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만 원대→8만 원대, 주가 4분의 1토막
외형 성장 한계+비용 부담 여전
“2분기도 적자일 것”
5년간 5조 원 투자, 미래 노린 포석
일회성 해프닝으로 기억될지, 앞으로 이어질 기나긴 나날 가운데 ‘첫 장면’으로 기억될지는 이마트에 달려 있다. 쿠팡은 향후 별다른 전략 변화를 보이지 않고, 지금까지의 방식을 고수할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이마트는 최근 5년 어느 때보다 바쁜 시간을 보냈다. 대형 인수합병(M&A)을 비롯해 투자에만 5조 원 가까이 쏟아부었다. 슬슬 그 결실을 누릴 시간이 오고 있다. 이마트는 제자리를 찾을 수 있을까.
[Gettyimage, 각 사]
업황 악화+실적 부진, 역대 최저 수준 주가
지난해 말부터 이마트 주가가 맥을 못 추고 있다. 올해 5월 들어 주가는 지난해 11월 이후 6개월 만에 다시 8만 원대로 떨어졌다. 시선을 과거로 돌리면 더욱 초라해진다. 역대 최저가(종가 기준)가 지난해 10월 말 8만2500원인데, 이와 비슷한 수준이다. 2018년 2~3월 주가가 30만 원도 넘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불과 5년 만에 주가가 4분의 1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5월 발표된 1분기 실적이 그렇지 않아도 하락세를 보이던 주가를 더 끌어내렸다. 5월 11일 실적이 발표되자 이틀 동안 주가가 13%나 빠졌다. 증권가도 일제히 이마트 목표 주가를 낮췄다. 키움증권은 현재가보다 낮은 8만 원을 목표 주가로 제시했다. 사실상 매도 의견이다.
이마트는 1분기 연결기준으로 매출 7조1354억 원, 영업이익 137억 원을 거뒀다. 전년 동기와 비교해 매출은 1.88% 증가하는 데 그쳐 사실상 제자리걸음했다. 반면 영업이익은 60.17%나 급감했다. 같은 기간 순이익은 무려 99.66% 줄어 27억 원에 그쳤다.
구조적 한계, 예견된 부진
이마트는 “코로나19 시기 성장한 데 대한 역기저효과와 불황으로 인한 장바구니 부담 상승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며 “올해 1분기 공휴일 수가 전년보다 3일 감소했고, 연수점과 킨텍스점의 대대적인 리뉴얼 공사가 진행되면서 매출 공백이 발생한 점도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경기 불황과 소비 침체 탓으로만 보긴 어렵다. 롯데쇼핑, 쿠팡 등 이른바 ‘유통 빅3’ 가운데 전년 대비 영업이익이 줄어든 곳은 이마트가 유일하다.이마트의 부진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외형 성장을 이어가곤 있지만 성장률이 둔화된 지 오래다. 수익성 악화는 더 심각하다. 2017년까지만 해도 5669억 원으로 5000억 원대 이상을 유지하던 영업이익은 이후 뒷걸음질하기 시작해 2021년 3168억 원으로 떨어졌다. 지난해 영업이익은 1357억 원이다.
분기별로 따지면 아예 적자를 낸 때도 있다. 이마트는 2019년 2분기 창사 이래 처음으로 영업손실을 냈다. 영업손실 299억 원을 기록하며 적자 전환했다. 순손실 역시 266억 원을 기록하며 적자 전환했다. 당시 10곳을 훌쩍 넘는 증권사에서 목표 주가를 일제히 하향 조정했다. 실적 반등 요인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원인은 구조적 한계에서 찾을 수 있다. 기존 주력이던 오프라인 사업이 한계에 이른 만큼 이익 감소 추세가 이어지는 상황이다. 온라인 사업 사정도 쉽지 않다. 증권가는 “경쟁 심화로 적자폭 축소가 쉽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났지만 이마트 안팎의 현실은 당시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심각해졌다. 유통업 패러다임은 이미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바뀌었다. 이에 이마트 2분기 실적도 그리 좋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외형 성장이 한계에 부딪힌 상황에서 비용 부담은 여전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키움증권과 하나증권은 이마트가 2분기에 영업손실을 낼 것으로 내다봤다.
5년간 5조 원 투자… “얼마짜리로 만들 수 있느냐가 관건”
물론 이마트가 손을 놓고 있던 건 아니다. 최근 5년 이마트를 이끄는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의 행보를 살펴보면 오히려 어느 때보다 바쁜 시간을 보냈다. 유통업과 비유통업을 아우르며 투자에 집중했다. 인수·합병에 직접 뛰어들기도 했지만 계열사 유상증자에 참여해 자금 지원도 아끼지 않았다. 쏟아부은 투자액은 무려 5조 원에 육박한다.특히 온라인 시장 주도권을 가져오기 위해 노력했다. 2021년 7월 이마트는 이베이코리아(현 지마켓) 지분 80.01%를 3조4404억 원에 사들였다. 신세계그룹 인수·합병 역사상 가장 큰 규모다. 이를 위해 이마트는 돈 되는 건 다 팔았다. 서울 성수동 본사까지 매각했다.
당시 온라인 시장을 담당하는 SSG닷컴이 있는 상황에서 너무 무리한 결정이 아니냐는 시각도 있었지만 이마트는 강한 성장 의지를 보였다. 당시 인수 과정에서 정용진 부회장은 “얼마가 아니라 얼마짜리로 만들 수 있느냐가 의사결정의 기준”이라고 말했다.
2021년 4월엔 온라인 기반 여성 패션 편집숍 ‘W컨셉’ 지분 100%를 2650억 원에 사들였다. 매입 주체는 신세계그룹의 온라인 사업을 전담하는 SSG닷컴이었다. 7월엔 미국 스타벅스커피인터내셔널(SCI)로부터 스타벅스커피코리아(현 SCK컴퍼니) 지분 17.5%를 추가 인수해 최대주주(지분율 67.5%)에 올라섰다. 당시 투입된 자금은 4742억 원이다.
2021년 3월 30일 서울 웨스틴조선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SSG 랜더스’ 창단식에서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SSG랜더스 구단주)이 구단기를 흔들고 있다. [뉴스1]
국경을 넘어 해외 M&A도 단행했다. 2019년 미국의 식품유통 회사 굿푸드홀딩스(Good Food Holdings)를 2045억 원에 인수했다. 현지 기업 인수를 통해 미국 시장 내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함이었다. 지난해 초에는 신세계프라퍼티를 통해 미국 프리미엄 와이너리 ‘쉐이퍼 빈야드’와 관련 부동산을 인수했다. 가격은 3000억 원 수준이다.
이마트 변화 사령탑 강희석
기존 오프라인 사업 역량을 강화하는 데도 꾸준히 투자했다. 복합쇼핑몰 스타필드가 대표 사례다. 전국으로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스타필드 건설·운영은 이마트가 지분 100%를 보유한 신세계프라퍼티가 담당하고 있다. 신세계프라퍼티는 현재 스타필드하남점과 코엑스몰점, 고양점, 안성점, 위례점, 부천점, 명지점을 운영하고 있다. 청라점, 창원점, 수원점은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창고형 할인매장 이마트트레이더스도 출점을 이어가고 있다. 이마트트레이더스는 점포 수가 두 자릿수로 올라선 2015년 이후로 매년 20%대의 매출 성장세를 보여왔다. 현재 점포 수가 21개로 늘었다. 2025년까지 6개 점포를 추가한다는 계획이다.
강희석 이마트 대표이사 사장은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의 지원 아래 이마트 온·오프라인 쇄신을 이끌고 있다. [동아DB]
강 사장이 처음 신세계그룹에 합류할 때만 해도 우려의 시선이 없지 않았다. 유통업에 대한 이해도는 높지만 기업인으로서 경영 능력을 입증한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정용진 부회장은 지속적으로 강 사장의 결정에 힘을 실어줬다.
강 사장은 영입 이듬해인 2020년 10월 실시한 정기 임원 인사에서 SSG닷컴 대표도 겸직하게 됐다. 신세계그룹에서 이마트와 SSG닷컴의 비중과 위상을 헤아려보면 강 사장의 무게감을 엿볼 수 있다. 강 사장은 여전히 정 부회장으로부터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제 결실 볼 때
희망적 시각도 있다. 이마트가 야심만만하게 투자한 분야에서 ‘아직까지는’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바꿔 말하면 성과를 볼 날이 머지 않았다는 의미가 된다. 숨 가빴던 투자 행진을 멈추고 숨 고르기에 들어간 만큼 내실을 다질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는 점 역시 긍정적이다.5월 3일 인천 이마트 연수점에 조성된 랜더스 광장에서 시민이 휴식하고 있다. 3월 30일 이마트 연수점은 장보기·외식·레저·문화 활동이 가능한 복합문화공간으로 리뉴얼해 재오픈했다. [뉴스1]
5월 3일 정용진 부회장은 이마트 연수점을 직접 찾아 “온라인 시장이 중요해졌다고 오프라인 시장이 중요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라면서 연수점 같은 ‘미래형 마트’로 매장을 리뉴얼하는 것을 핵심 전략 가운데 하나로 꼽았다. 이마트는 올해 10여 개 점포 리뉴얼에 850억 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이마트가 올해로 30주년을 맞이한 만큼 노후도나 점포 크기, 주변 상권 등을 고려해 대상 매장을 선정할 계획이다.
6월 신세계 유니버스도 본격 가동됐다. SSG닷컴과 지마켓이 온라인 통합 멤버십으로 운영하고 있는 ‘스마일클럽’에 이마트와 신세계백화점, 스타벅스, 신세계면세점 등 오프라인 계열사 혜택을 더한 서비스다. 신세계그룹 생태계 내에서 온·오프라인의 모든 일상을 해결할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다. 특히 정 부회장의 야심작으로 불릴 만큼 그룹 차원에서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적 악화 속에서 온라인 부문이 선방한 점도 희망적이다. 1분기 SSG닷컴과 지마켓은 전년 동기 대비 영업손실 규모를 각각 101억 원, 85억 원 줄였다. SSG닷컴은 3개 분기, 지마켓은 4개 분기 연속으로 적자가 축소됐다. 흑자 전환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충분히 의미 있는 변화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