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7월호

日이 美에 ‘No’ 할 때 이병철‧이건희가 한 일

[노정태의 뷰파인더] ‘칩 워’ 번역자가 본 삼성 반도체의 역사와 미래

  •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철학 basil83@gmail.com

    입력2023-06-03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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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성 향한 상반된 시각의 대립

    • ‘집적회로’는 어떻게 탄생했나

    • 첨단과학에 기반한 상쇄 전략

    • 미·일 반도체협정과 韓의 기회

    • 원치 않는 싸움으로 몰린 미국

    • 이건희가 말한 반도체 業 본질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왼쪽)가 1983년 “반도체 산업에 본격 진출한다”는 이른바 ‘도쿄 구상’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이건희 당시 부회장(왼쪽에서 두 번째) 등 임원들과 구체적인 사업 계획을 논의하는 모습. [삼성전자]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왼쪽)가 1983년 “반도체 산업에 본격 진출한다”는 이른바 ‘도쿄 구상’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이건희 당시 부회장(왼쪽에서 두 번째) 등 임원들과 구체적인 사업 계획을 논의하는 모습. [삼성전자]

    “반도체는 순양의 미래 먹거리다. 그게 내 눈에만 보이는 기가?”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에서 배우 이성민이 연기한 진양철 회장의 대사다. ‘재벌집 막내아들’ 속 순양그룹의 모델이 삼성이라는 점은 작가 스스로 밝힌 사실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삼성 반도체 신화’의 가장 극적인 버전이다.

    반도체 산업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다. 삼성이 어떻게 반도체 산업에 뛰어들었고 지금의 위치를 차지하게 됐는지에 대해 설명하는 글이나 영상은 넘쳐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중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것은 이병철과 이건희라는 두 명의 주인공을 앞세워 거침없는 기업가 정신과 도전, 불굴의 투자와 미래를 바라보는 혜안 등을 강조하는 일종의 영웅 서사일 것이다.

    그와 반대되는 시각도 있다. 주로 진보진영이 공유하는 관점이다. 다른 재벌 그룹과 마찬가지로 삼성과 삼성의 반도체 산업 역시 노동자들의 희생에 바탕을 둔 성과물이라 주장하는 것이다. 지배 구조를 문제 삼는 이야기도 빠지지 않는다. 삼성그룹, 그중에서도 삼성전자가 대한민국 경제에 미치는 엄청난 영향력과 긍정적 기여에도 불구하고, 무턱대고 박수만 칠 수는 없다는 비판적인 이야기다.

    이 두 가지 서사는 삼성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상반된 시각을 보여준다. 하지만 두 가지 서사만으로 삼성전자, 반도체 산업의 성장과 미래를 온전히 서술할 수는 없다. 대한민국이 공업 생산품을 수출해 오늘의 경제 성장을 이룬 것은 우리의 노력뿐 아니라 우리를 둘러싼 대외 여건의 변화에 힘입은 바가 크기 때문이다.



    필자가 번역한 ‘칩 워’(원제는 ‘Chip War: The Fight for the World's Most Critical Technology’)는 바로 그 점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가장 좋은 참고서다. 저자인 크리스 밀러는 미국 터프츠대 국제관계학 대학인 플레처스쿨에서 국제사를 가르치는 역사학자다. 냉전 시기 미국이 소련을 어떻게 경제 봉쇄했는가를 전공으로 삼은 ‘문과생’이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칩 워’는 특별한 가치를 지닌다. 반도체라는 ‘20세기 현자의 돌’이 지니는 기술, 정치, 경제의 세 측면을 모두 살핀 책이라 할 수 있다.

    최근 국내에 번역 출간된 ‘칩 워’의 저자는 미국 터프츠대 국제관계학 대학인 플레처스쿨에서 국제사를 가르치는 크리스 밀러다. [부키]

    최근 국내에 번역 출간된 ‘칩 워’의 저자는 미국 터프츠대 국제관계학 대학인 플레처스쿨에서 국제사를 가르치는 크리스 밀러다. [부키]

    미사일 혹은 우주 개발 도구

    전기가 흐르는 물질을 도체, 전기가 흐르지 않는 물질을 부도체라고 부른다. 그런데 실리콘과 게르마늄 등 몇몇 원소는 특정 조건에 따라 전기가 흐르기도 하고 흐르지도 않기도 하는 특성을 지닌다. 이러한 현상을 발견한 과학자들은 ‘반도체(semiconductor)’라는 명칭을 붙였다.

    미사일을 날리고, 폭탄을 떨어뜨리고, 비행기를 개발하는 등 그 모든 현대 군사 작전과 업무에는 계산이 필요하다. 똑같은 미사일이지만 그 안에 폭탄을 실으면 대륙간탄도미사일이 되고, 인공위성을 탑재하면 평화적 우주 개발의 도구가 된다. 문제는 그 모든 과정에 있어서 대단히 복잡한 계산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세계 각국은 그러한 계산의 수요를 기계식 계산기를 통해 충당해 왔다. 톱니바퀴와 도르래 등으로 이뤄진 계산기에 숫자를 입력하고 손으로 돌리면 결과가 나오는 것이다. 하지만 기계식 계산기는 느렸고, 곧잘 고장 났으며, 하나의 기계가 미리 설정된 한 종류의 계산밖에 처리하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었다.

    과학자와 기술자들은 전자식 계산기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전류가 흐르면 1, 전류가 흐르지 않으면 0이라는 신호를 부여한다. 계산해야 할 모든 숫자를 0과 1로 이루어진 이진법으로 바꾼다. 그러면 0과 1의 신호만으로 모든 계산을 처리할 수 있다. 이것이 그 유명한 ‘튜링 머신’ 작동 원리다.

    이 발상은 성공적이었다. 1943년 미국은 초대형 전자계산기 에니악(ENIAC)을 만들었다. 1만8000개의 진공관으로 이뤄진 에니악은 초당 수백 개의 곱셈을 해낼 수 있었다. 이는 그 어떤 인간 계산원보다 빠르고 정확했다.

    문제는 에니악과 같은 전자식 계산기에 들어가는 ‘스위치’의 속성이었다. 어른 주먹 크기의 진공관은 너무 크고 수명도 짧았다. 들어가는 전력도 컸기 때문에 커다란 회의실을 가득 채우는 에니악은 가동할 때마다 뜨거운 열기를 뿜어냈다. 평균적으로 이틀에 한 번꼴로 고장 나는 진공관 역시 골칫거리였다. 미국은 새로운 종류의 기술을 필요로 했다.

    반도체가 그 해답을 제시했다. 실리콘이나 게르마늄 같은 반도체성 물질을 이용해 스위치를 만들면 진공관처럼 고장 나지 않았다. 더 중요한 건 그 크기를 혁신적으로 줄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사람이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며 스포이드로 화학 약품을 떨어뜨려 만들었다. 그것만으로도 진공관에 비해 매우 작았지만 미국의 천재들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트랜지스터를 비롯한 모든 반도체 소자들을 단일한 반도체 위에 구성하는, 이른바 ‘집적회로’를 탄생시킨 것이다.

    미국의 항공 우주 분야는 반도체, 구체적으로는 집적회로의 힘으로 우주를 날았다. 진공관 컴퓨터로 컨트롤하는 우주선에 사람을 싣고 달에 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아폴로 계획은 창립 후 늘 경영 위기를 겪던 페어차일드 반도체를 반석 위에 올려놓았다.

    일본의 ‘반도체 굴기’

    최근 북한의 미사일 혹은 우주발사체를 둘러싼 소동이 잘 보여주고 있다시피 평화적 로켓과 군사적 미사일은 그야말로 ‘한 끝 차이’다. 로켓을 조종하는 데 쓰이는 반도체는 그 자체가 무기의 핵심 부품으로, 군사 영역과 불가분의 관계를 이룬다. 반도체는 단지 평화적인 목적으로만 사용되지는 않았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소련과의 냉전을 시작한 미국은 어떻게 유럽 전선을 지킬 수 있을지 고심했다. 소련의 전차와 재래식 무기는 압도적인 물량을 과시했고, 미국으로서는 이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 미국의 선택은 첨단과학의 힘으로 군사력을 정교하게 만들어 소련을 앞지르는 것이었다. 이른바 ‘상쇄 전략(Offset strategy)’이었다.

    집적회로는 미국의 핵 기지에서 날아가는 대륙간탄도미사일의 두뇌가 됐다. 반도체의 힘으로 유도되는 미사일은 베트남전에서 첫선을 보였고, 걸프전에서 그 압도적인 위용을 과시했다. 중동에서 군사력으로 가장 강력한 나라로 꼽히던 이라크의 정예 군대가 마치 눈이 달린 것처럼 날아와 꽂히는 미국의 미사일 앞에 추풍낙엽처럼 무너지고 말았다.

    걸프전의 승리와 소련의 해체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았다. 미국의 ‘불꽃놀이’를 바라보며 소련의 엘리트들은 맞서 싸울 수 있다는 의지를 상실했다. 1991년 초, 걸프전은 미국의 승리로 끝났다. 1991년 말, 냉전 역시 미국의 승리로 끝났다. 소련의 물량 공세 앞에서 미국이 택한 ‘상쇄 전략’은 이렇게 큰 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반도체가 영원히 미국‘만’의 힘으로 남아있지는 않았다. 고도화된 첨단 반도체에 힘입어 국방 전략을 짠다는 것은 그 고도화된 반도체에 의존한다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문제는 반도체 기술이 발전하고 점점 복잡해지면서 미국이 반도체에 대한 전적인 통제력을 가질 수 없게 됐다는 데 있다.

    1980년대부터 그런 상황이 가시화됐다. 소니로 대표되는 일본 전자 기업들은 미국에 트랜지스터 라디오부터 시작해 전자 기기를 만들어 팔았다. 소비자용 제품뿐 아니라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기기, 소재, 부품 분야까지 일본 기업들이 미국 기업의 시장을 빼앗고 있었다.

    1989년 소니의 창업자 모리타 아키오는 극우 정치인 이시하라 신타로와 함께 ‘‘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이란 책을 써서 워싱턴 정가를 충격에 빠뜨렸다. 더는 일본에 반도체 주도권을 내줘서는 안 된다는 위기감이 본격화한 순간이었다.

    미국 반도체 기업들의 원성이 터져 나오면서 ‘일본이 더 이상 반도체 산업을 쥐락펴락하게 둬서는 안 된다’는 위기감이 형성되던 무렵이었다. 모리타와 이시하라의 책은 미국인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줬다. 이미 1986년 최초의 미·일 반도체협정이 이뤄졌으나 그 후 1991년과 1996년 두 차례의 추가 협정이 이뤄진 것은 워싱턴 정가의 변화한 분위기와 무관치 않았다.

    CIA는 내부 회람을 위해 비공식적으로 ‘‘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을 번역했는데, 그 번역본이 워싱턴의 서점에 유통될 지경이었다. 어떤 하원 의원은 그 책의 내용을 알리기 위해 의회 기록에 집어넣기까지 했다. 결국 공식 영어본은 모리타의 원고를 빼고 이시하라의 단독 저서로 출간됐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미국은 일본의 ‘반도체 굴기’를 도저히 내버려 둘 수 없게 된 것이다.

    세계적 디램 생산자로 거듭나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가운데)이 2월 17일 삼성전자 천안캠퍼스를 찾아 반도체 패키징 라인 현장을 둘러보면서 사업전략을 점검하는 모습. [삼성전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가운데)이 2월 17일 삼성전자 천안캠퍼스를 찾아 반도체 패키징 라인 현장을 둘러보면서 사업전략을 점검하는 모습. [삼성전자]

    상황이 이렇게 미국에 불리하게 전개된 것은 반도체가 지닌 경제적 측면 때문이다. 반도체를 둘러싼 지정학이 지금의 형태를 띠게 된 것은 결코 미국의 ‘의도’가 아니었다. 실리콘밸리의 기업들이 치열하게 경쟁한 끝에 만들어진 결과물일 뿐이다. 더 싼 가격으로 반도체를 생산할 것, 더 많은 이들에게 판매할 것, 더 큰 수요를 이끌어 낼 것.

    자본주의의 힘은 거침없이 세계화를 향했다. 처음에는 일본이 ‘저렴한 노동력’의 공급원이었다. 중국은 다음 순서를 넘겨받을 뻔했으나 공산국가라는 불리함 위에 마오쩌둥의 문화혁명이 추가됐다. 중국이 그렇게 ‘잃어버린 20년’을 보내는 동안 한국과 대만은 반도체 기술 위에서 첨단 제조업을 수행하는 나라가 되기 위한 수순을 밟아나갔다.

    반도체는 세계화의 산물이다. 세계화는 반도체 없이 불가능했다. 반도체와 세계화는 결국 하나로 맞물려 있다. 전 세계 사람들이 기능적으로 거의 동일한 스마트폰을 들고 인터넷에 접속해 유튜브, 틱톡, 페이스북, 트위터를 이용하는 지금은 인류사적으로 매우 놀라운 시대다.

    이런 세상이 열린 건 반도체라는 첨단의 기술과 이를 통해 국방력을 유지하려 했던 미국의 전략, 그 기술을 군사가 아닌 민간용 시장에서 소비함으로써 더 많은 돈을 벌고자 했던 미국 기업들의 자본주의적 열망이 결합한 결과다.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한국인들이 흔히 품는 상상이 있다. 미국 정부, 특히 국방부는 세상의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며 모든 기술 발전을 쥐락펴락한다는 생각이다. 그것은 1970년대 정도까지는 참이었다. 하지만 미국의 반도체 기업들은 이익 확대를 위해 반도체를 저렴한 가격에 생산해 전자기술의 혁명을 민간 시장에 뿌렸고, 그 결과 반도체에 대한 미국 정부의 통제력은 약해져만 갔다.

    그 흐름에서 가장 큰 이익을 본 나라는 일본이었다. 적어도 1980년대까지는 그랬다.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벌였던 적국, 두 발의 원자폭탄을 맞고 무조건 항복했던 그 나라가 이제는 워크맨을 만들어 수많은 미국 젊은이들의 귀뿐 아니라 마음까지 빼앗고 있었다. 결국 미국은 세 차례에 걸친 미·일 반도체협정으로 일본 반도체의 경쟁력을 억눌렀고, 그 틈을 치고 들어가 한국의 반도체 기업들은 세계적인 디램(DRAM) 생산자로 거듭나게 된다.

    일본의 기를 죽였지만 미국의 반도체 주도권은 더욱 약해져만 갔다. 반도체라는 기술 자체가 너무도 고도화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트랜지스터의 집적도는 1990년대부터 서서히 한계에 달하고 있었다. 더 작은 회로에 더 많은 트랜지스터를 탑재하기 위해서는 가시광선이 아닌 다른 빛을 이용해 회로를 새겨 넣어야 했다.

    극자외선(EUV) 기기를 개발하기 위해 인텔을 중심으로 반도체 기업과 미국이 컨소시엄을 결성한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문제는 미국 기업과 정부가 돈을 대서 연구했지만, 첨단 반도체를 만들기 위한 첨단 리소그래피 장비를 만들 수 있는 유일한 회사 ASML은 미국 회사가 아니었다.

    미국에 불리한 상황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ASML의 기기를 이용해 세계 최고의 반도체를 만들 수 있는 사실상 단 하나의 기업은 TSMC인데, 그 회사는 중국과 좁은 해협 하나를 두고 마주 보고 있다. 가장 중요한 생산 기기, 반도체의 생산력을 좌우할 수 있는 그것은 네덜란드에서 생산되며, 반도체의 생산력 그 자체는 대만에 집중돼 있다. 시진핑의 중국은 대만을 ‘수복’하고 중화 제국의 영광을 되찾을 그 날을 꿈꾼다. 반도체에 의존하는 미국의 국방 전략이 미국을 원치 않는 싸움으로 몰아넣은 셈이다.

    놀라운 타이밍의 산물

    삼성과 반도체, 더 나아가 대한민국과 반도체의 관계는 이러한 세계사적 흐름과 떼어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우리가 후진국에서 출발해 선진국의 자리를 넘보는 세계 역사상 유일한 나라가 된 것은 반도체 산업의 전지구적 발전과 떼어놓고 이야기할 수 없는 사건이다.

    1983년으로 돌아가 보자. 이병철은 이른바 ‘도쿄 선언’을 통해 삼성이 반도체 분야, 그것도 첨단 반도체 제조에 뛰어들 것을 천명했다. 그의 뒤를 이어 삼성그룹의 회장이 된 이건희는 10년 후인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임직원들을 불러 모았다. 삼성그룹의 정체성과 지향성을 새롭게 다지는 그 자리에서 삼성전자의 반도체 분야는 그룹 전체에 적용될 일종의 ‘모범’으로 제시됐다. 이건희가 말한 ‘반도체 업의 본질론’을 인용해볼 차례다.

    “반도체업은 박사 학위를 가진 사람부터 기능직 사원에 이르기까지 수백 명의 종업원이 단 한 번의 실수도 없이 300여 개 공정을 수행해야 한다는 점에서 전 직원들이 가족처럼 믿고 합심해 일하는 게 중요한 양심 산업이자 고지능 노동집약 사업이다. 또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이 모두 결합된 최첨단 고두뇌 자본집적 사업이며, 영업적 측면에서는 남보다 빨리 양산해야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타이밍 사업이다.”

    여기서 가장 눈길을 끄는 단어는 역시 ‘타이밍’이다. 반도체 산업이 경기를 타는 산업이라는 것, 불황에도 멈추지 않고 투자를 해야 시장이 되살아났을 때 큰 이익을 볼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쓴 표현이다.

    하지만 우리의 해석이 그러한 차원에서 멈춰야 할 이유는 없다. 삼성전자가 반도체 산업에 뛰어들고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것 자체가 놀라운 ‘타이밍’의 산물이었으니 말이다. 삼성은 일본이 ‘No’라고 말하며 미국과 멀어진 찰나, 몇 나노미터도 되지 않았을 기회의 틈을 잡아 오늘의 한국 반도체 산업을 이뤄낸 것이다.

    ‘프랑크푸르트 선언’으로부터 30년이 흐른 지금, 반도체 산업의 본질은 달라지지 않았다. 반도체가 전략 물자로서 갖는 위상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졌다. 글로벌 공급 사슬 역시 반도체 그 자체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다. 덕분에 미국은 중국의 첨단 반도체 제조를 어렵지 않게 가로막을 수 있으나, 중국이 저가형 반도체 시장 점유율을 높여가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게 됐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후, 세계사는 이전과 전혀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낡은 질서는 사라졌지만 새로운 질서는 아직 떠오르지 않았다. 이것은 위기지만 우리에게는 기회일지도 모른다. 30년 전 이건희가 포착했던 것과 같은 ‘타이밍’이 언제 어떤 식으로 열릴지 우리는 알 수 없다.

    중요한 건 기회를 예측하는 것이 아니다. 기회가 어떤 식으로 주어지건 대응할 수 있는 준비가 돼있느냐다. 경기가 살아날 때를 기다리며 불황을 무릅쓰고 투자를 계속해야 하는 ‘타이밍 사업’인 반도체에서 우리가 얻을 교훈은 그런 것이 아닐까.


    노정태
    ● 1983년 출생
    ● 고려대 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석사
    ●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 저서 : ‘불량 정치’ ‘논객시대’ ‘탄탈로스의 신화’
    ● 역서 : ‘밀레니얼 선언’ ‘민주주의는 어떻게 망가지는가’ ‘모던 로맨스’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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