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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戰 NATO = 신라-당 전쟁 토번제국, 대한민국은?

[백승주 칼럼] 독일 참모총장 “우크라-러시아戰, 푸틴 核 사용으로 귀결할 수도”

  • 백승주 전쟁기념사업회 회장·前 국회의원

    입력2023-06-29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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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크라-러시아戰에 나당전쟁 떠올리다

    • 獨 참모총장 눈으로 본 우크라-러시아戰

    • “韓 핵 없이 무엇으로 안보 이룰지 고민해야”

    • 김정은 의지에 韓 안보 걸어서야…

    지난해 2월 26일 우크라이나 군인이 키예프의 한 거리에서 폭파된 군용 트럭의 잔해 옆을 지나가고 있다. [AP 뉴시스]

    지난해 2월 26일 우크라이나 군인이 키예프의 한 거리에서 폭파된 군용 트럭의 잔해 옆을 지나가고 있다. [AP 뉴시스]

    나당전쟁은 한국 역사에서 위대한 전쟁이지만 그다지 각광받지 못했다. 신라의 삼국 통일에 결정적 역할을 했으면서도 한국 역사에서 전혀 관심받지 못한 나라가 티베트, 과거 ‘토번제국’이다.

    660년과 668년 나당 연합군은 각각 백제, 고구려를 멸망시켰다. 백제·고구려 멸망이 곧 신라의 삼국통일을 의미하진 않았다. 당나라는 백제 지역에 웅진도독부, 고구려 지역에 안동도호부, 신라 지역에 계림도독부라는 관청을 두고 실질적으로 한반도를 복속하려 했다. 이에 신라 지도부는 당나라의 야욕에 맞서 당나라에 선전포고했다. 나당전쟁의 시작이다.

    나당전쟁은 서기 670년 3월 신라의 선전포고로 시작돼 676년 11월 기벌포 전투로 끝난 7년 전쟁이다. 신라는 이 전쟁에서 승리하며 한반도 첫 번째 통일국가를 이뤄냈다. 신라가 승리한 요인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것은 신라 지도층 결단이다. 신라 지도층은 전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패망한 백제와 고구려 군대를 적극 끌어들여 총력전을 펼쳤다. 그럼에도 신라의 군사력은 당시 절대강국 당나라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약했다. 이러한 열세를 상쇄시킨 게 바로 토번제국이다.

    토번제국은 티베트고원 중앙에 세워진 고대 왕국이다. 617년에서 842년에 송첸캄포에서 랑다르마에 이르기까지 200여 년간 지속된, 티베트 지역 역사상 가장 강성했던 왕조다. 영역은 현재의 티베트와 남아시아, 중앙아시아를 아울렀다. 나당전쟁 시기 강성함으로 당나라를 위협하고 조공까지 받았다.

    669년엔 당나라를 침략해 큰 타격을 가하기도 했다. 당나라가 신라와의 전쟁에 국가 자원을 집중할 수 없도록 만든 것이다. 토번이 당나라를 견제하지 않았다면 당나라는 신라·고구려·백제 모두를 복속했을 가능성이 크다. 물론 토번제국이 신라를 위해 당나라와 전쟁을 한 건 아니나 결과적으로 신라를 돕게 됐다.



    우크라-러시아戰 목도한 獨 참모총장

    지난해 2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시작된 양국 간 전쟁이 1년 넘게 진행되고 있다. 필자는 약소국 우크라이나와 강대국 러시아의 전쟁을 지켜보면서, 작은 신라가 큰 당나라를 상대로 싸운 한국 역사를 떠올렸다.

    군사전문가와 국제정치학자 대부분은 러시아가 단기간에 승리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이 이끄는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초기 공세를 막아내고 대반전을 만들어내고 있다. 양국 간 전쟁은 유럽을 넘어 전 세계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향후에도 지속적으로 변화를 가져올 것이고, 당연히 한반도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토번의 당나라 침공이 한반도 통일 과정에 영향을 미친 것처럼 우크라이나전 이후 국제정세는 한국 안보, 한반도 미래에 상당한 파급효과를 불러올 것이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을 다각적으로 분석해야 하는 이유다.

    6월 5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사업회에서 카르스텐 브로이어 독일 연방군 참모총장(오른쪽)이 백승주 전쟁기념사업회 회장과 환담을 나누고 있다. [뉴스1]

    6월 5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사업회에서 카르스텐 브로이어 독일 연방군 참모총장(오른쪽)이 백승주 전쟁기념사업회 회장과 환담을 나누고 있다. [뉴스1]

    이러한 상황 가운데 현충일을 하루 앞둔 6월 5일 카르스텐 브로이어(Casten Breuer) 독일 연방군 참모총장이 전쟁기념사업회를 찾았다. 그는 독일 참전 기념비에 새겨진 독일 참전 용사의 활동을 추모하기 위해 기념비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바쁜 일정에도 참전 용사를 추모하려고 방문한 그의 발걸음과 눈빛 속에서 강대국이 얼마나 보훈 정신을 우선하는지, 또 이를 통한 정신 전력 유지에 정성을 들이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독일은 6·25전쟁 때 한국에 전투병을 파견하지 않았지만 적십자 야전병원을 파견해 1954년 5월부터 1959년 3월까지 24만여 명의 환자를 치료했다. 당시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 패전국으로 아직 군대를 보유할 수 없었다. 유엔회원국도 아니었지만 자유를 위한 투쟁을 지원하기 위해 그와 같은 결정을 한 것이다.

    6·25전쟁 이전 과거를 돌아보자. 독일이 어떤 나라인가. 제1차 세계대전,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20세기 전반 최고 군사 강국이다.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 독일은 폴란드, 우크라이나 서부 지역에 친(親)독 정부를 건설한 적이 있는 등 우크라이나와 역사적으로 긴밀한 관계가 있다. 멀리 떨어져있거나, 역사적으로 접점이 없는 국가의 사람보다야 독일의 군사 관계자가 우크라이나 상황을 더 잘 알고 있을 것이 자명했다.

    이에 필자는 독일 참모총장의 안목에 비춰 우크라이나 전황을 파악하고 싶었다. 한 시간가량 환담을 나눴다. 주로 필자가 질문을 던졌고, 그는 친절히 대답해 줬다. 환담 이후 필자가 “이 대화 내용을 ‘신동아’를 통해 알리고 싶다”고 말하자 그는 “독일군 전체를 대표해서가 아니라 개인적 의견임을 전제로 소개하길 바란다”며 승낙했다. 브로이어 참모총장과 나눈 문답은 다음과 같다.

    “게임체인저=러시아 핵무기”

    5월 23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가운데)이 우크라이나 동부 격전지 도네츠크를 찾아 병사들과 기념 촬영하고 있다. [AP 뉴시스]

    5월 23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가운데)이 우크라이나 동부 격전지 도네츠크를 찾아 병사들과 기념 촬영하고 있다. [AP 뉴시스]

    현재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상황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가.

    “5월 중순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초청으로 우크라이나에 다녀왔다. 전황이 시시각각 변화하는 상태다. 목격한 현장은 끔찍했다. 야외 카페에 100여 개 자리가 거의 차 있었는데, 손님의 80% 이상이 여성이었다. 남자들은 모두 전쟁터로 끌려갔기 때문인 듯하다. 전선에서 후퇴하던 러시아 군인들이 참호 속에 사망한 채로 남겨진 사진도 봤다. 전쟁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 얼마나 가까이 다가왔는지 느낄 수 있었다. 전쟁이 진행되면서 양국 국민 간 쌓인 증오도 확인했다. 종전되더라도 이것이 해소되기까지 3세대는 거쳐야 할 듯하다.”

    우크라이나에 유리한 요소는 무엇인가.

    “서방 국가들의 많은 군비 지원으로 다수의 군수공장이 세워지고 있는 게 가장 큰 강점이다. 드론 등 생산된 전쟁 물자를 바로 전방으로 보낼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만약 지원이 끊기면 상황은 우크라이나에 굉장히 비관적으로 흘러갈 것 같다.”

    우크라이나의 러시아에 대한 대공세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는데.

    “전술적으로 보건대 대공세는 없을 것 같다. 그보다는 여러 지역에서 산발적 공세를 벌여 전선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갈 듯하다. 내가 봐도 이 방법이 효과적일 것 같다. 우크라이나군의 사기가 높고 무엇을 위해 싸워야 하는지도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 시민들 역시 단결해서 함께 싸우고 있기 때문에 성공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인다.”

    전쟁이 어떤 형태로 마무리되리라 보는가.

    “현재로선 예측하기 힘들다. 양국 대통령이 서로 양보할 수 없는 상황까지 왔다. 우크라이나 측은 돈바스 지역을 포함해 원래 우크라이나 영토를 한 치도 양보하지 않겠다고 공언했고, 러시아 측은 러시아가 점령한 곳은 이제 자국 영토라고 말하고 있다. 양립 불가능한 주장이다.”

    우크라이나가 불리해지면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가 파병하리라고 보나.

    “이 역시 예측하기 어렵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자체가 처음부터 예측하기 힘든 전쟁이었다. 개인적으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이렇게 공격할 경우 단기간, 2~4주면 끝날 것이라 생각했다. 이렇게 길게 진행될 것을 예상하지 못했다. 이 전쟁이 미래에 어떤 양상을 보일지 현재로서는 예측하기 어렵다.”

    향후 전쟁의 ‘게임체인저’는 무엇일까.

    “핵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푸틴이 핵무기를 전술적으로 이용할지, 전략적으로 활용할지에 대해 많은 논의가 있을 것 같다. 푸틴의 비이성적(irrational) 행동도 전쟁에서 중요한 요소다.”

    종전 후 러시아의 국제적 영향력이 급격히 약화될 가능성은 없나.

    “러시아의 인구·군사력·자원 등을 고려할 때 가능성이 매우 낮다고 생각한다. 상당한 영향력을 유지할 것이다.”

    4월 한미 정상회담에선 한국이 핵을 개발하지 않는 것으로 합의가 이뤄졌지만 북핵으로 인해 많은 한국 국민이 한국도 핵을 보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의 독자적 핵보유나 미국 전술핵 배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본 문제가 중요하게 논의되는 사안임을 알고 있다. 한국이 핵무기를 갖고 있지 않다면, 그 대신 어떻게 안전을 보장받을 것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주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제사회의 존경받는 일원으로서 투명하게, 이성적으로 행동한다면 한국의 정책은 모든 국가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난해 3월 우크라이나 마리우폴 외곽 지역에서 주민들이 제대로 수습하지도 못한 시신을 고랑에 내려놓고 있다. 카르스텐 브로이어 참모총장은 백승주 회장과 환담하면서 “현장 상황은 끔찍하다”고 말했다. [AP 뉴시스]

    지난해 3월 우크라이나 마리우폴 외곽 지역에서 주민들이 제대로 수습하지도 못한 시신을 고랑에 내려놓고 있다. 카르스텐 브로이어 참모총장은 백승주 회장과 환담하면서 “현장 상황은 끔찍하다”고 말했다. [AP 뉴시스]

    ‘안보 체크리스트’ 점검할 때

    필자는 브로이어 참모총장과 나눈 문답에서 “우크라이나 국민과 젤렌스키 대통령이 러시아와 왜 싸워야 하는지 분명히 인식한 상태이며 잘 단결돼 있다”는 말이 가장 인상적이다. 손자병법엔 전쟁에서 국가 지도자가 가져야 할 원칙에 대해 “전쟁이란 국가 대사이며 생사의 바탕이자 존망의 갈림길이니 엄정하게 살피고 계책을 잘 수립해야 한다(孫子曰: 兵者, 國之大事. 死生之地, 存亡之道, 不可不察也)”라고 쓰여 있다. 이 말에 따르자면 젤렌스키 대통령이 푸틴 대통령보다 전쟁의 본질을 더 잘 이해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또 느낀 점은 나토 등 국제사회가 우크라이나를 돕고 있는 것이 나당전쟁에서 신라를 도운 셈인 토번제국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한국은 이러한 상황을 반면교사 삼아 내실을 다져야 한다. 현재 한국이 점검해야 할 ‘안보 체크리스트’가 그려진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전술적·전략적으로 핵무기를 사용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AP 뉴시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전술적·전략적으로 핵무기를 사용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AP 뉴시스]

    첫째, 국정 지도자들이 전쟁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살펴야 한다. 예외적 상황을 제외하면 대개 지도자들은 국회를 통해서 충원된다. 여야 정치인들이 ‘전쟁 마인드’를 지득하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 둘째, 정신 전력의 중요성을 인지해야 한다. 강대국 러시아를 상대로 젤렌스키 대통령이 확보한 전쟁 지속 능력은 정신 전력에 기초를 두고 있다. 카페 손님의 80% 이상이 여성이라는 목격담엔 싸울 수 있는 자는 국민 모두가 전선에 가 있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셋째, 국제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브로이어 참모총장은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대해 갖는 비교우위가 ‘서방의 지원’이라고 말했다. 이는 국제 협력이 전쟁 수행 능력 확보에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지적한 셈이다. 한국의 일부 정치인이 남북 간 경제력 격차를 근거로 한국이 전쟁 수행 능력에서 절대적 우위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발상인지 느끼게 한다.

    넷째, 국제 정세 변화를 신중히 평가해야 한다. 브로이어 참모총장은 설사 러시아가 전쟁에서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 못하더라도 러시아의 영향력이 남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전쟁 이후 러시아와의 관계를 이미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사료된다. 참으로 냉철한 사리분별이다. 한국도 이러한 태도를 필히 참고해야 한다.

    다섯째, 푸틴 대통령의 비이성적 판단으로 인해 ‘게임체인저’로 작용할 수 있는 핵무기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본토 공격에 임하면 푸틴 대통령은 게임체인저로서 핵무기를 전술적·전략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이러한 전례는 시도 때도 없이 핵무기를 사용하겠다고 엄포를 놓곤 하는 북한 김정은에게 길잡이가 될 수 있다.

    한국 국정 지도자들은 브로이어 참모총장의 “한국은 핵무기 위협에 대해 안전을 확보하려는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는 말을 새겨들어야 한다. 그의 말은 “핵무기를 폐기하겠다”며 공수표를 남발하는 김정은의 입에 한국 안보를 기대려는 정치지도자들에 대한 일갈이다.

    백승주
    ● 1961년 출생
    ● 부산대 정외과 졸업, 경북대 대학원 정치학 박사
    ● 前 한국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장
    ● 前 국방부 차관, 20대 국회의원
    ● 現 전쟁기념사업회 회장, 국민대 석좌교수, 한중안보평화포럼 회장
    ● 저서 : ‘백승주 박사의 외교이야기’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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