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병세 외교부 장관(왼쪽)과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중국은 시장과 자원에서 한계를 갖고 있다. 중국은 수출을 미국 시장에 크게 의존한다. 시진핑 주석은 중국과 미국이 협력하기를 희망한다. 중국의 현재 국력으로는 미국과의 전면적 대결이 불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는 미국이 강력한 봉쇄정책을 펼치더라도 중국이 적극 대응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국은 여전히 중동으로부터 상당량의 에너지를 수입한다. 그러려면 미국의 해상 영향권이 작용하는 인도양과 남지나해를 거쳐야 한다. 중국은 이 길을 피하기 위해 투르크메니스탄 등 중앙아시아로부터 육로로 가스를 수입하기도 한다. 같은 맥락에서 시진핑 주석은 5월 8일 푸틴 대통령과의 회담을 통해 향후 30년간 러시아로부터 1조2000억 달러 규모의 가스를 수입하기로 했다.
정리하면, 미국-일본, 중국-러시아가 각각 편을 먹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한국과 북한도 관여한다. 한국은 미국의 전통적 동맹국이다. 그러나 2008년 한국은 중국, 러시아와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를 맺으면서 북방외교를 강화했다. 특히 박근혜 정부는 중국과 긴밀한 경제협력을 추구한다. 이 때문에 ‘친중 정부’라는 의심도 받는다. 북한은 중국과 한국이 가까워지자 러시아에서 활로를 찾고 있다. 러시아는 북한을 원조하는 한편 한국과의 경제협력도 강화하려 한다.
따라서 지금 동북아의 큰 도박판에선 미-일과 중-러가 각각 공고한 팀을 형성한 가운데 한국과 북한이 상대적으로 느슨하게 각 팀에 발을 들여놓은 형세다. 이들 6개국은 최근 중국 주도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을 놓고 한판 승부를 겨뤘다. 박 대통령은 러시아 전승절 행사에 참석하느니 안 하느니 하며 ‘밀당’을 했다. 여섯 나라는 앞으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참여,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 속개, 9월 중국 전승절 참여, 사드(THAAD) 한국 배치를 놓고도 치열한 외교전을 펼쳐야 한다.
지금까지 동북아의 큰 도박판에서 가장 잘나가는 나라는 일본이다. 아베는 엄청난 수익을 거두고 있다. 그는 4월 22일 반둥회의 60주년 행사에서 시진핑 주석에게 “2차대전에 대해 깊이 반성한다”고 말했다. 같은 날 그는 시 주석과 정상회담을 하고 AIIB 같은 현안을 논의했다. 그동안 일본과의 단독 정상회담을 허용하지 않은 중국의 관례를 끊었다는 점에서 아베 외교의 승리로 평가할 만했다.
엄청난 수익 올린 아베
아베는 4월 28일 미국에 가서도 똑같은 전략을 썼다. 2차대전에서 희생된 미군을 추모했다. 워싱턴DC의 홀로코스트 추모관을 찾아 나치에 희생된 유대인을 기렸다. 이어 미일 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 개정, 미일 정상회담 개최, 사상 첫 의회 상하원 합동연설 같은 거침 없는 행보를 이어갔다. 애슈턴 카터 미 국방장관은 “이 새로운 가이드라인은 미일동맹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것이다”고 말했다. 미일동맹을 아시아·태평양을 넘어 글로벌 동맹으로 발전시키겠다는 의미다. 구체적으로 일본 자위대는 미군이 있는 곳이라면 전 세계 어디든지 갈 수 있게 됐다. 자위대가 한반도에도 들어올 수 있다는 뜻이다.
아베는 이어 일본의 유엔 상임이사국 진출을 시도하고 있다. 이것마저 성사되면 그야말로 ‘대박’이다. 미국이 마음먹고 밀어주면 될지도 모를 일이다. 이런 외교는 치밀하게 준비된 것이다. 아베는 일본을 ‘정상 국가’로, 강대국으로 만들겠다는 뚜렷한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그 첫 단추로 미국의 인정을 받은 것이다. 아베는 미국의 힘이 빠지고 중국이 부상하는 동북아의 정세를 읽고 미국의 양보를 받아낼 기회를 포착했다. 심지어 아베는 지난 3월까지도 러시아의 전승절 초청을 수락하는 척하면서 미국의 양보를 이끌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