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9월호

김성수 성공회대 총장

  • 입력2007-09-05 19: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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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수 성공회대 총장
    희수(喜壽)에도 어린아이의 해맑음을 간직한 김성수(金成洙·77) 성공회대 총장은 대한성공회의 가장 큰 어른인 대주교다. 그는 사회연대은행, 푸르매재단 등 여러 사회단체를 이끌며 사회정의를 위해 목소리를 아끼지 않는다. 하지만 중학생 시절부터 복사(미사를 돕는 신도) 봉사를 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폭행사건을 접하곤 “아버지로서 할일을 했다고 볼 수도 있으나 좀더 참았어야 했다”며 옥중의 ‘어린 양’에 대한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김성수 성공회대 총장

    교동초등학교에 다닐 때 동생들과 함께. 뒷줄 까까머리가 김성수 총장.(좌) 국내 성공회 사제로는 최초로 외국 여성과 결혼해 화제를 모았다.(우)

    김성수 성공회대 총장

    군 복무를 대신해 국토건설단에서 근무했다. 가운데가 김성수 총장.(좌) 영국 유학 시절 부인 프레다 코드레이, 아들 용이(오른쪽), 딸 빛나와 함께. 그는 “영국 유학 때 한 것이라곤 콧수염을 기른 일밖에 없다”며 웃었다.(우)

    김성수 성공회대 총장

    1964년 사제 서품을 받은 후 김요한 주교, 동료 사제들과 함께.(좌) 1993년 대한성공회가 관구로 승격하면서 첫 관구장으로 임명됐다. 영국 캔터베리 대주교로부터 성장을 전달받고 있다.(우)

    김성수 성공회대 총장

    1992년 11월 방한 중 성공회 성당을 찾은 영국의 찰스 황태자와 다이애나비(妃)를 맞고 있다.(좌) 1987년 6월 민주항쟁 당시 성공회 후배 사제들과 민주쟁취를 위한 무기한 단식농성을 하고 있다.(오른쪽 위) 1970년대 동양방송에서 열린 부부요리콘테스트에 아내와 함께 출전했다. 오른쪽은 사회자 곽규석씨.(오른쪽 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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