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9월호

‘정상회담 미끼’, 9월 아리랑축전 관광상품 뜬다

한 달간 6000여 명이 2박3일간 자유롭게 평양 방문

  • 이정훈 동아일보 신동아 편집위원 hoon@donga.com

    입력2007-09-12 19:59: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정상회담 미끼’, 9월 아리랑축전 관광상품 뜬다

    오는 9월부터 한 달간 아리랑축전 관람을 위한 평양 관광이 개시된다. 아래는 아리랑축전용 1등석 티켓. 1인당 150달러다.

    오는 9월, 200만원 정도는 거리낌 없이 쓸 수 있고, 국외 여행에 결격사유가 없으며, 북한의 심장부를 가보고 싶어하는 한국인은 자유롭게 평양을 방문할 수 있을 것 같다. 남북정상회담에 앞서 6000여 명 예상의 한국인 평양 방문 사업이 사실상 타결됐기 때문이다.

    한국 관광객이 평양에 체류하는 일정은 2박3일이 될 가능성이 높다. 평양을 방문하는 한국인 관광객은 ‘ㄷ자 형태’로 서해를 날아 서울 김포공항과 평양의 순안비행장을 50분 만에 이어주는 직항편을 타고 간다. 이 사업을 추진하는 관계자에 따르면 현재 어느 항공사 비행기를 투입할 것인지를 놓고 항공사들과 협상 중이라고 한다.

    김포-순안은 비행 거리가 짧다. 또 평양 순안비행장은 B-747이나 B-777 같은 대형 여객기가 내릴 활주로가 없으므로 150인승 내외의 중형 여객기를 투입해야 한다. 북측에서는 IL(일루신)-62 여객기를, 남측에서는 B(보잉)-737이나 그와 유사한 여객기를 띄워야 한다.

    김포로 날아오는 북한의 고려항공 여객기는 돌아가는 데 필요한 연료는 싣고 오지 않는다고 한다. 고려항공 여객기는 관례적으로 한국에서 연료통을 가득 채우고 평양으로 돌아가는데, 한국에서 가득 채워준 연료는 김포-순안을 3차례 왕복할 수 있는 양이다(이것도 눈에 보이지 않는 대북 지원이다).

    항공료 협상단계



    항공사 관련 소식통들에 따르면 150인승 여객기를 김포-순안 노선에 띄우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6000만원대라고 한다. 여기에는 김포에 들어온 고려항공 여객기의 연료통을 가득 채워주는 비용을 더하면 9000만원 이상이 들어간다고 한다.

    평양 관광은 여행사가 중심이 돼 추진하는 것이므로 항공사는 여행사가 결정한다. 평양에 가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고려항공 여객기를 타보고 싶은 욕구가 강하므로 이들은 다소 비용이 들더라도 고려항공 여객기를 동원한다는 원칙을 세워놓고 있다.

    그러나 고려항공을 보유한 여객기 수가 적어 평양을 방문하는 관광객을 전부 실어 나를 수 없다. 또 평등의 원칙에 따라 한국 여객기도 투입해야 하므로 여행사측은 아시아나와 대한항공을 상대로 가격협상을 하고 있다. 현재는 아시아나가 적극성을 보이고 있으나 대한항공이 더 낮은 가격을 제시한다면 ‘역전승’을 할 수도 있다.

    고려항공 여객기와 한국 항공기가 하루 한 차례씩 비행한다면 300여 명의 한국인이 평양에 들어간다. 평양을 방문한 한국인은 3일간 체류하니, 평양 관광 사업이 진행되는 도중 평양에는 하루 900여 명의 한국인이 머물게 된다.

    평양의 1급 이상 호텔이 보유한 객실 수는 2970개. 이 가운데 3분의 2 이상은 상주 외국인 기업과 중국 등 제3국 관광객에게 제공해야 하므로 한국인 관광객에게 내줄 수 있는 방은 500~700개가 된다. 한 방에 두 명씩 투숙한다면 평양이 소화할 수 있는 한국 관광객은 하루 최대 1000여 명이다.

    대부분의 한국인은 2000년 남북정상회담 때 처음으로 순안비행장 청사를 보았다. 그때 TV 화면에 나온 순안비행장 청사 건물은 무척 커 보였다. 그러자 실제로 평양을 방문한 관광객들은 순안비행장 청사가 너무나 작은 것을 보고 놀란다. 순안비행장 청사는 인구 10여만명의 경북 영주나 충북 제천에 있는 기차역사 규모밖에 되지 않는다. 이 청사의 입경장(入境場, 입국장)에 들어서면 반대편 출구가 보일 정도로 폭도 좁다. 입경 절차를 밟아 청사 밖으로 나오면 여러 대의 자동차가 기다리는 광장이 나오는데, 이곳도 제천이나 영주역 앞의 주차 광장보다 넓지 않다.

    평양은 심심할 정도로 조용한 도시다. 다니는 차가 적어 20~30분이면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달릴 수 있다. 이렇게 한가한 도시에 알록달록한 옷을 입은 900여 명의 한국인이 한 달 동안 휩쓸고 다닌다면 평양에서는 ‘서울 쇼크’가 일어날 수 있다. 한국 관광객은 북한에서는 금방 눈에 띄는, 에어컨이 달린 중국제 관광버스를 이용할 것이므로 평양 주민들은 한국 관광객에게 주목할 것이다.

    학생과 주민들의 노력동원

    그런 만큼 한국 관광객 주변에는 북한 안내인이 여럿 따라다니면서 북한 주민이 이들과 접촉하는 것을 차단한다. 그러나 한국 관광객은 입금하는 순서로 모객한 이들인지라 다종다양한 성격을 갖고 있다. 이들 가운데는 북한 안내인을 상대로 불만을 떠뜨리는 사람도 나올 것이므로 평양은 심각한 ‘한국 쇼크’를 경험할 수 있다.

    반면 한국인들은 ‘평양 쇼크’에 직면한다. 한국 관광객은 만수대에 있는 초대형 김일성 동상과 대동강변의 주체탑, 김일성 생가인 만경대를 돌아보는 ‘이념성 순례’를 해야 한다. 그로 인해 축적돼가던 ‘평양 쇼크’는 한강의 여의도처럼 대동강 복판에 있는 능라도의 ‘5월1일(노동절) 경기장’에 들어가 아리랑축전을 관람하면서 최고치에 오른다.

    평양 관광은 아리랑축전 관람을 목적으로 모객한 것이라 한국 관광객들은 이 축전을 반드시 보아야 한다. 한국인 관광객은 아리랑축전 관람을 위해 1인당 150달러를 지급한 상태이므로 로열박스 다음으로 좋은 1등석에 착석한다.

    공연은 땅거미가 내려앉으면서부터 준비에 들어간다. 먼저 3만명은 됨직한 고등중학생(북한은 중고등학교를 합쳐 6년제 고등중학교를 운영한다)들이 일사불란한 모습으로 매스게임석을 채우기 시작한다.

    본 공연은 어둠이 완전히 내린 후 시작한다. 운동장에서는 여러 가지 춤과 노래, 태권도 시범, 그리고 인간 바벨탑 쌓기 등이 진행되고, 매스게임 석에서는 김일성-김정일 체제의 우월성을 보여주는 매스게임이 펼쳐진다. 2005년까지의 아리랑공연에는 ‘미제의 각을 뜨자’는 등의 구호가 난무했으나, 올해의 아리랑축전은 한국 관광객을 위한 것이라 과격한 내용은 삭제될 것이라고 한다.

    5월1일 경기장은 15만명을 수용할 수 있다. 한국이나 중국 등에서 온 관람객은 아무리 많이 잡아도 1만명을 넘기 어렵다. 이들이 앉은 1등석 건너편에 매스게임을 위해 3만여 고등중학생이 앉고 남는 좌석은 동원한 북한 주민들이 채운다. 그러나 11만석을 다 채울 수 없으니 일부는 비워놓을 수밖에 없다.

    공연이 끝나면 북한 안내인들은 한국인 관광객을 북한 주민들과 분리시킨 채 재빨리 차에 태워 숙소로 데려간다. 한국 관광객들은 처음으로 평양의 밤거리를 달리게 되는 것이다. 어두운 가로등 빛 아래엔 동원된 학생과 주민들이 걸어서 분주히 집으로 돌아간다.

    남북정상회담 위해 미리 던진 ‘미끼’

    이들은 공부와 휴식 시간을 빼앗긴 채 한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한 외화벌이에 동원된 사람들이다. 이때쯤 한국 관광객들은 아리랑축전에서 나타난 김일성-김정일 우상화 내용과 동원된 북한 주민들의 모습을 오버랩시키면서 ‘평양 쇼크’에 빠져든다.

    아리랑축전 관람은 평양 관광사업으로 확대될 수 있다. 앞으로 한국인들은 현대아산이 주도하는 금강산 관광, 롯데관광이 이끄는 개성관광에 이어, 아리랑축전 관람을 주도한 모 여행사가 주최하는 평양관광 가운데 어느 하나를 골라 북한을 찾게 되는 것이다.

    1인당 국민소득이 1000달러도 못 되는 곳을 2박3일간 관광하며 200만원을 내는 것은 대단히 비싼 편이다. 평양 관광은 남북정상회담을 염두에 둔 우리 정부가 대북 지원금에 포함되지 않는 형태로 미리 북측에 던져준 미끼다. 평양 관광 사업은 지방에 있는 한 여행사가 중심이 돼 추진하고 있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