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2월호

해후

  • 입력2008-12-02 11: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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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후

    일러스트·박진영

    담장 아래 요양소의 늙은 중국인이 체조를 한다, 이 얼 싼 쓰,

    금붕어 몇 마리를 투명비닐봉투에 넣고 걸어가기 좋은 봄날이다.

    공동식당 식탁 아래엔 바람 빠진 축구공, 따지고 보면

    외삼촌이 괴로운 것은 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싶어했기 때문이다.

    잠시만 멈추어보렴, 아름다운 시간아, 텔레비전을 끄지 못하는



    사소한 병을 앓는 외삼촌이 입술을 벌리고, 식당으로 날아 들어온

    벌을 본다. 하긴 병에 걸려도 병에 걸린 걸 모르는 사람은 아름답다.

    사방엔 거울이 없는 벽들, 모서리 없는 탁자들, 푹신한 소파와

    둥근 의자들, 얘야 사람의 옷소매를 그렇게 잡아당기면 못쓴다,

    해후
    박판식

    1973년 경남 함양 출생

    동국대학교 국문학과 및 동 대학원 석·박사

    現 동국대학교 강사

    저서: 시집 ‘밤의 피치카토’


    누구라도 태어나려면 한 번은 소중한 것과 끊어진 적이 있어야만 하는 법이란다,

    마당의 물통 속엔 가라앉은 유리병,

    튜브처럼 둥둥 떠 있는 구름,

    쾌활한 여자 아이의 왼쪽 손목엔

    금붕어가 들어 있는 비닐봉투.

    더 이상 아무것도 들어갈 게 없는 듯이 보이는, 안과 밖이 없는 거울.



    시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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