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월 7일 서울 여의도에서 만난 50대 중반 최모 씨는 대기업 임원이 되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려온 파란만장한 옛 기억을 떠올리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지금까지는 성생활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지만, 이제 사랑을 할 시기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깨달음에 후회가 밀려오네요. 우리 부부는 잠은 함께 자지만 이미 ‘돌부처’ 생활한 지 오래거든요.”
“성욕은 컨트롤 되지만…”
대한민국 50대는 고단하다. 어린 시절엔 새마을운동 노래를 들으며 빗자루를 들었고, 콩나물시루 같은 2부제 교실에서 공부했으며, 대학 때는 수업보다는 데모하는 날이 더 많았다. 다른 세대에 비해 비판적으로 사고하고, 치열하게 살았다고 자부한다. 그나마 경제호황으로 취업은 무난했지만,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 등으로 ‘사오정’ ‘오륙도’ 시대를 거칠게 지나왔다. 한숨 돌리니 세상은 ‘정년을 코앞에 둔 세대’라고 규정한다. 서운하다. 상당수 50대는 ‘모범생’ ‘바른 가장’이란 타이틀도 던져버리고 싶다고 말한다. 중소기업 임원 김모(56) 씨는 이렇게 말한다.
“가족들 부양한다고 밖으로만 돌아다녔더니 어느새 아내와 자식으로부터 소외돼 ‘젖은 낙엽’ 신세가 됐더라고요. 그런데 요즘 50대의 신체적, 정신적 나이는 과거 40대, 혹은 30대 못지 않아요. 나이가 있으니 성욕은 어느 정도 컨트롤되지만, 앞으로 30년은 더 살 걸 생각하면 이제는 정말 나를 위해 살고 싶어요. 주변 친구들 생각도 비슷해요. 올해 초 고교 동문 모임에 나갔더니 결혼 30년이 다 돼가는데도 ‘황혼이혼’한 친구가 의외로 많았어요.”
5월 4~11일 기자가 만난 대한민국 50대 28명의 생각은 각기 달랐지만, 공통적으로 주위의 시선과 체면을 의식하기보다는 ‘앞으로 나를 위해 살고 싶다’고 말했다. 주변에 말은 못했지만, 배우자와의 성 문제로 한두 번은 이혼을 생각한 적이 있다고 했다. 그들의 말을 종합하면, 50대 부부의 성생활은 ‘무늬만 부부’인 ‘한지붕 별거형’, 부부관계 없이 잠만 함께 자는 ‘돌부처형’, 따로 잠을 자면서 뜸하게 잠자리를 갖는 ‘각방형’, 성감을 높이기 위해 ‘야동’ 사이트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활용하는 ‘SNS형’, 오피스텔에서 애인과 사랑을 나누는 ‘오피스텔형’ 등 다양한 양태였다. 원만한 부부관계를 유지한다는 50대도 꽤 있었지만, 성 문제가 발단이 돼 이혼했거나, 섹스리스 부부라는 50대도 절반(14명)에 달했다.
실제로 지난 4월 통계청이 발표한 ‘2014년 혼인·이혼 통계’를 보면 지난해 전체 이혼은 11만5500건으로 전년보다 200건(0.2%) 증가했다. 이 가운데 50대의 이혼율은 전년 대비 2.65%, 5년 전과 비교하면 30.0% 급증했고, 남자의 경우 50대 후반(7.0%)과 60세 이상(7.3%) 이혼이 전년보다 크게 증가했다. 결혼한 지 30년 넘은 부부의 황혼이혼 건수도 지난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총 이혼 건수 중 9%(1만300건)를 차지했는데, 전년보다 10% 정도 늘어나 통계 작성 이후 최대치였다.
“침대에서도 돈 걱정만 하니…”
한국가정법률상담소의 상담통계도 비슷하다. 지난해 면접 상담 1만6084건 중 ‘이혼 상담’은 6516건(40.5%). 흥미로운 것은 이혼 상담자 중 50대가 차지하는 비율이 51%로 2명 중 1 명꼴이라는 사실. 상담 사유는 여성의 경우 성격 차이, 경제 갈등, 애정 상실 등의 ‘기타 사유’ 38.4%, ‘남편 폭력’ 25.5%, ‘남편의 외도’ 20.6% 순이었다. 남성의 경우 ‘기타 사유’ 43.8%, ‘아내 가출’ 22.4%, ‘아내 폭력’ 19.4%, ‘아내 외도’ 14.1%. 다음은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조경애 상담부장의 설명이다.
“50대는 주로 ‘성적 갈등’으로 이혼 상담하러 오는 경우가 많다. 여자들은 성에 관심 없는 남편 때문에 자신이 여자로 인정을 못 받는 것 같아 외롭고 고통스럽다고 말하고, 남자들은 ‘피곤하고 귀찮다’며 부부관계를 거부하는 아내 때문에 소외된 기분이라고 한다. 나이 50이 넘어 부부관계 문제로 이혼을 할까 싶지만, 이것 때문에 이혼까지 가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
50대들의 사연은 다양하다
겉으론 성격 차이, 경제 문제라는 사유를 들지만, 내밀하게 속을 들여다보면 50대 부부의 성생활이 흔들리고 있다는 게 그의 부연이다.
치킨 가게를 운영하는 정모(59) 씨는 이런 얘기를 들려줬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아무래도 40대에 비해 강도와 지속시간이 떨어지다보니 마음먹은 대로 부부관계가 안 된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 이후 매출이 줄어 걱정인 데다 노후 걱정, 아이들 취업과 결혼 문제 등으로 정신적 스트레스가 쌓이다보니 잠자리도 절로 위축됐다. 고민 끝에 병원을 찾았더니 발기부전 치료제를 처방해주더라.”
“몇 해 전 몸이 좋지 않아 퇴직하는 바람에 전업주부이던 아내가 일을 시작했다. 이후 부부관계는 사라졌다. 아내는 눈만 뜨면 돈타령을 했고, 내가 어쩌다 관계를 요구하면 매몰차게 거절했다. 수치심에 며칠 고민하다가 대판 싸웠는데, 나도 아내도 감정 조절이 안 돼 결국 이혼에 이르렀다. 지난해 25년 결혼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56세 정모 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