 설득할 게 없겠습니까. NLL만 해도 개인적으로는 남북기본합의서에 있는 대로 앞으로 계속 논의하고 합의하기 전까지는 현 경계선을 준수하면 된다고 보지만, 일각에서는 아예 논의 자체가 안 된다고 하니까요.

    오늘날 한국군이 대북억제력만 생각하고 국방개혁2020을 추진하는 게 아니잖습니까. 동북아에서 한국이 생존하기 위한 최소한의 자위적 국방력도 생각하면 군비축소나 국방력 강화 동결 같은 이야기를 쉽게 할 수 없다는 겁니다. 역으로 선군(先軍)정치, 선군국가를 말하는 북한이 현 병력을 줄이자는 식의 얘기를 어떻게 하겠습니까.

    동북아를 모두 고려하는 ‘미래 한반도 전력’이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그런 식으로 접근해선 안 됩니다. 방향성에 대해서는 얘기가 가능할지 몰라도 구체적이고 정밀한 논의를 진행하자면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가늠하기 쉽지 않으니까요. 그건 정상회담 한두 번만 더 하면 통일된다는 것이나 다름없는 난센스입니다.”

    “이번은 정례화의 중간단계”

    ▼ NLL 문제에 대해 2005년 노무현 대통령이 “예단 없이 가능한 모든 검토를 해보라”고 지시한 일이 있습니다.

    “NLL 문제는 앞서도 얘기했듯 기본합의서 정신을 바탕으로 논의하면 된다고 봅니다. 다만 북한은 현재 선을 준수한다는 걸 받아들이기 쉽지 않고, 우리 군에서는 협의 자체가 불가하다는 의견이 있는 것이고요. 그렇게는 문제가 풀리지 않습니다. 특히 공동어로구역은 경계선 문제와는 다른 차원에서 생각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똑같이 나눠먹자는 것보다는 어획량 등을 생각하며 탄력적으로 운용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그 협의 또한 만만찮게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고, 이번 정상회담에서 분명 의견교환이 이뤄지겠지만 경계선을 재설정하는 식의 결론을 내리는 합의는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이번 정상회담은 정상회담을 정례화하는 중간단계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다음 대통령이 안정적으로 정례화하고 더 깊게 논의하는 식으로 단계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야지, 이번 한 번에 모든 걸 풀겠다고 생각할 이유가 없는 겁니다. 제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분들도 있는 줄 압니다만, 평화협정 체결이든 군비축소 합의든 아직 여건이 만들어지지 않았으니까요.”

    이 같은 그의 견해는 NLL이나 군축 문제에 대한 여권과 정부 일각의 최근 분위기와 사뭇 다른 것이다. 이 장관과의 인터뷰가 진행됐던 8월10일, 국회 통외통위에 출석한 이재정 통일부 장관은 “NLL(조정)에 대해 적극적인 관점을 가져야 한다”는 열린우리당 이화영 의원의 질의에 대해 “NLL은 ‘영토의 개념’이 아니라 군사적 충돌을 막는 ‘안보적 개념’에서 설정된 것”이라며 “이제는 안보상 충돌을 막는 구체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정상회담에서 NLL 문제의 결론 도출이 시도될 것임을 시사한 이날 발언은 적잖은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고영구·김승규 원장, 배제 아니다”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2006년 10월8일 북한이 핵실험 의사를 천명한 가운데 세종로 정부종합청사에서 회의를 마친 이종석 당시 통일부 장관(왼쪽)이 신언상 차관과 함께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청사를 나서고 있다.

    앞서도 말했듯, 이 전 장관은 2005년 NSC 사무차장 재임시절부터 정상회담 추진을 맡았던 이른바 ‘공식 라인’을 관장한 핵심축이었다. 지난해 2월 통일부 장관에 임명된 후에는 서훈 현 국가정보원 3차장 등 대북전략국 멤버들과 함께 정상회담 추진의 책임자를 맡아 다양한 접촉을 시도한 바 있다. 특히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징후가 이어지던 지난해 8월 이 전 장관 등은 이를 위해 북한 통일전선부 인사들과 구체적인 논의를 진행했으나 끝내 이뤄지지 않았고, 이 때문에 핵실험 이후 ‘공식 라인’의 한계를 지적하는 정부 주변의 많은 인사가 이른바 ‘비선 라인을 통한 정상회담 성사’를 추진하기도 했다. 지난 봄 ‘주간동아’의 특종보도로 확인된, 노무현 대통령의 최측근 안희정씨와 북한 아태평화위원회 리호남 참사와의 정상회담 문제 논의가 대표적인 케이스다.

    당초 인터뷰를 약속할 때, 이 전 장관은 “비사(秘史) 같은 게 듣고 싶은 거라면 기대하지 않는 게 좋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온 힘을 다해 추진했던 일이 자신이 물러난 후에야 성사되는 것을 지켜보는 심정을 묻지 않을 수는 없는 일. 그가 정부에 몸담고 있던 시절로 돌아가 그간의 정상회담 추진과 이른바 ‘공식·비공식 라인의 경쟁구도’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 2005년 6·17면담 때 정상회담을 처음 제의한 것으로 돼 있는데, 이전에는 관련 메시지를 북측에 전달한 일이 없는 겁니까.

    “남북정상회담을 정식으로 제의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죠. 정부 초기에는 북핵 문제조차 미국 중국 북한 3자 형태로 진행됐기 때문에 정상회담 논의를 꺼낼 여건이 아니었고, 2004년 하반기 들어서는 조문 파동이나 미국의 북한인권법 통과 등으로 남북관계가 10개월가량 냉각기였습니다. 2005년 6월에 이르러야 비로소 정상회담을 통해 상황을 바꿀 수 있지 않겠나 판단했고, 평양을 방문한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정식으로 제의한 것이죠.”

    ▼ 정상회담 논의와 관련해 우리 정부 내의 보고체계가 국정원 대북전략국-통일부 장관-대통령으로 정해진 것도 흥미롭습니다. 국정원 관계자들이 추진한 업무를 국정원장이 아닌 통일부 장관이 관장하게 된 까닭이 있었을 텐데요.

    “1차적으로는 정동영 전 장관 시절이나 제가 있을 때나 통일부 장관이 NSC 상임위원장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또 국정원장에게 보고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고요. 정동영 장관 시절에는 NSC와 실무부처가 긴밀하게 공조하며 움직였죠. 2003, 04년에는 그런 체제를 만드는 데 어려움이 있어서 말이 많았던 게 사실이지만, 2005년 9·19 공동성명이 나올 무렵에는 유기적인 협조가 이뤄졌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정동영 장관, 반기문 외교장관, 권진호 안보보좌관, 저까지 넷이 거의 매일 만나 회의를 했으니까요.

    그런 논의 틀 속에서 국정원 3차장 산하 부서가 대북 문제 담당이었고, 고영구 원장이나 김승규 원장이 북한 문제와는 거리가 있으니까 3차장이 직접 회의에 나왔죠. 관련 전략회의에 통일부 장관, NSC 사무차장, 국정원 3차장과 담당국장이 모였어요. 그러나 국정원장이 바이패스(bypass)되거나 그런 것은 아닙니다. 국정원의 조직적 특성이 그런 걸 용납하지 않죠(웃음). 원장에게 보고하면서 ‘이건 통일부 장관에게도 보고하겠습니다’ 이렇게 하는 구조지, 원장을 빼고 넘어간다는 건 불가능합니다. 원장이 남북관계 전문가든 아니든 보고 문제는 철저합니다.

    반면 이번에 김만복 원장이 나선 것에 대해서는 이렇게 볼 수 있을 겁니다. 대통령이 누구를 특사로 보낼지 고민하셨을 텐데, NSC 상임위원 가운데 북한 담당인 통일부 장관은 공개돼 있는 자리라서 어렵고, 다른 분들 가운데는 김만복 원장이 1차 정상회담에 간여하는 등 대북전략에 정통한 사람이니까 임무를 맡기신 거겠죠. 잘 아시다시피 남북관계에는 공개 공식 라인도 있고 비공개 공식 라인도 있습니다만, 정상회담은 워낙 보안이 중요한 임무여서 비공개 라인인 국정원으로 정해진 것뿐입니다. 통일부 장관이 그에 대해 함께 검토할 수 있으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 말씀하신 것처럼 핵실험 전에 정상회담을 만들기 위해 공식 라인을 통해 여러 차례 접촉한 사실이 알려졌습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추진하고 있지 않다”는 발언을 한 적이 있는데요. 결과론이지만 사실과 다른 이야기를 한 것 아닙니까.

    “그에 관한 공개발언을 찾아보시면 두 가지 문장이 있을 겁니다. 지금 접촉하는 게 없을 때는 ‘접촉하는 게 없다’고 말했고, 접촉하는 동안에는 ‘할 수 있으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한다는 게 정부 입장’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공식 라인이 끊어지지 않았다고 해서 늘 정상회담 얘기만 하는 것도 아니고, 그 문제의 진척을 확인하는 것조차 없던 기간이 몇 달 동안 이어지기도 했으니까요. 국민들께 거짓말을 하지 않기 위해 만든 나름의 방법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대통령 말씀도 핵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는 북한이 정상회담에 나올 리 없을 것으로 본다는 거였지, ‘핵 문제 해결되기 전에 난 정상회담 안 해!’ 이렇게 말씀한 게 아니니까요. 대통령이 굉장히 냉철한 분입니다. BDA 문제가 터진 직후에 우리는 어떻게든 해보겠다고 보고해도 본인이 ‘이거 안 되는 거 아니냐’고 하셨을 정도니까요. 정상회담에 관해서도, 워낙 직설적으로 말씀하는 분이니까 부정적으로 해석되는 말씀을 하신 건데, 그건 할 뜻이 없다는 게 아니라 될 가능성이 없다는 뜻이었다는 겁니다.”

    “비선 라인, 일단의 책임 느낀다”

    ▼ 정상회담 추진과정에서 이른바 ‘비선’에 대한 이야기가 여러 차례 흘러나왔습니다. 그중 일부는 사실로 확인되기도 했고요.

    “참여정부가 출범한 이래 많은 사람이 중간에서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해보겠다며 찾아왔습니다. 제가 청와대에 있을 때만 해도 대통령 지시를 받아 ‘이 제안은 아니다, 저 제안도 아니다’ 교통정리를 한 적이 있을 정도니까요. 베이징 같은 곳에서 북측 인사들을 만나는 분들은 모두 자기가 그리는 일이 반드시 성사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담당자들은 현재의 남북관계 상황에서는 공식 라인이 아니면 안 된다고 판단했던 것이고요.

    특히 핵실험 전까지 어떻게든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이 직접 담판을 지을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야겠다고 판단해 여러 노력을 기울였습니다만, 결국 여의치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비전문 분야에 있는 사람들이 공식 라인에 대해 불신을 갖게 된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안희정씨가 지난해 가을 무렵 그 문제를 들고 제 집무실에 찾아온 적이 있습니다. 제가 ‘그 방식으로는 안 된다’고 하니까 일단 정지시켜놓았다가 나중에 다시 추진했던 듯하고요. 그 일단의 책임은 그때까지 정상회담을 못 만든 저에게도 있는 거죠. 그렇지만 참 답답한 것이, 미국만 쳐다보고 있는 북한의 목을 잡아다 테이블에 앉힐 도리가 과연 있었겠습니까.

    결국 핵실험이 벌어지고 제가 통일부 장관을 떠날 무렵인 지난해 10월, 11월 즈음에 구체적인 움직임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만, 당시에 저는 (그 실행 여부는) 잘 몰랐습니다. 지금 생각해봐도 공식 라인 이외에 다른 길은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자세한 내막을 다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나름대로 갖가지 경로를 다 검토해 내린 결정이었다는 점은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공식 라인이 구체적인 결과물을 못 만들고 있지 않느냐, 무슨 힘이 있느냐고 할 수 있지만, 사실 공식 라인이 안 되면 다른 라인으로는 더 안 되는 겁니다. 공식 라인 외에도 ‘공작 라인’도 있고 별게 다 있습니다. 제가 공식 라인에 대해 회의적인 분들을 일일이 쫓아다니면서 설득할 수는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분들이 제 앞에 나타났으면 그렇게 설명을 하겠는데, 항상 등 뒤에서 ‘저 사람들은 능력이 없다’고 얘기하니 그걸 어떻게 하겠습니까.”

    “비선 움직임, 北 공식라인이 다 알아”

    ▼ 비공식 라인의 움직임이 북측 공식 라인을 통해 우리 정부에 전달된 일도 있었던 것으로 들었습니다.

    “그건 제가 확인해드릴 수 없습니다.”

    ▼ ‘비선으로는 불가능하다’는 확신에는 근거가 있었을 텐데요.

    “공식 라인이 아닌 쪽에서 움직이는 것에 대해서는 북한의 공식 라인도 다 알고 있다(웃음), 그렇게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 정부가 핵실험을 막을 능력이 있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어쨌든 대통령께서 김 위원장과 담판을 지을 기회를 만들지 못했다는 것은 분명하고, 대통령을 모시는 다른 분들이 볼 때는 무능하다고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그분들이 그렇게 무리수를 둔 게 있다면 결국은 공식 책임을 맡고 있던 제게 책임이 있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다만 결국 이번 정상회담이 공식 라인을 통해 성사됐다는 점은 기억할 필요가 있을 겁니다. 그건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저한테 아마추어라고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만(웃음), 대한민국의 대북정책을 저 혼자 했던 게 아니잖습니까. 통일부의 많은 간부, 국정원의 많은 관계자가 함께 고민하고 검토해 내린 결론이니까요. 단 한 차례도 치열한 회의 없이 어떤 결정을 내린 일이 없습니다. 공개된 분들도 있고 그렇지 않은 분들도 있지만, 정부 안에는 오랜 경험과 애국심과 통찰력을 가진 대북 전문가가 꽤 있습니다.

    림동옥 제1부부장이 사망한 이후에 후임자가 임명되기 전까지는 정상회담이라는 큰 일을 만들어내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논의를 종합할 중간 결정자가 없는 거니까요. 궁극적으로 담당라인은 최승철 부부장이 할 수밖에 없는 건데 거기서 안 되면 안 되는 것이죠. 그러나 근래 들어 새 통전부장이 임명됐고, 김양건 부장이 외교부 출신이긴 하지만 국방위원회에서 오랫동안 김 위원장을 수행했다는 연고를 갖고 있습니다. 최승철 부부장 역시 남북관계에 오래 종사해온 전문가로 협상을 능숙하게 진행하는 사람이고요.”

    “이건 오프입니다”

    NSC 사무차장 시절과 통일부 장관 시절 그의 ‘관운’은 크게 엇갈렸다. 사무차장 시절에는 정부 안팎의 엄청난 비판과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 수차례 위기를 넘기며 대통령의 재신임을 받았지만, 통일부 장관으로 임명된 후에는 계속된 남북관계의 돌발변수로 바람 잘 날이 없었다. 노무현 정부 안보정책의 실세로 대통령 임기 끝까지 함께할 것이라고 예상됐던 그는, 결국 북한 핵실험 2개월 후인 지난해 12월 자리에서 물러났다.

    ▼ 북한이 핵실험을 하던 날 무슨 생각이 들던가요.

    “(잠시 침묵하다가) 착잡했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여기까지구나, 앞에도 말했듯 대통령께 김정일 위원장과 담판을 짓도록 기회를 만들지 못했구나, 그런 생각이 제일 많았습니다. 누구도 그 문제를 탓하지는 않았지만 제게는 그게 가장 컸습니다. 정상회담 문제를 두고 함께 일하던 모든 분이 다 마찬가지 생각이었을 겁니다. 어려운 시간을 함께 보냈죠.”

    ▼ 장관으로 재직하던 시절이 남북관계가 가장 안 좋은 때였습니다. ‘북한이 이종석 장관에게 유감이 있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 있을 정도였으니까요. 이렇게 급격하게 상황이 바뀌고 보면 개인적으로 서운함을 느낄 만도 한데요.

    “결과적으로 그렇게 된 것인데요. 공인이라는 게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상황이 좋았다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었겠죠. 너무 척박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누굴 탓하겠습니까. 그런 날들이 있으니까 오늘 같은 날도 있는 거겠죠. 북한이 저 때문에 남북관계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그건 저를 북핵 문제와 같은 수준의 변수로 생각한다는 거니까 저로서는 매우 영광스러운 평가죠(웃음). 남북관계가 그런 변수로 움직인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감정을 실어 말하는 분들이 있었던 것은 제가 덕이 부족한 탓이겠지요.”

    간간이 그의 캐릭터가 묻어나왔지만, 반 년 이상의 ‘야인생활’을 하는 동안 그는 적잖은 ‘위로’를 얻은 듯했다. 자신에 대한 비판이나 공격에 대해 거침없이 목소리를 높이던 재임 당시의 분위기와는 사뭇 달라 보였다. 다만 ‘들을 만한’ 대목에서는 어김없이 “이건 오프더레코드입니다”를 덧붙이는 깐깐한 태도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기자와 한참이나 승강이를 벌였지만, 그는 “지금은 때가 아니다”라며 물러서지 않았다. ‘조금 덜 민감한 시기’에 다시 말하겠노라고 거듭 다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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