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막강 스타 군단 이끄는 디자이너 지춘희

“은은하게 당당한 심은하, 아름답게 답답한 이영애”

  • 조인직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cij1999@donga.com

막강 스타 군단 이끄는 디자이너 지춘희

2/3
막강 스타 군단 이끄는 디자이너 지춘희

‘미스지 컬렉션’은 한국 여성의 체형과 분위기를 돋보이게 하는 디자인으로 사랑받고 있다.

“무슨 로봇도 아니고, 직업의식이 없어 보여요. 럭셔리 브랜드 신제품 출시회 같은 델 가면 늘상 줄을 서 있죠.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아 보이는 얼굴에다 메이크업까지 똑같이 하고…. 그러면 그 업체에서 옷도 주고, 핸드백도 주고…. 시상식 의상은 물론 출연 의상에서부터 가구, 자동차, 하다못해 칫솔까지 ‘협찬 타령’ 하는 배우가 너무 많아요. 거지도 아니고. 그러니 연예인을 보는 일반인의 시선이 갈수록 싸늘해지는 것 아니겠어요. 외국 스타들처럼 사회의식도 지니고 기부문화 같은 것도 좀 진정성을 갖고 실천했으면 해요.”

옷도 그렇다. 디자이너와 마주앉아 자신이 출연할 영화나 드라마의 콘셉트와 어울리는 의상을 열띤 논의 끝에 결정하는 연예인은 줄어들고, 그저 ‘코디’들의 배급에만 의존하는 ‘옷걸이형’ 연예인만 넘쳐나는 것 같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 좀 진부한 표현이긴 하지만, ‘지춘희 패션’은 ‘유행을 선도한다’는 찬사를 많이 듣는다면서요.

“‘만들어진 유행’을 참고하지 않는 게 오히려 큰 도움이 됩니다. 1년에 최소한 두 번은 컬렉션을 여는 게 디자이너의 의무라고 생각하는데, 저는 그때마다 그저 마음 내키는 대로 디자인해서 옷을 내놓습니다. ‘올해의 유행’ 같은 책을 많이 팔잖아요. 저는 그런 걸 거의 보지 않습니다. 이건 디자이너로서 자존심이 걸린 문제라고 생각하죠. 여태까지는 그런 전략이 그런대로 성공한 편인 듯합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려는 노력도 많이 합니다. 아무리 공들여 마련한 패션쇼나 컬렉션도 끝나면 바로 잊어버리고, 누가 어떤 평가를 하는지도 귀담아 들으려 하지 않아요. 일단 털어버려야 다시 새롭게 시작할 수 있으니까요. 시간이 지나고 보면 예전의 작품이 촌스럽게 보일 수 있어요. 하지만 패션이란 게 원래 그런 것이려니 해야지 미련을 갖다 보면 자신감마저 잃게 됩니다.”



‘읽기’로 세상과 호흡

패션업계에 ‘올해의 유행’이라는 책이 나돈다는 것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업계 비밀’에 준하는 일이었다. 그 속사정은 대강 이렇다. 일종의 에이전시 회사들이 외국 유명 패션 브랜드들의 쇼, 즉 파리, 뉴욕, 밀라노 컬렉션 등을 미리 보고 거기에 참가한 업체들이 내놓은 유행 라인과 디자인, 색상, 스타일을 면밀히 분석한 뒤 이를 책으로 제작해 한국 디자이너들에게 비싼 값에 판다. 그 책을 보고 한국의 상당수 디자이너가 점잖게 말하면 ‘샘플링’, 노골적으로 표현하면 ‘카피’를 통해 자신의 옷 콘셉트로 포장해 한국시장에 내놓는다. 그래서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많은 한국 디자이너가 ‘붕어빵 패션쇼’를 하고 있다는 비난을 샀다.

▼ 자신만의 비결이 있다면.

“세상과 호흡하려 합니다. 디자이너라고 해서 패션과 문화 분야에만 갇혀 살면 수요자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도외시하게 되죠. 스스로 둘러쳐놓은 좁디좁은 ‘판타지의 울타리’ 안에서 자아도취에 빠져 있기도 하고요. 그러다 보면 도태합니다. 제가 가장 즐겨 하는 일이자 작업은 신문 읽기와 여행입니다.

바깥 공기를 호흡하고 관찰하다 보면 요즘 사람들이 내세우려는 것과 고민의 일단을 어렴풋하게나마 짐작할 수 있어요. 신문은 두말할 것도 없이 세상과 호흡하는 창(窓)이니까. 저는 아침에 5개 신문을 반드시 정독합니다. 여론의 흐름을 민감하게 살피는 거죠. ‘동아가 오늘은 세게 한 건 했네’ ‘앞으로는 한 맺힌 분들말고 심성 고운 분들이 대통령 하셨으면…’, 뭐 이런 말을 중얼거리면서요.”

그렇다. 기자 초년병 시절 적지 않은 문화계 인사, 그중에서도 유명 디자이너라는 이들을 만나면서 가졌던 감정 중엔 미묘한 배신감, 답답함 같은 게 있었다. 지구 온난화니 이산화탄소 배기량이니 하는 지구적 수준까진 아니어도 우리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이랄까, 공동체를 위해 기여할 수 있는 일 같은 주제 정도는 관록과 경험만으로도 자연스레 소화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그러나 그저 어떤 옷이 예쁘고, 어디에 가면 맛있는 밥을 먹을 수 있고, 어떤 장신구를 걸쳐야 ‘부티’가 나는지에 대해서만 관심을 쏟는 이가 적지 않았다.

일부 디자이너들에게서 그 명성에 걸맞은 지적 향취를 느낄 수 없었던 결정적 계기는 그들이 TV나 화려한 패션 화보집 외에는 ‘읽는 행위’에 거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부터였다. 처음엔 그렇듯 감각적으로 사는 게 패션업계의 기본 양식인가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역시 롱런하는 디자이너들은 인쇄매체와 끊임없이 교감하면서 사고(思考)를 가다듬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예쁜 여자’ 스타일

그는 지난해 컬렉션에서 이미 ‘초미니’라는 당대의 코드를 예견한 바 있다. 비슷한 시기에 많은 국내외 업체 또한 비슷한 제안을 했지만, 그의 작업에선 확연히 한발 빠른 흔적이 느껴졌다. 그는 “팍팍한 삶, 양극화, ‘생산적 복지’ 같은 키워드들이 등장하고 관련 이슈들을 따라가면서 ‘시원한 돌파구’를 갈구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이는 짧은 스커트와 원피스 등의 초미니 유행으로 옮겨갔다.

요즘 그는 ‘힘 있는 옷’도 많이 선보인다고 한다. 이는 짜증스럽고 힘든 시기에 늘 키워드가 되는 의상 스타일로, 강한 색상, 강하게 꺾이고 파이는 어깨선과 허리선이 그 핵심 키워드다.

지춘희 의상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예전부터 유지되는 라인이 절반쯤 되고 새로이 가미되는 스타일이 나머지 절반쯤 된다는 점이다. 즉 ‘지춘희’임을 한눈에 알게 해주는 나름의 차별화 코드랄지 아이덴티티가 살아 있다는 것이다. 1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루이뷔통의 모노그램, 버버리 특유의 체크무늬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아쉽게도 적지 않은 국내 디자이너 브랜드들은 ‘샘플링’ 탓에 고유의 특색을 살려내지 못하는 실정이다.

2/3
조인직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cij1999@donga.com
목록 닫기

막강 스타 군단 이끄는 디자이너 지춘희

댓글 창 닫기

2022/07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