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북 박달산 다락골 골짜기엔 자연이 만든 병원과 유기농 슈퍼마켓이 있다. 폐암 수술을 받고 산골에 내려온 ‘시굴사랑’ 부부. 그들의 텃밭엔 생명과 행복이 자란다. 유기농 슈퍼마켓의 ‘자연보약’은 나눔으로 더욱 넉넉하다. 자연에 빚을 지면 질수록 기쁘고, 건강하고, 부자가 된다고 믿는 부부. 다락골 ‘생명 사랑방’은 오늘도 환자와 그 가족들로 북적인다.
들깨밭 김매는 시굴사랑. 일이 곧 명상이다.
그러던 중에 아내한테 걸려온 전화 한 통. 처형이 암 수술을 받은 뒤 정기검진을 받았는데, 아직 안심하기에는 이르다는 전언이다. 아내도 덩달아 걱정을 한다. 그러고 보니 요즘은 암이 참 흔한 질병이 되었다. 서울 사는 친구 하나는 신장암으로 투병 중이라 하고, 또 다른 친지 한 분은 위암 수술 후에 요양소를 알아보고 있다. 해마다 10만명이 넘게 암에 걸린다는 말이 새삼 실감난다. 암은 환자 개인에게는 질병으로 드러나는 거지만 일반 사람들 뇌리에는 두려움 덩어리로 자리잡아간다.
‘시굴사랑’과 ‘지원’
암 이야기를 들을 때면 내 머릿속을 맴도는 이가 한 분 있다. 오래전에 암 투병을 위해 산골로 내려와 자기 생명을 지키고, 남는 힘으로 다른 암 환자와 그 가족에게 힘을 주는 분. 이 기회에 그분을 만나보자. 나 역시 몸이 안 좋아서 도시를 떠나왔고, 산골에 살면서 많이 건강해졌다. 하지만 나는 아픈 이를 위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저 나 하나 잘 사는 거에 만족하는 편이다. 건강한 사람을 만나도 사람관계가 쉽지 않은데 하물며 암 환자를 아무 대가 없이 만난다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닌 듯하다.
안희상(安熙相·59)씨와 그 아내 정선희(鄭仙姬·54)씨 부부. 부부의 별명은 각각 ‘시굴사랑’과 ‘지원(智元)’이다. 지원은 처음에 ‘삼순이’라는 별명이 좋았는데 ‘내 사랑 김삼순’이라는 방송 드라마가 인기를 끌자, 그렇게 입에 오르는 게 싫어 별명을 바꾸었단다. 지원은 참된 지혜를 추구한다. 시굴사랑은 왜 시골이 아니고 ‘시굴’이냐고 물으니 “아직도 온전히 시골사람답게 살지 못하니까 그렇다”며 허허 웃는다. 시굴사랑은 15년 전, 자신이 다니던 건설회사에서 해외근무 발령을 받고 건강 검진을 하던 중 폐암 선고를 받았다. 그러고는 험난한 수술과 치유과정을 딛고 부인과 함께 산골행을 택했다. 이 부부는 지금 충북 괴산군 박달산 자락 한 모퉁이에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소박하게 산골 생활을 하고 있다.
폐암은 암 가운데서도 특히 예후가 좋지 않다. 완치율도 낮고, 수술 이후 재발 위험에 대한 두려움도 무척 크단다. 이 분들은 그런 아픔을 딛고 자연에서 스스로를 치유하며, 농사와 요양 틈틈이 자신들이 겪어온 경험을 환자와 그 가족들과 함께 나누며 살고 있다.
인터뷰를 계획하면서 대장암 수술 이후 치료를 받고 있는 처형을 모시고 함께 가기로 했다. 만나기로 날짜를 잡았는데 그 전날 엄청난 돌풍으로 이 집은 피해가 많았다. 사랑채 지붕이 날아가고 뒷간도 넘어졌으며 밭의 복숭아랑 밤나무는 가지째 부러질 정도다. 풋고추는 우수수 떨어지거나 통째로 넘어지기도 했다. 그렇게 경황이 없는데도 환자 가족과 함께 왔다고 따듯이 맞아주신다.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집을 먼저 둘러본다. 나로서는 두 번째 방문이었다. 몇 해 전에 괴산으로 귀농한 이웃을 만났다가 이 집에 잠깐 들른 적이 있다. 겉보기에는 그때와 크게 달라진 게 없다.
“도둑이 집어갈 게 없어요”
이 집은 옛날 ㄷ자 흙집이다. 지은 지 100년이 되어가는 아주 작은 집. 세 칸 집이지만 본채는 여덟 평 정도, 예전에 누에를 치던 잠실 사랑채는 일곱 평, 손님이 가끔 머무는 별채는 다섯 평 남짓. 이렇게 세 집을 모두 합해도 스무 평이 채 안 된다. 무너져가는 집을 수리했지만 기본 골격은 옛날 그대로다. 구들도 그냥 고쳐 살고, 수수깡으로 얽은 벽채도 바람을 막는 정도, 문도 그대로다. 문이 얼마나 작은지 고개만 숙여서는 머리 받기 십상이다. 허리까지 숙여야 들어갈 수 있다. 문을 들락거리면서 딴생각을 했다가는 머리 받기 일쑤다. 가끔 도시에서 오는 손님들이 문틀에 이마를 부딪히면 민망하기도 하단다.
집이 그렇듯 다른 살림살이도 소박하기 이를 데 없다. 물은 그냥 계곡물을 호스로 당겨 쓴다. 그 흔한 물탱크조차 설치하지 않아 수압이 낮다. 봄 가뭄이 심할 때는 고생스럽지만 본인들은 그리 개의치 않는다. 가뭄 덕에 물을 아끼고 고맙게 여기게 된단다. 마당 우물가에는 커다란 스테인리스 그릇이 여럿 놓여 있다. 이게 다 무엇에 쓰는 걸까?
“우물 물이 너무 차잖아요. 아침에 이 통에다 물을 받아두면 한낮에 뜨거운 열기로 물이 데워져요. 그럼, 그 물로 몸을 씻는 거지요.”
그 말에 내 머리가 뻥 뚫리는 듯하다. 우리 역시 작은 집에서 소박하게 산다고 하지만 이 집에 견주면 어림도 없다. 언뜻 보면 찢어지게 가난한 살림살이지만 이 부부는 행복하단다. 시굴사랑이 지나가는 말로 들려준 다음 한 마디는 여러 번 곱씹게 된다.
암 환자 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시굴사랑과 지원. “몸에 남은 독을 빼야 해요.”
살림살이가 없어서 생기는 행복이리라. 비싼 살림살이라면 겉보기에는 만족스럽겠지만 이를 지키자면 도둑 걱정도 만만치 않을 거다. 이 집 마당에 들어서면 첫눈에 강렬하게 다가오는 피사체가 있다. 빨랫줄에 걸린 빨래다. ㄷ자형 집을 가로질러 빨랫줄이 마당 전체를 나누고 있다. 전날 비바람을 동반한 돌풍으로 온갖 빨래를 했는지, 빨래가 그 넓은 줄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바람과 햇살을 온전히 받으며 말라가는 빨래. 보기만 해도 넉넉한 기분이다. 집이 작아서인지 빨래가 더 돋보인다.
집을 둘러보는데 안주인이 점심이 다 되었으니 같이 먹잔다. 식당은 잠실을 고쳐서 만든 사랑채다. 한쪽은 부엌 공간이고 맞은편에 투박하게 생긴 식탁이 놓여 있다. 정갈하고 소박한 제철 밥상이다. 환자가 왔다고 율무를 넣은 현미잡곡밥에 호박전, 풋고추, 쌈장, 가지무침, 된장국, 오이지, 젓갈을 차려냈다. 내게는 가지무침이 아주 인상 깊다. 그냥 가지를 찐 다음 마늘과 간장으로 간을 한 거다. 담백한 맛이 일품이다.
식사를 하면서 함께 간 대장암 환자에게 지원이 이것저것 물어본다. 지원은 의사는 아니지만 오랫동안 환자를 곁에서 지켜본 경험으로 환자 손님과 쉽게 친해진다. 무거운 이야기인데도 밝게 한다. 환자 얼굴에 연신 웃음이 돈다. 보통 환자들이 의사 앞에 서면 얼마나 작아지는가. 궁금한 건 많지만 의사랑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은 또 얼마나 짧은가. 의사 역시 검사 결과로 나온 게 없다면 환자에게 말해줄 수 있는 건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다.
반면에 암 환자는 고통보다 먼저 두려움에 부대낀다. 늘 재발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여러 가지를 의사에게 묻고 싶지만 현실은 그게 쉽지가 않다. 이 집 부부는 경험자로서 그런 두려움을 자연스럽게 털어놓게 한다.
“암이 발생할 수 있는 조건은 크게 세 가지. 음식, 스트레스, 주거환경이지요. 현대는 독성의 시대라고 봐요. 스트레스도 독성이지만, 우리는 온갖 화학물질로 오염돼가는 자연을 음식으로 접하게 되니까요. 특히 암은 해독이 관건이고, 시간다툼이에요. 우리 발효음식은 탁월한 해독제라고 봐요. 암 환자는 가던 길을 그대로 가면 병을 이길 수 없어요. 복잡한 첨단기계일수록 고장 나면 고치기가 힘들잖아요. 우리 몸은 그 어떤 기계보다 안전장치가 겹겹이 되어 있는데도 고장이 났으니 어찌 해야 할까요? 가던 길을 되돌아보고 자기 몸의 변화에 민감해져야 해요.”
말이 입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온몸에서 나오는 듯하다. 환자랑 어느 정도 이야기를 하고 나서 함께 밭을 둘러보았다. 작은 규모로 농사를 짓되 다양한 작물을 키우는 자급자족 농사다. 논이 600평, 밭이 1000평 남짓이지만 가꾸는 곡식 종류는 엄청나게 많다.
‘다락골 슈퍼마켓’
밭 초입에서 자라는 고구마를 비롯해 우엉, 토란, 고추 그리고 옥수수가 먼저 눈에 띈다. 들깨는 이제 한창 자라기 시작하고, 참깨는 꼬투리가 다 익어간다. 호박도 너울너울 뻗어간다. 채소거리는 조그마한 면적에서 올망졸망 자라고 있다. 부추, 당근, 토마토, 방울토마토….
계곡 따라 밭 둘레에는 복숭아나무 10여 그루가 있는데 복숭아가 한창 익어가고 있다. 밭 한가운데는 큰 밤나무 하나가 우뚝 자라며 밤송이를 올망졸망 달고 있다. 이번 돌풍에 나뭇가지가 일부 부러지기는 했지만 남아 있는 송이가 탐스럽다. 이런 밤나무 한 그루면 두 식구 먹고도 모자람이 없겠다. 계절마다 뜰 안에서 딸 수 있는 열매나 과일은 훨씬 더 많다. 봄에 앵두를 시작으로 살구, 매실, 오디, 자두를 지나 지금은 산딸기와 복숭아, 그리고 돌복숭아. 가을이 되면 과일은 더 풍성하단다. 감, 밤, 은행….
가을 작물인 무나 배추, 그리고 겨울을 나는 마늘 같은 걸 셈하면 이 집에서 키우는 작물은 언뜻 보아도 가짓수가 50여 종류가 넘는다. 1000평도 안 되는 밭에 이 많은 걸 심고도 밭이 남을 정도란다. 밭에서 나는 것말고 산에서 나는 건 더 많다. 온갖 산나물에 야생 약초까지.
세상 어느 가게에 이만큼 먹을거리 종류가 많을까. 지원은 이 골짜기 이름을 따 ‘다락골 슈퍼마켓’이라 부른다. 밭에 나는 곡식으로 절임을 하거나 장을 담그고, 산에서 나는 온갖 산야초로 효소까지 만드니 사람이 먹을 수 있는 가짓수는 엄청 많아진다.
이렇게 다양한 먹을거리를 길러내는 힘은 시굴사랑의 간병과 관련이 있다. 15년 전 남편이 폐암 수술을 받자마자 지원은 도시에서 유기농 식단을 차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식단 재료를 생활협동조합 한 군데서만 구하자니 턱없이 부족한 걸 뼈저리게 느꼈다. 어쩌다 보니 다섯 군데 생협의 회원이 되었다. 돈도 돈이지만 번거롭기 짝이 없었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도인(道人)에 가까운 유기농 농사꾼을 만나게 되었고, 결국 자신들의 삶을 획기적으로 바꾸게 된다. 돈보다 먼저 생명을 돌보고 가꾸는 일을 하자고. 그렇게 농사를 지은 지 어느 덧 10년. 지금은 가짓수도 많아져 1960년대식 자급농사를 되살리고 여기에다 현대화한 식생활의 지혜까지 접목했다.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암 환자를 손님으로 맞이하면서 차츰 맞춤형 식단에 가깝게 먹을거리들을 생산하게 되었다.
자연에 빚지면 부자가 된다!
작고 소박한 시골집이지만 이런저런 손님이 자주 찾아온다.
그렇다고 이 집이 모든 걸 다 자급하는 건 아니다. 생선은 다물도와 진도에 사는 친구가 보내준다. 농사가 아직도 서툰 양파 정도는 사 먹어야 하고, 들기름을 많이 쓰는 반면 기름을 짜 먹을 만큼 들깨 농사를 많이 짓지는 못한다. 하지만 해가 갈수록 자신들이 돌보고 가꾸는 품종도 많아지고, 제철 작물 덕분에 입맛은 더 단순하고 소박해진단다.
언뜻 보면 농사짓는 사람들의 겉모습은 비슷하다. 밭고랑에 쪼그리고 앉아 땀 흘리며 김매는 모습. 하지만 겉보기와는 달리 삶의 내면을 이해하면 이해할수록 더 큰 세계가 있음을 깨닫는다. 또한 그 세계는 사람마다 고유한 빛을 띤다. 어떤 이는 콩 싹이 흙을 뚫고 돋아나는 걸 보면서 감동하고, 또 어떤 이는 벼 꽃 한 송이가 피고 지는 데 경외를 느끼기도 한다. 곡식마다 그 고유한 쓰임새와 생명력이 있듯 사람마다 느끼는 모양새도 다양하게 마련이다.
소비는 만족을 주지만 계속 동일한 만족을 얻자면 더 큰 자극이 필요하다. 하지만 생산은 만족과 달리 기쁨을 준다. 이 기쁨은 외부에서 오는 게 아니라 내면에서 솟아나는 게 아닐까. 수세미외 한 그루를 키우면서도 거기서 누리는 게 얼마나 많은지를 보자. 지원이 꾸리는 인터넷 카페 ‘다락골 구름밭 (cafe.daum.net/ talknature)’에 올라 있는 ‘자연에 빚진 자’라는 제목의 글 한 편을 옮겨본다.
자연에 빚진 자 삼순 아지매는 부자입니다 수세미씨 하나로 페트병으로 두 병이 넘는 수세미 물을 얻어 15명에게 주고도 남아 화장수를 만들고도 아직 한 병이나 원액이 남았으니 당신이 주는 선물로 빚진 자 삼순 아지매는 부자입니다 작은 소유로 기품 있게 살게 해 주는 당신 자연 |
마치 명상록 같다. 이 글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좀 자세한 설명을 부탁했다. 우리가 설거지할 때 쓰는 수세미. 그 수세미는 글자 그대로 식물인 수세미외에서 온 거다. 수세미외가 다 자라면 보통 어른 팔뚝만하게 된다. 그 안을 갈라보면 섬유질이 그물모양으로 오밀조밀하다. 안에 든 씨앗을 빼고 이를 설거지할 때 쓰면 말 그대로 자연 수세미다. 이 섬유질은 공업용으로도 쓰이지만 여기서는 한두 그루를 키우는 가정에 국한한 거다.
천연 화장품 수세미외
이 수세미외를 늦가을 서리 오기 전, 줄기 밑동에서 30~50cm를 잘라 수액을 받는다. 민간요법에서는 이 물을 그대로 마시면 천식 따위에 효과가 크단다. 이 집도 한동안은 기관지에 좋다고 마셨는데 지금은 주로 화장품 원료로 쓴다. 천연 방부성분이 들어 있는 수세미 수액에 몇 가지 재료를 더 넣으면 천연 화장품이 완성된다. 이렇게 만드는 데 드는 원가는 고작 3000원 남짓, 1000cc 정도 양이면 한 사람이 1년을 쓸 수 있단다. 이 화장수는 중년 이후 피부건조증이나 아토피 피부에도 좋다고 한다. 그 자세한 방법은 카페 게시판에 올라 있다.
나눌 게 많은 사람이 기품 있게 마련이다. 돈이 많고 가진 게 많아야 나눌 수 있는 게 아님을 지원은 잘 보여준다. 씨앗 하나로도 이렇게 나눌 게 많다는 걸 깨닫는 순간 그 감동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기품은 여기에 그치는 게 아니다. 수세미외가 덩굴을 타고 지붕 위로 넘실넘실 올라가는 모습과 그 중간에 드문드문 피어나는 노란 꽃 그리고 팔뚝 같은 열매가 주렁주렁 달린 광경을 보기만 해도 마음이 넉넉해진다. 자연의 아름다움은 예술 그 이상이다. 씨앗 하나에 이렇게 다양한 삶이 숨어 있는 셈이다. 이를 알아보는 건 주어진 삶을 감사하는 사람만이 누리는 특권이 아닐까.
밭을 둘러보고 올라오는데 또 다른 손님이 온다. 이 집에서 안 쓰는 가스 오븐을 가져가려고 온 거다. 이 오븐도 이 집이 마련한 게 아니라 도시 사는 지인이 보내온 것. 도시에서는 쓸모없어도 시골에서는 다 쓰임새가 있다.
생명의 텃밭과 자연보약
마당을 가로질러 친 빨랫줄에 널어놓은 빨래. 햇살과 바람을 받아 뽀송뽀송 말라간다.
내가 잔 방은 별채로 그야말로 별채다. 본채에서 떨어진 독립된 집으로 아담하고 조용하고 아늑하다. 얼마 전에도 손님이 머물다 갔는지, 방안에 온기가 있어 더 좋다. 극성스러운 모기를 피해 모기장을 둘러치니 한결 더 아늑하다. 모기장은 산골 작은 방에 안성맞춤처럼 잘 어울린다. 두 사람 정도 자면 딱 좋은 크기. 그래도 이 집에서는 제일 큰 방이란다. 모기장 밖에 앵앵거리는 모기 소리를 자장가로 들으며 저절로 잠에 빠져들었다.
그 다음날 아침에 일찍 잠이 깨니 지원은 벌써 밭에서 일을 한다. 그저께 돌풍으로 쓰러진 고추를 세우고 틈틈이 김도 맨다. 나도 그이 곁에서 일을 거들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손으로는 고추를 세우고 발로는 흙을 밟아 고정하며. 두어 시간 일하고 나니 아침 햇살이 올라온다. 안주인은 밭에서 먹을거리를 이것저것 챙긴다. 떨어진 풋고추며 당근, 방울토마토, 부추를 바구니에 담는다. 나도 잘 익은 방울토마토를 따려고 했더니,
“아, 그건 따지 마세요. 환자분한테 보낼 겁니다.”
알고 보니 밭 구석마다 다 사연이 있다. 환자에게 보낸다는 방울토마토는 저절로 자란, 진짜 자연산이다. 보통 방울토마토는 종묘상에서 씨를 사서 심는다. 종자회사에서 파는 씨는 일대잡종이라는 뜻에서 ‘F1’이라 한다. 그런데 이 F1에서 씨를 받은 F2를 심으면 F3에서는 엉뚱한 게 나온다. 당대는 크고 고른 열매가 달리지만 그 자손부터는 예측하기가 어렵다. 농사를 짓다가 이런 내막을 속속들이 알게 되면, 양이 적더라도 내 손으로 씨를 받아 다시 심고 싶어진다. 그러자면 몇 년은 제대로 못 먹을 각오를 해야 한다. 그렇게 몇 년 고생하면 안정된 씨앗이 된다. 하지만 아무나 그렇게 하기는 어렵다. 돈 주고 사서 쓰는 게 편하니까.
내 경험으로 볼 때, 여러 가지 씨앗을 남에게 의존하지 않고 손수 갈무리한다는 거는 생명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 없이는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니 자연에서 저절로 자란 방울토마토가 얼마나 귀한가. 그냥 방울토마토가 아니라 이걸 먹고 환자도 생명력을 되살려 치유되기를 바라는 밭주인의 마음 씀씀이가 내게도 전해진다. 음식이 보약이라는 말도 있지만 이 집에서 키우는 곡식이야말로 약 가운데서도 ‘자연보약’이 아닐까 싶다. 앞뒤 사정이 이러하니 많은 양을 나누기는 어렵다. 자신이 어떻게 농사짓고 있는지, 이 곳에 와보지 않은 이들에게는 되도록 팔지 않는단다. 돈 이전에 마음을 나누는 게 먼저인 셈이다.
바구니에 담긴 당근도 모양새가 아주 특이하다. 어떤 건 마치 인삼처럼 생겼다. 이런 당근을 시중에 내어놓으면 상품 가치는 고사하고 웃음거리가 되기 십상이다. 하지만 찬찬히 볼수록 신비롭다. 야성이 느껴진다. 어쩌면 지금 당근처럼 개량하기 전의 당근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같은 당근 씨앗이라도 똑같이 자라는 법은 없다. 땅에 따라, 씨앗에 따라, 재배법에 따라 달라지게 마련이다.
이곳은 외부에서 생산된 퇴비는 거의 쓰지 않는다. 밭도 돌이 많은 편이다. 그래서인지 당근이 하나같이 다 다른 모양이다. 미끈하게 쭉 뻗은 당근만 보다가 이곳 당근을 보니 한결 개성이 살아나는 듯해 보기 좋다. 이 당근 역시 환자들이 치료 음식으로 즐겨 먹는 채소 수프에 들어가는 소중한 재료란다. 지원에게 ‘환자’란 말을 이렇게 자주 듣다 보니, 내가 마치 어디 깊은 산속 병원에 온 듯한 기분이 든다.
폐암이 가져다준 ‘흑자 인생’
밭에서 일을 마치고 마당에 들어서니 시굴사랑이 일어나, 마당가에 쓰러진 백일홍을 일으켜 세운다. 안주인이 아침 식사를 마련하는 동안 이번에는 시굴사랑과 둘이서 일을 했다. 지난 돌풍에 쓰러진 표고버섯 나무를 일으켜 세웠다. 다시 넘어지지 않게 받침대를 덧대고, 끈으로 단단히 묶었다. 그러고는 아침을 먹고, 차 한 잔 나누면서 이야기를 계속했다
병원에서 한쪽 폐를 다 잘라내는 대수술을 하고, 산골로 들어온 부부. 서울에 있던 큰 집을 팔아 산골에 근거를 마련하고, 10여 년 아이들 뒷바라지하고 나니 이제는 아주 작은 집으로 바뀌었다. 자신들이 논밭 농사 다 합쳐 버는 돈이라고 해봐야 1년에 고작 400만원 남짓. 부족한 돈은 도시에서 직장 생활하는 두 아들이 조금씩 보태준다.
도시 사는 자식들한테 오고가지 않으면 그나마 돈 쓸 일이 별로 없단다. 자식들이 자라는 동안은 적자 가계부였지만 이제부터는 논밭에 곡식이 그득하니 노년 걱정 없는 흑자 인생이라며 환하게 웃는다. 이 부부의 고민은 돈에 있지 않다. 고민은 크게 두 가지. 하나는 도시에 사는 자식들이 언제든 시골로 내려와, 자기네처럼 행복을 누렸으면 하는 거다. 또 하나는 나이 들어 산골생활에 적응하는 과정이 결코 쉽지만은 않다는 거다. 특히 숲 속에서 겨울나기는 쉽지 않다. 산에서 나무 끌어와, 아궁이에 불 지피고, 물을 길어 써야 하는 겨울은 아직도 이 집 부부에게는 시련이란다.
벌이 많아 양파 망을 뒤집어쓴 채 일하는 지원. “새가 나무인지 알고 머리에 앉아요. 그 기분을 알란가 모르겠네.”
“사실 우리 부부가 아이들에게 못 해준 게 너무 많아요. 큰애가 초등학교 5학년 때, 남편이 수술받고 오랫동안 치료에 매달리다 보니 아이들과 오래 떨어져 살았어요. 우리 아이들은 자연을 접할 기회가 적었던 거지요. 우리 생각에야 자연에 내려와 함께 살고 싶지만 강요할 수가 없었어요. 잘 자라준 것만도 감사해요.”
그러면서 지원은 한 달에 두세 번씩 먹을거리를 챙겨 자식들에게 간다. 지금 자녀들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은 손수 키운 농산물로 밥상을 차리는 일이다. 돌아오는 길에 음식쓰레기를 다시 거두어 가져온다. 이는 더없이 좋은 거름이 되기 때문이란다.
시굴사랑은 폐 절제수술을 하면서 갈비뼈를 세 대나 잘라야 했다. 몸이 약해서 일을 많이 못하지만 자연의 움직임에 조금씩 자신을 열기 시작한다. 그런 변화 가운데 하나가 동물들과의 교감이다.
“한번은 고양이와 개를 함께 키운 적이 있어요. 고양이가 새끼들을 다 데리고 집을 나갔어요. 새끼를 낳더니 함께 살던 개한테서도 위협을 느꼈나 봐요. 그러고는 얼마 후에 밤에 혼자 산책을 나갔는데, 순간 고양이가 앞에 나타난 거예요. 살며시 다가와 내 다리를 비비며 반기는데 나도 얼마나 반갑던지. 그러고는 둘이서 한참을 같이 걸었는데 고양이가 또다시 사라져요. 거기서부터는 자기 먹이 영역을 벗어난 모양이에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다시 나타나고…. 우리는 산책길에 이렇게 항상 만납니다. 새끼 젖 먹이다가 사냥이 신통치 않으면 그때는 우리 집으로도 와요. 여기가 그놈한테는 ‘친정’인 셈이지요(웃음). 와서는 멸치도 먹고 가고…. 말 못하는 짐승이지만 얼마나 큰 기쁨을 주는지….”
“저만 잘 살면 사회도 달라져요”
지원은 겉보기에도 여장부답다. 도시와 시골을 오가며 하는 두 집 살림에 일상으로 하는 농사일, 그리고 이따금 집수리도 손수 한다.
도시에서 아파트 생활만 하다가 하루아침에 바뀐 시골생활. 처음에는 부부 사이 갈등도 두드러지게 드러나고, 남편에 대한 원망도 많았다. 하지만 해가 갈수록 작은 일에 감사하고, 숲 속 생활이 주는 보너스를 만끽하면서 남편에 대한 생각도 차츰 바뀐다.
“한동안 남편을 젊은 이웃과 자꾸 견준 거예요. 이웃은 집도 잘 짓고 농사일도 잘한다면서. 시골에서는 젊음이 자산이잖아요. 대부분 몸으로 부딪치며 해야 할 일들인데다가 처음 해본 일이라 서툴고, 쉽게 지치고. 그러다 보면 내 몸이 힘드니까 남편이 아픈 사람이라는 걸 가끔 잊은 거지요. 지금은 잘 이겨내준 남편이 고맙고, 아팠던 것도 오히려 감사해요. 도시에서만 살던 사람이, 그것도 적응하기 쉽지 않은 나이에 들어와 이 정도로 꾸려왔으니 우리 모두 대단하잖아요?(웃음) 숲 속에 살면서도 불만과 원망이 남아 있다면 모두 욕심이라 봐요. 아직도 우리는 자연 속에서 하나하나 배워갑니다.”
지원에게 15년 간병생활을 한마디로 정리해달라니까 도리질을 친다.
“내가 한 거는 없어요. 남들은 내가 남편을 살렸다고 하지만 환자 본인이 욕심을 버리고 집착을 안 하니까 나은 거지요. ‘되돌아서 간다, 돌이키다’는 말 있잖아요. 자기 발걸음을 누가 돌이키겠어요. 스스로 찾아들어야지.”
지원과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어느 틈에 시굴사랑이 밭에서 옥수수를 꺾어와 찜통에 찐다. 이 옥수수 역시 시장에서 보는 것과 달리 작다. 하지만 달고 맛있다. 슬슬 이야기를 마무리해야 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부탁했다.
“정말 마음이 예쁜 사람들이 귀농했으면 좋겠어요. 자연에 잘 순응해서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이요. 돈 있고, 운동성이 강하고, 농촌을 살려보자고 목소리 높이는 사람들 말고. 농촌은 그렇게 해서 살아나는 게 아니니까요.”
그러자 좀체 입을 열지 않던 시굴사랑이 말을 이어받는다.
“농촌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가서 살아야 할 필연이라고 생각하면 간단해요. 이게 선택이라고 생각하면 좀 해보고 안 되면 다시 도시로 가고 하는데. 그렇게 하면 농촌이 자꾸 피폐해져요. 자꾸 가벼워지고, 남아 있는 사람도 상처받고 방어적으로 바뀌어요.”
그러다가 점차 목소리가 격해진다. 죽음의 문턱을 넘어온 사람의 사자후랄까.
“지역사회에 보탬이 안 되도 좋다고 봐요. 남에게 피해 주지 말고 저만 잘 살면 사회도 달라져요. 그게 풀뿌리 민주주의가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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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 부부와 이야기를 나눌수록 그 내용이 점점 깊어진다. 암에 대한 두려움조차 까마득히 멀어진다. 암이 생기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이를 한마디로 묶는다면 조화로운 삶을 벗어났기 때문이 아닐까. 자연과 교감하고 순응하는 삶, 작은 일에도 기뻐하고 감사하다면 암이 뿌리내릴 틈은 없으리란 믿음이 든다. 자연은 암 환자는 물론 죽은 이까지 받아주는 곳이 아닌가. 그러기에 자연을 온전히 향유하는 건 스스로를 열어두는 사람의 몫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