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원희룡·한동훈 모이면 수도권 컬러 달라져
장제원 불출마 선언 후 중진 용퇴 시나리오
용산, 이준석계·‘유승민·김종인 물 튄 사람’ 끌어안을 수 있나
“검사 공천, 열 손가락은커녕 다섯 손가락도 잘 모르겠다”
양향자 무소속 의원,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 김진모 전 서울남부지검장, 오신환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동아DB, 뉴시스, 뉴스1, 당협]
개인적 흠결, 사법 리스크, 수준 이하의 의정 활동, 건강 문제 등으로 누가 봐도 다시 공천을 받기 어려운 사람을 제외하면 다음 총선에서 다시 뛰겠다고 나설 수 있는 ‘금배지’는 겨우 100명 남짓이다. 선거 승리를 위해, 여당 체면을 지키기 위해 전국 지역구 253곳 모두에 괜찮은 사람을 내보내야 하는데 내보낼 사람이 턱없이 모자라다.
강세 지역, 해볼 만한 곳, 어려운 선거구
선거를 앞둔 정당에서는 공천 경쟁에 골머리를 앓는 게 일반적인데, 지금 국민의힘이 처한 본질적 문제는 ‘구인난’이다. 필자는 ‘신동아‛ 5월호 기고에서 “야당은 사람이 너무 많아서 문제고 여당은 그 반대다, 사람이 너무 없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러면서 “거대 양당 입장에서 전국 지역구는 세 곳으로 구분된다. 우선 누굴 내보내도 이길 가능성이 높은 강세 지역이다. 이런 지역은 공천 잡음으로 인한 무소속 출마자가 당선되더라도 복당할 가능성이 높다. 둘째는 바람이 불거나 후보가 좋으면 해볼 만한 지역이다. 마지막은 뭘 어찌해도 어려운 지역이다”라고 풀이했다.검사 공천 러시, 현역 물갈이 등의 흉흉한 소리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지만 그건 모두 영남권이나 서울 강남 지역 등 ‘강세 지역’에 대한 이야기다. 민주당의 경우 호남은 차치하고라도 수도권과 충청권 대부분 지역에서 벌써부터 피 튀기는 내부 경쟁이 펼쳐지고 있다. 친(親)이재명(친명)계와 비(非)이재명(비명)계의 갈등, 당원중심주의 강화론, 중도확장론 간 갈등의 본질도 공천 경쟁이라고 볼 수 있다.
그에 비해 국민의힘의 경우 목 좋은 서울 일부 지역을 제외하곤 수도권과 충청권이 너무나도 평온하다. 지난 총선과 마찬가지로 영남에서 국민의힘이 압도적 우위를 유지하고 민주당이 호남에서 압도적 우위를 지킨다고 가정하면 승부를 결정짓는 곳은 수도권과 충청인데도 그렇다.
구체적으로 보자. 전국 지역구 253석 가운데 수도권에 무려 121석이 몰려 있다. 서울이 49석, 경기가 59석, 인천이 13석이다. 이 중 국민의힘은 서울 9곳, 경기 7곳, 인천 2곳만을 지키고 있다. 서울 40곳, 경기 52곳, 인천 11곳이 비어 있다는 이야기다. 충청 28곳 중에서도 국민의힘 의원은 9명이니 19곳이 빈자리다. 영호남은 논외로 하자.
물론 출마 인력풀 안에 현역의원만 포함되는 것은 아니다. 전직 의원과 지난 선거 낙선자도 있고 대통령실, 내각, 공공기관 등에도 출마 희망자가 있다. 여당 프리미엄을 활용해 인지도와 전문성을 갖춘 외부 인사를 영입할 수도 있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 천하람 국민의힘 순첩갑 당협위원장, 허은아 의원(위부터)이 내년 총선에 국민의힘 공천을 받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동아DB]
국민의힘은 6월 8일 조직강화특별위원회를 구성해 35개 지역 당원협의회(당협) 재정비에 돌입했다. 지난해 12월,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 시절에도 조강특위를 구성해 42곳의 당협위원장 자리를 채웠다. 그런데 전당대회를 앞두고 구심력 강화가 중요했던 당시와 총선을 목전에 두고 있는 지금의 상황은 판이하다. 이번 조강특위는 총선 공천의 밑그림을 그려야 한다. 그때나 지금이나 키는 친윤석열 핵심 인사들이 쥐고 있다. 이철규 사무총장이 조강특위 위원장이고 박성민 전략기획부총장, 배현진 조직부총장이 당연직 위원으로 들어가 있다. 이런 까닭에 이준석계가 아니라도 유승민 전 의원이나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과 가까웠던 인사들도 심사가 편치 않은 분위기다. 어차피 검사 출신, 용산 출신들이 줄줄이 내려가 자리를 채울 것 아니냐는 시각이 힘을 얻는 이유다.
정권 고위 인사는 최근 필자를 만난 자리에서 “검사 무더기 공천 같은 것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검사 프리미엄이라는 것을 등에 업고 나가보겠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이야 꽤 되겠지만 대통령 생각은 그렇지 않다. 그럴 생각도 없을뿐더러 대통령 눈에 차는 사람도 얼마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른바 검사 공천은 열 손가락을 채우지 못할 것이고 다섯 손가락도 잘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본인의 의지와 정치 상황에 따라 변수가 발생하겠지만 한동훈 법무부 장관, 주진우 대통령법무비서관,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정도 되는 소수의 인사만이 ‘검사 공천’ 후보군에 들어가 있다는 것. 인지도, 경쟁력, 대통령의 신임을 겸비한 인물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였다.
앞서 꼽은 세 사람 외에도 출마를 희망한다는 소리가 들리는 검찰 출신 인사가 상당수 있긴 하다. 인지도나 대체로 ‘안전지대’에 보내줘야만 생환할 수 있는 인물들이다. 그렇다 보니 수도권 100여 곳, 충청권 20여 곳을 채울 인물이 태부족이다. 빈자리를 채우겠다고 손을 들고 나서 자기 힘으로 표밭을 가는 인물이 잘 안 보인다.
중진급 용퇴 분위기 조성 시나리오
이 같은 상황에서 오신환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과 김진모 전 서울남부지검장은 ‘모범 케이스’로 꼽을 만하다. 오 전 부시장은 5월 서울시 정무부시장직을 사퇴하고 서울 광진을에 출사표를 던졌다. 김진모 전 검사장은 그보다 앞선 1월에 청주 서원 당협위원장에 선출됐다.서울 관악을에서 재선한 오 전 부시장이 별다른 연고가 없는 광진을에 자리를 잡았지만 당 안팎에서 비판의 목소리를 찾긴 어렵다. 광진을 지역구 특성 때문이다. 15대 총선을 앞두고 분구된 이래 광진을은 내리 일곱 번 민주당 계열 소속 의원을 당선시킨 야당 강세 지역이다.
엘리트 검사 출신으로 이명박(MB) 정부 시절 청와대 민정2비서관을 지낸 김진모 위원장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청주 서원 역시 지역구가 생긴 17대 총선 이래 지난 총선까지 다섯 번 내리 민주당 계열 의원을 배출한 지역이기 때문이다. 두 곳 다 ‘험지’인증을 받을 만하다.
이력이 나쁘지 않은 인물들이 자진해서 빈 곳으로 뛰어드니 누가 뭐라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두 사람이 무모한 도전에 나섰다고 보기도 힘들다. 오 전 부시장의 경우 오세훈 시장이 지난 총선에 석패한 광진을에 나서면서 ‘오세훈 프리미엄’과 ‘서울시 프리미엄’을 함께 기대하고 있다. 현역의원인 더불어민주당 고민정 의원에 대한 보수 지지층의 거부감도 만만치 않다. 여권 내에서 대권 잠룡 오 시장에 대한 견제 정서가 없진 않지만 친윤 핵심이나 검찰 출신 누군가 오 전 부시장에게 “내가 나설 테니 저리 비켜라”고 할 것 같진 않다.
청주 서원 역시 충북에서 손꼽히는 민주당 텃밭이다. 다만 지난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에선 국민의힘 득표율이 민주당 득표율을 앞섰다. 이 지역의 이전 보수정당 출마자들에 비해 커리어가 화려한 김 위원장 입장에선 노영민 전 대통령비서실장 보좌관 출신 민주당 이장섭 의원과 각을 세워볼 만하다. 꽃가마, 낙하산 소리도 피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런 사람이 얼마 없다는 점이다. 안전지대 출마를 노리며 현역의원을 뒤에서 저격하며 끝까지 눈치 볼 요량으로 버티는 인물은 눈에 많이 띈다.
이 같은 흐름이 계속된다면 국민의힘은 총선 승리를 위한 큰 그림을 그리기가 어려워진다. 이런 까닭에 여권 안팎에선 몇몇 시나리오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먼저 친윤 핵심 중의 핵심인 장제원 의원이 선제적으로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경쟁력이 떨어진 중진급 의원들의 용퇴 분위기를 조성한다는 것이다. 이 시나리오가 성사되면 상징적 효과가 클 수 있다. 하지만 물갈이는 필요조건일 뿐이다. 수도권이나 충청권에는 끌어내릴 중진 의원조차 없고 영남권에서 물갈이가 매끄럽지 못하면 낙하산 소리가 나오기 십상이다. 결국 수도권과 충청권에 경쟁력 있는 인물들로 라인업을 형성하는 것이 승리를 위한 필요조건이다. 수도권과 충청권 분위기가 좋아지면 영남권 분위기도 따라가고 공천 잡음과 무소속 출마를 억제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장제원 의원 불출마 선언 시나리오와 함께 언급되는 인물이 무소속 양향자 의원과 시대전환 조정훈 의원이다. 삼성전자와 세계은행에서 커리어를 쌓고 정치권으로 들어온 두 사람은 모두 야당 간판으로 금배지를 달았지만 중도 성향인 데다 여러 이유로 민주당과 거리가 벌어졌다. 무소속 양향자 의원은 국회 반도체특위 위원장을 지냈다. 조정훈 의원 역시 민주당에 대한 비난 수위를 높이고 외국인가사도우미 법안을 발의하는 등 여권과 거리를 급속도로 좁히고 있다. 두 사람이 어느 당 간판으로 어느 지역에 나갈지 미지수지만, 최소한 민주당 간판은 아닐 것 같다. 양향자 의원의 경우 현재 지역구는 광주 서구을이지만 광주를 벗어날 경우 경기도 수원, 동탄, 평택 등 삼성전자 관련 지역으로 선택지가 넓어진다.
국민의힘이 이들을 영입한다면 수도권 조망도가 달라진다. 전문성과 전투력을 겸비한 상비 자원 윤희숙 전 의원 등과 이들을 묶어 개혁 라인업을 만들고 중량감 있는 인물인 권영세·원희룡·한동훈 장관을 더하고, 경기 분당갑 안철수 의원 등 다른 대선 주자도 승리를 위해 힘을 모을 수 있다면 여당 수도권 컬러가 확 달라진다. 강경 보수 유튜버와 전광훈 목사가 분위기를 좌지우지하고 막말 파동이 연달아 터지던 지난 총선 수도권과는 전혀 다른 그림이 나온다.
관건은 용산
이렇게 되면 강세 지역이 아니라도 ‘해볼 만한 지역’에 뛰어드는 인사들의 수준도 달라진다. 한나라당이 수도권에서 압도적으로 앞섰던 18대 총선의 경우가 그랬다. 하버드대 출신의 원조 ‘엄친아’ 홍정욱 당시 헤럴드미디어 회장 같은 인물도 애초 강남 지역을 희망하다 눈을 낮춰 동작에 지원했다 탈락하고 한강 북단 중구로 재지원했지만 또 탈락했다. 결국 서울의 최북단 노원병에 나갈 생각이 있으면 나가라는 당의 제안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그래도 금배지를 달았다. 그때만큼은 아니겠지만 한강벨트를 비롯해 지난 지방선거에서 우세했던 지역에 괜찮은 라인업을 형성할 수 있을 것이다.이 같은 ‘최상의 시나리오’가 현실화할 수 있을까. 관건은 용산이다. “검사 공천은 없다”고 큰소리치고 있지만 윤석열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이나 지난 전당대회를 돌아보면 그것도 모를 일이다. 구태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올드 보이, 이력이 불분명한 엉뚱한 인사들이 안전지대를 꿰차지 말란 법이 없다. 이준석계는 물론 유승민·김종인 물이 튄 사람들까지 험지에서조차 밀려나지 말란 법이 없다. “지지율이 떨어지는 한이 있더라도”라며 민심과 동떨어진 정책을 밀어붙이거나 “국면 전환용 인사는 없다”며 흠결 있는 인사를 감싸 안지 말란 법도 없기 때문이다. 지역구를 끝가지 지키려는 영남권 현역 의원과 이들의 경쟁자들은 “내가 더 용산과 가깝다”고 싸울 것이다. 수도권과 충청권 구인난은 극심해질 것이고 ‘여당 국회의원 후보’를 현실적 목표로 삼을 수밖에 없는 수준의 인사들이 별 경쟁도 없이 공천을 받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양향자, 조정훈 두 사람은 무소속으로 출마하거나 제3지대에 합류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도 현실화할 가능성도 있다. 양 의원은 최근 ‘한국의 희망’이란 신당을 창당하겠다고 선언했다.
신동아 7월호 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