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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강 스타 군단 이끄는 디자이너 지춘희

“은은하게 당당한 심은하, 아름답게 답답한 이영애”

  • 조인직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cij1999@donga.com

막강 스타 군단 이끄는 디자이너 지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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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톱 여배우들 가운데 ‘미스지 컬렉션’ 옷 한 벌 없는 이가 있을까. ‘미스지 컬렉션’ 마니아는 여성미와 절제미를 매력으로 꼽는다. 30년 전 조그마한 의상실에서 출발해 패션 문외한에게도 익숙한 브랜드로 성장한 ‘미스지 컬렉션’ 디자이너 지춘희의 ‘패션 라이프’.
막강 스타 군단 이끄는 디자이너 지춘희
박경림. ‘디자이너 지춘희’와는 그다지, 아니 도무지 어울릴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여러 매체가 “박경림이 결혼식 때 디자이너 지춘희의 옷을 입는다”고 보도했다. ‘네모 공주’ 별명을 얻은 각진 얼굴, 투박한 몸매, 어딘가 ‘패션’과는 거리를 두고 살 것 같은 느낌.

이런 의구심은 배우 심은하 때문에 더 증폭됐는지 모른다. 몇 년 전 심은하의 결혼식 날, 여러 패션·연예 매체는 당대 최고의 미녀가 입은 드레스에 주목했고, 심은하를 좀더 우아한 신부로 만들어준 그 순백색의 유럽풍 웨딩드레스를 만든 디자이너 지춘희(53)씨에게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지춘희씨는 한국 최고의 디자이너 중 한 명이다. 1977년 서울 명동에 ‘지 의상실’을, 1979년 지금의 ‘미스지 컬렉션’을 낸 지 어언 30년이다. 몇 년 전까지 백화점 명품관의 상징이랄 수 있는 청담동 갤러리아백화점에 유일하게 입점한 한국 디자이너 브랜드였고, 지금도 고객의 로열티가 높기로 소문난 ‘메이드인 코리아’ 디자이너 브랜드 중 하나로 꼽힌다.

방송과 영화가에서 그의 활약상은 더욱 두드러진다. 시대의, 아니 시대를 주름잡는 여배우들을 모두 품고 있는 듯한 품새다. 나영희, 강수연, 황신혜, 고현정, 심은하, 이영애, 채시라, 장진영, 전도연, 최지우 그리고 최근에는 차예련까지, 모두 연예계에서는 ‘미스지 컬렉션’ 마니아로 알려진 인물들이다. 1980~90년대는 물론 2000년대에도 그의 명성은 현재진행형이다.

‘한국 여성을 위한 옷’



그렇게 튀지도, 그렇게 복잡하지도 않으면서 여성의 아름다움을 잘 드러내 준다는 게 많은 이가 이야기하는 지춘희 의상의 강점이다. 1세대 한국 패션 디자이너계를 이끈 진태옥, 앙드레김에 비해서는 상류층 구매자의 대중화가 상당히 이뤄졌다는 점, 서경리나 이광희처럼 ‘공주 예복’류만 특화하지 않고 활동복 시장에서도 강세를 보인다는 점, 결정적으로 페라가모나 구찌 같은 서양 럭셔리 브랜드 의상에서는 구경하기 힘든 라인과 디자인,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한국 여성의 단점을 감추고 장점을 두드러지게 만드는 스타일의 옷을 만든다는 점에서 미스지 컬렉션은 아직도 ‘블루오션’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어떻게 보면 이제는 ‘후진 양성에 힘쓰는’ 동년배의 다른 디자이너들과 달리 아직도 10대 중후반 모델들과 ‘샘(선생님)’, ‘동생’ 하며 어울리는 모습이 다소 낯설게 느껴지기도 한다.

뉴욕 진출의 꿈도 점차 구체화하고 있다. 제2의 전성기를 맞은 듯 바쁘기만 하다. 국내 대표 디자이너들의 축제인 서울컬렉션에는 늘상 지춘희 컬렉션장이 가장 많은 유료고객으로 붐빈다. 또 ‘지춘희 사단’으로 꼽히는 여배우들이 마지막 무대까지 관객석을 지키는 걸로도 유명하다.

어느 산업에서보다 ‘카피 앤 페이스트(copy · paste)’가 많다는 패션업계에서 처음부터 차별화 전략을 도입한 것이 오늘의 지춘희를 있게 한 경쟁력인지도 모른다. 이렇게 저렇게 여느 디자이너들과 많이 다르다는 것은 어렴풋이 알고 있었는데, ‘박경림 드레스’라는 이벤트를 기회로 그를 재조명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잔잔하지만 화려하게 지속되는 지춘희 의상의 생명력, 그 요체를 직접 듣고 싶었다.

▼ 의상이 박경림씨와도 잘 어울립니까.

“물론 제 옷을 파는 데 박경림씨의 이미지가 그리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잘 압니다. 하지만 저는 인간관계에 있어 그런 전략적 사고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경림씨와 나이 차는 많이 나지만 친구처럼 지냅니다. 예전에 가수 김장훈씨와 연극을 보러 갔다가 경림씨와 인사를 나눌 기회가 있었어요. 근데 다음날 그 친구가 뜬금없이 사무실로 찾아와 ‘나도 심은하가 입는 드레스를 입고 싶다’고 하더군요. 좀 뜻밖이긴 했지만 자신의 의사를 성실하게 전달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습니다. 또 쉽지 않은 환경을 딛고 성공을 위해 도전하는 자세가 요즘 젊은이들, 그리고 허파에 바람만 잔뜩 들어간 자칭 타칭 ‘스타’들과는 분명히 달라 보였어요.”

스타여, 직업의식을 가져라

▼ 그간 한국을 대표하는 여자 연예인들의 옷을 많이 많드셨죠.

“일하다 보니까 그렇게 됐습니다. 제겐 테크닉보다는 변화를 중시하는 기질 같은 게 있는데, 그렇다 보니 그들의 니즈(needs)에 좀더 능동적으로 대처했던 측면도 있는 듯해요. 또한 옷을 만들기까지 그들과 제가 화학반응을 맞춰가는 과정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그런 데서 제가 다소 비교우위에 있는 것도 같네요.”

그에게선 국내 디자이너로서는 드물게, 또한 그가 지향하는 의복의 이미지와는 딴판으로 마초(macho)적인 면모도 관찰된다. 디자이너에게 으레 뒤따르는 ‘명품’ ‘유행’ ‘스타’ 같은 단어에 대한 ‘추앙’의 자세도 보이지 않는다. 여느 디자이너들처럼 형용사와 부사를 영어로 도배해 쓰지도 않는다. 그가 늘 접하는 화려한 연예인들의 라이프스타일에 대해 진부한 찬사의 레토릭을 펼쳐놓을 법도 하건만, 오히려 그는 요즘 스타들에 대해 따끔한 훈계를 아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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