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9월호

성기(性器)의 편지

“하느님, 제게 성애의 전지전능을 허하소서”

  • 정정만 M&L 세우미(世優美) 클리닉 원장 / 일러스트·김영민

    입력2007-09-05 22: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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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기(性器)의 편지
    나는 신성(神性)의 제왕이었다. 하느님의 묵인 아래 어렵지 않게 나의 왕국을 건설하고 수많은 여자와 더불어 온갖 영화를 누릴 수 있었다. 그녀들이 나를 숭앙하고 경배한 만큼 나도 그녀들에게 헌신적으로 봉사해 인류의 종족을 끊임없이 번식시켜왔다. 그것이 바로 하느님의 뜻이었고 내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나를 ‘팰러스(phallus)’라 불렀고, 나를 숭배하는 사상을 ‘팰러시즘(phallucism)’이라고 했다. 그 시절 여성들은 팰러시즘의 신봉자였고 나에게 위대한 마력이 있다고 믿었다. 하기야 나의 정체가 골편(骨片)도 없는, 보잘것없는 두 개의 혈주(血柱)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 턱이 없었을 터. 신성이 없다면 한순간 느닷없이 불끈 치솟아 괴기(怪氣)를 발산하는 위용과 변신의 이치를 설명할 수 있겠는가.

    그리스 여인들이 흠모, 숭앙하던 프리아푸스(Priapus)는 거대한 웅자(雄姿)를 현시(顯示), 참배하는 여인들에게 풍요와 다산의 행복을 나누어준 신이었다. 세상 여자들은 나의 마력을 몸 안에 수용하고자 안간힘을 썼고, 나는 나를 추종하는 여자들에게 씨앗을 뿌려주고 숨넘어가는 쾌락과 고동치는 환희를 선사하는 데 몸을 아끼지 않았다. 나는 이렇듯 군림하지 않는 성애의 제왕이었다.

    성 도덕이나 성 윤리 따위를 나에게 요구할 틈이 없었고 성범죄에 연루시켜 올가미를 씌우는 일은 더더욱 존재하지 않았다. 세계 도처에 산재한 고대 예술 작품에 조상(彫像)된 원형의 내 모습은 바로 나의 전성기 역사다. 삼척 해신당 애바우 전설, 강화 교동 부근당 설화를 위시하여 우리나라 도처에 깔려 있는 남근석도 신성화된 나의 흔적이다.

    허나 세상사를 어찌 알랴. 나에게 커다란 시련이 닥쳤다. 하느님의 태도가 돌변하여 준엄한 계율로 나의 행동반경을 묶어버렸다. 이른바 전속 제도를 만들어 철저한 일가구 일주택의 틀 안에 나를 가둔 후 생산 목적 이외의 에로티시즘을 불허한 하느님의 변심.



    오로지 자신이 직접 지정해준 성역(性域)만 고수해야 하고 그 성역을 이탈하면 형벌을 감수해야 하는 가련한 영웅으로 전락한 것이다. 시도 때도 없이 천방지축 날뛰는 경망한 속성을 부여해놓고 자신이 스스로 만들어준 그 천성을 구속하고 억제하는 하느님. 정말이지 유아독존의 잔인한 독선이다. 유달리 예민한 감성. 그래서 조가비가 불러일으킨 잔잔한 바람만으로도 금세 일어서는 경거망동. 그것을 주책으로 매도하지만 그것이야말로 나의 태생적 한계요 불가항력의 운명일 뿐이다.

    하느님! 제발 저를 질책하지 마십시오. 하느님의 계율을 저버린 것은 제 자신이 아닙니다. 비록 거대한 두 기둥 사이에 매달린 하찮은 미물이지만 평생 오직 한 주인만 받들고 헌신하는 충복, 욕정의 하수인에 불과합니다. 제 한 몸 돌볼 틈도 없이 살아 숨쉬는 모든 사람에게 천지가 개벽하는 열락으로 살맛 나는 생기를 줄 뿐이니까요. 어차피 이성이나 지성과 멀리 떨어진 저의 존재를 잘 알고 계시잖습니까.

    나는 억울하다. 거리낌 없이 내놓고 다니는 이목구비와는 달리 행여 보일세라, 음습하고 어두운 아랫도리에 유폐, 은닉되어 평생을 살아가는 나. 그런데도 밥 먹듯 굴착 현장에 투입시켜 철저히 나를 혹사하는 인간들의 심보를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게다가 사람들은 공개적으로 보통명사인 이름씨마저 기피한다. 입, 코, 귀, 눈처럼 떳떳하게 불러줄 순 없는 것일까? 기껏 분노의 순간이나 특정 대상을 능욕할 때 경멸의 욕설로만 사용하고 신문이나 잡지에도 나는 늘 X자로 표기된다. 나에게는 이름을 대신하는 별명이 많다. ‘거시기’를 비롯해서 고추, 물건, 연장, 조(받침 생략), 악기, 만년필, 남근, 음경(임금은 옥경), 지(첫 음절 생략), 신(伸) 등 대략 27개의 닉네임말이다. 첫 음절이 생략된 ‘지’가 순수한 우리말이다. 그런데도 ‘지’자 돌림은 가장 천박한 비속어로 간주되어 입밖에 꺼내는 것조차 금기로 되어 있다. 하지만 나는 나를 지칭하는 이름씨조차 회피할 만큼 저속하거나 불경, 수치스러운 물건이 결코 아니다.

    그래도 불행 중 다행스러운 것은 내 건강에 대한 내밀한 관심이다. 내 체격을 키우고 손질하며 체력 증대를 위해 엄청난 투자를 아끼지 않는 한 가지 사실로 자위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나와 생김새가 비슷한 뱀, 해구신, 그리고 웅담, 견육(犬肉) 정도 먹는다고 힘을 쓰는 시시한 존재는 더더욱 아니다.

    나는 진실로 인간의 본능을 채워주기 위해 자나 깨나 헌신하고 봉사하는 성실한 반려자요 생명의 불꽃, 삶의 원동력이다. 사용하기에 따라 이기(利器)도 되고 흉기(凶器)도 되나 나는 그저 성(性)스러운 성기(聖器)가 되고자 한다. 오직 인류를 아름답게, 인생을 아름답게 하는 ‘조이 스틱(joy stick)’으로서 오늘도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나의 직무에 충실할 따름이다. 죽는 날까지 두 다리 사이, 외딴 오지에 쭈그려 앉아 결코 퇴화, 소멸하지 않고 인간의 가장 인간적인 이기로서 영원히 사랑받는 부속품으로 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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