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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개에 ‘그린 라이트’ 2장이나 준 까닭

[동물萬事⑰] 수렵시대에도, 농경시대에도 개는 공짜 밥을 먹지 않았다

  • 이강원 동물칼럼니스트 powerranger7@hanmail.net

인류가 개에 ‘그린 라이트’ 2장이나 준 까닭

  • 야구는 감독의 경기 개입이 다른 스포츠에 비해 많다. 선수들은 수시로 떨어지는 작전 지시를 수행하고자 경기 내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치외법권을 누리듯 벤치의 작전 지시를 받지 않고 움직이는 선수도 있다. ‘바람의 아들’ 이종범 같은 도루왕, 이대호·김태균 같은 간판급 타자가 그렇다. 개도 야구의 빠른 주자나 강타자처럼 그린 라이트를 보유하고 있다. 그것도 한 장이 아닌 두 장이다.
[Getty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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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석기시대, 인류는 동물을 사냥하거나 조개나 열매를 채집해 식량 문제를 해결했다. 이 같은 생활 방식은 기후나 환경 변화 같은 외부 변수의 제약을 받는다. 기상 조건이 좋지 않거나 외부 활동이 어려워지면 먹을 것을 구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불운한 날은 온 가족이 배를 곯아야만 했다. 굶주림은 일상적 현상이었다.

농경 통해 외부 변수 극복한 인류

침팬지는 작은 동물을 사냥하거나 개미, 흰개미 등 곤충에서 단백질을 획득한다. [동아DB]

침팬지는 작은 동물을 사냥하거나 개미, 흰개미 등 곤충에서 단백질을 획득한다. [동아DB]

신석기시대에 접어들면서 인류는 앞선 시대와 달리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식생활을 했다. 외부 변수가 압도적 영향을 끼치던 수렵과 채집 대신 일정 수준의 수확을 예상할 수 있는 농경을 경제의 기본 방식으로 선택한 덕분이다. 

농경에 나선 계기는 지구 환경이 농사짓는 데 적합하게 변했기 때문이다. 구석기시대, 지구의 지배자는 차가운 얼음이었다. 얼음이 지표를 이불처럼 덮고 있었다. 생명체들은 얼음이라는 제약에 종속돼 살아가야만 했다. 신석기시대로 접어들며 지구 환경은 급변했다. 달리 말해 지구 환경의 변화가 신석기시대를 가져왔다. 빙하기의 종말은 지구 곳곳의 거대한 얼음을 녹였다. 1만여 년 전부터 충적세(Holocene)가 시작된 것이다. 

온화해진 지구 환경은 먹을 것을 찾아 헤매던 인류에게 농경이라는 새로운 기회를 제공했다. 농사를 짓기 시작한 이후 인류의 삶은 송두리째 변화했다. 예측하기 어려운 변화무쌍한 생활 대신 일정한 수준의 소출(所出)이 보장되는 안정된 삶을 살게 된 것이다. 

인류가 만들어낸 이러한 변화를 신석기 혁명(Neolithic Revolution·新石器革命)이라고 한다. 신석기 혁명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인류는 지금도 돌로 만든 창을 들고 이곳저곳 돌아다니거나 물가에서 조개를 캐는 고달픈 신세를 면치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씨를 뿌리고 열매를 거두는 농경만으로는 식생활 문제를 완전히 해결할 수 없었다. 인류는 사슴이나 토끼처럼 풀만 먹고 사는 초식동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생존을 위해서는 적당한 수준의 동물성 단백질을 먹어야 했다. 

유전적으로 인류의 가장 가까운 친척은 침팬지(Chimpanzee)다. 침팬지도 인류처럼 식물성 먹이만으로는 필요한 영양분을 모두 확보할 수 없다. 그래서 집단 혹은 단독 사냥을 통해 동물성 단백질을 섭취한다. 

침팬지가 주로 사냥하는 동물은 어린 가젤(Gazelle)이나 콜로부스(Colobus)원숭이 같은 작은 동물이다. 물론 침팬지가 고급 단백질만 고집하는 건 아니다.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개미, 흰개미 같은 곤충이나 곤충들의 유충도 마다하지 않는다. 단백질을 제공하는 곤충을 거부할 만큼 동물성 단백질 확보 상황이 여유롭지 않아서다. 

농경을 시작한 후 고된 농사일은 농부의 몫이 됐다. 성패는 농부의 단단한 근육에 달려 있었다. 농부가 근력을 유지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동물성 단백질을 꾸준히 섭취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농사를 일단 시작하면 수렵과 채집을 병행하기 어려웠다.

가축 통해 단백질 공급받은 인류

농경시대에 접어든 후 단백질 섭취 방법은 사냥으로 잡은 동물을 ‘길러’ 조달하는 것이었다. 인류는 여러 종류의 동물을 포획해 필요에 맞게 개량했다. 가축 개량(animal improvement)이라고 하는 과정을 통해 동물은 인간에 의해 철저히 통제되는 가축(domestic animal)으로 재탄생했다. 인간과 함께 살게 된 가축은 자연을 영원히 떠나 인공 구조물인 우리(cage)라는 좁은 공간에서 태어나 삶을 마감할 때까지 그곳에서 살았다. 

인류가 가축을 키운 첫 번째 목적은 단백질을 얻기 위해서다. 가축을 키우면서 인류는 수학(數學)과 이윤에도 눈을 떴다. 

경영학 관점에서 가축의 일생을 분석하면 다음과 같다. 사료라고 하는 식물성 자원을 투입(input)해 가축을 사육한다. 식물성 자원은 가축의 체내를 거치면서 동물성 단백질로 전환된다. 가축은 일정한 생육기간을 거쳐 인간이 목표로 정한 체중에 도달하면 도축(slaughter·屠畜)된다. 

도축이 마무리된 가축은 더는 생명체가 아닌 상품으로 취급된다. 가축은 고기와 부산물이라는 상품으로 전환되는데 그것이 바로 인류가 궁극적으로 원한 최종 산출물(output)이다. 이 산출물은 소비자의 선택을 받아 판매되며, 생산과 유통 과정에 참여한 축산업 종사자들에게 각각 적절한 수준의 이윤(profit)을 제공한다. 

가축이라는 생명체는 사육 후 유통과정을 거치면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가축은 인간이 만들어놓은 장부 곳곳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 생을 마친다. 호랑이가 죽어서 가죽을 남기듯 가축들은 숫자로 나타나는 이윤을 축산 관계자들에게 남기고 떠나는 것이다.

숫자로 가축을 통제한 인류

미국 캘리포니아주 유리카의 한 동물원에서 사는 홀스타인종 젖소. 몸무게 1t, 키 193㎝로 ‘세계에서 가장 큰 소’로 기네스북에 올랐다. [AP=뉴시스]

미국 캘리포니아주 유리카의 한 동물원에서 사는 홀스타인종 젖소. 몸무게 1t, 키 193㎝로 ‘세계에서 가장 큰 소’로 기네스북에 올랐다. [AP=뉴시스]

개별 축종(畜種)마다 인간이 목표로 정한 수치는 다르다. 비전문가의 눈에는 세상에 존재하는 소가 모두 같은 소로 보인다. 전문가의 눈에는 소가 제각각 다르다. 고기를 생산하는 육우(肉牛)와 우유를 생산하는 유우(乳牛)는 엄연히 다르다. 생물학적으로는 분명 같은 소지만 경영학적으로 육우와 유우는 쓰임새가 전혀 다르다. 

200년 전만 해도 육우, 유우보다 농사일을 돕는 역우(役牛)가 경영학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가졌다. 더 오래전에는 농사일만 위해 소를 키웠지 젖이나 고기를 얻고자 소를 키우지 않았다. 지금은 다르다. 일하는 소의 대명사이던 한우(韓牛)도 육우로 바뀐 지 수십 년이 넘었다. 지금 한우에게 밭이나 논을 갈게 하면 육질을 떨어뜨리는 짓을 한다고 비난을 받을 것이다. 

육우에 중요한 덕목은 매일 꾸준히 살을 찌우는 것이다. 더 빠른 속도로 살을 찌우는 소가 우수한 형질을 가졌다고 칭찬받는다. 육우가 하루에 얼마나 살이 찌는지 측정하는 지표인 일당 증체량(daily gain·日當增體量)이라는 수치도 있다. 축산경영학에서 일당 증체량은 중요한 지표다. 

유우도 마찬가지다. 유우도 육우처럼 구체적 수치로 정한 목표가 있다. 연간 몇 ㎏의 우유를 생산하는지에 따라 등급이 매겨진다. 유우가 연간 생산하는 산유량을 연간 원유생산량(原乳生産量)이라고 한다. 유우가 엑설런트(excellent) 등급 판정을 받으려면 연간 1만3000㎏ 넘는 우유를 생산해야 한다. 일일 평균 40㎏ 넘게 생산해야 도달하는 양이다. 

국내 우유의 90% 이상은 흑백 얼룩소인 홀스타인(Holstein)이 생산한 것이다. 홀스타인 품종의 강세는 비단 한국에 국한된 일이 아니다. 축산대국 미국도 홀스타인이 유우의 대다수다. 홀스타인의 우유 생산량이 저지(Jersey dairy cattle) 등 다른 유우의 생산량을 압도하기 때문이다. 홀스타인은 네덜란드에서 개량된 소다. 

홀스타인이라고 하더라도 모두 유우가 되는 것은 아니다. 암컷은 유우가 되지만 수컷은 우유를 생산하지 못한다. 그러니 수컷은 다른 용도로 사용해야 한다. 수컷 홀스타인의 성체는 체중이 1t에 달할 만큼 육중하다. 더구나 성장 속도도 빠르다. 이런 특징은 수컷 홀스타인을 육우의 대명사로 만들어주었다. 한우가 아닌 국내산 육우의 대부분이 수컷 홀스타인 고기다.

개에만 유독 관대한 인류

소나 돼지에 비해 체구가 작은 닭도 숫자로 된 기록을 남기기는 마찬가지다. 1년에 달걀을 얼마나 생산해야 우수하다는 지표가 존재한다. 현대인이 소비하는 축산물의 대부분은 제각각 할당된 수치를 달성하기 위해서 개량됐고, 관리된다. 

경제적 관점이 다른 모든 것을 압도하는 가축의 세계에서 지극히 예외적 존재도 있다. 개도 넓은 의미에서 가축의 범주에 포함된다. 서구 문화에서 개는 식용(食用)과는 관련이 없는 동물이었다. 가축을 포함한 사물의 가치를 판단할 때 경제성을 앞에 두는 인류의 특징을 고려하면 개라는 동물이 받는 대접은 상당히 유별나다. 

현대인은 다른 가축과 달리 이윤 창출을 목표로 개를 키우지 않는다. 개를 키우면 오히려 적지 않은 비용이 발생한다. 사료 값은 물론 병원비, 심지어 미용 비용도 발생한다. 경제성을 추구하는 인간이 왜 개만 특별하게 대우하는 걸까. 

소비사회에서 재화와 서비스는 모두 수치로 표시된다. 현대인은 돈을 사랑한다. 돈은 문제를 쉽게 풀어주는 만능키 노릇을 한다. 돈 되는 일이라면 평생 쌓은 명예나 지위도 헌신짝처럼 버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심지어 부모형제가 돈 때문에 등을 돌리고 평생 남남처럼 지내기도 한다. 

그런 현대인이 유독 개라는 동물에만은 대가를 바라지 않는다. 인류는 경제성이라는 가혹한 잣대를 모든 가축에 들이밀지만 개에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개라는 동물은 엄청난 혜택을 누리고 있다.

훌륭한 선수만 가지는 ‘그린 라이트’

개가 멧돼지를 공격하고 있다. [동아DB]

개가 멧돼지를 공격하고 있다. [동아DB]

야구는 감독의 경기 개입이 다른 스포츠에 비해 많다. 선수들은 수시로 떨어지는 작전 지시를 수행하고자 경기 내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자신 때문에 경기가 엉망이 될 수도 있다. 

치외법권을 누리듯 벤치의 작전 지시를 받지 않고 움직이는 선수도 있다. 뛰어난 주루 능력을 가진 선수는 자신의 판단 아래 마음대로 달리기도 한다. ‘바람의 아들’ 이종범 같은 도루왕이 그런 예다. 이들은 마음껏 달릴 권리를 부여받았다. 그린 라이트(green light)를 가진 것이다. 

발 빠른 주자만 그린 라이트를 확보한 게 아니다. 이대호, 김태균 같은 간판급 타자도 그런 권리를 보유했다. 아무리 한 점이 소중해도 강타자에게는 보내기 번트나 히트 앤드 런 같은 작전을 요구하지 않는다. 타자의 판단에 모든 것을 오롯이 맡기는 것이다. 강타자는 볼 카운트의 유·불리함도 무시한다. 자신이 좋아하거나 자신 있는 코스로 공이 오면 마음껏 휘두른다. 개도 야구의 빠른 주자나 강타자처럼 그린 라이트를 보유하고 있다. 그것도 한 장이 아닌 두 장이다. 그린 라이트를 개한테 준 존재는 당연히 개의 주인인 인간이다. 

애견가가 아니라면 사람과 동물이 한 가족이 될 수 있다는 말이 거슬릴 수 있으나 역사적으로 개는 인류와 가족처럼 살아왔다. 수만 년 전부터 개는 사람과 자신이 같은 무리에 속한 운명공동체라고 여기고 자신의 주인을 우두머리처럼 떠받들어 왔다. 충성심은 개의 삶이 다할 때까지 이어진다. 

개라는 동물은 배신할 줄 모른다. 공짜 밥을 먹은 적도 없다. 개가 먼저 두각을 나타낸 분야는 사냥이다. 자신의 장점인 예민한 후각과 청각으로 사냥감을 찾고 추격했다. 인간 세상에 합류한 개의 활약으로 인류의 단백질 획득은 과거보다 수월해졌다. 수렵과 채집의 시대, 인류의 식생활 개선에 개는 상당한 역할을 했다.

맹수의 후손, ‘가축 지킴이’ 되다

가축을 지키기 위해 개량된 목양견. [GettyImage]

가축을 지키기 위해 개량된 목양견. [GettyImage]

개는 사냥의 선봉장 역할을 맡으며 그린 라이트를 확보했다. 먹잇감의 냄새를 맡고 추적하는 일은 진행 사항을 자신의 주인에게 일일이 보고할 수 없다. 사냥터의 개는 자신의 본능과 판단에 따라 움직인다. 선(先)조치 후(後)보고가 인정된다. 

농경의 시대가 되면서 개는 전혀 다른 역할을 맡는다. 공격과 수비의 역할이 바뀌었다고나 할까. 

7000~8000년 전 소와 양, 4000~5000년 전 돼지가 인간 세상에 들어온다. 소, 양, 돼지는 가축이 되면서 인류의 보호를 받았다. 인류는 가축들이 안전하게 성체가 되도록 정성껏 보살폈다. 놀랍게도 인간은 다른 동물을 공격하는 맹수의 후손인 개를 가축의 지킴이로 임명한다. 

가축을 지키게 하려면 개의 공격 본능을 없애는 게 무엇보다 중요했다. 인류는 기발한 방법을 개발한다. 가축을 지키는 개들을 어릴 때부터 가축의 무리에서 함께 키웠다. 개는 가축을 자신의 가족처럼 여기면서 성장한다. 개량된 개들은 늑대, 여우, 곰 같은 맹수로부터 가축을 지키고자 목숨을 바친다. 

가축을 지키는 개를 목양견(sheepdog·牧羊犬)이라고 한다. 목양견 덕분에 인류는 포식자의 공격으로부터 가축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었다. 목양견도 사냥개와 마찬가지로 긴급 상황이 발생하면 선(先)조치, 후(後)보고한다. 

목양견이 주인에게 보고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주인이 멀리서도 들을 수 있도록 크게 짖고 또 짖는다. 그러면 주인이 달려와 후속 조치를 취한다. 이는 사냥감을 발견한 개들의 행동과 거의 유사하다. 

포식자들은 개의 짖는 행동이 어떤 의미인지 본능적으로 안다. 그래서 개들이 지키는 가축을 탐내지 않는다. 잘못 건드리면 총이라고 하는 천둥소리 내는 쇠막대기를 들고 사람들이 몰려오기 때문이다. 

이렇듯 개는 수렵과 채집 시대에 이어 농경시대에도 인류의 동물성 단백질 공급에 큰 역할을 하는 존재로 살아왔다. 그러면서 자신의 판단에 따라 조치할 수 있는 그린 라이트를 두 장이나 받았다.



신동아 2020년 7월호

이강원 동물칼럼니스트 powerranger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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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Opinion Leader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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