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월26일과 27일 검찰은 ‘신동아’ 6·7월호가 보도한 ‘최태민 보고서’ 기사의 취재원을 밝혀내기 위해 기자들의 e메일 계정 압수수색을 시도했다. 비록 동아일보 기자들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혀 무산되긴 했으나, 검찰이 언론자유의 핵심인 취재원 보호를 정면으로 침해하려 했다는 점에서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다. 더욱이 해당 기사를 작성한 기자들은 피의자나 피내사자가 아닌 ‘피내사자의 관련인’으로 단순한 참고인에 불과했다. 판사 출신의 변호사이자 헌법학자인 신평 교수가 이 사태를 지켜본 소회를 보내왔다. 그는 “동아일보 압수수색 시도는 헌법이 보장한 언론의 자유와 사생활 보호라는 기본권을 유린한 위헌적 법 집행이기에 검찰의 적법성 주장은 무의미하다”고 비난했다.
7월27일 동아일보 전산 서버에 대한 두 번째 압수수색을 시도한 검찰과 이에 맞선 동아일보 기자들.
그런데 신동아 사태의 경우, 검찰은 범죄혐의 자체가 특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해당 기자가 해당 사건의 피의자도 피내사자도 아닌 상황에서, 단지 사건과 관련됐을 개연성만으로 기자들의 모든 e메일을 뒤지려 했다. 법원은 사건과 관련된 e메일을 특정하지 않고 사생활 영역이 포함된 모든 e메일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했다.
이는 언론자유와 사생활 보호를 보장한 헌법에 대한 정면 도전이자 언론의 자유를 수사편의보다 별반 중시하지 않는 안이한 의식의 발로에 다름 아니다. 필자는 특히 이번 사태가 ‘언론개혁’을 줄기차게 부르짖어온 ‘참여정부’에서 일어난 점에 주목한다. 동아일보 전산 서버에 대한 압수수색이 헌법과 얼마나 불일치하는지를 살펴보려면 우선 신동아 사태의 전말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미봉으로 끝난 ‘신동아 사태’
신동아는 지난 6월호에서 한나라당의 유력 대선 주자인 박근혜 예비후보의 자질을 검증하는 기사를 ‘박근혜 X파일 · 히든카드’라는 제목으로 보도했다. 옛 중앙정보부가 작성해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보고한 것으로 알려진 ‘최태민 보고서’(기자가 입수한 보고서의 원제목은 ‘최태민 관련자료’로 A4용지 16쪽 분량)를 토대로 작성된 이 기사는 박 후보의 가장 큰 약점으로 알려진 최태민 목사와 박 후보의 관련설을 다뤘다. 기사의 전체적 맥락은 오히려 X파일에 대한 진상규명과 박 후보측의 해명에 무게를 둔 측면이 있다.
신동아는 이어 7월호에서 1980년 전두환 정권 당시의 국가안전기획부 수사기록을 토대로 “‘전두환 안기부’, 박근혜 약혼설과 재산 의혹 수사했다”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신동아는 이 기사에서도 항간에 나도는 의혹과 관련해 당사자들의 반론을 충실하게 전달하는 등 다각도의 취재로 균형감 있게 보도했다.
신동아 기사가 보도되던 때는 박 후보와 한나라당 경선 경쟁자인 이명박 후보 사이에 온갖 잡음이 일며 각종 고소고발이 이어지던 시점. 일각에선 “국가정보원, 국세청 등의 권력기관이 한나라당 경선을 둘러싼 네거티브 공방전에 직접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박 후보측과 한나라당은 신동아 6·7월호에 ‘최태민 보고서’ 관련 기사가 잇달아 보도되자 “국가정보원이 박 후보를 흠집내기 위해 기밀문서를 고의로 유출한 것”이라며 언성을 높였다. 그러던 중 신동아가 입수한 최태민 보고서와 또 다른 형태의 ‘최태민 수사 기록’이 6월 말 이후 이해찬 전 총리, 열린우리당 김혁규 의원 등 4명의 범(汎)여권 의원 홈페이지에 게재되자 한나라당은 7월12일 국정원과 김만복 국정원장에 대한 수사를 검찰에 의뢰했다. “이들 보고서가 어떤 경로로 작성됐고, 어떻게 외부로 흘러갔는지를 밝혀달라”는 요청이었다.
검찰은 이 사건에 대한 내사 과정에서 드러난 정황증거로 미뤄 보고서의 유출과정에 국정원 직원 박모씨가 개입한 것으로 추정하고, 신동아 기자와 박씨의 연관성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가 7월25일 서울중앙지법에 박씨와 신동아 기자 2명의 e메일 계정에 대해 압수수색영장을 신청한 것도 국정원과 신동아 기자의 관련성을 추적하기 위함이었다.
영장담당판사는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하면서 검찰의 청구 내용을 대부분 그대로 인정했다. 사건과의 연관성에 관계없이 동아일보와 각 포털사이트 웹 스토리지 서버에 보관된 신동아 기자의 모든 e메일 자료가 압수수색 대상에 포함됐다. 법원은 다만 압수수색 기한을 7월31일까지로 한정했고, 압수수색 대상을 2007년 4월21일 이후에 저장, 보관된 e메일 자료로 한정했다.
7월26일과 27일 검찰은 이 영장을 제시하고 동아일보 광화문 사옥 내 전산 서버에 대한 압수수색을 시도했으나 동아일보 기자들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혀 관련 자료를 얻는 데 실패했다. 동아일보와 기자들은 “언론사의 전산 서버를 뒤져 당연히 보호받아야 할 취재원과 기자의 사생활을 무분별하게 파헤치는 것은 심각한 인권 및 언론자유 침해”라며 반발했다. 결국 검찰은 7월30일 사건과 관련성이 있어 보이는 e메일 자료만 임의제출받기로 동아일보와 합의하고 압수수색을 단념했다.
이로써 신동아 사태는 어느 정도 수습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미봉에 불과하다. 이 사건의 전개과정에서 언론측이 제기한 언론의 자유 혹은 취재원 보호와 같은 법적, 사회적 쟁점들에 대해 이해 당사자 간에 그 어떤 합의나 결론이 도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취재원을 색출하기 위한 검찰의 언론사 압수수색을 헌법상 보장된 언론자유의 침해라고 반발하는 언론사 및 기자 사회와는 대조적으로 검찰은 “언론사 압수수색은 법원의 결정에 따라 집행한 적법한 행위이며 언론사라고 법 집행의 성역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언론자유에 대한 해석을 둘러싼 두 집단 간의 냉기류는 앞으로도 대상과 시기를 달리할 뿐 제2, 제3의 신동아 사태가 얼마든지 재연될 수 있음을 예고한다.
언론자유는 민주정치의 생명선
검찰의 동아일보 전산 서버 압수수색 단서가 된 신동아 6월호와 7월호(왼쪽).
한편으로 언론의 자유는 인간적 존엄성을 유지하기 위한 불가결의 개념이다. 사람은 누구나 외부 세계와의 정신적 교통을 통해 원만한 인격체계를 만들어간다. 이를 통해서만 점점 더 완전한 존재로 성숙해갈 수 있고, 그에 따라 남이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인격과 존엄성을 갖춰간다. 외부 세계와의 정신적 교통이 원활하게 이뤄지려면 무엇보다 원하는 정보를 자유로이 마음대로 취득할 수 있어야 하며 또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거리낌 없이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정보의 자유로운 유통과 취득은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정교하면서 부드러운 정치체제, 즉 민주주의를 유지하고 발전시켜 나가기 위한 필수 전제다. 민주정치 체제의 구성원들은 정보의 자유로운 유통과 취득을 통해 올바른 정치적 의지와 정치적 견해를 갖추고 선거와 투표 과정에서 주권을 행사함으로써 민주적 공동체를 튼튼히 형성해갈 수 있다. 언론의 자유를 ‘민주정치의 생명선’이라 칭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언론의 자유는 근대 시민사회의 폭발적 형성과정과 투쟁에서 쟁취해낸 많은 자유의 개념과 기본권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으로, 흔히 이는 ‘언론자유의 우월적 지위’라는 말로 표현된다. 우리 헌법 제21조에도 언론의 자유가 기본권의 하나로 당연히 규정되어 있다.
‘언론의 자유’가 성문화되어 그 효력을 발휘하는 대표적인 사례는 미국 수정헌법 제1조다. 원래 미국 헌법에는 기본권에 관한 권리장전이 없었는데, 수정 10개조의 형태로 권리장전이 추가된 후 1789년 뉴저지주를 필두로 1791년 버지니아주에서 이에 대한 비준이 완성됨으로써 그 효력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이 권리장전의 첫머리에 해당하는 수정헌법 제1조에 언론의 자유 등이 규정되어 있다. 미국 수정헌법 제1조는 의회가 언론의 자유를 제한하는 그 어떠한 법률도 제정하지 못하도록 규정한다. 우리의 국가체계가 상당부분 서구식 혹은 미국식 민주주의를 지향하고 있고, 우리 헌법에도 언론의 자유가 규정되어 있으므로 미국 수정헌법 제1조의 언론자유에 관한 해석은 우리 법조계에도 대부분 그대로 원용된다.
언론자유의 내용에는 일반적으로 의사표현 및 전파(傳播)의 자유, 정보의 자유, 신문의 자유 및 방송·방영의 자유가 포함된다. ‘보도의 자유’라는 말도 흔히 쓰이는데, 이는 신문의 자유나 방송·방영의 자유를 포괄하는 보다 넓은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보도 자유의 개념에 취재의 자유가 포함되는데, 이는 취재 행위의 자유와 취재원을 숨길 수 있는 취재원 비익권(秘匿權)으로 다시 나뉜다. 취재 행위의 자유에 관해서는 법조계나 학계에서 별 이론이 없는 상황. 하지만 언론사나 취재기자가 기사를 작성하면서 정보를 얻은 취재원을 숨기며 말하지 않아도 될 취재원 비익권은 현행법도 완전하게는 보장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공익(公益)과 관련된 큰 전제조건만 만족되면 취재원 비익권은 유명무실해질 수 있다.
취재원 공개 강제를 위한 전제
한나라당은 7월12일 서울중앙지검에 ‘최태민 보고서’ 유출 경위에 대한 수사를 의뢰했다.
쉽게 말해 정부가 언론사로부터 취재원을 파악하고 싶다면 취재원 공개가 ‘압도적이고 강력할’ 만큼 공익에 부합하고, 또 취재원 공개 행위 자체가 그 공익을 실현하는 데 실질적 연관이 있음을 정부가 직접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미국에서는 그런 급박한 상황이 있는 범위에서만 언론의 취재원 비익권을 인정하지 않는다.
최근 미국에선 언론의 취재원 비익권이 실제로 인정되지 않은 사건이 발생했다. 이른바 CIA 누설사건(CIA Leak Case)이 그것이다. 이 사건은 권력의 도덕성과 취재원 비익권의 문제를 둘러싸고 상당기간 미국의 조야를 뒤흔들었다. 2003년 7월14일 미국 언론은 미모의 전직 대사 부인인 밸러리 플레임이 CIA의 전 공작원이었다는 사실을 폭로했는데, 당시 이 보도는 정부의 ‘사주성 기사’로 매도됐다. 수사 결과 미 정부는 밸러리의 남편이 이라크전쟁에 비판적인 견해를 언론에 계속 발표하자 그에 대한 보복 차원에서 언론에 관련 정보를 흘린 것으로 밝혀졌다.
동아일보 기자들이 7월27일 검찰의 2차 압수수색에 맞서 저항하고 있다.
취재원 보호를 포함한 언론자유의 포괄적 제한에 대한 일반론은 이처럼 미국에서 하나씩 수립되어 다른 나라로 퍼졌다. 그 개괄적 내용은 검열과 같은 언론에 대한 사전제한은 허용되지 않으며, 사후적으로 제약하는 경우에도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clear and present danger)’이 있을 때에 한해서 예외적으로 인정할 수 있다는 것. 이는 우리 대법원, 헌법재판소의 판례에 의해서도 거의 유사하게 인정되고 있다. ‘브란덴버그 대 오하이오 사건’ 이래 현재는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의 원칙’에 ‘절박한 무법적 행동(imminent lawless action)을 선동하거나 그럴 우려가 있는 표현이 담기지 않는 이상 언론자유를 사후 제한할 수 없다’는 원칙이 추가됐다.
지금까지의 내용을 정리하면 언론사나 기자가 취재원을 보호하기 위해 그 신원을 숨기는 경우, 취재원 공개를 법적으로 강제하려면 취재원의 공개로 이룰 수 있는 공익이 취재원을 숨길 때보다 명백히 더 크다는 점이 시현(示顯)돼야 하며 나아가 그 비익(秘匿)이 공익에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을 초래하거나 절박한 무법적 행동으로 평가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기본요건들을 갖추지 못한 취재원 공개 강제행위는 헌법에 의해 거부되며, 강제된 취재원 공개는 위헌적인 공권력 행사로 규정된다. 이는 우리 헌법상의 언론자유와 취재원 비익권의 내용이자 그 한계를 정한 기준선이기도 하다.
검찰 영장 청구의 실체
검찰의 압수수색에 대비해 전산실을 지키는 동아일보 기자들. ‘언론 자유 수호’라는 글자가 그들의 의지를 대변한다.
이와 관련, 이번 신동아 사태와 발부된 압수수색 영장은 두 가지 큰 문제를 안고 있다. 첫째, 동아일보 기자들에 대한 검찰의 e메일 압수수색은 영장을 청구할 만한 헌법적 전제 요건을 단 하나도 갖추지 못했다. 검찰의 영장 청구는 너무 거칠고 성급했다. 검찰의 영장 청구 당시 신동아 기자가 국정원 직원으로부터 ‘최태민 보고서’를 입수했다는 증거는 그 어디에도 없었으며, 그들은 단지 사건의 관련인 또는 참고인일 뿐이었다. 문건 유출의 장본인으로 ‘선거법 위반’ 의혹을 사고 있던 국정원 직원의 유출 혐의도 확인되지 않은 추정에 불과했다. 그의 수사상 신분은 피내사자였다.
따라서 기자들의 취재원 보호 행위가 국가의 공익에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을 초래한다고 보기 어렵고, 그 행위를 절박하고 무법적인 행동으로 평가할 근거는 전혀 없다. 더욱이 검찰은 영장을 청구하면서 취재원 공개 강제를 위한 이런 헌법적 전제조건들에 대해 검토하거나 밝힌 적이 없다.
또한 검찰은 언론자유를 제한하고 취재원 공개를 강제할 수 있는 대전제인 ‘취재원을 공개할 경우 발생하는 공익이 숨길 때보다 아주 크다’는 점을 기자나 언론사, 법원에 직접 증명하지 않았고, 취재원 공개와 그로 인해 생기는 공익 간에 어떤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있는지에 대해서도 실질적으로 설명하지 못했다. 검찰이 이렇듯 헌법적 기본 요건을 갖추지도 못한 채 다급하게 영장을 신청하고 집행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어 보인다.
압수수색 당시 검찰은 국정원 직원 박씨를 정식 피의자도 아닌 피내사자 신분으로 조사하고 있었다. 피의자건 피내사자건 범죄의 혐의를 받고 있다는 점에서 별반 차이를 갖는 것은 아니나, 그가 피내사자 상태로 있었다면 사건은 극히 초동의 단계이고 여기에서 수사를 멈추건 말건 하등 외부적 효과를 발생시키는 시점은 아니었다. 그만큼 범죄 혐의의 수준이 낮다거나 혹은 수사기관에서 수사의 필요성을 강하게 느끼지 못한다거나 하는 단계였다.
검찰이 ‘사건 관련 기자들이 취재원을 숨기기 때문에 그것이 수사에 결정적인 장애를 초래하고 있다’는 식으로 말할 수 없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국정원이나 다른 혐의자에 대한 전반적인 수사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은 초동 수사 단계에서 영장이 청구되다 보니 언론자유를 제한하고 취재원 공개를 강제하기 위한 사유를 제시하려 해도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검찰은 언론자유의 헌법적 가치에 대해 고민하고 다른 혐의자에 대한 방증 수사를 확대하는 데 전력투구하는 대신 언론사와 기자에 대한 압수수색이라는 위헌적인 방법을 손쉽게 선택했다.
기자 기본권도 심각하게 침해
7월26일 검찰의 1차 압수수색 시도를 저지하는 신동아 기자들.
하지만 신동아 사태 당시 검찰은 이 원칙을 지키지 않았다. 이 사건의 압수수색 영장은 검사가 피내사자인 국정원 직원 박씨에 대한 공직선거법위반 혐의사실에 대한 수사에 필요하다는 이유로 청구한 것이다. 그런데 검사는 영장을 청구하면서 압수수색의 범위에 어떤 제한도 두지 않았다. 신동아 기자의 e메일에 관해 신청된 영장은 어떤 시간적, 사항적 한계도 없이 무차별적으로 압수수색을 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검사의 청구를 받은 영장담당 법관이 ‘2007년 4월21일 이후의 자료’로 압수수색 범위를 일부 한정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으론 부족했다. 담당법관은 검사의 영장청구에 대해, 이를 시간적으로 제한하는 단서를 달긴 했어도 영장의 사항적 적용범위에서는 검찰의 청구를 그대로 따랐으며 어떤 제한도 두지 않았다.
백보 양보해 이 사건에서 압수수색 영장집행이 수사상 꼭 필요했다고 쳐도 검찰은 사건과 관련된 e메일을 특정해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해야 했고 실제로 검찰은 그렇게 할 수 있었다. 기자의 e메일 계정에서 피내사자인 박씨와 주고받은 e메일이 있는지 이를 서버에서 확인한 뒤 그 부분만 특정해서 출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법원은 이 사건에서 무모하게도 기자의 사적인 e메일, 수사대상과 전혀 무관한 정보, 자료까지 포괄적으로 압수수색을 실시할 수 있도록 허용함으로써 언론자유뿐만 아니라 사생활의 자유 등 헌법이 보장한 다른 기본권도 심각하게 침해했다.
이처럼 검찰의 동아일보 압수수색 시도는 언론의 취재원 비익권 제한을 정당화할 만한 어떤 전제조건도 충족시키지 못함으로써 우리 공동체가 지닌 지고한 가치를 시현해놓은 헌법에 부합하지 않았다. 또 그 영장의 집행범위를 지나치게 넓게 잡음으로써 헌법정신을 그르쳤다. 결국 헌법상 보장된 언론의 자유와 기자들의 기본권을 부당하게 침해하는 결과를 빚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동아일보 기자들이 영장 집행에 집단적으로 저항하고 나선 것도 헌법적 관점을 고려하지 않은 검찰과 법원의 처사에 대한 당연하고도 필연적인 행동으로 풀이할 수 있다. 이번 사태에서 검찰은 일관되게 “법원에 의해 적법하게 발부받은 영장에 따라 법집행을 함에 불과하다”는 식으로 말하며, 영장집행이 일으킨 파장 및 그에 대한 반발이 갖는 의미를 애써 축소하려 했다.
그러나 동아일보 기자들이 7월29일 낸 성명에서 “기자가 피내사자의 관련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언론사를 압수수색할 수 있다면 지구상 모든 언론사는 하루에도 몇 번씩 검찰에 문을 열어줘야 한다”고 지적한 것이나, 한국기자협회가 7월30일자 성명에서 “검찰의 요구에 따라 취재원을 공개한다면 누가 언론의 취재요청에 응하겠는가? 용의자도 아닌 기자들의 메일 공개를 강요하는 것은 사생활 침해다”라고 주장한 것은, 비록 헌법적 문제의 핵심을 찌른 것은 아닐지라도 이번 신동아 사태의 어딘가 석연치 못한 단면을 여실히 드러낸다.
기자들의 지적처럼 사건 수사의 초동단계에서 언론사나 기자들을 대상으로 압수수색을 감행해 취재원을 캐기 시작하면 언론이 정부의 부정과 국가 비리에 대한 기사를 쓰는 것은 아예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검찰이 언론에 대해 취재원 공개를 직접 요구하는 행위는 모든 수사방법을 동원해도 안 될 때, 그것도 언론자유의 제한에 대한 헌법적 전제가 충족된 상황에서 선택할 수 있는 최후의 방법이어야 한다.
비록 법적 규정은 아니나 기자와 언론사가 자체적으로 ‘기자는 취재원의 안전이 위태롭거나 부당하게 불이익을 받을 위험이 있는 경우 그 신원을 밝혀서는 안 된다’는 신문윤리실천요강(한국신문편집인협회 제정, 제5조)의 의무를 지고 있다는 점도 충분히 고려됐어야 한다. 그러나 영장발부나 그 집행 과정에서 검찰과 법원이 이러한 점들에 대해 배려한 흔적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법-검 커넥션의 산물?
그렇다면 언론사에 대한 위헌적 압수수색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근본적 이유는 뭘까. 필자는 그 주요 원인을 검찰과 법원의 투철하지 못한 헌법의식에서 찾는다. 헌법을 고려하지 않는 법조 실무 일선의 안이한 일처리 방식, 헌법적 가치에 관한 경시 등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 사건 영장에 관여한 법관, 검사들도 예외가 될 수 없다. 그들은 반드시 짚었어야 할 헌법적 문제점들을 별 생각 없이 간과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이 영장에 관여한 법관과 검사만을 질책할 수도 없는 형편이다. 헌법은 그들이 일상적으로 다가가기에는 조금 먼 곳에 위치해 있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번 사태를 몰고 온 또 다른 원인으로 일그러진 우리의 법 현실을 지목한다. 광복 이후 법원과 검찰은 그들의 특권과 이해관계, 그리고 이를 항구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커넥션을 형성해왔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법원과 검찰이 서로 ‘노터치’하는 관행이다.
예를 들어보자. 교통사고로 사람을 사망케 한 경우 보통은 구속되어 재판을 받고 실형 혹은 집행유예의 형을 받게 된다. 그러나 검찰은 형사소송법 제448조에 따라 벌금을 매겨 구약식 청구를 할 수 있다. 판사가 이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서명하면 벌금형으로 끝나게 되는 것이다. 이 정도는 별게 아니다. 심한 경우 강간치상 사건에서 피해자와 합의가 됐다면 강간 부분은 빼버리고 상처가 난 부분만 적당히 발라내어 벌금형의 구약식 청구를 해 확정시킬 수도 있다. 물론 여기에도 판사가 검사의 구약식 청구에 손을 대지 않는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법원-검찰의 이런 커넥션 가능성에는 영장에 관한 부분도 들어갈 수 있다. 검사의 구속기간 연장허가에 대해 법관들이 거의 통제를 하지 않거나, 또 검찰이 신청한 압수수색 영장을 아무런 제한 없이 그대로 통과시켜줄 개연성이 있다는 것이다. 검찰의 수사는 한 세력이 반대세력을 누르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당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A라는 범죄집단이 B라는 범죄집단의 비위사실을 은밀히 수사기관에 제보해 핵심인물을 검거토록 함으로써 B집단을 무력화하는 사례도 있다. 이렇게 균형을 이룬 양대 세력 간의 갈등에서 압수수색 영장은 엄청난 파괴력을 지닌다. 예컨대 정상적인 영업을 위해 꼭 필요한 설비나 장부 같은 것을 검찰이 범죄의 수사에 필요하다는 이유로 전부 압수해버린다면 범죄의 성립 여부와 관계없이 엄청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지난 10여 년간 민주화 과정이 착실하게 진행되면서 우리 법조계에 이제는 이런 치부가 남아 있을 여지는 크지 않다. 그런 면에서 우리의 수사기관을, 또 법원을 신뢰하고 싶다. 하지만 그런 가능성이 완전히 없어졌다고 단정하기는 어려운 게 현실이다.
한편으로 과거의 잘못된 관행이 내용적인 면에서는 많이 개선됐지만 형식은 그대로 내려오는 경우도 있다. 필자는 지금 신동아 기자들에게 발부된 압수수색 영장이 법원-검찰 커넥션의 일환이라고 말하려는 게 결코 아니다. 그럴 여지는 전혀 없다. 하지만 검찰은 헌법적인 관점에서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무모한 내용을 담아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했고 법원은 이에 대해 기간제한을 가했을 뿐 실효성 있는 제한을 전혀 가하지 않은 채 통과시킨 게 사실이다.
이는 비록 법-검의 뒷거래 가능성은 사라졌어도 법원이 검찰의 행위에 대해 어지간하면 간섭하지 않으려는 과거의 잘못된 관행이 껍데기만은 그대로 남아 꿈틀대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렇지 않고서는 헌법적 관점에선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영장 발부와 집행이 버젓이 이뤄지는 현실을 설명하기 어렵다.
새로운 언론관 정립해야
‘참여정부’가 들어선 이후 노무현 정권은 우선적인 개혁과제로 언론개혁을 부각시켰다. 신문 등의 자유와 기능보장에 관한 법률, 방송법, 뉴스통신 진흥에 관한 법률이 새로 만들어지고, 언론에 대한 광범위한 제한 규정을 담은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이 등장했다. 새롭게 정비된 언론법제들은 그간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는 독소조항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는 이유로 끊임없는 비판을 받았고, 급기야 지난해 6월29일 헌법재판소는 이들 언론개혁입법 중 몇 가지 중요한 부분이 위헌이라는 역사적 판시를 했다.
하지만 ‘권력의 입’을 빌려 자행된, 기성언론에 대한 끊임없는 비난과 언론 보도에 대한 직접 소송 등 지루한 소모전 양상이 계속되면서 참여정부의 언론개혁은 그 방향성을 잃어버렸다. 이를 바라보는 국민은 피곤하다. 메마른 땅 위에서 먼지를 풀풀 날리며 무익하게 쟁기질을 해대는 모습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일련의 과정에서 주객이 전도되는 커다란 문제가 야기됐다. 법조를 포함한 우리 사회 전체가 언론자유 자체와 그 중요성에 대한 불감증에 빠져버린 것이다. 필자는 신동아 사태도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 결과물이라고 판단한다. 법을 전공하고 운영하고 집행하는 검찰과 법원에서 이런 위헌적 압수수색 영장이 신청되고 발부될 수 있다는 것은 결국 헌법의 최고 우월적 가치인 언론자유에 대한 불감증이 법조계에 광범위하게 확산됐다는 증거다.
물론 언론의 자유를 고전적 시장 이론에 버금가는 사상의 자유시장론에 따라서만 파악할 것은 아니다. 현대의 복잡한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변화에 따라 언론자유도 그 내용의 상당부분이 변하고 있다. 이제 더 이상 언론의 자유는 매스미디어의 특권이 아니다. 언론의 자유에선 매스미디어의 권리도 일정 부분 보장돼야 하나 일반 국민의 알 권리, 정보의 자유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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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현대 사회의 언론자유 변용에도 불구하고 언론의 자유가 민주정치의 생명선으로서 혹은 사회 각 구성원의 건전한 인격 발전의 필수불가결한 전제조건의 기능을 한다는 명제는 여전히 옳다. 언론의 자유가 무시되는 현실은 생각하기만 해도 끔찍하다. 언론의 자유가 부당하게 제한된다면 그 사회는 도저히 민주사회라고 할 수 없다. 언론의 자유는 여전히 우리 헌법이 추구하는 최상위적 가치질서 위에 있다.
언론과의 시빗거리를 끊임없이 양산했던 ‘참여정부’도 곧 막을 내린다. 새로 탄생하는 정권에서는 신동아 사태와 같이 언론의 자유라는 최상위의 헌법 개념을 뒤흔드는 일이 더는 없어야 한다. 새로운 지도자는 진보에도 보수에도 치우치지 않는 언론정책 수립에 앞장서야 할 것이다. 새 시대에는 진보와 보수가 막가는 식의 투쟁을 지양하고, 국민을 위한 선의의 경쟁을 벌여 나가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기 바란다. 국민의 신경을 긁어대는 정권과 언론의 무익한 대립이 사라지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