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자식 대신 반려동물을 키우며 살겠다는 ‘딩펫족’이 늘고 있다. [Gettyimage]
자식 많으면 주릴까 걱정.
높은 벼슬아치는 영락없이 바보
영리한 자는 재능 써먹을 자리 없네.
집집마다 복을 다 갖춘 경우 드물고
지극한 도는 늘 쇠퇴하기 마련.
아비가 절약하면 자식은 방탕하고
아내가 지혜로우면 남편은 어리석으며,
달이 차면 구름이 끼기 일쑤
꽃이 피면 바람이 망쳐놓누나.
세상만사 죄다 이러한 걸
혼자 웃는 이유를 남은 모르지.
조선 후기 실학자 다산 정약용이 1804년 유배지인 전라도 강진에서 쓴 ‘독소(獨笑)’라는 한시다. 인생의 모순과 한계를 이토록 적확하게 묘사하다니, 누구라도 읽으면 무릎이 절로 쳐질 것이다. 정약용의 시처럼 인생살이를 떠올리면 역설, 패러독스, 카우스 같은 단어가 뇌리를 스친다. 어떠한 인생도 완벽할 수는 없다. 필자 또한 지난 35년간 생식의학자로 난임 치료를 하면서 매번 느끼던 바다. 직업, 외모, 재력 어느 하나 모자람 없는 부부들이 난임으로 마음고생하는 모습을 숱하게 봤기 때문이리라.
15년 전쯤 미국 뉴욕에서 온 교포 여성을 만났다. 그녀는 뉴욕과 서울을 오가며 20회에 걸쳐 시험관아기시술(IVF)을 받았지만 계속 임신에 실패한 끝에 필자를 찾아왔다. 그녀가 들고 온 진료기록지는 소설책 두세 권 분량을 방불케 할 정도였다. IVF를 20회나 하고도 실패할 만한 난임 요인이 딱히 없어 보였다. 매번 난자도 많이 나와서 양질의 배아(수정란)로 이식을 해왔다고 했다. 자궁내막도 A급이었다. 그런데도 왜 그녀는 임신에 성공하지 못했을까.
필자는 그녀에게 자궁내시경 검사를 제안했다. 지금까지 하지 않은 유일한 검사였기 때문이다. 초음파 소견상 내막이 두껍고 최적의 착상 조건을 보였기에 배아(수정란)의 질에만 몰두했던 이전의 경우와 다른 시도를 해보고 싶었다. 자궁내시경으로 살펴보니 전체 자궁벽에 스마트폰 액정 화면에 붙이는 투명 필름 같은 콜라겐 매트리스 층이 두껍게 덮여 있는 게 아닌가. 필자는 조심스럽게 이를 벗겨냈다. 그리고 그녀는 냉동배아 자궁 내 이식으로 임신에 성공했다.
저출산 근본 원인 ‘돈’ 아닌 ‘두려움’
아기가 간절한데 임신이 안되는 부부가 매년 늘어나고 있다. 20대 후반부터 30대 초반 사이에 더 나은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결혼을 미루다 보니 생식력 골든타임이 세월과 함께 흘러가 버려 그렇다. 생식력 최절정기에 공부와 취직, 각종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유해 환경, 유해 물질에 노출되면 아무래도 수태 능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만혼(晩婚)으로 늦은 나이에 임신을 준비하게 되면 난임 확률이 높아진다. ‘나이’보다 더 확실한 난임 인자도 없을 것이다.그나저나 큰일이다. 다산 정약용이 쓴 ‘독소’의 한 구절이 현실이 되고 있다. 세상은 점점 편리해지고 집집마다 냉장고에는 먹을 것이 쌓여 있지만 같이 먹을 사람이 없다면 무슨 소용이겠는가. 결혼하더라도 자식이 없으면 부부는 서서히 각자의 일상에 집착하게 된다.
독신과 미혼 인구가 매년 늘어나서 앞으로 10년 후에는 인구의 절반이 싱글(비혼, 이혼, 사별)이 될 거라고 한다. 결혼하더라도 출산을 기피하는 부부가 늘면 결국에는 인구수 감소로 국가경쟁력까지 떨어질 것이다.
미국을 보라. 비교적 낮은 출산율(1.64명)이지만 인구는 중국과 인도에 이어 세계 3위를 유지하고 있다. ‘이민자의 나라’답게 ‘이민의 힘’으로 인구 증가 문제를 해결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은 어떠한가. 이민청 하나 설립하는 데도 반대가 많다. 그러니 난임 의사들이 그토록 간절하게 외치는 난자 냉동 보험급여화, 정자은행 설립 및 유치 권장 캠페인 등의 문제가 해결될 리 만무하다. 정부가 적극적이지 않아서이기도 하지만 언론도 관심이 없다. 그러니 유독 생식 분야에서 고리타분하기 짝이 없는 한국인의 의식이 여전히 부동(不動)일 수밖에.
출산율을 높이는 문제에 국가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면 기업이라도 발 벗고 나서야 한다. 몽골 셀렝게주 토진나르스 지역에 ‘유한킴벌리 숲’이 가장 좋은 실례다. 유한킴벌리는 황사 발원지 중 하나인 몽골의 사막화를 막기 위해 서울 송파구 면적에 이르는 땅에 나무를 심었다. 무려 20년 전에 시작한 나무 심기로 세계적인 숲이 조성됐다. 출산 장려 캠페인도 당장 한두 해 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다. 수십 년, 수백 년을 내다보면서 펼쳐야 한다.
과식은 생식력을 떨어뜨린다. [Gettyimage]
남녀를 막론하고 출산을 미루거나 피하는 이유로 양육비 부담이 너무 크다고 말한다. ‘절대적 빈곤’이 아니라 ‘상대적 빈곤’을 걱정하는 것이다. 출산 기피의 내재 원인은 ‘돈’이 아니라 ‘두려움’이 아닐까 싶다. ‘부모가 보여준 사랑과 희생만큼 내 자식을 사랑하며 잘 키울 수 있을까’를 걱정하는 것이다. 자식으로 인해 그동안 쌓은 커리어와 경제 기반이 흔들리는 것이 두려워 출산을 포기하는 이가 적지 않다. 반면 개나 고양이를 입양해 자식처럼 키우는 여성은 점점 늘고 있다.
늘어나는 딩펫족
이유는 가지가지다. 반려동물 11마리의 엄마 아빠로 살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 부부는 “유산의 아픔을 반려견 덕에 치유했다”고 최근 털어놨다. 실제로 난임 병원에는 IVF에 거듭 실패한 후 강아지를 입양해 키우며 살아가겠다는 사연이 간간이 올라온다. 아기를 안아보고 싶었던 모성이 동물이라도 보듬어줘야만 안정감을 찾을 것 같아서이리라.연구 결과에 따르면 동물을 안고 있어도 옥시토신(뇌하수체에서 분비돼 자궁의 수축을 일으키고, 모유가 나오는 것을 촉진하는 호르몬)을 방출하고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의 생성을 억제할 수 있다고 한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동물이 자식(아기)를 대신할 수 있을까.
요즘 젊은 부부 중에는 자식 대신 반려동물을 기르며 살겠다는 ‘딩펫족’(DINK와 pet의 합성어)이 늘고 있다. 딩펫족은 맞벌이 부부가 대부분이라 반려견을 위해 아낌없이 소비하고 정성을 쏟는다. 그들은 반려동물을 자식으로 여기며 살겠지만, 강아지와 고양이가 자식이 될 수는 없다. 20년도 채 살지 못하고 곁을 떠나는 반려견, 반려묘를 어찌 자식에 견줄 수 있으랴. 정부와 기업은 물론이고 시니어들도 젊은 부부에게 귀에 못이 박히도록 ‘자식을 낳아 키우며 느끼는 행복감과 보람’에 대해 끊임없이 설파해야 할 것이다.
조정현
● 연세대 의대 졸업
● 영동제일병원 부원장. 미즈메디 강남 원장. 강남차병원 산부인과 교수
● 現 사랑아이여성의원 원장
● 前 대한산부인과의사회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