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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시 폐인’의 비극적 현실, 노숙인·백수…

8년 공시 도전 후 파견·일용직·알바

  • 김건희 객원기자 kkh4792@donga.com

‘공시 폐인’의 비극적 현실, 노숙인·백수…

  • ● 공시생 41만 명 시대, 취준생의 40%
    ● “나이만 먹고 갈 회사는 없고…‘공시’ 도전 후회돼”
    ● “정규직 전환 어렵다면 원청회사 계약직이라도”
    ● 취업 경력 공백 메우려 ‘블랙기업’ 입사 지원도
    ● 사회 적응 실패 후 노량진으로 돌아가는 ‘공시 폐인’
    ● 자괴감·무력감 호소…“노숙인과 다를 바 없다”
    ● “포기하는 것도 용기” “공시가 인생의 전부 아냐”
[Getty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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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다음에 볼 때는 꼭 공무원이 돼서 만나요. 이번이 진짜 마지막이니까.” 

2018년 3월 서울 노량진에 위치한 한 스터디 카페. 공시 스터디 멤버로 만난 네 사람의 표정이 사뭇 진지하다. 노량진에 온 지 5년이 넘은 이들은 성별도 나이도, 지역도, 학교도 다 다르다. 일명 ‘공시생(공무원 시험 준비생)’으로 불리는 이들은 이틀 뒤 각자 준비한 시험 고사장으로 향했다. 결과는 전원 불합격. 공시 합격을 유일한 희망으로 여긴 채 앞만 보고 달려온 시간이 허망하게만 느껴진다.


공시생의 ‘소확행’과 ‘존버’

[동아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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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추산하는 2018년 공시생은 41만 명. 전체 취업준비생 105만 명의 40% 정도 된다. 이렇게 많은 공시생이 시험을 준비하지만 1차 관문을 통과하는 인원은 극소수다. 사이버국가고시센터 자료에 따르면, 2019년 국가직 9급 공무원 선발 인원 대비 응시 인원의 1차 필기시험 합격률은 4.27%에 불과하다. 필기시험 합격률이 낮다는 건 그만큼 경쟁이 치열하다는 뜻. 해마다 합격 커트라인도 높아지고 있다. 공무원 시험 합격은 여전히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기’ 만큼이나 어렵다. 

N세대·X세대의 뒤를 이어 탄생한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 초에서 2000년 초 사이에 출생한 세대를 일컫는 말)는 1997년과 2008년 두 차례 경제위기를 겪으며 ‘소확행’과 ‘존버’라는 새로운 시대정신을 체득했다. 소확행은 ‘작지만 확실한 행복’의 줄임말로 ‘일상에 감사한다’는 긍정적인 뜻이 있는 반면, 이면에는 ‘어차피 큰 행복은 내 차지가 못 된다’라는 자조가 깔려 있다. ‘버티는 자가 승리한다’는 뜻의 ‘존버’ 역시 밀레니얼 세대의 녹록지 않은 현실을 대변한다. 더는 신조어라 하기에도 머쓱할 만큼 어느덧 소확행과 존버는 대한민국 청년들의 삶 전반에 녹아 있다. 

앞에 언급한 공시생 네 명도 예외는 아니다. 공시에서 실패한 뒤 다시금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지만 이들 앞에 펼쳐진 현실은 가혹하기만 하다. 특히 이들을 힘들게 만드는 건 ‘공시에 괜히 도전했다’는 후회다. 



서아름(가명·29) 씨는 공시에 실패한 뒤 지역 취업센터 소개로 민간 도서관에서 야간 사서 도우미로 아르바이트를 했다. 월급은 130만 원. 한 달 최저시급(179만 5310원)보다 50만 원이 적은 돈이었다. 근무시간은 주말 포함해 매주 5일, 오후 1시부터 10시까지, 계약기간 11개월이었다. 하지만 서씨는 남들 일할 때 일하고 쉴 때 쉬고 싶다는 생각에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지 6개월 만에 일을 그만뒀다. 

두 번째로 택한 일터는 대학병원 안내데스크. ‘알바’ 꼬리표를 떼긴 했지만 이번에도 급여는 턱없이 낮았다. 공식 급여는 180만 원이지만 인력 파견업체에 소개비와 수수료를 내고, 세금까지 제하면 월급은 120만 원대로 줄어들었다. 도서관 야간사서 도우미 알바보다도 적은 금액이다. 

그마저 파견기간이 2년 이상은 불가능하다. 서씨가 소속한 회사는 파견근로자보호법에 따라 파견 근로자를 1년 만에 서류상으로 해고한 뒤 계약직으로 다시 채용해 1년을 더 근무하게 하고, 이후에 완전히 해고한다.


공시 경력 있으면 묻지마 불합격?

“안내 업무 말고 다른 부서에는 못 보내겠네.” 병원 일을 시작하기 전 파견업체 채용 담당자가 서씨에게 한 이 말은 취업 시장 내 서씨의 위치를 대변해준다. 그렇다면 서씨는 왜 파견직을 선택했을까. 

“일단 집에서 나와 어딘가에서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간절했어요. 파견직이긴 하지만 처음 대학병원에 취업했을 땐 ‘이제 나도 사람 구실하며 살 수 있겠구나’ 하는 희망에 잠시 들뜨기도 했고요. 무엇보다 다른 데 취업할 때 경력으로 쓰기 좋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서씨라고 정규직에 욕심이 나지 않았을 리 없다. 당장은 힘들지만 좀 더 기다렸다가 정규직으로 당당하게 사회생활을 시작하겠다고 결심한 적도 많다. 하지만 그러기엔 ‘취업 공백’이 너무 길었다. 대학 졸업 후 5년간 공시에 매달리느라 이력서에 번듯한 경력 한 줄 넣을 게 없었다. 

서씨는 공시생 생활을 청산한 뒤 3개월간 입사지원서를 50여 통 넘게 썼지만 면접 보러 오라는 곳은 딱 한 곳뿐이었다. 세워진 지 얼마 안 된 작은 규모의 스타트업이었다. 서씨는 그날의 공기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 면접 초반만 해도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다. 회사 대표는 “인생에서 가장 잊을 수 없는 순간이 언제냐”고 물었고, 서씨는 잠시 고민하다 솔직하게 “공시생으로 살던 5년”이라고 답했다. 일순간 정적이 흘렀다. 대표가 “일당백 역할 할 사람이 필요한데…”라며 말끝을 흐리자, 서씨는 비로소 자신이 뭔가 잘못 말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씨가 간절하게 듣고 싶었던 말은 “출근하라”였지만, 그는 끝내 그 말을 듣지 못했다. 

“이미 취업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아무리 스펙이 좋아도 공시생이라면 ‘묻지마 불합격’을 당한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퍼져 있었어요. 모든 기업이 그런 건 아니지만, 구직 활동을 해보니까 공시 준비를 오래할수록 지원자에 대한 면접관의 신뢰도가 낮아지는 게 있더라고요.” 


경력 공백 메우려 블랙기업에 지원

일부 기업이 공시생 출신 지원자를 기피하는 것은 다른 지원자보다 사회성이 부족하다는 편견 때문이다. 공시 준비에만 몰두하다 보면 아무래도 사람들과 어울려 집단 생활하는 게 여의치 않겠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공시를 준비하느라 생긴 취업 공백을 취업 경력으로 인정해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취업 공백을 메우지 못한 공시생은 스펙이 좋은 취준생한테 밀려날 수밖에 없다. 

일부 공시생은 사기업보다 공기업에 취업하는 게 유리하다고 강조한다. 만일 서류전형만 통과한다면 공시 필기시험을 공부할 때 얻은 지식을 활용해 공기업 필기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현실은 이와 다르다. 서씨의 말이다. 

“영어를 제외하고는 공시 필기시험과 공기업의 필기시험이 겹치는 부분이 거의 없어요. 그래서 필기시험에서 합격하기가 결코 쉽지 않죠. 요즘은 공기업에 취업하려는 실력자가 많아지는 추세라 경쟁이 아주 치열해요. 운 좋게 필기시험에 합격해서 면접을 보더라도 직무능력을 강조할 만한 경력이 없으면 통과하기가 어려워요.” 

서씨는 취업 공백을 메우려고 ‘블랙기업’에까지 지원했다. 블랙기업은 청년세대 사원들에게 비합리적인 노동을 강요하는 기업을 가리키는데, 잔업수당을 지급하지 않거니 장시간 노동을 강요하는 경우가 많다. 성희롱, 폭언, 구타 등이 일상적으로 일어나기도 한다. 이는 단순히 근무 여건이 열악한 기업에 입사한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그래서 취업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초년생 직장인이 가지 말아야 할 블랙기업’ 리스트를 따로 만들어 공유하기도 한다. 

서씨가 지원한 회사는 노동 착취로 구설에 여러 번 오른 규모가 작은 한 IT기업이었다. 채용 공고에는 ‘신입사원 정규직’을 채용한다고 올라와 있었다. 서씨는 “취업 커뮤니티엔 해당 기업에서 채용 조건에 ‘정규직 채용’이라고 명시한 뒤 근로계약서에는 인턴이나 비정규직 채용으로 변경한다는 얘기가 돌고 있어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취업 공백을 메우기 위해선 여기라도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결국 입사 원서를 작성해 회사에 보냈다. 하지만 서씨는 블랙기업에서조차 취업 공백이 있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그 대신 “무급 인턴으로 일해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이 들어왔다. 결국 서씨는 회사 측 제안을 거절했다.


“나이만 먹고 취업 시기 놓칠까봐 불안”

“취업 공백을 메워주는 대신 급여 없이 일하라고 해서 솔직히 황당했어요. 내가 이런 취급까지 받아야 하는 건가 싶어 불쾌하기도 했고요. 더군다나 한 달 인턴을 정규직으로 전환해주는 게 아니잖아요. 인턴 하고 나면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오는 건데, 이럴 거면 차라리 돈이라도 벌 수 있는 알바가 낫지 않을까 싶었어요.” 

서씨는 더는 집에서 용돈을 받아 쓰는 게 면목이 없어 단기 아르바이트를 구했다. 주말에는 대형마트의 시식 아르바이트로 일당 8만 원을 벌었고, 가끔 좌담회 등에 참석해 2시간 정도 앉아 있다 4만 원을 받았다. 일단 돈을 벌게 되니 급한 불은 끌 수 있었다. 하지만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걱정으로 늘 마음이 무거웠다. 

“수입에서 공과금과 용돈을 제하고 나면 남는 금액은 얼마 안 돼요. 한 달에 일하는 날보다 안 하는 날이 더 많으니까요. 앞으로 계속 이렇게 살 수는 없는데, 그렇다고 해서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에요. 이러다 나이만 먹고 정규직 취업은 아예 물 건너 갈까봐 두려워요.” 

사실 서씨의 어릴 적 꿈은 공무원이 아니었다. 중학생 때부터 키워온 진짜 꿈은 동시통역사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 대학에서 영어영문학을 전공했고, 대학교 3학년 땐 스페인으로 어학연수를 다녀왔다. 방학 기간엔 어학원을 다니며 중국어와 일본어를 배우기도 했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서씨는 5개국어가 가능한 사람이 됐다. 

하지만 취업 시장에서 서씨는 ‘외국어를 조금 할 줄 아는 사람’일 뿐이었다. 그보다 어학 실력이 뛰어난 취준생들이 차고 넘치는 게 현실이다. 그렇다 보니 서씨가 취업을 준비하던 2011년 무렵엔 외국어는 더는 ‘특기사항’으로 취급받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지금은 그런 분위기가 더 심하다. 요즘은 외국어에 능통한 ‘해외 거주 경력자’를 우선 채용한다. 서씨는 배낭여행과 6개월 어학연수 말고는 몇 년씩 해외에 거주한 경험이 없다.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기분”

“저 나름대로 스펙을 쌓았는데 경쟁자들 스펙이 ‘넘사벽’이에요. 어릴 때 미국에서 살았고 대기업 주재원인 아버지를 따라 일본에도 몇 년 머물러서 영어와 일본어에 능숙한 사람이 부지기수예요. 그런 사람의 스펙을 어떻게 제가 이길 수 있겠어요. 그래서 스펙 경쟁 없이 오로지 점수로만 취업할 수 있는 공시로 눈을 돌렸던 거죠. 공부머리는 어느 정도 되니까 열심히 해서 시험만 잘 보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서씨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 같다”고 느낀 때는 2015년에 치른 두 번째 공시였다. 노량진에 입성한 지 2년 정도 됐을 때였는데, 필기시험에서 1점 차이로 떨어지자 아예 휴학계를 내고 다시 공시에 매달렸다. 당시 서씨는 4학년이었다. 

하지만 삼수(三修)의 결과는 더욱 처참했다. 결국 서씨는 졸업은 해야겠다는 마음에 다시 학교로 돌아갔다. 학업과 시험공부를 병행하며 이듬해 다시 한번 시험을 봤지만 이 역시 실패로 돌아왔다. 서씨는 그길로 노량진 생활을 끝냈다. 

“눈을 낮춰 중소기업에 취업하려고 해도 ‘서류 광탈’은 기본이고, 면접에선 또래 경력자한테 밀려나기 일쑤예요. 구직자들이 선호하는 중소기업은 경쟁이 더 치열하죠. 나이는 많고 취업 경력은 없으니, 공시생이 취업에 성공하려면 그간의 공백을 뛰어넘을 수 있는 뭔가가 있어야 할 것 같아요.” 

파견직은 책임 소재가 애매해 때때로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난다. 그래서 블랙기업의 정규직보다 못하다는 소리도 듣는다. 파견직인 걸 모르고 이웃들이 “좋은 직장에 취업해 좋겠다”고 할 때 서씨의 부모는 애써 표정관리를 해야 했다. 그런 부모의 모습을 보는 서씨의 마음도 불편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최악의 청년 취업난 속에서 파견직 일자리라도 얻은 게 어디냐 싶다가도 다른 정규직과 비교하면 본인의 처지가 초라하게 느껴졌다. 

파견직에서 원청회사의 계약직으로 전환하는 비율은 낮은 편이다. 국내 파견업체 관계자는 “10명 중 1~2명 정도”라고 설명했다. 관계자의 말이다. 

“실력이 좋거나 윗사람의 눈에 들어 정식으로 채용 시험을 쳐서 운 좋게 원청회사의 계약직으로 전환되는 경우가 간간이 있어요. 그때부턴 원청회사에 소속한 직원이 돼서 2년간 근무하죠. 원청회사의 계약직이 된다고 해서 정규직으로 전환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해요.”


“잠시 있다 떠날 사람” “다른 회사 사람”

서씨와 함께 공부하던 공시 스터디 멤버 3명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서씨는 여전히 파견근로자였고, 1명은 캔들 공방을 운영하고 있다. 나머지 2명은 이런저런 일을 하다가 다시 공시생으로 돌아갔다. 서씨는 “취업을 포기하고 다시 노량진으로 돌아가는 ‘공시 폐인’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소설가 김애란이 2017년 발표한 소설집 ‘바깥은 여름’에 수록한 단편소설 ‘건너편’에는 공시에 6년간 도전했다가 물만 먹은 남자 주인공 이수가 취직해 사회에 적응하려 했지만 결국 다시 공시생으로 돌아가는 이야기가 나온다. 

권선호(가명·32) 씨는 소설 속 이수와 같은 경험이 있다. 2011년부터 7년 동안 공시에 도전했다가 결국 포기한 뒤 보습학원 강사 일을 시작했다. 사회생활에 적응했을 무렵, 문재인 정부가 청년고용이란 이유를 앞세워 공무원 숫자를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결국 2017년 12월 공무원 증원 규모를 9475명으로 확정했다. 권씨는 “하늘이 준 마지막 기회처럼 느껴졌다”고 말했다. 그 다음해 노량진으로 돌아왔으나 그해 연말에는 노량진 고시원에서 방을 뺄 수밖에 없었다. 8년간의 공시생 생활에 마침표를 찍은 순간이었다. 

세밑을 앞둔 2019년 12월 중순, 수화기 너머 들려오는 권씨의 목소리엔 잔뜩 무력감이 배어 있었다. 완전히 극복한 건 아니지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은둔형 외톨이처럼 방구석에 박혀 지냈다. 권씨는 “한동안 노숙자와 다를 바 없는 생활을 했다”고 말했다. 

“제가 공부하고 있을 때 친구들은 일하면서 경력도 쌓고 돈도 제법 모았더라고요. 비교하면 안 되지만, 나는 그동안 뭐 했나 싶어 자괴감마저 들었어요.” 

권씨는 아직 갚지 못한 학자금 대출이 700만 원 정도 남아 있다. 그도 더는 집에서 지원받는 게 미안해 그동안 입사지원서를 80통 넘게 썼다. 하지만 연락이 온 곳은 없었다. 나이 어리고 스펙 좋은 취준생들과 경쟁하려면 나름의 전략이 필요하지만 권씨는 취업 스터디조차 들어가기 힘들었다. 

“요즘은 취업 스터디에서도 나이를 가려서 받아요. 학벌이나 학점이 좋아도 나이가 서른둘 넘으면 끼워주질 않더라고요. 남자 나이 서른둘은 취업 시장에서 거의 마지노선에 가까워요. 저는 나이도 많고 취업 공백도 기니, 그런 모임에 끼기 힘들죠.” 

요즘 권씨는 중소기업 청년인턴제도를 알아보고 있다. 권씨는 “다른 것보다 몸을 무리하게 쓰는 직종만큼은 피하고 싶다”고 말했다. 노량진으로 되돌아간 뒤 폐결핵 확진 판정을 받아 고생했는데, 지금도 건강을 완전히 회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공시생은 눈뜨는 순간부터 잠들 때까지 하루 일과가 시험공부에 맞춰져 건강관리에 소홀하기 쉬워요. 공시를 완전히 그만둔 뒤에도 공부하느라 약해진 체력을 회복하지 못했어요.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 공사장으로 일하러 나갔다가 2주도 못 버티고 나온 적도 있고요.” 

권씨는 “첫 시험에서 0.3점 차이로 탈락한 게 결국 ‘공시 중독’으로 이어졌다”고 고백했다. 공시생들은 “합격 컷(커트라인) 근처까지 간 것 자체가 대단하다”며 그를 치켜세웠다. ‘끝까지 버티면 합격한다’며 권씨를 응원하는 공시생도 많았다.


열심히 해도 불합격하는 이유

“딱 1년만 더 공부하면 합격하겠구나, 다시 해보자 다짐했어요. 그다음 해에는 1점 차이로 탈락했고, 그다음 해엔 면접시험에서 떨어졌어요. 직렬을 바꿔서 도전한 적도 있는데, 0.7점 차이로 필기시험에서 떨어졌어요. 그러다 정부가 공무원 숫자를 늘린다고 해서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다시 도전했는데…. 합격 컷보다 10점이나 점수가 낮았어요. 자꾸 나쁜 생각이 드는데, 여기까지 온 게 아까워서 그러지도 못하고….” 

슬럼프를 종종 겪기는 했어도 하루 15시간 꼬박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시험 준비에 몰두했다. 그런데도 연거푸 시험에 떨어졌다. 이유가 뭘까. 권씨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공시가 누구나 다 도전할 수 있는 시험이다 보니 허수가 많다는 것이다. 공부에도 일종의 전략이 필요한데, 허수에 해당하는 사람은 아무런 전략도 없이 잠 줄여가며 무조건 열심히 공부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권씨는 “나 또한 허수였다”고 고백했다. 

“무조건 열심히 하는 게 오히려 독으로 작용하는 것 같아요. 컨디션은 컨디션대로 나빠지고 시간은 시간대로 버리고. 공시생 이름 앞에 ‘장수생(공시 시험을 많이 본 사람)’ 딱지가 붙는 건 시간문제예요. 그 시간에 차라리 자격증을 따거나 취업을 했더라면….” 

공시를 여러 번 치러보니 깨달은 사실이 몇 가지 있다. 1점 차이로 떨어진 사람은 1점만 더 받았다면 시험에 붙었을 거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합격권에 들기 위해서는 최소 2~3점을 더 받아야 가능하다는 게 권씨의 주장이다. 선발 인원의 2~3배수까지가 합격권이기 때문이다. 권씨는 “공시 도전할 땐 미처 생각하지 못한 일이 너무 많다”며 안타까워했다. 

임현수(남·30) 씨는 대기업 계열 보험회사의 영업사원으로 근무하다가 퇴사한 뒤 2016년부터 공시를 준비했다. 근무 기간은 1년이 조금 안 되지만, 영업 압박으로 스트레스가 너무 커 회사 다니는 동안 만성 위염에 시달렸다. 

“아무리 월급을 많이 준다고 하더라도 공무원이 될 수 있다면 공무원을 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조금이라도 어릴 때 안정적인 직장을 찾자고 회사를 그만두고 공무원 시험을 보게 됐죠.”


“포기하는 것도 용기” “공시가 인생의 전부 아냐”

[Getty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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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공시는 합격자 정원이 정해져 있어 많은 이가 탈락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최상위권 실력자는 어느 시험에나 포진해 있어 갈수록 경쟁은 치열해진다. 공시는 실수로 틀리는 문제를 줄여야 하는 싸움이다. ‘어느 강사의 강의를 듣느냐’가 합격을 좌우한 지도 오래됐다. 그런데 임씨는 “요즘 새로운 변수가 추가됐다”고 했다. ‘공부에만 집중하도록 뒷받침할 경제력이 부모에게 있는가.’ 여기에 따라 비슷한 실력이라도 공시 성패가 갈린다는 것이다. 적어도 공시생들은 그렇게 느끼고 있다고 한다. 임씨는 “출발점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어쩔 수 없는 것 같다”며 “공시는 아무나 준비하는 게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임씨는 1년 6개월 만에 노량진에서 나왔다. 그동안 직장 생활하며 번 돈으로 학원비, 월세, 교제비, 용돈 등을 충당한 금액이 적지 않아서 포기하기가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임씨는 “이제라도 발 뺀 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임씨는 “포기하는 것도 용기다”라고 말한다. 과거 투자한 시간과 돈, 노력에 대한 보상 심리가 작용하다 보니 ‘1년만 더 해보자, 이번엔 붙겠지’ 하다 보면 공시생 생활이 점점 길어진다는 것이다. 몇 년씩 책상 앞에만 앉아 책을 보고 있으면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엄습하는데도 포기할 용기가 없어 시간만 보내는 이가 적지 않다. 

“공시생 사이에선 ‘2, 3년 안에 합격하지 못하면 그만둬야 한다’란 말이 ‘잠언’처럼 통해요. 시험 3번만 치러도 4~5년이 훌쩍 지나가버리거든요. 적절한 타이밍을 잡지 못하면 우울의 늪에 빠질 수 있어요. 시험 도전 기간을 정한 뒤 그 안에 합격하지 못하면 나와서 다른 길을 찾아야 해요.” 

공시를 포기한 뒤 임씨는 빙과업체 영업사업으로 재취업했다. 이 과정에서 자신이 패배자가 된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고 한다. 임씨를 면접한 한 임원은 “우리 직원들 평균연령이 29세인데, 나이 어린 선배나 상사를 따를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임씨에겐 그 말이 마치 ‘결국 돈, 시간만 버리고 끝난 거 아니냐’며 자신을 비웃는 것처럼 느껴졌다. 

임씨처럼 공시를 그만두고 다시 사회에 나온 공시생들은 이런 불편한 시선을 묵묵히 이겨내고 있다. 자신보다 사회 경력이 더 쌓인 어린 상사나 선배의 멸시를 견뎌내는 게 괴로운 일이지만 자신의 선택에 따른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공시든 취업이든 인생에 답은 없는 것 같아요. 답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그 나름의 의미를 가지고 살아가는 게 인생이라고 생각해요. 오히려 공시 포기한 경험이 인생의 밑거름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신동아 1월호]




신동아 2020년 1월호

김건희 객원기자 kkh479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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