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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스토어, 시위에 ‘판잣집’ 되다 [샌프란시스코 통신]

코로나19, 인종차별 반대 시위에 몸살 샌프란시스코

  • 글·사진 황장석 ‘실리콘밸리 스토리’ 작가·전 동아일보 기자 surono@naver.com

애플스토어, 시위에 ‘판잣집’ 되다 [샌프란시스코 통신]

  • 미국 50개 주 가운데 인구와 경제 규모 면에서 1위인 캘리포니아. 
    3월 중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하면서 자택대피(stay-at-home) 명령으로 얼어붙었던 캘리포니아에 5월부터 조금씩 훈풍이 불었다. 자택대피, 통행제한 규제가 특히 심했던 샌프란시스코베이 지역도 변하기 시작했다. 백신도 치료제도 나오지 않아 ‘사회적 거리두기’를 목적으로 한 여러 제한이 만들어지긴 했지만 시민의 삶이 조금씩 회복되려는 참이었다. 하지만 5월 25일 미네소타 미니애폴리스에서 흑인 조지 플로이드가 백인 경찰 무릎에 목이 눌려 사망하며 다시 이 지역이 격랑에 휩싸이고 있다. 변화와 혼란이 뒤섞인 현장을 둘러봤다.
미국 실리콘밸리 중심도시 팰로앨토 유니버시티 애비뉴에 있는 애플스토어. 상점 앞에 경찰차가 서 있고, 전면 유리
창에 약탈을 막기 위한 나무판이 붙어 있다. 이 가림막에는 조지 플로이드 그림이 그려져 있다.

미국 실리콘밸리 중심도시 팰로앨토 유니버시티 애비뉴에 있는 애플스토어. 상점 앞에 경찰차가 서 있고, 전면 유리 창에 약탈을 막기 위한 나무판이 붙어 있다. 이 가림막에는 조지 플로이드 그림이 그려져 있다.

미국 실리콘밸리 중심도시 팰로앨토 유니버시티 애비뉴에 있는 애플스토어. 애플 공동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였던 스티브 잡스가 생전에 자주 찾던 매장이다. 잡스 뒤를 이어 애플 CEO를 맡은 팀 쿡도 신제품이 나올 때마다 이곳을 찾곤 한다. 애플의 대표 매장 가운데 하나로 꼽을 만한 곳이다. 

6월 4일 오후 4시, 바로 그 애플스토어 앞에 경찰차가 한 대 서 있었다. 운전석에 앉은 경찰은 아예 시동을 끈 채 경비를 서듯 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경찰차 뒤로 보이는 애플스토어 풍경은 낯설었다. 밖에서도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도록 디자인된 매장 전면 투명유리가 3분의 1쯤 나무판으로 가려져 있었다. 정문에도 나무판이 촘촘하게 붙어 있었다. 이른바 ‘조지 플로이드 사건’으로 평화 시위뿐 아니라 약탈까지 발생하자 애플이 피해 방지 목적으로 설치한 것이다.
 
매장 앞으로 다가가자 나무판 위에 조지 플로이드 얼굴이 그려진 게 보였다. 자세히 보니 그의 얼굴을 그린 포스터였다. 아마도 시위대 중 한 명이 붙여놓았을 것이다. 흑인 인권운동을 상징하는 ‘BLACK LIVES MATTER(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라는 문구가 조지 플로이드 얼굴을 감싼 채 쓰여 있고, 그의 입 부분에는 사망 전 플로이드가 고통스럽게 외친 “I CAN’T BREATHE(숨을 쉴 수 없어요)”라는 문장이 쓰여 있었다. 나무판 곳곳에 미국의 흑인 차별 역사와 경찰의 잔인함을 규탄하는 내용의 글도 적혀 있었다. 거리를 오가는 주민들은 인종을 가리지 않고 매장 가까이 다가와 그 그림과 글귀를 한동안 들여다보고 갔다. 마스크로 가려진 사람들의 얼굴 표정을 다 읽을 수 없었지만, 이따금 긴 한숨소리가 들렸다.


스티브 잡스가 사랑하던 애플 매장에 붙은 나무판

이 거리에서 매장 보호 목적으로 나무판 부착 공사를 한 곳이 애플스토어만은 아니었다. 근처에 있는 대형 약국 겸 생활필수품 매장 월그린(Walgreens)도 드나드는 문 하나를 제외하고 모든 벽에 나무판을 붙인 상태였다. 바로 옆에 있는 은행도 공사가 끝나 있었다. 가구와 조명, 카펫 등을 판매하는 한 상점은 일반 나무판보다 훨씬 단단해 보이는 합판을 곳곳에 붙여 마치 요새를 구축해 놓은 듯 보였다. 한 테이크아웃 식당도 열어놓은 정문만 빼고 나머지 벽에 모두 나무판을 붙여놓았다. 

이날 거리를 오가는 주민은 많지 않았다. 20분 정도 주위를 둘러보는 동안 식당에 들어가 음식을 들고 나온 손님은 딱 한 명이었다. 코로나19 규제가 완화되면서 다시 매장 문을 열고 손님을 받길 학수고대해 온 상인들에게 예상치 못한 새로운 위기가 닥쳐온 듯 보였다. 

이날 판잣집으로 변해버린 거리 상점 사진을 찍고 있는데 옆에 지나가던 백인 중년여성이 갑자기 큰 소리로 외쳤다. 



“이봐요! 혹시 당신 사진에 내가 나오면 지워줘요! 알았어요?” 

기분이 상해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내 사진에 당신은 안 나와요!” 

코로나19 때문인지 시위 탓인지, 신경이 곤두선 모양이었다. 


샌프란시스코 공원의 코로나19 동그라미

5월 30일 샌프란시스코 돌로레스 공원 풍경. 바닥에 ‘사
회적 거리두기’를 위한 흰색 동그라미가 그려진 곳에서
시민들이 주말 오후를 즐기고 있다.

5월 30일 샌프란시스코 돌로레스 공원 풍경. 바닥에 ‘사 회적 거리두기’를 위한 흰색 동그라미가 그려진 곳에서 시민들이 주말 오후를 즐기고 있다.

조지 플로이드 사건은 미국의 흑인 인권 문제를 다시금 조명하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많은 사람을 당혹스럽게 만든 것도 사실이다. 평화시위대 뒤에서 약탈에 나선 무리를 보는 건 괴로운 일이다. 코로나19 규제에서 조금씩 벗어나 과거 일상으로 돌아가려던 움직임에도 제동이 걸렸다. 샌프란시스코 주민이 사랑하는 돌로레스 공원(Mission Dolores Park) 사례가 대표적이다. 

평소 휴일이면 소풍 나온 주민으로 가득 차는 이 공원에는 최근 100개가 넘는 하얀색 동그라미가 그려졌다. 코로나19 규제로 집에서만 지내던 사람들이 최근 하나둘 갑갑함을 못 이겨 밖으로 나오기 시작하자 샌프란시스코시가 이들의 ‘사회적 거리두기’를 돕고자 고안한 장치다. 시는 공원 잔디밭에 지름 2m 정도 크기 동그라미를 6피트(약 1.8m) 간격으로 그렸다. 공원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이 동그라미 안에서 휴식을 즐기도록 하고, 동그라미가 모두 차면 다음 사람은 공원을 이용하지 못하도록 현장에서 지도하겠다는 게 시의 방침이었다. 

5월 30일 토요일 오후 2시. 필자는 실리콘밸리 남부 새너제이에서 자동차로 1시간 정도 북쪽으로 달려 돌로레스 공원에 도착했다. 평소 가뭄에 시달릴 만큼 비가 오지 않는 동네인데 하필 이날은 날씨가 좋지 않았다. 비가 오다가 그치길 반복했다. ‘날씨 때문에 공원에 사람이 없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사라지지 않았다. 공원에 도착했을 때 다행히 비는 그쳤지만 잔디는 조금 전까지 내린 비에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하지만 갑갑함을 떨치려고 나온 사람들에게 그 정도는 문제가 되지 않는 듯했다. 

수많은 사람이 동그라미 안에 들어가 마치 흰색 선이 바이러스를 차단하는 벽이라도 되는 듯 편안하게 주말 오후를 즐기고 있었다. 동거인과 함께 나온 강아지들도 여기저기 신이 나 뛰어다녔다. 필자도 비어 있는 동그라미 하나를 차지하고 앉았다. 둘러보니 한 손에 맥주, 와인, 음료를 들고 환한 표정으로 수다를 떠는 사람들이 보였다. 자전거를 끌고 막 공원에 도착한 젊은 여성이 친구와 키득키득 웃으며 나누는 얘기가 들렸다. 

“이게 말로만 듣던 그 동그라미인가? 정말 별게 다 생기네.” 

하지만 그로부터 며칠 후, 공원에 그려진 동그라미는 힘을 잃었다. 조지 플로이드의 비극이 사람들을 밖으로 불러냈기 때문이었다. 코로나19 감염 위험을 무릅쓰고 모인 시위대는 ‘사회적 거리두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공원을 가득 메웠다. 사람들이 공원을 빽빽하게 채우면서 동그라미는 존재 의미를 잃고 말았다. 그렇다고 코로나19 감염 위험을 감수하고 흑인 인권 문제를 제기하려고 모인 사람들에게 사회적 거리두기를 요구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규제 풀리지만 긴장 계속되는 샌프란시스코

6월로 접어들면서 샌프란시스코베이 지역의 코로나19 규제는 확실히 완화되고 있다. 이미 여러 카운티가 음식점 야외 영업을 허용했다(카운티는 통상 도시보다 큰 개념의 행정 단위로, 여러 개의 도시가 하나의 카운티에 포함된다). 이전까지 식당은 테이크아웃이나 배달 외엔 음식을 팔 방법이 없었다. 이제는 건물 바깥에 테이블을 펴고 손님을 받을 수 있다. 실내운동 시설 영업도 사회적 거리두기에 따른 기준을 지킨다는 조건으로 허용되기 시작했다. 가을엔 3월 중순 이후 문을 닫았던 학교도 다시 현장 수업을 시작할 방침이다. 

그러나 도시 전체를 감싼 팽팽한 긴장감은 가시지 않고 있다. 백신과 치료제가 나오지 않은 이상, 식당에서 음식을 먹고 상점에서 쇼핑하기엔 여전히 감염 우려가 크다. 약탈 위험도 한동안 가시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당장은 상점 벽에 붙은 나무판이 사라지는 게 급선무다. 




신동아 2020년 7월호

글·사진 황장석 ‘실리콘밸리 스토리’ 작가·전 동아일보 기자 suron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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