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담배 제조 전 과정 최초 공개
- 정해진 근무시간에 열심히 일하는 분위기 선호…삼성전자에서도 이직
- 생산 첫해부터 품질지수 1위…한국인 전 직원 담배공장 근무경력 없어
- 외국 공장 관계자 “한국인 DNA는 유별나다”
- 담배는 성인의 ‘선택사항’…청소년 금연 프로그램 지원
BAT코리아 사천공장은 2002년 BAT코리아가 1억달러를 투자해 설립한 국내 최초의 외국계 담배공장이다. 2003년 3월 생산을 시작한 이래 지난해 9월 누적생산개수 500억개비를 달성했다. 국내에서 소비되는 ‘던힐’과 ‘보그’ 대부분이 이곳에서 생산된다. 외국 브랜드지만 엄연히 ‘Made in Korea’다. 일본, 싱가포르, 홍콩 등지로도 수출된다. 생산을 시작한 첫해 BAT그룹 내 52개 공장 중 제품품질지수 및 생산품질지수에서 1위를 차지했으며, 그 뒤로도 3년 연속 1위 자리를 지켰다. 국가고객만족도(NCSI) 조사에서도 2004~2006년 담배 부문 1위를 차지했으니 국내에서 생산한 담배 맛을 소비자도 인정한 셈이다.
그렇다면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담배는 어떻게 만들어질까. 아주 오래전, 시골에 가면 할아버지께서 말린 담뱃잎을 조각내어 그릇에 담아뒀다가 한 숟가락 퍼서 종이에 얹은 다음 돌돌 말아 태우시곤 했다. 담뱃잎을 곰방대 끝에 소복이 담아 태우실 때도 있었다. 그러나 요즘 담배 제조과정은 그리 간단치도 낭만적이지도 않다며 그 공정에 의혹을 품는 이도 적지 않다. 속속들이는 아니지만, 담배공장 내부를 들여다본다는 건 흔치 않은 기회다.
구체적인 제조과정이 비밀에 부쳐진 담배공장은 출입절차부터 까다로웠다. 신분증을 출입증과 교환하고, 카메라 기능이 있는 휴대전화는 촬영을 못 하도록 렌즈에 스티커를 붙였다. 사진기자는 팔에 ‘완장’을 차야 했다. 보안담당자가 무전기를 이용해 공장 관계자와 몇 차례 교신한 다음에야 공장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안내를 맡은 박기선 차장은 2002년 BAT코리아에 입사해 공장 설립 과정에 깊숙이 관여했다. 이전 직장은 삼성전자. 최고의 직장으로 손꼽는 삼성전자에서 옮겨온 이유는, 근무시간 동안 효율적으로 일하고 정해진 퇴근시간에 칼같이 회사를 나서 개인적으로 시간을 활용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라고 한다. 요즘 직장인들이 이직을 결정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이 무엇인지 가늠케 한다.
박 차장은 공장 전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모형을 놓고 브리핑을 시작했다. 그는 “담배제조과정은 식품을 만들어내는 과정과 유사하다”고 말했다. 담배공장에서 만날 수 있는 담배의 가장 원초적인 모습은 커다란 상자에 가득 담긴 엽연초다. 사천공장은 담배의 주원료인 엽연초를 전량 수입해 쓴다. 2002년 공장을 설립할 당시 수입 엽연초를 쓰는 것에 대해 지역사회 일각에서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으나 “국내에서 생산되는 엽연초는 전량 KT·G에서 사들인다”는 게 BAT코리아측의 설명이다.
담배 제조의 핵심 ‘블렌딩’
첫 번째 공정은 넓은 잎을 자르는 것이다. 바싹 마른 잎이 바스러지는 것을 막기 위해 자르기 전 수분을 충분히 공급한다. 잎이 잘게 잘린 다음은, 담배 제조과정의 핵심이며 가장 비밀스러운 단계인 ‘블렌딩’이다. 사천공장에서 쓰는 엽연초는 여러 지역에서 들여온 것으로 잎과 잎맥이 분리 가공되고, 같은 잎도 부위에 따라 니코틴과 당의 함량이 다른 터라 어느 지역의 잎 어느 부위를 얼마나 섞느냐에 따라 담배 맛이 달라진다. 공장 입구엔 100여 년 전에 만든, 누렇게 바랜 복잡한 레시피 사진이 걸려 있다.
적당히 섞인 엽연초는 건조 과정을 거친다. 박기선 차장은 “담배는 섬세한 기호식품으로, 수분을 적당히 유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 적당한 수분이라는 게 13.5%다. 잎담배일 때 습도는 11%, 수분을 공급한 다음 조각내면 수분 함량이 22%로 증가한다. 이 때문에 잎과 잎맥을 섞은 다음엔 건조 과정을 거친다.
브리핑이 끝나고 마침내 본격적인 공장 견학이 시작됐다. 유독 천장이 높은 공장 통로는 공기가 후끈했다. 생산라인이 있는 구역은 정해진 온도와 습도를 유지하지만 그 밖의 구역은 냉방을 약하게 하고 있었다. 생산량 대비 에너지 소비량을 측정해 파란불(우수)-노란불(보통)-빨간불(나쁨)로 표시하는 등 에너지 낭비를 막으려 노력하는 점이 눈에 띈다.
커다란 상자마다 잘게 잘린 담뱃잎이 가득하다
그러면 엽연초에 수분을 공급해 자르고 섞어서 건조시키기까지의 과정은 모든 담배회사가 동일할까. 기본적인 공정은 같지만 어떻게 섞느냐 하는 레시피와 블렌딩 방식에 차이가 있다.
제조사에 따라 빵, 복숭아, 사과, 체리, 인삼, 도라지 등을 넣는 등 소비자 입맛을 사로잡기 위한 노력과 경쟁이 치열한 것으로 알려졌다. 담배에 향을 입히는 방법도 다양하다. 잘린 잎에 향을 분사하는 방법이 있는가 하면, 필터에 향 캡슐을 넣기도 하고, 담배케이스 안에서 담배개비를 싸고 있는 호일 표면에 향을 바르기도 한다.
자체 품질관리
2차 공정이 이뤄지는 SMD(Secondary Manufacturing Department) 구역에선 2분 단위로 1만개비의 담배가 생산되고 있었다. 잘 만들어진 담뱃잎을 종이로 감싸니 기다란 전깃줄 모양이 됐다. 일반 담배 길이보다 짧게 자른 두 개를 마주보게 가로로 길게 놓고 그 사이에 필터를 끼우고 다시 종이로 감싼 다음 필터 중간을 자르니 담배 두 개비가 만들어졌다. 담배에 필터를 끼우고 케이스에 포장하기까지는 모두 자동화 시스템이다. 따라서 생산라인에서 작업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PMD구역과 SMD구역 사이엔 품질연구소가 있어 완성된 담배의 말린 정도와 입으로 빨 때의 느낌을 기계로 점검한다. 담배를 태워 니코틴과 타르 함량을 분석하는 기계도 있는데, 담배사업법에 따라 정기적으로 국가가 정한 기관에서 검사받고 있지만 자체적으로 항시 관리한다.
생산을 시작한 첫해부터 글로벌 그룹 내에서 최고의 품질지수를 인정받은 사천공장엔 총 270여 명이 일하고 있다. 초기엔 숙련된 외국인 담배 제조 전문가가 상당수 있었지만, 지금은 3명만 남았고 이들마저 올해 안에 한국을 떠난다. 나머지 한국인 중엔 과거 담배공장에 근무한 경력을 가진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는 게 의외다. BAT본사에서도 사천공장의 이러한 배경과 성과에 놀라워하고 있으며, 지난 7월 첫 한국인 공장장으로 임문섭 상무를 임명함으로써 두터운 신뢰를 보여줬다. 임문섭 공장장은 “본사가 한국 직원만으로도 BAT의 글로벌 스탠더드에 기여할 수 있다고 한국인의 역량을 인정한 것”이라고 말한다.
BAT는 2002년에 한국에 공장을 설립하면서 터키와 아프리카에도 투자했다. 그러나 두 지역의 생산성이나 품질지수는 사천공장을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 생산설비, 생산공정은 같은데 왜 이런 차이가 날까. 임 공장장은 “실력을 인정받고 싶어하고, 노력에 합당한 보상을 받았을 때 더 잘하려 하는 한국인 특유의 승부욕, 그리고 사람관리에 최선을 다하는 BAT의 기업문화가 맞아떨어져 상승효과를 낸 것 같다”고 분석한다.
“외국 공장 관계자가 사천공장을 5~10분만 돌아보고 나면 한결같이 ‘직원들의 에너지 레벨이 다르다’고 말합니다. 한국 사람은 뭔가 하려고 한다고 하죠. 한국인의 DNA가 남다르다고도 합니다.”
BAT코리아의 기업문화 중 돋보이는 4가지 원칙은 다른 사람의 견해를 적극적이고 진지하게 고려하며 편견 없이 들으려 하는 ‘열린 마음’, 구성원·문화·견해·브랜드·시장·아이디어의 ‘다양성 추구’, 직무 분야에 상관없이 누구나 책임감을 갖고 일을 추진하는 ‘책임감을 통한 자유’, 어느 정도의 위험을 기꺼이 감수함으로써 사업과 가치를 발전시키는 ‘진취적인 정신’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가장 큰 틀이 ‘인재육성’이다.
“에너지 레벨이 다르다”
제2공정이 이뤄지는 SMD구역.
사천공장의 역사가 짧은 터라 임직원 대부분이 다른 직장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데, 지금의 근무여건에 대한 만족도가 높은 편이다. 최홍민 과장은 “영어강의, 리더십강화 교육 등 업무적·비업무적 교육 프로그램이 다양해 나 자신이 날로 발전하고 있음을 느끼는 게 가장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노조가 없는 BAT코리아 사천공장은 각 부서 대표와 임원이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고 회사의 발전방향과 사원복지에 대해 의견을 나눈다. 이를 ER(Employ Relationship)이라고 하는데, 각종 스포츠행사 및 피크닉 계획도 ER을 통해 결정된다. 최 과장은 한동안 ER의 부서 대표로 활동하면서 커뮤니케이션 기술을 익히고 리더십을 키울 수 있었다며 “시야가 넓어지니 생각이 바뀌고, 생각이 바뀌니 행동이 바뀌었다”며 뿌듯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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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의 사회책임
독거노인의 집을 고치고 있는 BAT코리아 ‘나누미사회봉사단’.
2002년 BAT코리아 사천공장이 진사산업단지에 첫 삽을 뜰 때만 해도 지역 주민들로부터 환영받지 못했다. 담배, 그것도 외국 담배를 만드는 공장에 대한 인식이 좋을 리 없었다. 사천공장의 안전보건환경을 담당하는 강학선 과장은 “담배를 만든다는 사실이 우리 공장의 아킬레스건이지만, 그래서 더 철저하게 관리해 어느 직장보다 우수한 작업환경을 만들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사천시 관계자는 “공장설립 초기엔 ‘건강을 해치는 기업을 왜 유치했느냐’는 민원이 없지 않았으나 지금은 담배공장이라는 자체가 지역 평판에 악영향을 끼치진 않는다”고 말했다. “공장이 설립된 다음 인근에 1000가구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고, 1500가구가 더 들어올 예정이지만 담배공장으로 인한 민원은 전혀 없다”는 것.
그러나 사천시 측은 BAT코리아 사천공장에 약간의 불만을 내비쳤다. 사천시와 경상남도가 의욕적으로 조성한 진사산업단지엔 항공기를 제조하는 한국항공우주산업을 중심으로 각종 항공기 부품을 만드는 공장 다수가 이미 입주했거나 곧 들어올 예정이다. 이런 공장들과 비교하면 BAT코리아 사천공장은 차지하는 부지에 비해 인력 채용 규모가 작다는 것.
‘절약은 일회용이 아니다’
BAT코리아 사천공장은 매년 일정규모의 신입사원을 선발하는 게 아니라 수시채용 방식으로 그때그때 필요한 인력을 보충한다. 서류심사와 인·적성 테스트, 면접을 거쳐 선발된 인원은 3~6개월간의 인턴과정 후에 정식 사원으로 채용된다.
임 공장장은 가격경쟁력을 높여 국내 시장점유율과 수출 규모가 확대되면 인력 채용 기회도 늘어날 것으로 기대했다. 모든 것이 넉넉할 것으로 보이는 외국계 담배공장의 화장실에 들어가 보니 공기가 달랐다. 사무실에 비해 더웠다. 역시나 불필요한 에너지 사용을 줄이는 모양이다.
화장실 변기에 앉으면 마주하게 되는 눈높이엔 ‘절약은 일회용이 아닙니다’란 문구가 적혀 있다. 비용 절감의 생활화를 강조하며 우수한 실적에도 불구하고 낭비를 막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 적어놓은 게 눈에 띄었다.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려면 생산비를 줄여 가격경쟁력을 확보해야 하고, 그러려면 가장 먼저 낭비를 막아야 한다는 취지의 글이었다.
엄살이 너무 심한 건 아닌지, 절약 강조로 인한 불편함은 없는지 직원들에게 살짝 물었다.
“꼭 써야 할 것도 줄이라는 게 아니라 줄여도 되는 것, 낭비하고 있는 것을 줄이라고 하니 오히려 생활태도가 좋아졌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면지 사용하라고 잔소리하거나 회식비 줄이거나 하는 일은 없습니다, 하하.”
BAT코리아 사천공장 직원들은 담배를 생산하는 기업이기에 구성원과 작업환경 모두 더 모범적이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노력, 그리고 그 성과가 가져다준 자부심이 남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