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은 지연, 민간은 7곳 취소
2~3년 기다렸는데… 사전청약 취소 3124가구
공사비 상승, 사업 지연… 분양가 부담에 포기 속출
국토부 “청약통장 부활, 당첨자 지위 승계 검토”
피해자 “정부 못 믿어, 소송 이어나갈 것”
5월 14일 국토교통부는 공공 사전청약 신규 시행을 중단할 것이라고 밝혔다. 자잿값 인상과 유물 발견 등의 여파로 제때 본청약에 돌입할 수 없는 단지가 늘면서 당첨자들 피해가 커질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사진은 서울의 한 공공주택 부지. [뉴스1]
본청약, 입주 지연 문제가 불거지며 정부가 사전청약을 중단하기에 이르렀지만 이미 시행한 사전청약 사업이 줄줄이 취소되면서 피해자가 계속해서 늘고 있다. 사업이 취소되지 않은 단지들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 공사비 증가와 건설 경기 악화로 본청약이 미뤄지면서 분양가가 예상보다 크게 치솟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만 민간 사전청약 7곳 취소
10월 인천 영종하늘도시에서 1239가구 규모가 배정됐던 민간 사전청약 취소 단지가 나왔다. 올해 들어서만 7번째다. 사전청약이 취소된 단지는 인천 영종국제도시 A16블록 제일풍경채. 해당 단지 시행사인 제이아이주택은 사전청약 당첨자들에게 ‘사전공급 계약 취소 안내’ 메시지를 보냈다. 안내문엔 “건설자재 원가 상승 및 사업성 결여 등 불가피한 사유로 부득이하게 분양사업을 취소한다”고 적혀 있었다.
이 단지는 지하 2층~지상 21층, 17개 동, 총 1457가구 가운데 1239가구를 사전청약으로 공모했다. 지난해 8월 본청약 예정이었으나 2025년 상반기로 본청약을 미룬 후 사업이 지연되다 결국 취소했다. 2년 전 높은 경쟁률을 뚫고 사전청약에 당첨됐던 당첨자들은 졸지에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됐다. 수년간 기다려온 ‘내 집 마련의 꿈’이 한순간에 무너진 셈이다.
‘내 집 마련’ 기회 준다더니 3년 만에 ‘폐지’
우미린 사전청약 당첨자는 278가구였다. 경남 밀양 부북지구 제일풍경채 S-1블록도 사전청약으로 320가구를 공급했다. 경기 파주 운정3지구 주상복합용지 3·4블록에 공급할 예정이던 주상복합단지는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A 운정역에 인접한 초역세권 입지로 관심을 받았던 단지다. 총 804가구 사전청약에서 각각 45대 1(3블록)과 19대 1(4블록)의 경쟁률을 보일 정도로 인기가 높았지만 시행사인 DS네트웍스가 건설사(시공사)를 구하지 못하면서 LH에 토지대금을 내지 못했다.
화성 동탄2 주상복합용지 C-28블록도 시행사 리젠시빌주택이 사업 취소를 선언했다. 지하 2층~지상 8층, 5개 동, 총 119가구 규모 조성 예정으로 이 가운데 108가구를 사전청약으로 공급했다.
인천 중구에 들어설 예정이던 영종 A41블록 한신더휴 사업도 취소됐다. 총 440가구 가운데 375가구를 사전청약으로 공급했던 단지다. 우미린부터 제일풍경채까지 올해 취소된 7곳에서 사전청약 공급물량만 3124가구에 달한다. 연내 본청약 예정이던 단지들의 청약이 지연된 것을 감안하면 사업 취소 단지가 더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사전청약은 본래 주택 착공 이후 시행하는 본청약보다 1~2년 앞서 분양하는 일종의 ‘선선(先先)분양’ 제도다.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9년 보금자리주택에 처음 도입됐다가 폐지됐다. 이후 문재인 정부 때인 2021년 7월 주택공급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재도입했다.
그러다 ‘3기 신도시’ 공급에 속도를 내기 위해 공공분양에 먼저 도입했다가 공공 물량만으로 청약 수요를 감당하기 어렵게 되자 같은 해 8월 민간까지 확대했다. 집값이 급격히 오르던 시기 주택의 조기 공급을 통해 서민·실수요자의 불안을 해소해 집값 상승을 막으려는 조치였다.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돼 수요자들이 더 저렴한 분양가로 조기에 내 집 마련 준비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았고, 경쟁률도 높았다.
문재인 정부는 2021년부터 공공 사전청약으로 4만 호를 공급했다. 2022년 5월 들어선 윤석열 정부도 지난해까지 공공분양 브랜드 ‘뉴:홈’을 통해 1만2000가구를 사전청약으로 공급했다. 공공 사전청약 물량만 총 99개 단지 5만2000가구에 달한다.
하지만 착공 전인 지구단위계획 승인 단계에서 사전청약을 받다 보니 본청약이 지연되는 사례가 빈번했다. 주택사업은 ‘지구계획 → 토지보상 → 택지조성사업 → 주택사업승인 → 주택착공’ 순으로 진행된다. 청약은 마지막 단계인 주택착공 후 진행하지만 사전청약은 1단계인 지구계획 직후부터 가능하다.
토지보상이 늦어지거나 택지 조성 단계에서 문화재나 법정보호종인 맹꽁이 등이 발견되면서 본청약이 늦어지는 사례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후 공사비 상승, 부동산 경기침체 등이 이어지며 지연 문제가 심화했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을 통한 자금 조달도 어려워졌다.
믿음이 배신으로… 당첨자들, 하루아침에 ‘날벼락’
결국 연이은 취소 사태는 시행사가 시공사를 제대로 구하지 못하거나, 토지를 제공한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 토지비를 내지 못해 사업이 좌초하는 데 따른 것이다. 정부는 이 같은 문제들로 2022년 12월 민간 사전청약을 중단한 데 이어, 올해 5월 공공 사전청약도 폐지했다. 올해 9~10월 본청약이 계획됐던 ‘3기 신도시’ 주요 지구들도 본청약을 6개월~2년씩 미뤘다. 공공 사전청약 단지 99곳 가운데 올해 5월 기준 본청약을 마친 곳은 13곳에 불과하다.
사전청약 당첨자들 사이에선 정부에 대한 믿음이 배신으로 돌아왔다는 성토 여론이 거세다. 내 집 마련 꿈을 안고 본청약 시기에 맞춰 계약을 준비하다가 하루아침에 ‘날벼락’을 맞았기 때문이다.
3월 LH는 공공 사전청약 단지 가운데 경기 군포 대야미 A2블록 신혼희망타운 단지 사전청약 당첨자들에게 본청약 2주를 앞둔 시점에 ‘본청약을 3년 뒤로 미룬다’는 내용을 전달했다. 어렵게 당첨된 데다가, 엄격한 자산과 소득 기준에 맞춰 계약금 마련에 나섰던 당첨자들은 분통을 터뜨렸다. 퇴직금을 받고자 직장을 그만두는가 하면, 전세를 월세로 돌린 당첨자도 다수였다. 계약금이 부족해 10년 부은 청약통장을 해지한 부부도 있었다.
본래 2027년 1월 ‘입주’ 계획이던 이 단지는 ‘본청약’이 2027년 상반기로 미뤄졌다. 대개 입주는 본청약보다 2~3년 뒤로 밀린다. LH는 부지 내 고압송전선로 이설을 지연 사유로 들었는데, 공사가 지연될 경우 입주 일정은 더 미뤄질 수 있다.
본청약 일정이 미뤄지면서 사전청약 권리를 포기하는 사례도 잇따랐다. 계약, 입주에 맞췄던 계획이 틀어지면서 자금 운용 등에 어려움이 생겨 어쩔 수 없이 이탈하는 경우가 발생한 것. 이에 국토교통부는 5월에서야 올해 9~10월 본청약 예정 단지 가운데 사업 지연이 확인된 단지 7곳의 일정을 당첨자에게 안내했다. 공공 사전청약도 폐지하기로 했다.
그러면서 본청약이 6개월 넘게 지연된 경우 계약금 비율을 10%에서 5%로 낮추고, 중도금 납부 횟수를 2번에서 1번으로 줄이는 방안을 내놨다. 취약계층에 한해서는 원하는 주택을 찾으면 LH가 전세계약을 한 후 신청자에게 재임대하는 전세임대를 안내한다고도 밝혔다.
하지만 민간 사전청약에 대해선 뚜렷한 구제책을 내놓지 않으며 소극적 태도를 보였다. 사업이 취소된 토지를 새로운 사업자가 사들여 주택을 건설할 때 기존 당첨자 지위를 승계하도록 강제할 법적 근거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정부를 믿었던 사전청약 당첨자들은 분통을 터뜨렸다. 정부가 “대책을 강구하겠다”는 ‘말’만 반복했기 때문이다. 10월 국정감사 시기가 돼서야 정부는 구제책을 내놓기 시작했다. 국정감사장에서 의원들의 질타가 이어지자 국토교통부는 민간 사전청약 취소 피해자 대책으로 ‘청약통장 부활’ 방안을 내놨다.
사전청약 당첨 후 사업 취소 기간 동안 통장 이력을 복구하고 추가 납입 시 해당 기간의 납입 횟수와 저축 총액도 인정해 주기로 했다. 이는 맹성규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위원장(더불어민주당)이 “청약통장 부활만으로는 3년 공백이 생겨 다른 청약자와 경쟁이 불가능하다”며 “사전청약 취소가 개인 잘못이 아닌 만큼 청약당첨자 피해가 회복돼야 한다”고 지적함에 따라 나온 대책이다.
사전청약 취소 피해자들은 이것이 실질적 대책이 되기 위해선 다른 곳에 청약할 기회가 아니라 ‘청약 지위 승계’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 피해자는 “청약통장 공백 메워준 게 구제책인가. 3년 기다려 신혼부부 특공도, 타 청약 도전 기회도 지나간 피해자 처지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정책”이라며 “청약 당첨자 지위 승계가 아니면 해결책이 없다”고 말했다.
사전청약 피해자 구제로 정책 신뢰 회복할까
10월 24일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이 서울 여의도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서 열린 종합국정감사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스1]
피해자들에게 청약통장 복원 외에 시행단지 사업 취소로 잃어버린 당첨자격의 지위 승계 가능성이 열린 셈이다. 서민을 위해 추진한 사전청약 정책이 서민의 눈물로 얼룩진 형국에서 실효성 있는 방안이 나올지 주목된다.
이에 대해 한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구체적인 공급 대책과 실효성 있는 보상 방안을 내놓아 국민들에게 정부와 공공기관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