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9월호

‘최초 여성 공직자’ 실명 비판 후 사표 낸 정미경 검사

“미워하지 않는다, 그러나 ‘조직의 언어’로 답해야 했다”

  • 구미화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hkoo@donga.com

    입력2007-09-11 13: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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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산지검은 꼭 한번 일해보고 싶던 곳”
    • ”징계 아니라 했지만 조직은 이미 떠나라고 메시지 보낸 것”
    • 후배 검사 ”미워하지마, 나 아직 여기 있어”
    • ”원칙을 목숨처럼 지키는 검사들 있기에 희망은 있다”
    • ”강의와 책 출간, 보수적인 조직엔 못마땅했을 수도”
    • ”검사말고 다른 일 하는 모습 생각해본 적 없는데…”
    ‘최초 여성 공직자’ 실명 비판 후 사표 낸 정미경  검사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다”는 말은 요즘 정미경(鄭美京·42·사법시험 38회) 검사에게 딱 들어맞는다. 7월17일 ‘주간동아’와 인터뷰하며 기자로부터 “검사님은 검찰이 딱 맞죠?”란 소릴 듣고 까르르 웃으며 좋아하던 그가 8월2일 사직서를 제출했다. 이에 앞선 7월31일 정 검사는 부산지검으로 발령받았다.

    정 검사는 2005년부터 2년간 여성가족부로 파견됐다. 파견근무를 마친 후 원래 근무지인 수원지검으로 ‘원대 복귀’하는 게 관례이나 부산지검으로 발령이 나자 ‘문책성 인사’ 여부를 놓고 논란이 있었다. 공교롭게도 ‘주간동아’와의 인터뷰는 사직서를 제출하기 전 마지막 인터뷰가 됐고, 그날 그의 환하게 웃는 모습을 촬영한 사진기자는 8월13일 오후, 사직서를 제출한 그와 첫 인터뷰를 하기 위해 ‘신동아’ 기자와 함께 삼청동으로 향했다.

    약속 장소에 도착한 정 검사가 사진기자를 보고 놀란 건 당연했다. 나직하게 “운명이란 게 있는 모양”이라고 했다. 한 달이 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그에게 많은 일이 벌어졌다. “검사 외에 다른 일을 하는 내 모습을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그는 왜 검찰을 떠나려 할까.

    정미경 검사가 세인의 관심을 모은 건 지난 6월 펴낸 저서 ‘여자 대통령 아닌 대통령을 꿈꿔라’ 때문이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그 책 때문이 아니라 책에 언급된 ‘최초’ 수식어를 단 여성들의 리더십에 대한 비판 때문이다.

    “최근 얼굴마담이라고 비난받거나 소위 코드 인사라고 일컫는 여성들은 대부분 최초나 소수의 여성들이다. 그녀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비난이나 공격의 대상이 된다. 실력이 안 되는 얼굴마담이다, 코드 인사다, 누구의 딸이다 등등. …조직의 남성들에게 배려받은 ‘예외적 여성’들은 대부분 실력 쌓을 기회를 놓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력이나 경력은 존재하나 실력은 없다. 그래서 그녀들을 잘 아는 조직의 남자들에게 인정을 받을 수가 없는 것이다.”



    강금실과 마리 앙투아네트

    이렇듯 뭉뚱그려 비판하는 데 그쳤더라면 아마 언론이 그렇게까지 주목하지 않았을 것이다. 정 검사는 강금실 전 법무장관, 한명숙 전 국무총리, 전효숙 헌법재판관 소장 후보자 등 현 정부에서 ‘최초’의 고위공직자가 됐거나 물망에 오른 여성의 실명을 거론하며 비판의 날을 세웠다. 정 검사는, 2003년 6월 강 전 장관이 취임 100일을 맞아 전국의 모든 검사에게 보낸 e메일을 받았을 때의 솔직한 심경을 이렇게 쓰고 있다.

    “어떤 검사는 그 시각 살인사건의 피의자를 조사 중이고, 어떤 검사는 사기사건의 고소인과 피고소인을 대질하느라 진땀을 빼고 있었을지 모른다. 장관에게서 사춘기 소녀가 쓴 듯한 연애편지를 받은 검사들의 느낌은 어땠을까. 마리 앙투아네트가 빵을 달라고 외치는 백성들에게 ‘그럼 케이크를 먹으면 되지 않느냐’고 말했을 때의 느낌이라 한다면 지나친 생각일까. 그녀는 편지를 장관의 입장에서 쓰는 것이 아니라고 했지만(그녀의 진심은 그랬을 것이다), 장관이 아니라면 전국 검사들에게 어떻게 일시에 편지를 보낼 수 있다는 말인가. 혼자서 장관이 아니라고 하면 장관이 아닌 게 되는가.”

    정 검사는 강 전 장관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수면 부족과 다이어트 때문에 장관직을 오래 못할 것 같다” “자유롭게 살고 싶어요. 맘대로 춤도 추고, 연애도 하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등 ‘사석에서 친구들에게 할 수 있는 그런 말들이 법무부 장관의 입에서 쏟아졌고, 그 일화들은 신문이나 잡지 기사로 대서특필되어 인구에 회자되었다’는 점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최초라는 말이 없어질 때까지, 여성들의 수가 많아져서 더 이상 여성이라는 것에 관심이 없어지는 그날까지 최초 여성들은 개인적 삶을 잠시 유보했으면 한다. 적어도 그녀의 직분을 대표하는 공석에서는 여성을 대표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특히 공직에 있는 여성들의 책임은 더 막중할진대. 후배들을 헷갈리게 하는 그녀들, 차라리 그만둬라.”

    책에 실린 이러한 내용이 신문에 비중 있게 기사화되자 일각에선 “강금실·한명숙·전효숙 모두 소위 ‘노무현 대통령 코드’인데 그들을 한꺼번에 비판했으니 일부 보수 언론의 입맛에 딱 맞아떨어졌다”는 그럴듯한 분석까지 내놓았다.

    ‘최초 여성 공직자’ 실명 비판 후 사표 낸 정미경  검사
    그러나 250쪽 가까운 분량의 책에서 ‘최초’ 여성공직자의 실명을 거론하며 비판하는 부분은 10쪽이 채 되지 않는다. 이 책의 대부분은 정 검사가 여성으로서 ‘대한민국 검사’로 자리매김하기까지 겪었던 경험과 평범하지 않은 성장배경, 2005년부터 2년간 여성가족부에 파견돼 있는 동안 강의를 하며 만난 대중과의 소통에서 깨달은 진정한 리더십의 요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굳이 ‘최초’ 여성들의 실명을 들먹인 이유는, 여성의 사회 진출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 추세에 비춰볼 때 앞으로는 ‘최초’ 여성들의 방법과 전략이 결코 모델이 될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1호나 2호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시점, 즉 양적으로 여성이 많아졌을 때 그녀들의 역할모델은 누가 될 것인가. 최초의 여성이 그녀들의 역할모델로 충분한가? 물론 대답은 ‘아니다’이다. 이미 배려를 받지 못한 무한 경쟁의 바다에 빠져 있는 수많은 여성에게 예외적인 여성은 역할모델이 될 수 없다. 미래 여성의 시대에는 ‘여성다운 여성’이 사라지게 된다. 더 이상 여성의 특성이나 자질 혹은 남성적 특성이나 자질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 어떤 포지션에서 요구되는 자질만이 중요할 뿐이다.”

    부산에서 들은 ‘부산 발령’ 소식

    8월9일 아침에 그와 처음 통화했다. 그 전날까지만 해도 링거를 맞고 누워 있다는 얘기를 들은 터라 걱정했으나 다행히 목소리가 밝았다. “수많은 여성에게 그 많은 화두를 던져놓고 홀연히 사라져버리면 어떡하냐”는 기자의 말에 큰 소리로 웃기도 했다. 예상했듯 그는 인터뷰 제의에 선뜻 응하지 않았다. 또 한 번 다행스러운 건, 그가 단박에 잘라버리지 않고 하루쯤 고민해보겠다고 했다는 점. 그리고 그 다음날 오후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구 기자님, 우리 한번 해볼까요? 인터뷰 기사가 나간 다음 우리 둘 다 행복해지면 좋겠는데….”

    정 검사는 참 잘 웃는다. 그것도 두 눈을 반짝이며 큰 소리로. 콧등에 유독 주름이 많은 것도 웃음 때문인 듯하다.

    ▼ 사직서는 수리됐나요.

    “아직 안 됐어요. 임면권자가 대통령이라 청와대까지 갔다 오는 시간이 걸려서 그럴 거예요.”

    ▼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저도 너무나 갑작스럽게 이렇게 돼서…. 사직서를 낸 날이 목요일(8월2일)이에요. 그 뒤로 며칠 힘들었고, 그 다음 월요일(8월6일)에 강의가 잡혀 있었어요. 그 시점을 지나면서 마음이 편안해졌어요. ‘떠나온 곳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제 자신에게 자꾸 상기시켰어요. 그러면 돌아갈 수 없기 때문에 앞으로의 일에 더 충실하지 않을까 싶어서. 지금 아무 생각이 없어요.”

    ▼ 왜 사직서를 냈나요.

    “월요일에, 인사가 공개된 날이 월요일일 거예요. 저 그 주에 휴가였어요. 우리는 언제 인사가 나는지 몰라요. 휴가 다녀와서 한 주쯤 더 있다가 인사가 나지 않을까 추측하고 있었어요. 그러면 이번 주(8월13일~ )부터 (수원지검으로) 복귀할 거다 생각했죠. 휴가 첫날 공교롭게도 부산으로 가고 있었어요. 그런데 후배 검사에게 전화가 왔어요. ‘왜 부산(지검)이냐’면서. 전 그 친구가 잘못 본 거라고 얘기했어요. 난 이번에 인사 대상자가 아니니까. 그 후배가 ‘나도 잘 안다. 그런데 부산으로 인사가 났다’는 거예요. 처음엔 놀라고 다음엔 당황했고, 화가 나고… 감정의 변화가 있었죠.

    제가 수원지검에서 6개월 근무하고 여성가족부 파견 나왔거든요. 그때 법무부에서 수원지검에 1년6개월 더 근무해야 한다고 했어요. 그래서 제가 수원 집을 옮기지 않고, 2년간 수원과 서울을 왕복 4시간 걸려가며 출퇴근했어요. 그러다 올 초 전세 계약 2년이 만료돼 수원의 다른 아파트로 이사를 했고요. 저뿐 아니라 제 주위 누구나 제가 수원지검으로 복귀할 걸로 알았어요.

    그런데 갑자기 부산지검이라니까 궁금하잖아요. 알아봤더니 징계를 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징계에는 절차가 있잖아요. 통지를 해줘야 하고, 소명의 기회도 줘야 하고. 그에 대해서도 당연히 물어봤죠. 나중엔 징계가 아니라고 했어요. 근데 조직에는, 우리 조직뿐 아니라 어느 조직이든 그 조직의 언어가 있지요. 조직은 저에게 말을 한 거예요. 저는 ‘그건 아닙니다’라고 말로 할 기회나 제도가 없었기 때문에, 조직의 언어로 대답을 해야 하는 거죠. ‘아니오’라고 할 방법은 사직서밖에 없었어요.”

    법원칙과 절차

    일각에선 정 검사가 부산지검 발령을 ‘좌천’으로 받아들이고 사직서를 낸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부산은 제가 굉장히 근무해보고 싶은 곳이었어요. 제 개인적인 추억도 있고, 아이들이 바다를 좋아하고 어리고, 어머니도 공기 맑은 곳에 계시면 좋을 것 같고. 그리고 검사들은 늘 임지를 바꾸기 때문에 지역은 전혀 문제되지 않아요. 부산은 평소에 근무해보고 싶었던 곳인데 일이 이렇게 돼서 가슴 아프죠.”

    ‘최초 여성 공직자’ 실명 비판 후 사표 낸 정미경  검사
    ▼ 징계 사유는 책인가요?

    “책이 아니라고 했어요. 그러면서 5년 전 사건이 최근 대법원에서 무죄판결 난 걸 얘기했는데…. ‘조직의 언어’가 무얼 얘기하는지 알 수 있죠.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게 어려웠던 건 저도 조직 안에 있으면서 서글픈 사직을 봤잖아요. 그럴 때면 그 서글픔이 전염돼서 남은 사람들을 힘들게 해요. 혹여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내 서글픔이 전염될까봐 걱정했어요. 며칠 전 제가 좋아하는 후배한테 전화가 왔는데, ‘미워하지 마, 나 아직 여기 있어’ 그러더군요. 그 말이 가슴에 와 닿아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거기 있는데, 미워하지 않아요. 그래서 더 뭐라 얘기하는 게 조심스러웠는데, 생각해보니 사직 인사를 못 했더라고요. 보통은 검사가 사직할 때 검찰 내부 게시판에 사직하는 심경도 밝히고 감사 인사도 남기는데, 저는 여성가족부에서 검찰로 복귀하기 전에 사직서를 낸 거라 아무것도 못했어요. 그게 마음에 걸렸는데, 이렇게나마 마음을 전할 수 있게 돼서 다행이다 싶어요.”

    ▼ 그 책이 공직에 있는 사람, 특히 후배 여검사들을 위해 쓴 책이라고 했잖아요. 그렇다면 좀 힘들어도 조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거 아닌가요.

    “책에서 개인적인 뒷감당이 힘들어도, 혹은 불이익을 입더라도 ‘아니오’라고 말해야 할 때는 ‘아니오’라고 힘주어 말하자고 얘기했어요. 제가 사직서를 낸 건 ‘아니오’라고 말한 거예요. 사직서를 낸 날 밤에 헌법, 형법, 형사소송법을 읽었어요. 제가 매일같이 읽었던 부분을 다시 봤어요. 우리에겐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살면서 목숨처럼 지키는 원칙들이 있어요. 조직을 미워하지 말라는 후배의 전화와 법전에서 읽은 법원칙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떠나온 곳으로 다시는 되돌아갈 수 없다는 걸 점점 깨닫게 되더라고요.”

    ▼ 책을 읽어 보면 검찰 조직에 대한 애착이 누구보다 강하다고 느껴지거든요. 그런데도 꼭….

    “이게 사직할 정도의 일이냐고요? 우리 일이 사실 많이 힘들어요. 제 책에도 좀 나오지만, 저는 처음에 검사가 됐을 때 제가 내린 결정이 맞는지, 아니면 더 조사해야 하는데 쉽게 결론을 내린 건 아닌지 확신이 안 서서 너무 힘들었어요. 사건은 계속 물밀 듯 밀려오는데, 이래서는 단 한 건도 해결을 못 하겠더라고요. 다른 사람들은 ‘사건에 일정한 거리를 두라’고 조언했지만, 그것도 잘 안됐어요. 제 나름대로 터득한 방법은, 내 등 뒤에 신이 계셔서 늘 지켜보고 있고, 그분에게 변명할 수 있을 정도로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거였어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사건을 털어낼 수가 없겠더라고요. 살기 위해 찾아낸 방법이죠.

    또 사람들이 그래요. 검사를 오래 하면 얼굴이 변한다고. 미소는 없어지고, 차가워지고, 그렇게 되고 싶지 않더라고요. 그리고 전 행복하게 살고 싶었어요. 행복하지 않으면 제가 왜 이 일을 하겠어요. 그래서 신에게 변명할 수 있을 정도로 일하면 된다는 나름의 방법도 찾은 거지만, 이 일이 그렇게 힘들어요. 그렇기 때문에 애정이 없으면 그 일을 할 수 없어요.

    그런데 갑자기 부산지검 발령이 났잖아요. 그전에 제게 부산 얘기를 한 적이 없고요. 그 실망감 때문에…. 실망감과 나에게 이런 식으로 메시지를 주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더해졌을 땐 이제 떠나야 할 때가 왔구나 하는 생각밖에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요.”

    ‘아니오’라고 말하는 연습

    ▼ ‘최초’의 여성들을 비판한 ‘최초’의 여검사잖아요. 책임감 같은 거 안 느껴졌나요.

    “제가 ‘아니오’라고 말하기가 얼마나 어려웠는지 이해하는 사람들이 있을 거라 믿어요. 이 일이 나만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남들은 ‘왜 그렇게 처절하게 사느냐’고도 하지만, 전 ‘아니오’라고밖에 할 수 없는 거예요. 아직도 여자가 잘하면 개인 아무개가 잘하는 거고, 실수하면 여자 전체가 못하는 거잖아요. 그러니 여자가 ‘아니오’라고 하는 게 남자보다 훨씬 부담스럽죠. ‘여자는 다 그래’라는 반응을 감수해야 하니까. 그럼에도 앞으로는, 10년 내에 검찰의 남녀 비율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바뀔 텐데, 다른 조직은 말할 것도 없고. 그러면 조직은 점점 개인화할 거예요. 잘해도 못해도 개인의 몫이 되는. 그러니 지금부터 ‘아니오’라고 말하는 연습을 해야죠.”

    ▼ 부산지검에서 수사를 계속하면서 후배를 키우고, 계속 ‘아니오’라고 말하면 안 되나요.

    “그러면 절차, 나를 부산지검으로 발령 낸 절차는 어떡하고요? 징계를 했고, 징계에 필요한 절차를 밟지 않아 문제가 되니까 징계가 아니라고 했지만, 어쨌든 징계로 인한 결과물이 인사라는 형태로 나왔잖아요.”

    ▼ 그렇다고 사직을 하는 게 문제 해결 같지도 않거든요. 더욱이 후배들이 바라볼 여자 선배들이 적은 상황에서 또 한 명의 여자 선배가 사라지는 건데.

    “부산 발령의 의미는 어떻게 하고요? 그냥 부산에 간다? 그러면 절차가 잘못된 건 어떻게 해요?”

    ▼ 절차가 없었으니까 징계가 아닌 거 아닌가요.

    “절차 없이 내려진 징계죠. 우리는 그 절차를 중요하게 생각하잖아요. 절차적법에 대해서 얘기하잖아요. 영장에 의해 사람을 구속해야 하고…. 더욱이 우리가 하는 일이 법과 관련된 건데. 조직의 언어가 뭘 의미하는 건지 아는 거죠. 제가 모르는 사이에 징계가 있었고, 절차는 없었고, 그 점에 대해 다시 물었더니 징계가 아니라고 했고, 그러나 이미 징계에 의한 인사는 났고. 처음엔 5년 전 얘기를 했어요. 5년 전 얘기를 했다는 건 징계를 했다는 거죠. 제가 받아들일 수 있는 건, 말이 아니라 조직의 언어지요. 그러면 나의 선택도 조직의 언어로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제가 사직서를 낸 날 왜 헌법, 형법, 형사소송법을 읽었겠어요. 절차를 지키지 않은 건 절대 용인되지 않는 지점이에요.”

    ▼ 5년 전 사건이 뭐였나요.

    “잘 모르겠어요. 5년 전 사건이 한두 가지여야죠.”

    ‘사유가 불분명한 징계, 그리고 다시 징계가 아니라고 했다.’ 선뜻 납득이 가지 않는 대목이다. 법무부 김주현 검찰과장은 정미경 검사의 이 같은 발언에 대해 “인사는 적법한 절차를 통해 이뤄졌다”며 “본인이 생각한 대로 인사가 나지 않았다고 왈가왈부하는 것에 법무부가 일일이 해명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여성가족부 파견 당시 수원지검 원대복귀를 약속받았다는 정 검사의 말에 대해선 “당시 법무부에서 그런 얘기를 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검사가 다른 부처에 파견 나갔다가 돌아오는 것 자체가 인사이며, 검사 인력수급에 따라 다른 청으로 발령이 날 수도 있다. 최근 공정거래위원회에 파견 나갔다 돌아온 검사도 원대복귀하지 않고 다른 지검으로 발령이 났다”고 밝혔다. 김 과장은 또 “징계가 인사에 반영되는 경우는 있지만, 검사에 대한 징계는 징계법의 절차에 따라 공개적으로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 힘들게 ‘아니오’라고 했지만, ‘보수적인 검찰 조직 내에서 여검사가 이런 책을 내면 결국 사표 내고 나가야 하는 거구나’ 하는 인식을 남길 수도 있다는 생각은 안 해봤나요.

    “그래서 조심스러웠죠.”

    ▼ 이렇게 사직서를 내고 조직을 떠나면, ‘역시 검찰에서는 아직까지 이런 비판을 하면 안 돼’ 하는 생각이 더 팽배해지지 않겠습니까.

    “사실은 그 부분을 가장 많이 고민했어요. 근데 저 자신도 그 부분을 극복해야 해요.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는 게, 검찰 안에는 자기 목소리를 많이 내진 않지만 ‘아니오’라고 말하는 분들이 분명 있고,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원칙을 지키면서 일하는 검사들이 있어요. 비록 소수일지라도 그분들로 인해 희망이 있죠.”

    여성학, 강의, 출판

    ▼ 책을 낼 때 이런 상황을 예상치 못했나요.

    “전혀요. 이 책을 쓰게 된 과정은 이래요. 제가 검찰에 있다가 여성가족부에 지원해 파견을 나왔어요. 군산에 있을 당시(정 검사는 군산 개복동 유흥주점 화재사건 1년 후 군산지청에 부임했다) 검사들과 여성단체가 대화를 피하는 게 안 되겠다 싶어 둘 사이에 통역자가 되고 싶었거든요. 여성가족부에 파견 나와 있는 동안 대학원에 다니며 여성학을 공부했는데, 학교 다녀서 좋은 건 책 한 권을 읽더라도 그와 관련한 내 경험을 ‘리포트’라는 형식을 빌려 ‘정리’할 수 있는 거예요. 이 리포트를 돌려 보면 주위에서 내용이 참 좋다는 반응을 보였어요. 그러면서 이런 얘기를 책으로 정리할 사람은 정 검사밖에 없다는 얘기들을 했죠. 당연히 전 못한다고 했는데, 그 무렵 마침 여기저기서 강의 요청이 들어왔어요.

    그렇게 사람들이 제 리포트를 돌려읽고 대중을 상대로 강의를 하던 차에, 책을 써보라는 권유를 받은 거예요. 제게 원하는 일들이 점점 커진 거죠. 과연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인지 고민했지만, ‘내가 해야 할 일이다’라는 생각이 들고 나니 더 고민할 게 없어졌어요. 내가 살면서 고민한 것들을 후배들과 나누고, 미래를 준비하는 새로운 전략을 함께 짜보자는 얘기를 한 거였기에 이런 식으로 문제가 되리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어요.”

    “딴생각? 날 잘 모르니까”

    ▼ 책에 대해 검찰 내에선 어떤 반응이 나왔는지 좀 들어보셨나요.

    “간접적으로 전해 들었어요. 여러 가지 얘기가 많았던 것 같아요.”

    ▼ 딴생각이 있을 거라고들 해요. 이렇게 사직서를 제출하고 나니 더욱 다른 데 뜻이 있는 것 아니냐고 하죠. 정치를 할 거라는 얘기도 나오고.

    “(한숨)그러니까 그런 얘기를, 절 잘 아는 사람들은 그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니까 (제게) 전하지 않았어요. 사직서를 낸 다음에야 사람들로부터 이런 얘기 저런 얘기를 듣다보니 그런 얘기까지 있었던 모양이더라고요. 절 잘 몰라서 그러지 않을까요. 이 책이 정치적으로 읽히는 것에도 참 놀랐거든요. 정치적인 책이라면 안 썼죠.”

    ▼ 흔히 우리나라가 정치적으로 과잉 상태라는 얘기를 하죠. 정치적으로 읽힐 거라고 전혀 예상치 못한 건, 검사님이 순수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하하하. 순진했다고요? 제 책이 정치면에 나갈 거라고 어떻게 예상하겠어요. 제 주위에서도 다 놀랐어요. ‘조선일보’에 처음 인터뷰 기사가 나간 뒤에 여기저기서 전화를 많이 받았어요. 그래서 그게 아니라고 얘기했는데, 문제는 제가 아니라고 해도 그분들을 비난하는 걸로 기사화됐어요. 심지어 인터뷰에서 두 분(강금실·한명숙)에 대해 전혀 얘기하지 않아도 얘기한 걸로 나갔어요. 그런 것들을 어떻게 미리 예상하겠어요.”

    ▼ 하지만 그렇게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이 분명 있고, 그러니 검찰이나 법무부도 다른 뜻이 있는 것 아닌지 의심하고, 곱지 않게 본 것 아닐까요.

    “어느 조직이든 보수적이잖아요. 보수적인 시각에서 조직 구성원 개개인을 잘 알지 못하면 좋은 평가를 내리긴 어렵지 않을까요. 제가 여기 나와서 강의를 자주 한 것도 보수적인 조직으로선 그다지 좋게 보이지 않았을 것 같아요,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까. 하지만 파견을 나와서 현장에 계신 분들의 얘기를 들으면 도와드리고 싶고, 제가 알고 있는 정보들을 공유하고 싶어져요. 그게 나쁜 건 아니잖아요. 그럼에도 제가 책을 낸 것을 놓고 ‘다른 욕심이 있어서’라고 했다는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는 정말 당황했어요. 하늘이 알 거라 생각해요.”

    ▼ 여성가족부에 파견 나온 2년 동안 여성학을 공부하고 같은 분야를 공부하는 사람들을 두루 만나면서, 검찰조직의 생리에 다소 무뎌지고 여성학 쪽으로 경도된 건 아닐까요.

    “하하하. 그건 아닌 건 같아요. 나름대로 균형 잡기를 해왔거든요. 더욱이 조직생활을 한 다음에 여성학을 공부했기 때문에 균형 잡기가 수월했어요.”

    검찰과 여성학 사이에서 ‘균형 잡기’

    ▼ 검찰 조직 내에 여성 멘토가 있나요.

    “없었어요.”

    ▼ 책이 나온 과정에 함께 여성학을 공부한 분들, 여성가족부에서 함께 일한 분들의 영향이 크게 작용한 것 같은데, 검찰 쪽엔 상의해본 사람이 없는 것 같아서요.

    “책을 읽은 분들 중엔 ‘검찰 홍보책자’라고 하는 분도 있어요. 그러니 이 책이 어떻게 검찰 조직 내에서 문제가 될 거라는 생각을 했겠어요. 단지 여성들이 어떻게 읽을지, 후배들이 이걸 어떻게 받아들일지를 고민했기에 검찰에 대해선 전혀 염려하지 않았어요. 전 오히려 검찰이 좋아할 줄 알았어요. 언론에서 주목을 받은 ‘최초’의 분들에 관한 대목도, 앞으로 두 번째, 세 번째가 계속 나와야 하는데 시대가 달라져서 그분들의 경로를 그대로 밟아서는 안 된다는 얘기를 한 거예요. 우리는 새로운 시대를 살기 때문에 새로운 전략이 필요하다는 얘기를 한 거죠. 원래 최초의 분들은 고단한 삶을 살아요. 그거 다 알아요. 마음으로 인정하죠. 인정하지 않는 게 아니라 그건 이미 다 아는 얘기니까 굳이 반복하지 않은 거예요. 전 새로운 얘기를 하자고 책을 쓴 거니까. 그런데 이런 결과가 왔으니 당황스럽죠. 저만큼 실망한 사람이 또 있을까요.”

    ▼ 후배 여성들을 위해 책을 썼는데, 자기 자신의 포트폴리오를 구상해보진 않았나요.

    “검사 아닌 다른 모습을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처음 검사가 됐을 때 정말 ‘검사’가 되고 싶었어요. ‘여검사’가 아니라. 검사 시보 때 제 지도 검사님이 그런 얘기를 하셨어요. ‘여시보들 우는 거, 정말 아니라고 본다, 정 시보, 넌 검사가 되면 여자라는 걸 잊어야 한다. 울지 마라. 집에 가서 우는 건 상관없지만, 검사라는 포지션에서는 절대 울지 마라’고요. 상대방이 검사가 아닌 여성이라는 코드로 저를 읽으면 수사를 할 수 없다고 하셨죠.

    제가 그토록 하고 싶었던 검사가 됐으니, 검사로서 성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다 내 뒤에 신이 계시다고 생각하는 방법도 찾아냈고, 저와 다른 검사들을 비교하며 장단점을 분석했어요. 남의 얘기 잘 듣는 것, 피해자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 사람이 거짓말 할 수밖에 없는 마음을 이해하는 것, 이런 건 여성인 제가 훨씬 발달했더라고요. 그런데 여성인 제게 부족한 게 있었어요. 결정해놓고 자꾸 후회하는 것. 그래서 남자 검사 혹은 수사관들은 어떻게 하나 관찰하고 저도 연습을 했어요. 그렇게 연습하니 저 스스로 어색하지 않은 순간이 오더라고요. 그러다보면 저 스스로 여자라는 걸 잊고 검사가 되는 거죠. 그래서 수사 잘한다는 소리를 들었는지 모르죠. 그냥 하지 않았어요.

    여검사가 많아진 다음 검찰의 수사력이 떨어진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어요. 그렇다고 여자를 안 받을 거 아니잖아요. 조직 안에 검사를 훈련시키는 시스템을 만들어야죠. 어느 조직이나 마찬가지지만 그 자리에 맞는 자질을 분석하고, 그것을 자기 몸에 맞게 연습해야 해요. 몸짓도 언어도. 검찰엔 검사의 언어가 있잖아요. 듣는 사람은 남성의 언어에 익숙해 여검사가 얘기를 하면 검사의 언어가 아니라 여성 코드로 읽어요. 그래서 심지어 여검사가 사건을 담당하면 실망하는 고소인도 있어요. 그러니 철저히 검사의 언어로 얘기하는 연습을 해야죠.”

    ▼ 앞서 검찰 안에는 여성 멘토가 없다고 했죠?

    “검찰 내에 여성 멘토가 없다고 하면 제가 잘나고 선배들은 못났다고 얘기하는 걸로 들릴 수 있는데, 그런 의미가 아니에요. 저때는 같은 청에 근무하며 지켜볼 선배가 없었고, 지금 후배들은 여자 선배들과 함께 일한다고 해도 가장 윗선에 계신 분들을 과연 멘토라고 할 수 있을지에 회의적인 거죠. 그분들이 잘못해서가 아니라 선배들은 지금 우리와 다른 조건에서 일했어요. 대체로 지방근무도 안 했고. 지금 여검사들은 지방근무, 당직 모두 남자 검사들과 똑같이 해요. 물론 선배들이 있기에 후배들이 들어오면서부터 안정을 찾는 거지만 그런 얘기를 다 하자고 이 책을 쓴 게 아니에요.”

    “여성이여, 일단 많아져라”

    ▼ 책에 ‘새집짓기’ 얘기도 나오지만, 사회엔 아직도 왜 굳이 새집을 지어야 하느냐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분명 있어요. 그렇게 사회가 변하려면 아직 멀었는데, 여자들만 잘해서 세상이 바뀔까요. 여자들만의 새집을 지을 수도 없는 것이고.

    “보통 남녀평등 혹은 승진 문제를 놓고 유리천장 얘기를 해요. 근데 여자가 위로 승진하면, 그래서 유리천장이 깨지면 나머지도 다 좋아지는 거냐 하면 그렇지 않아요. 여전히 여자가 자기 목소리를 내면 튀는 거고, 일 잘 못하면 ‘여자는 다 그래’ 하죠. 유리천장만 부숴서는 세상이 달라지지 않아요. 오히려 나머지 것들이 훨씬 무섭죠.

    일단 사회에 진출한 여성이 많아져야 해요. 많아지면 새집을 지을 수밖에 없어요. 검찰에서 처음 건물을 지을 때만 해도 여검사가 거기에 상주하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어요. 그러니까 그 큰 건물에 여자 화장실이 1층에만 있죠. 3층에서 일하면서 볼일 보려면 1층으로 내려가야 했어요. 그것도 임신한 여자가. 누굴 탓하겠어요. 당시로선 그런 생각을 못했던 거예요. 눈에 보이는 건물이 그럴진대 하물며 눈에 보이지 않는 조직의 문화 생각 마인드는 어떻겠어요. 그 모든 것에, 여성이 이 조직에 들어와 일하지 못할 것이라는 (관념이) 관습적으로 자리잡고 있어요. 그걸 깨려면 처음에 집을 지을 때부터 여성도 여기에 와서 남성과 똑같이 일할 거라는 생각을 하도록 여자가 많아져야 해요. 그렇게 건물이 바뀌듯 조직문화도 바뀌어서 남자, 여자가 아닌 개인 특성화하자는 거죠.”

    ▼ 책 쓴 걸 후회하진 않나요.

    “내가 내린 결정에 후회하지 않기로 훈련했잖아요. 그 훈련이 제 삶 전체에 영향을 끼치는 것 같아요.”

    ▼ 앞으로 어떡하실 겁니까.

    “뭐할까요(웃음)? 일단 좀 쉬고 싶어요. 뭔가 해야겠죠. 변호사? 하하하. 교수? 하하하. 아직은 준비된 게 아무것도 없어요.”

    검사동일체의 원칙

    ▼ 그러고 보니 책에 위기관리에 대한 얘기는 없었던 것 같아요.

    “순간순간 최선을 다해 살아야죠. 그래서 만약 그런 순간이 온다면, 내가 살아온 방식에 비추어 조직의 언어로 ‘아니오’라고 해야 하는 것인지 아닌지 결정해야죠. 사실 정답은 없어요.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면서 행복을 느끼면 돼요.”

    ▼ 조직에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더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요.

    “내가 무엇을 말하려는 건지 이해해주면 좋겠고, 그들이 있어서 내가 마음 편히 나올 수 있었다는 것도 말하고 싶어요. ‘검사동일체의 원칙’이라는 말이 있는데, 진짜 검사동일체의 원칙은 밤늦게 야근할 때 옆방에서 들려오는 기침소리, 기록 넘기는 소리, 얘기하는 소리에서 확인돼요. 새벽 1시든 2시든 나 혼자 일하고 있는 게 아니라 함께 있다는 존재감만으로 끈끈한 정이 나오죠. 그 사람들이 있어서 그래도 희망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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