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9월호

이명박-박근혜 경선 비화

박근혜 캠프 고위인사 “노무현 ‘퇴임 후 안전’ 확실히 보장”

  • 허만섭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shue@donga.com

    입력2007-09-13 10: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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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족상잔’의 내전(內戰). 한나라당 대통령후보 경선이 막을 내렸다. 이런 ‘지독한 네거티브’는 과거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나타나기 힘들 것이다. 격전이 거듭된 만큼 이명박, 박근혜에게는 흐름을 바꿀 기회가 여러 차례 있었다.
    이명박-박근혜 경선 비화
    7월4일 서울시내 한 호텔 중식당. 박근혜 캠프의 고위 인사는 일부 기자들에게 ‘이명박 불가론’을 한참 역설했다. 그러면서 박근혜 전 대표의 경선 승리를 장담했다. 그의 지론은 ‘두 번째 사랑’론.

    “‘첫사랑’ 연인과 도저히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도 절대로 금방 헤어지지 못한다. 정을 쌓는 데 공을 들인 만큼, 헤어지는 데도 시간이 필요하다. 결국 헤어졌다 해도 다음날 미팅해서 다른 사람 사귀지는 않는다. 한동안 감정을 가라앉히는 기간을 가지면서 독립된 자신의 모습을 찾아간다. 이후에야 자신에게 맞는 또 다른 반쪽이 눈에 들어온다. 이렇게 시간이 지나야 두 번째 사랑이 시작되는 것이다.”

    요약하면, 여론이 ‘청계천’에 반해 맺은 ‘첫사랑’ 이명박을 마음속에서 정리하고 어느 정도 과도기를 거쳐 ‘두 번째 사랑’ 박근혜로 넘어오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그는 8월19일까지는 충분하다고 했다. 그러나 그의 이런 ‘다단계’ 논리라면 기자 눈에는 시간이 빠듯해 보였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질문을 던져봤다. 이 인사는 “한 가지 저희 쪽에서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만일 박근혜 후보가 차기 대통령이 된다면 여러 전직 대통령과는 달리 노 대통령은 퇴임 후에 사법적인 문제로 고충을 겪을 필요가 전혀 없을 것이라는 겁니다”라고 말했다. 퇴임 후 노 대통령에게 혹시 다소의 의혹이 제기되더라도 화합 차원에서 포용하고 가겠다는 의미로 들렸다. “실명으로 발언 내용을 기사화해도 되겠느냐”고 묻자 그는 “오프 더 레코드”라고 한 발짝 물러섰다.

    “盧, 사법적 문제로 고충 안 겪게…”



    그의 말이 박근혜 전 대표나 캠프의 공식 견해와 일치한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렇더라도 캠프 내 그의 위치상 당시 그의 발언을 기사화했다면 당장 ‘박근혜-노무현 연대설’이 이슈로 떠올랐을 것이다. ‘반노(反盧) 정서’가 강한 한나라당 경선 선거인단에 좋게 보일 리 없을 터였다. 또한 각종 의혹에 대한 방어 차원에서 국정원 정보유출 문제를 터뜨려 노무현 정부와 싸우고 있던 이명박 캠프로선 박근혜 전 대표를 몰아세울 호재가 됐을 것이다.

    2007년 여야 대선주자 중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북한 등 한국을 둘러싼 5개국의 고위 정치인을 가장 많이 만나본 사람은 박근혜 전 대표다. 특히 박 전 대표는 미국측으로부터 환대를 받아왔다.

    박 전 대표는 지난 2월15일 한나라당 경선을 준비하던 중 미국을 방문해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을 만나 북핵 문제에 대해 논의했다. 이 자리에는 6자회담에 참여하는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가 배석했다. 힐 차관보는 2006년 11월 베이징을 방문한 박 전 대표의 숙소를 찾아가 아침식사를 하면서 6자회담 진전 상황을 설명한 바 있다.

    라이스 장관 면담 직후 박 전 대표는 자신이 묵고 있던 월러드 인터콘티넨털호텔로 미국 정부와 의회의 실무책임자급 한반도 담당자 11명을 오찬에 초청했는데, 이들은 전원 참석했다. 백악관에서 데니스 와일더 동아시아 선임보좌관, 빅터 차 보좌관, 커트 통 경제보좌관, 딕 체니 부통령실에서 박 슈워츠 안보특보, 국방부에서 리처드 롤리스 부차관, 마이클 피네건 한국과장, 국무부에서 성 김 한국과장, 모린 코맥 부과장, 앤드루 하이드 한국팀장, 유리 김 북한팀장, 의회에서 상원 외교위원장실 제프 바론 수석보좌관이 참석했다.

    미국 정부와 의회의 실무책임자급 한반도 담당자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은 일은 화제가 됐다. 이날 박 전 대표와 점심을 함께 한 미 정부의 한 고위 인사는 “박 전 대표와의 그날 점심이 어떠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박 전 대표와 식사를 하면서 그에게 한반도 주요 이슈에 대해 상당히 구체적으로 의견을 물어봤다. 박 전 대표가 놀랍도록 정확하게 이들 문제의 본질을 꿰뚫고 있었고 풍부한 식견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또한 한미관계도 잘 이해하고 있었다. 박 전 대표는 한국을 잘 이끌어갈 뛰어난 리더십을 갖고 있는 것 같았다.”

    지만원→김유찬→도곡동, 절묘한 수순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는 8월3일 이명박 전 시장의 출생과 병역 의혹을 제기한 혐의(공직선거법 위반 및 명예훼손)로 군사평론가 지만원(65)씨를 구속수감했다. 지씨는 올해 초 자신의 홈페이지에 “이 전 시장의 어머니는 일본인이고, 이 전 시장과 이상득 한나라당 의원은 이복형제”라는 글을 게재하고 기자회견을 한 바 있다. 검찰은 DNA 검사를 통해 이상득-이명박 형제가 친형제임을 입증했다고 한다.

    이어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는 7일 뒤인 8월10일 이 전 시장의 국회의원 시절 비서관이던 김유찬(46)씨를 공직선거법 위반, 명예훼손, 무고 혐의로 구속수감했다. 김씨는 지난 2월 기자회견을 열어 “1996년 이 전 시장의 선거법 위반 재판과 관련해 위증을 해주는 대가로 1억2050만원을 받았다”는 허위사실을 퍼뜨린 혐의다.

    이명박-박근혜 경선 비화

    이명박 후보를 지지하는 한나라당 국회의원들과 당원들이 8월14일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검찰은 야당 경선에 개입하지 말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어 나흘 뒤인 8월14일 김홍일 서울중앙지검 3차장 검사는 이 전 시장의 차명(借名) 보유 재산 논란을 빚은 서울 도곡동 땅에 대해 “도곡동 땅의 이상은씨 명의 지분은 정확한 자금운용 내역조차 모르는 이씨 소유가 아니라 제3자의 차명재산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검찰 발표는 ‘이상은씨 땅도 아닌 것으로 보이고 그렇다고 이명박 전 시장 땅이라고 할 수도 없다’는 약간 애매한 내용인데, 결과적으로는 한나라당 경선 막판에 이 전 시장에게 메가톤급 악재가 됐다.

    검찰이 이상은씨 몫의 도곡동 땅 매각대금의 자금 흐름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는 얘기는 8월14일 수사발표일 이전부터 검찰 주변에서 흘러 나왔다. 공교롭게도 지만원, 김유찬 등 이 전 시장측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수사결과가 먼저 나온 뒤 도곡동 땅 수사결과가 나와서 결과적으로 검찰은 도곡동 땅 수사결과에 대한 ‘수사 중립성 상실 비판’에서 한결 자유로워졌다.

    결정적 시기마다 실수?

    반대로 지만원, 김유찬 수사발표보다 도곡동 땅 수사발표가 먼저 있었다면 검찰은 이 전 시장측으로부터 훨씬 더 거센 편파수사 의혹 공세를 받았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전 시장에 대한 네거티브 공세는 박근혜 캠프, 열린우리당, 언론 세 방면에서 제기됐다. 이 전 시장에 대한 공세는 양과 종류가 다양했다. 이 전 시장측은 미숙한 대응으로 스스로 곤경에 빠지기도 했다.

    박근혜 캠프 최경환 의원은 6월5일 기자회견을 열어 “금융감독원에 제출된 BBK 정관에 따르면 김경준씨가 190억원 이상의 투자금을 해외로 빼돌리는 데 이용한 자산관리회사인 BBK에 이 전 시장도 공공대표인 것으로 돼 있다. 이 전 시장은 그동안 BBK와 관련이 없다고 주장했는데 어느 것이 사실인지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경환 의원의 기자회견은 한나라당 경선과정에 제기된 이명박 후보에 대한 네거티브 공세의 신호탄. 이명박 캠프로서는 첫 번째 대응이었다. 그런데 이 캠프는 시작부터 좋지 못했다.

    이 전 시장측은 “보도된 정관은 위조된 것으로 이 전 시장은 모르는 내용이며 이 전 시장은 BBK 주식을 소유한 적이 없다”고 답했다. 허술하고 군색한 해명이었다. ‘금감원에 제출된 BBK정관이 위조됐다’는 점을 입증하는 것이 핵심인데, 사실 이는 공문서 위조를 일삼은 김경준의 이력을 나열해하기만 해도 간단히 소명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를 건너뛴 불성실한 해명이 나오자 BBK 의혹 등 이명박 네거티브 공세는 걷잡을 수 없이 점화된 것이다.

    ‘문건 홍수’

    이명박 캠프는 “수많은 의혹 중 사실로 확인된 것은 위장전입 하나뿐”이라고 말해왔다. 그런데 이 캠프는 이 전 시장의 이 치명적 실수를 완화하지 못하고 더 돋보이게 하고 말았다. 김혁규 열린우리당 의원이 위장전입 의혹을 처음 제기했을 때 이명박 캠프는 위장전입 사실 자체를 부인했다. 이후 언론의 검증보도가 이어지자 마지못해 사과하는 모양새가 됐다.

    위장전입은 주민등록초본과 주민등록색인부 등을 대조해 실거주 여부를 확인해 그 진위를 가려야 한다. 장관 청문회 등의 필수검증 사안인데, 외부의 의혹 제기 이전에 캠프 내에서 이에 대한 사실관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이명박 네거티브의 초기 최대 이슈가 BBK, 중기 최대 이슈가 위장전입이라면, 경선 막바지인 후기 최대 이슈는 도곡동 땅 차명보유 의혹이었다. 이 전 시장측은 후기 최대 이슈에 대해서도 성공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

    일본으로 계속 돌던 이상은씨는 결국 미진한 해명으로 ‘이상은 땅이 아니다’라는 검찰 발표가 나오도록 했다. 한나라당 관계자는 “후보 친인척의 재산 문제는 후보와의 특수 관계라는 속성 때문에 캠프 내에서 자체 검증하는 데 한계가 있다. 결국 이들의 진실성, 성실성을 기대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명박 캠프가 경선 초반, 중반, 후반 네거티브 이슈의 결정적 시기마다 미진한 해명, 사실과 다른 해명 등으로 서투르게 대응하여 위기를 자초한 면이 있는 것이다.

    한나라당 경선 과정에서는 역대 어느 대선 못지않은 다양한 문건과 기록이 출현했다. 수자원공사의 경부운하 보고서, 이명박 전 시장의 주민등록초본, 최태민 보고서, 국정원의 이명박 친인척 개인정보 열람 내역, 최태민 가계도….

    이명박 캠프나 박근혜 캠프에서는 문건의 공세적 혹은 방어적 활용에 상당한 관심과 공을 들였다. 그러나 노력 대비 효과는 미지수다. 이 전 시장의 주민등록초본 정도만 결과적으로 위장전입 이슈의 도화선이 됨으로써 이 전 시장에게 타격을 입혔다.

    ‘박근령 탄원서’ 보도 거절

    이명박-박근혜 경선 비화

    2007년 6월26일 박근혜 캠프의 이혜훈 의원이 이명박 전 시장의 친인척 측근이 관련된 부동산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상대후보에 대한 공격 목적으로 문건을 입수해 활용하려다 역풍을 맞은 경우도 잦았다. 초본 입수 과정에 박근혜 캠프 인사가 관련된 것으로 드러남에 따라 박 캠프는 도덕성 시비에 휘말렸다. 문건의 유출, 유통 문제로 김해호, 임모씨, J의원 보좌관 김모씨(이상 이명박 캠프 관련자), 박근혜 캠프의 홍모씨, 전직 경찰간부 권모씨(이상 주민등록초본 불법유출), 국정원 직원 고모씨, 박모씨 등이 검찰 조사를 받았으며 이들 중 일부는 사법처리됐다.

    8월 들어 한 인터넷 매체는 박근혜 전 대표의 동생 박근령씨가 1990년대 노태우 당시 대통령에게 보냈다는 탄원서를 입수해 보도했다. “최태민 목사로부터 언니를 구해달라”는 내용이라고 한다. 박근혜 캠프가 이 전 시장에 대해 “BBK로부터 50억원을 받은 의혹이 있다”고 공세를 펴자 이 전 시장측 진수희 대변인은 이 탄원서에 언급된 박근혜-최태민 관계 의혹을 거론하면서 박 전 대표를 맹비난했다.

    그런데 박근령 탄원서는 사실 6, 7월부터 정치권 주변에 등장했다. 모 정치인이 몇몇 언론 매체에 탄원서를 보도해달라고 요청했는데 해당 언론사들이 거절했다고 한다.

    최태민 목사 유족의 사적 정보를 담은 비공개 문건도 경선 과정에 일부 인사들 사이에 돌았다. 박근혜 캠프의 한 인사는 캠프 외부 인사들과의 모임에서 참석자들이 이 문건을 회람하는 것을 지켜보다가 갑자기 이를 움켜쥐고는 밖으로 나와 버렸다고 한다. 이 인사는 ‘박 전 대표를 향한 근거 없는 정치공세에 활용될 것을 우려해 갖고 나가게 됐다. 이해해달라’는 취지로 후에 자신의 처지를 설명했다고 한다.

    이명박 캠프는 8월5일 ‘박 전 대표측이 이명박 비방 UCC(사용자 제작 콘텐츠)를 제작하기 위해 대학생들에게 1000만원을 제공했다’는 박 전 대표 캠프 산하 대학생팀 황모 팀장과 당직자 김모씨의 대화 내용이 담긴 녹취록을 공개했다.

    이에 대해 박근혜 캠프는 “황씨는 평소 알고 지내던 김씨에게서 ‘박 전 대표를 도와주라’는 말을 듣고 김씨에게 활동 내용을 보고한 것인데 김씨가 이를 녹취해 이명박 캠프에 전달했다. 황씨는 정치공작의 피해자”라고 반박했다. 한나라당 내에선 이 UCC 녹취록 사건을 ‘양 캠프 간 상호 비방’의 결정판으로 평가했다. 선후배간 대화까지 녹취해 정치공작의 재료로 활용했다는 것에 대한 우려였다. 실제로 UCC가 제작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양측의 공방은 공허했다는 얘기도 나왔다.

    이-박, 화학적 재결합 가능할까?

    박근혜 캠프는 8월7일 국정원 직원 박모씨-이명박 캠프-김해호 커넥션 의혹을 제기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과정에서 양측은 막말 다툼을 벌였다. 박 캠프는 “이명박 후보 캠프는 캠프인가, 범죄집단인가”라면서 “이 후보는 추악한 정치공작에 책임을 지고 후보를 사퇴할 생각이 없느냐”고 했다. 이에 이 후보측은 박 후보측에 대해 “이성을 잃었다”면서 “3류 소설을 쓰고 있다”고 응수했다. 도곡동 땅이 이상은씨 소유가 아니라는 검찰 수사 발표 이후 양측의 대립은 더욱 격화됐다. 박근혜 캠프 선대위는 8월15일 이명박 후보의 후보 사퇴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렇듯 양측 공방이 치열하다 보니 ‘경선에서 당선된 한나라당 후보를 중심으로 양 캠프가 화학적으로 재결합하는 것이 사실상 어렵지 않겠느냐’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 한나라당 관계자는 “승리한 캠프에서 패배한 캠프의 인사들을 과감히 수용하여 대선 때까지 남은 4개월 동안 당 차원에서 통합 선거운동이 이뤄져야 한다. 정치보복이 없음을 선언해야 한다. 그러나 경선과정에서 막말 싸움 등으로 빚어진 양 캠프의 감정의 골이 워낙 깊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선 패배한 후보가 연말 대선 및 대선 이후에 어떤 소임을 맡게 될지에 대해 당내에서 전혀 논의되지 않았다는 것. 현재로서는 경선 승리 후보의 선대위원장을 맡아 공동 선거운동에 나서는 것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이 관계자는 “경선 당선자측의 불법 선거운동 또는 허위사실 유포 등의 문제가 불거질 경우에는 패배한 캠프의 강경파를 중심으로 경선 불복 움직임이 나타날 수 있다. 여권이 경선에서 승리한 한나라당 후보에 대해 네거티브 공세를 펼 때 경선에서 패배한 측에서 ‘한나라당 후보 교체론’을 요구하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이는 적전(敵前) 분열의 최악의 시나리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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