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동안 비대면 진료 3786만 건
초진은 대면 진료해야 하는 이유
‘타다 사태’와는 다른 복잡한 문제
20~40대, 수도권이 주 사용자인데…
배달 플랫폼과 큰 차이 없는 기술
지난해 2월 서울의 한 병원에서 의사가 재택 치료 중인 코로나19 환자에게 전화를 걸어 비대면 진료를 하고 있다. [동아DB]
먼저 원격의료·원격진료·비대면 진료 등 각 용어의 정의와 이 문제로 의사 파업까지 일어난 배경을 알아야 한다. 원격의료는 ‘의료인이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해 멀리 떨어져 있는 환자의 질병 관리, 진단, 처방 등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원격의료기기로 환자 상태를 모니터하거나 현지 의료인이 멀리 떨어진 의료인과 통신수단으로 협진하는 것 모두를 포함’한다.
원격진료는 의사의 진단과 처방에 국한된 원격의료의 하위 영역이다. 영토가 넓은 미국과 섬이 많은 일본에서 1990년대 후반 원격의료가 합법화했다. 이에 한국도 2002년 ‘현지 의사가 멀리 떨어진 의사에게 지식이나 기술자문을 구하는’ 매우 제한적 형태로 의료법을 개정했다. 하지만 원격진료는 여전히 불법이었다. 박근혜 정부가 원격진료 도입을 추진했지만 2014년 의사협회가 일방적 추진에 반대하며 파업해 수포로 돌아갔다. 당시 필자가 내과 레지던트를 하며 겪었던 분위기를 상기해 보면, “환자를 청진, 촉진하지 않는 진료는 인정할 수 없다”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원격진료로 대형 병원의 환자 독점을 우려하는 개원가(開院街)의 반발이 거셌던 것으로 기억난다.
암 환자에 진통제 처방할 뻔한 경험
그러다 문재인 정부 시기 코로나19 팬데믹 사태가 발생하며 일대 전환이 일어났다. 원격진료의 필요성이 어느 때보다 커진 틈을 타 정부는 의료계 파업으로 부정적 이미지가 있는 원격진료 대신 비대면 진료라는 용어를 쓰기 시작했다. 그러곤 2020년 2월부터 감염병 위기대응 ‘심각’ 단계 이상에 한해 비대면 진료를 허용했다. 그렇게 3년 동안 1419만 명을 대상으로 3786만 건의 비대면 진료가 이뤄졌다. 비대면 진료를 경험한 환자의 62.3%가 진료에 만족했으며 향후 활용 의향은 87.9%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하지만 플랫폼 기업들의 불법행위가 문제가 됐다. 약사법상 전문의약품 광고는 금지돼 있는데 플랫폼 기업들이 다이어트 약, 발기부전 치료제, 향정신성 약물을 이름만 조금 바꿔 처방받을 수 있다고 광고했고, 결국 약사법 위반으로 검찰에 기소됐다. 또 향정신성 약물 처방이 이전에 비해 두 배가량 늘어나 약물 오남용 문제도 제기됐다.
대형 물류센터에 약국을 세우고 약사를 고용해 수익을 창출하거나 무자격자에게 의약품 조제를 맡긴 사례도 있었다. 의료법상 영리를 목적으로 의료기관의 소개·알선·유인 행위가 금지돼 있는데 플랫폼 가입자들에게 포인트를 제공해 진료비로 쓸 수 있게 한 일도 있었다. 개인정보 처리 시스템에 대한 접근 통제를 소홀히 하고 접속 기록을 보관하지 않거나 주민등록번호와 계좌번호를 암호화하지 않아 과태료 처분을 받기도 했다.
이렇게 의약계의 신뢰를 잃은 상태에서 코로나 ‘심각’ 단계가 6월 1일 ‘경계’로 하향 조정됐다. 그럼에도 정부가 비대면 진료를 지속하기 위해 시범 사업을 진행하자 의약계의 반발이 이어졌다. 의사협회는 대의원 조사상 65%가 비대면 진료에 반대했다. 약사회는 구체적인 조사를 실시하지는 않았으나, 필자가 이 글을 쓰기 위해 취재한 약사들에 따르면 90% 이상이 반대한다고 한다.
약사회는 비대면 진료가 완전히 합법화하면 앞서 언급한 문제가 증가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환자에게 의료기관 및 약국 알선 수수료를 받을 수 없는 플랫폼의 수익 구조상 자체적으로 물류센터에 배송 전문 약국을 설립해 수익을 얻을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지역사회의 건강을 돌보는 약국들이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의사들은 비대면 진료를 반대하긴 하지만 시행된다면 어디까지나 보조적인 선에 머물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도 비대면 진료는 대면 진료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보충한다는 조건하에서 시행할 것을 권고했다. 필자의 경험을 돌이켜 봐도 어깨 통증으로 내원한 환자를 진료해보니 실제로는 폐암이 어깨로 전이된 경우였다. 환자의 어깨를 만져보지 않고 진통제만 처방했다가 암이 커졌을 가능성을 생각하면 지금도 끔찍하다.
그런 의미에서 의사들은 환자의 초기 진단(impression)을 잡는 데 중요한 초진만큼은 오진을 피하고 환자와의 신뢰 관계(라포르·Rapport) 형성을 위해 반드시 대면 진료 형태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다수 국가는 초진의 경우 대면 진료로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프랑스는 비대면 진료를 주치의에게 받을 경우 더 공제해 주고 있고, 일본도 단골 의사(일종의 주치의)에게만 허용하고 있다. 비대면 초진을 전면 허용하는 미국의 경우 의료비가 너무 비싸고 의료기관 접근성이 떨어져 ‘불완전한 비대면 진료라도 받으라’는 식의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 영국도 비대면 초진을 허용하지만 세금으로 운영되는 시스템에서 대기 시간이 너무 길어질 때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보조 방편으로 사용한다.
5월 17일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왼쪽에서 두 번째)이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 당·정 협의회에서 모두발언을 하는 가운데,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오른쪽에서 두 번째)이 이를 듣고 있다. [뉴스1]
플랫폼 업체의 의문
플랫폼 업체들은 대부분의 나라에서 허용되는 약 배송이 왜 한국에서는 불가능한지 의문을 제기한다. 실제로 미국 아마존(Amazon)은 처방 약 배송 플랫폼 회사인 필팩을 인수해 아마존 파머시(Amazon Pharmacy) 서비스를 시작했고, 미국의 양대 약국 체인업체 월그린(Walgreens)과 CVS는 약품의 드론 배송을 선보였다. 또 플랫폼 업체들은 초진 금지 등 까다로운 조건이 달리면 환자의 이용이 줄어들 것이라고 우려한다.전신영 닥터나우 홍보이사는 의료 접근성이라는 개념을 물리적 거리가 아닌 ‘상황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점심시간이나 퇴근 후 병원을 가려 해도 대기 시간이 길어 이용하지 못하는 직장인이나, 본인이 아플 때도 아이를 두고 나갈 수 없어 병원에 가지 못하는 부모 등 많은 국민의 ‘일상 속 의료 사각지대’를 해소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즉 비대면 진료 정책은 단순히 직역 간의 갈등만을 내포하고 있지 않다. 의료공급 체계를 ‘기존처럼 의사·약사에게 맡기느냐 아니면 플랫폼 기업에 맡기느냐’를 결정해야 하는 복잡한 문제다. 여기에 건강보험 재정이 투입되기에 ‘타다 사태’의 재현처럼 보기엔 무리가 있다.
그래서 정부가 중심을 잡아야 한다. 일단 5월 30일 합의한 시범 사업안에는 각계의 주장을 절충하려 한 흔적이 보인다. 의원급을 중심으로 하되 희귀 질환자나 수술 후 지속적 관리가 필요한 환자들은 병원급 비대면 진료도 가능케 했다. 재진을 원칙으로 하되 섬·벽지 환자, 등록 장애인, 감염병 확진자는 예외로 초진을 허용했다. 소아의 경우 오진 가능성이 높아 야간과 휴일에 의학적 상담만 가능하게 했다. 수가는 의료기관과 약국 모두에 시범사업 관리료 명목으로 30% 가산을 결정했다. 약품 배송은 빠졌지만 섬·벽지 환자, 거동 불편자에게는 허용했다.
이외에도 추가로 고려해야 할 것들이 있다. 오진이 발생하기 쉬운 진료 특성과 플랫폼 앱의 기술적 문제 발생 가능성에 대해 법적 책임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또 약 배송 시 의약품유통관리기준(KGSP)을 따르도록 해서 배송 과정에서 약품이 변질·파손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미국에서처럼 미국의료정보보호법(Health Insurance Portability and Accountability Act·HIPAA), 의료정보기술법(Health Information Technology for Economic and Clinical Health Act·HITECH) 규정을 비대면 진료 플랫폼이 따르게 하거나 정해진 인증 절차를 밟게 하는 것도 방법이다.
마지막으로 ‘비대면 진료를 시행하는 데 건강보험 재정을 써야 하는가’에 대해 꼭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비대면 진료를 시행하는 근본 목적은 환자의 의료 접근성을 높여 건강을 향상하는 데 있다. 하지만 비대면 진료 서비스 사용자의 90% 이상이 의료기관 방문 어려움이 없는 20~40대였고, 대부분 수도권과 광역시 거주자였다. 군 단위 이하 지역 이용은 2%에 불과했다. 또 탈모 약, 다이어트 약, 향정신성 약물 처방이 증가한 점을 생각해 보면 환자의 실질적 건강 증진이 있었다기보다는 편리함만 제공했다고 볼 수 있다.
심지어 비대면 진료가 모든 질병에 효과적이지도 않다. 미국의사협회저널(the journal of the American Medical Association·JAMA)에 따르면 비대면 진료 시행 결과 고혈압, 천식, 당뇨, 신부전 등 만성질환과 정신건강 관리 등에서 후속 진료 및 응급실 내원 빈도가 감소했다. 하지만 급성기관지염 등 급성기 질환일 경우 후속 진료를 받아야 하거나 응급실로 내원해야 하는 빈도가 증가했다.
돈도 아끼고 혁신도 꽃피울 방법
음식점 배달 플랫폼과 큰 차이가 없는 기술, 대면 진료보다 떨어지는 진료의 질, 실질적 건강 향상에 도움이 안 되는 처방에 우리가 피땀 흘려 모은 건보 재정이 투입되는 게 맞을까. 내과 전문의인 필자가 볼 때 회의적이다. 솔직히 말해, 건강보험에 내는 돈이 아까울 지경이다. 이미 우리나라는 1년간 평균 의료기관 방문 횟수가 17회에 달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1위다. 의료접근성이 뛰어나다 못해 병원 문턱이 지나치게 낮은 나라다. 게다가 최근 건보 재정이 곧 바닥날 것이라는 분석이 이어지고, ‘바이탈(vital)’ 진료과(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과)의 낮은 수가 문제로 해당과 전공자가 줄어 국민 건강이 위협받는 상황이다.이런데도 정부가 의료기관과 약국에 30%의 비대면 진료 가산 수가를 책정해 버리면 건보 재정의 고갈이 더 빨라질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캐나다를 비롯한 여러 국가가 비대면 진료 후 전체 의료비의 증가를 겪었다. 호주에서는 이를 고려해 의료기관에서 15만㎞ 이상 떨어진 환자가 비대면 진료를 받을 때만 비용을 지원해 준다.
비대면 진료에 건강보험 재정을 쓰지 말자는 뜻이 아니다. 한정된 재정과 비대면 진료 기술은 정말로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질환이나 의료 접근성이 떨어지는 취약계층 환자에게 제한적으로 사용하자는 것이다. 단순히 편리함만을 위해 비대면 진료를 받고 약 배송을 받으려면 그 돈은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 건강보험 급여 처방은 의학적 효과가 입증된 치료에만 비용을 보조하도록 돼 있다. 그래야 국민이 모아둔 건강보험 재정을 아낄 수 있고 의료 소비자는 편리함을 누릴 수 있으며 플랫폼 기업은 미래 원격의료를 향한 혁신의 싹을 살릴 수 있다.
박은식
● 1984년 출생
● 한양대 의과대학 졸업
● 前 한양대병원 내과전문의
● 前 신촌 세브란스병원 소화기내과 전임의
● 現 내과 전문의·호남대안포럼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