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9월호

막강 스타 군단 이끄는 디자이너 지춘희

“은은하게 당당한 심은하, 아름답게 답답한 이영애”

  • 조인직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cij1999@donga.com

    입력2007-09-10 19: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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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톱 여배우들 가운데 ‘미스지 컬렉션’ 옷 한 벌 없는 이가 있을까. ‘미스지 컬렉션’ 마니아는 여성미와 절제미를 매력으로 꼽는다. 30년 전 조그마한 의상실에서 출발해 패션 문외한에게도 익숙한 브랜드로 성장한 ‘미스지 컬렉션’ 디자이너 지춘희의 ‘패션 라이프’.
    막강 스타 군단 이끄는 디자이너 지춘희
    박경림. ‘디자이너 지춘희’와는 그다지, 아니 도무지 어울릴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여러 매체가 “박경림이 결혼식 때 디자이너 지춘희의 옷을 입는다”고 보도했다. ‘네모 공주’ 별명을 얻은 각진 얼굴, 투박한 몸매, 어딘가 ‘패션’과는 거리를 두고 살 것 같은 느낌.

    이런 의구심은 배우 심은하 때문에 더 증폭됐는지 모른다. 몇 년 전 심은하의 결혼식 날, 여러 패션·연예 매체는 당대 최고의 미녀가 입은 드레스에 주목했고, 심은하를 좀더 우아한 신부로 만들어준 그 순백색의 유럽풍 웨딩드레스를 만든 디자이너 지춘희(53)씨에게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지춘희씨는 한국 최고의 디자이너 중 한 명이다. 1977년 서울 명동에 ‘지 의상실’을, 1979년 지금의 ‘미스지 컬렉션’을 낸 지 어언 30년이다. 몇 년 전까지 백화점 명품관의 상징이랄 수 있는 청담동 갤러리아백화점에 유일하게 입점한 한국 디자이너 브랜드였고, 지금도 고객의 로열티가 높기로 소문난 ‘메이드인 코리아’ 디자이너 브랜드 중 하나로 꼽힌다.

    방송과 영화가에서 그의 활약상은 더욱 두드러진다. 시대의, 아니 시대를 주름잡는 여배우들을 모두 품고 있는 듯한 품새다. 나영희, 강수연, 황신혜, 고현정, 심은하, 이영애, 채시라, 장진영, 전도연, 최지우 그리고 최근에는 차예련까지, 모두 연예계에서는 ‘미스지 컬렉션’ 마니아로 알려진 인물들이다. 1980~90년대는 물론 2000년대에도 그의 명성은 현재진행형이다.

    ‘한국 여성을 위한 옷’



    그렇게 튀지도, 그렇게 복잡하지도 않으면서 여성의 아름다움을 잘 드러내 준다는 게 많은 이가 이야기하는 지춘희 의상의 강점이다. 1세대 한국 패션 디자이너계를 이끈 진태옥, 앙드레김에 비해서는 상류층 구매자의 대중화가 상당히 이뤄졌다는 점, 서경리나 이광희처럼 ‘공주 예복’류만 특화하지 않고 활동복 시장에서도 강세를 보인다는 점, 결정적으로 페라가모나 구찌 같은 서양 럭셔리 브랜드 의상에서는 구경하기 힘든 라인과 디자인,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한국 여성의 단점을 감추고 장점을 두드러지게 만드는 스타일의 옷을 만든다는 점에서 미스지 컬렉션은 아직도 ‘블루오션’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어떻게 보면 이제는 ‘후진 양성에 힘쓰는’ 동년배의 다른 디자이너들과 달리 아직도 10대 중후반 모델들과 ‘샘(선생님)’, ‘동생’ 하며 어울리는 모습이 다소 낯설게 느껴지기도 한다.

    뉴욕 진출의 꿈도 점차 구체화하고 있다. 제2의 전성기를 맞은 듯 바쁘기만 하다. 국내 대표 디자이너들의 축제인 서울컬렉션에는 늘상 지춘희 컬렉션장이 가장 많은 유료고객으로 붐빈다. 또 ‘지춘희 사단’으로 꼽히는 여배우들이 마지막 무대까지 관객석을 지키는 걸로도 유명하다.

    어느 산업에서보다 ‘카피 앤 페이스트(copy · paste)’가 많다는 패션업계에서 처음부터 차별화 전략을 도입한 것이 오늘의 지춘희를 있게 한 경쟁력인지도 모른다. 이렇게 저렇게 여느 디자이너들과 많이 다르다는 것은 어렴풋이 알고 있었는데, ‘박경림 드레스’라는 이벤트를 기회로 그를 재조명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잔잔하지만 화려하게 지속되는 지춘희 의상의 생명력, 그 요체를 직접 듣고 싶었다.

    ▼ 의상이 박경림씨와도 잘 어울립니까.

    “물론 제 옷을 파는 데 박경림씨의 이미지가 그리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잘 압니다. 하지만 저는 인간관계에 있어 그런 전략적 사고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경림씨와 나이 차는 많이 나지만 친구처럼 지냅니다. 예전에 가수 김장훈씨와 연극을 보러 갔다가 경림씨와 인사를 나눌 기회가 있었어요. 근데 다음날 그 친구가 뜬금없이 사무실로 찾아와 ‘나도 심은하가 입는 드레스를 입고 싶다’고 하더군요. 좀 뜻밖이긴 했지만 자신의 의사를 성실하게 전달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습니다. 또 쉽지 않은 환경을 딛고 성공을 위해 도전하는 자세가 요즘 젊은이들, 그리고 허파에 바람만 잔뜩 들어간 자칭 타칭 ‘스타’들과는 분명히 달라 보였어요.”

    스타여, 직업의식을 가져라

    ▼ 그간 한국을 대표하는 여자 연예인들의 옷을 많이 많드셨죠.

    “일하다 보니까 그렇게 됐습니다. 제겐 테크닉보다는 변화를 중시하는 기질 같은 게 있는데, 그렇다 보니 그들의 니즈(needs)에 좀더 능동적으로 대처했던 측면도 있는 듯해요. 또한 옷을 만들기까지 그들과 제가 화학반응을 맞춰가는 과정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그런 데서 제가 다소 비교우위에 있는 것도 같네요.”

    그에게선 국내 디자이너로서는 드물게, 또한 그가 지향하는 의복의 이미지와는 딴판으로 마초(macho)적인 면모도 관찰된다. 디자이너에게 으레 뒤따르는 ‘명품’ ‘유행’ ‘스타’ 같은 단어에 대한 ‘추앙’의 자세도 보이지 않는다. 여느 디자이너들처럼 형용사와 부사를 영어로 도배해 쓰지도 않는다. 그가 늘 접하는 화려한 연예인들의 라이프스타일에 대해 진부한 찬사의 레토릭을 펼쳐놓을 법도 하건만, 오히려 그는 요즘 스타들에 대해 따끔한 훈계를 아끼지 않았다.

    막강 스타 군단 이끄는 디자이너 지춘희

    ‘미스지 컬렉션’은 한국 여성의 체형과 분위기를 돋보이게 하는 디자인으로 사랑받고 있다.

    “무슨 로봇도 아니고, 직업의식이 없어 보여요. 럭셔리 브랜드 신제품 출시회 같은 델 가면 늘상 줄을 서 있죠.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아 보이는 얼굴에다 메이크업까지 똑같이 하고…. 그러면 그 업체에서 옷도 주고, 핸드백도 주고…. 시상식 의상은 물론 출연 의상에서부터 가구, 자동차, 하다못해 칫솔까지 ‘협찬 타령’ 하는 배우가 너무 많아요. 거지도 아니고. 그러니 연예인을 보는 일반인의 시선이 갈수록 싸늘해지는 것 아니겠어요. 외국 스타들처럼 사회의식도 지니고 기부문화 같은 것도 좀 진정성을 갖고 실천했으면 해요.”

    옷도 그렇다. 디자이너와 마주앉아 자신이 출연할 영화나 드라마의 콘셉트와 어울리는 의상을 열띤 논의 끝에 결정하는 연예인은 줄어들고, 그저 ‘코디’들의 배급에만 의존하는 ‘옷걸이형’ 연예인만 넘쳐나는 것 같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 좀 진부한 표현이긴 하지만, ‘지춘희 패션’은 ‘유행을 선도한다’는 찬사를 많이 듣는다면서요.

    “‘만들어진 유행’을 참고하지 않는 게 오히려 큰 도움이 됩니다. 1년에 최소한 두 번은 컬렉션을 여는 게 디자이너의 의무라고 생각하는데, 저는 그때마다 그저 마음 내키는 대로 디자인해서 옷을 내놓습니다. ‘올해의 유행’ 같은 책을 많이 팔잖아요. 저는 그런 걸 거의 보지 않습니다. 이건 디자이너로서 자존심이 걸린 문제라고 생각하죠. 여태까지는 그런 전략이 그런대로 성공한 편인 듯합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려는 노력도 많이 합니다. 아무리 공들여 마련한 패션쇼나 컬렉션도 끝나면 바로 잊어버리고, 누가 어떤 평가를 하는지도 귀담아 들으려 하지 않아요. 일단 털어버려야 다시 새롭게 시작할 수 있으니까요. 시간이 지나고 보면 예전의 작품이 촌스럽게 보일 수 있어요. 하지만 패션이란 게 원래 그런 것이려니 해야지 미련을 갖다 보면 자신감마저 잃게 됩니다.”

    ‘읽기’로 세상과 호흡

    패션업계에 ‘올해의 유행’이라는 책이 나돈다는 것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업계 비밀’에 준하는 일이었다. 그 속사정은 대강 이렇다. 일종의 에이전시 회사들이 외국 유명 패션 브랜드들의 쇼, 즉 파리, 뉴욕, 밀라노 컬렉션 등을 미리 보고 거기에 참가한 업체들이 내놓은 유행 라인과 디자인, 색상, 스타일을 면밀히 분석한 뒤 이를 책으로 제작해 한국 디자이너들에게 비싼 값에 판다. 그 책을 보고 한국의 상당수 디자이너가 점잖게 말하면 ‘샘플링’, 노골적으로 표현하면 ‘카피’를 통해 자신의 옷 콘셉트로 포장해 한국시장에 내놓는다. 그래서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많은 한국 디자이너가 ‘붕어빵 패션쇼’를 하고 있다는 비난을 샀다.

    ▼ 자신만의 비결이 있다면.

    “세상과 호흡하려 합니다. 디자이너라고 해서 패션과 문화 분야에만 갇혀 살면 수요자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도외시하게 되죠. 스스로 둘러쳐놓은 좁디좁은 ‘판타지의 울타리’ 안에서 자아도취에 빠져 있기도 하고요. 그러다 보면 도태합니다. 제가 가장 즐겨 하는 일이자 작업은 신문 읽기와 여행입니다.

    바깥 공기를 호흡하고 관찰하다 보면 요즘 사람들이 내세우려는 것과 고민의 일단을 어렴풋하게나마 짐작할 수 있어요. 신문은 두말할 것도 없이 세상과 호흡하는 창(窓)이니까. 저는 아침에 5개 신문을 반드시 정독합니다. 여론의 흐름을 민감하게 살피는 거죠. ‘동아가 오늘은 세게 한 건 했네’ ‘앞으로는 한 맺힌 분들말고 심성 고운 분들이 대통령 하셨으면…’, 뭐 이런 말을 중얼거리면서요.”

    그렇다. 기자 초년병 시절 적지 않은 문화계 인사, 그중에서도 유명 디자이너라는 이들을 만나면서 가졌던 감정 중엔 미묘한 배신감, 답답함 같은 게 있었다. 지구 온난화니 이산화탄소 배기량이니 하는 지구적 수준까진 아니어도 우리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이랄까, 공동체를 위해 기여할 수 있는 일 같은 주제 정도는 관록과 경험만으로도 자연스레 소화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그러나 그저 어떤 옷이 예쁘고, 어디에 가면 맛있는 밥을 먹을 수 있고, 어떤 장신구를 걸쳐야 ‘부티’가 나는지에 대해서만 관심을 쏟는 이가 적지 않았다.

    일부 디자이너들에게서 그 명성에 걸맞은 지적 향취를 느낄 수 없었던 결정적 계기는 그들이 TV나 화려한 패션 화보집 외에는 ‘읽는 행위’에 거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부터였다. 처음엔 그렇듯 감각적으로 사는 게 패션업계의 기본 양식인가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역시 롱런하는 디자이너들은 인쇄매체와 끊임없이 교감하면서 사고(思考)를 가다듬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예쁜 여자’ 스타일

    그는 지난해 컬렉션에서 이미 ‘초미니’라는 당대의 코드를 예견한 바 있다. 비슷한 시기에 많은 국내외 업체 또한 비슷한 제안을 했지만, 그의 작업에선 확연히 한발 빠른 흔적이 느껴졌다. 그는 “팍팍한 삶, 양극화, ‘생산적 복지’ 같은 키워드들이 등장하고 관련 이슈들을 따라가면서 ‘시원한 돌파구’를 갈구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이는 짧은 스커트와 원피스 등의 초미니 유행으로 옮겨갔다.

    요즘 그는 ‘힘 있는 옷’도 많이 선보인다고 한다. 이는 짜증스럽고 힘든 시기에 늘 키워드가 되는 의상 스타일로, 강한 색상, 강하게 꺾이고 파이는 어깨선과 허리선이 그 핵심 키워드다.

    지춘희 의상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예전부터 유지되는 라인이 절반쯤 되고 새로이 가미되는 스타일이 나머지 절반쯤 된다는 점이다. 즉 ‘지춘희’임을 한눈에 알게 해주는 나름의 차별화 코드랄지 아이덴티티가 살아 있다는 것이다. 1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루이뷔통의 모노그램, 버버리 특유의 체크무늬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아쉽게도 적지 않은 국내 디자이너 브랜드들은 ‘샘플링’ 탓에 고유의 특색을 살려내지 못하는 실정이다.

    막강 스타 군단 이끄는 디자이너 지춘희

    결혼식 피로연에서 디자이너 지춘희의 드레스를 입은 심은하. 고전적인 하이웨이스트 이브닝 드레스는 많은 이의 주목을 끌었다.

    ▼ ‘지춘희 스타일’이란 게 있지 않습니까.

    “흔히 ‘바람구멍’으로 알려져 있죠. 제 옷엔 몸의 움직임에 맞춰 디테일한 부분에서 트임과 소통을 강조하는 라인이 많이 들어 있어요. 여성미도 강조하는 편입니다. 뭐니뭐니 해도 여자다운 게 예쁘다고 생각해요.

    양성 평등의 시대에도 성(性)에서 나오는 아름다움은 지키는 게 좋다고 봐요. 또한 값비싼 외국 럭셔리 브랜드들이 채워주지 못하는 ‘맞춤형 느낌’도 있죠. 중요한 게 허리선인데, 외국 옷들의 허리선은 한국 여성에게 너무 올라가 보여요.”

    결국 지춘희 의상의 특징도 ‘예쁜 여자’로 요약된다. 몸에 쫙 달라붙는 ‘섹시미’류와는 거리가 한참 멀다. 그렇다고 한복처럼 보디라인을 완전히 무시하는 것도 아니다. ‘공주옷’보다는 덜 깜찍하고, 예복류보다는 덜 형식적으로 보인다. 은근히, 그러나 지속적으로 눈길이 가게 하는 스타일이다. ‘한국의 멋’이 그런 것 아닐까.

    ▼ 패션 분야에서 한류(韓流) 붐을 일으켜 보겠다는 야망 같은 게 있나요.

    “한국의 미, 한국적인 것의 세계화…. 저는 과거부터 그런 수사(修辭)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어요. 그런 언어로 규정하는 순간 대중화와는 거리가 멀어지죠. 가수 박진영씨가 지향한다는 스타일이 저와 맞는 것 같아요. 지금처럼 세계화한 시장에서 우리 것, 내 것이 어디 있겠어요. 한국적인 패션이란 게 어떤 건지 우리조차 잘 모르는데. 그저 시장에서 승리하고 인정받는 것으로 승부하다 보면 세계적인 한국 디자이너도 많이 생겨나겠죠.”

    ‘토털 디자이너’

    한류 배우들의 입소문도 한 요인이 됐겠지만, 미스지 컬렉션에는 일본, 동남아 여성 고객의 발걸음도 잦은 편이다. 적어도 아시아 여성들 사이에서는 서로 통하는 ‘코드’가 있는 듯하다.

    ▼ 미스지 컬렉션의 옷을 가장 잘 소화하는 연예인은 누구라고 봅니까.

    “심은하입니다. 다른 여배우들과는 정말 달라요. 잡지에 나오는 예쁜 외국 모델처럼 되고 싶어하는 평범한 스타들과는 다른 그만의 분위기가 있죠. 옷은 그 사람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잘 맞아야 하는데, 심은하는 그런 면에서 은은하게 당당한 요소가 있고 그런 점이 제가 지향하는 컬러와 통했다고 봅니다. 무작정 트렌드를 좇아가지 않으니 심은하만의 옷 입는 스타일이 생겨났고, 그것이 유행을 창조하는 기능을 하게 됐죠. 또 얼굴이 맑고 깨끗해 시선을 잡아두는 힘이 센 것도 커다란 어드밴티지예요.

    이영애도 자기 고집이 대단해요. 처음엔 좀 답답한 걸 선호하지 않나 싶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조금 답답해 보여도 그게 아니면 이영애의 느낌이 살아나지 않더군요. 지금도 이영애는 너무 세련되게 입지 않는 편이 그의 스타일을 잘 살리는 방법이라고 봅니다.

    또 고현정은 그가 가진 에너지와 열정이 옷에 그대로 묻어나는 스타일이고, 최명길은 그 자신이 아름답기도 하지만, 그로 인해 주변 사람을 돋보이게 하는 요소가 있어요. 단아한 투피스를 입고 남편 김한길씨와 함께 있으면 정치인 김한길이 그렇게 빛이 날 수가 없더군요.

    장진영은 누구보다 옷을 잘 소화합니다. 작품에 출연하기 전에 저를 찾아와 오래 상의하곤 하죠. 올가을부터인가 무기 로비스트를 다룬 블록버스터 드라마가 나온다는데, 그래서 린다 김 콘셉트에 맞춰달라는 부탁을 받고 머리를 쥐어짜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디자이너와 소비자가 자주 머리를 맞댈수록 좋은 옷이 나옵니다.”

    ▼ 뉴욕으로 본격 진출할 생각입니까.

    “몇 해 전부터 권유를 받아 뉴욕에서 컬렉션을 열기도 했어요. 신문이나 패션지의 반응도 좋았고, 시장에서 통할 것 같다는 자신감을 얻은 것은 맞아요. 하지만 그곳은 우리보다 훨씬 큰 시장이라 그 시장에서 통하는 논법이 있더군요. 메이저리그도 땀과 열정만으로 통하는 게 아니라고 하던데, 비슷한 느낌이었어요. 제대로 된 홍보회사와 계약을 맺고 현지에서 어필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고, 현지 유통망과도 호흡을 맞춰야 합니다. 그러려면 결국 자본력이 필수 아니겠어요. 단순히 패션 브랜드가 진출한다기보다는 기업체가 진출한다는 생각으로 준비하고 있습니다. 머지않아 꼭 꿈을 이루고 싶어요.”

    ▼ 디자이너로서 더 이루고 싶은 일이 있습니까.

    “스포츠 라인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청담동에서 ‘트레이닝복’ 차림의 유행을 선도했다는 평을 받고 있는데, 차제에 일상에서 편하게 입을 수 있는, 그러면서 어느 정도 포인트도 가미한 캐주얼한 운동복 패션 라인을 만드는 거죠. 건강을 챙기는 시대의 조류에도 맞는 것 같고요.

    또한 디자이너로서 제 영역을 좀더 넓히고 싶어요. 패션이라는 게 결국 수요자의 마음을 잘 읽는 것이 요체 아니겠어요. 여태까지 의상에서 쌓아온 노하우를 다른 분야에 적용하는 겁니다. 특히 건축이나 인테리어 분야에서 의뢰해오는 경우가 많은데, 이미 마친 프로젝트들도 있어요.”

    그는 8월초 삼성물산 건설부문에서 분양하는 경기 용인시 동천동 래미안 아파트의 내부 설계를 맡기도 했다. 화장대, 세면대, 화장실 바닥, 장식장 구조 등 남성 건축가들이 놓치기 쉬운 세부적인 부분에 신경을 많이 썼다고 한다. 럭셔리 패션 브랜드 프라다와 LG전자가 손잡고 만든 휴대전화 ‘LG 프라다폰’이 연상되는 대목이다. 지춘희의 ‘토털 디자이너’로의 변신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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