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회사·국가 살림 같아
“펑펑 쓰면 거덜 난다”
주인은 비용부터 생각한다
국가 임무, ‘퍼주기’ 아냐
치열한 경쟁 현장에 배움 있다
[Gettyimage]
모든 장사가 그렇겠지만 특히 생선 장사는 수요·공급 및 가격에 민감한 분야다. 공급 변동성이 엄청나게 크기 때문이다. 아침 6시부터 새벽 경매가 시작되고 그날그날 경매가가 정해지면 이를 사들인 도·소매상들은 판매가를 정한다. 겨울에 많이 찾는 물메기는 한 상자에 8만 원씩 하다가도 어떤 날은 가격이 급락해 한 상자에 5000원 하기도 한다. 이유를 설명하자면 우선 물량이 쏟아져 나오면 가격이 떨어지는데, 당일 내장을 손질하지 않으면 상해버리고 만다. 일손이 부족할 경우 이걸 처리할 수 있는 업자는 손에 꼽을 정도로 소수라 가격 하락 폭이 더 커지는 것이다.
온라인 시장이 경쟁을 더한다. 오프라인 시장에선 흥정을 통해 가격이 조정될 여지가 있지만 온라인 시장은 가격이 완전히 공개된 상태에서 각 참여자가 저마다 가격을 제시한다. 그 결과 같은 제품이라면 내 물건보다 저가인 상품이 다 팔려야만 비로소 내 것이 팔릴 차례가 온다. 예컨대 내가 파는 소라가 1㎏에 1만 원인데 1kg에 9000원인 상품이 올라오면 그 물건이 소진되길 기다려야만 한다. 이런 경쟁은 수시로 벌어지고 참여자들도 아주 당연하게 생각한다. 교과서에 나오는 수요·공급 곡선과 가격결정, 소비자 선택까지 서로 맞물리는 원리를 매일 보고 겪게 된다.
주인에게 비용은 생존 문제
자영업자들은 상품을 팔아서 이익을 남겨야 월세와 공과금을 내고 직원들에게 급여를 줄 수 있다. 모든 사장이 입을 모아 하는 말이 “왜 이리 월급날이 빨리 돌아오느냐”다. 하루하루 수입을 얻어 그때그때 결제를 해줘야 경매사나 어선이 물건을 조달해 준다. 다들 그야말로 ‘피 같은’ 돈을 벌고 있는 것이다.시장에서 만나는 상인들은 모두 자기 일의 주인이다. 상품을 얼마에 팔지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항상 원가를 생각한다. 예컨대 고등어 한 마리를 판다고 해보자. 고등어 경매가, 항운노조 상차비, 운반비, 가게 임차료, 물값, 바닷물값, 전기요금에 직원이라도 있으면 인건비까지 전부 따진 후 판매가를 정하고 영업에 뛰어든다.
비용에 관심 없는 사람은 시키는 대로 하는 사람들이다. 주인이 아닌 사람은 유통과정이나 가격결정 등에 관심이 없다. 어떤 사람이 특정 조직에서 주인인지 아닌지는 그가 비용 문제에 관심이 있는지 없는지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주인은 고객이나 직원에게 제공할 상품만이 아니라 비용에 대해서도 관심이 아주 크다. 생존이 달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예전 학원강사 시절이나 정당에서 일할 때는 이런 경험을 할 수 없었다. 종합반 학원강사는 수업시간에 비례해 수당을 받고 재수생 관리를 할 땐 담임수당 등을 제공받았다. 정당에서 근무할 때는 국고보조금으로 운영되는 연구재단에 있었고, 선관위에서 들어오는 국고보조금으로 월급을 받았다. 학원 경영이나 연구재단 운영 문제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었다. 예산은 정해져 있고, 나는 정해진 만큼 쓰면 그뿐이었다.
2017년 대선 무렵 방송에서 본 일이다. 서울 노량진 공시촌에 간 한 대통령 후보가 공무원 증원 공약을 하는 걸 보고 뒤로 자빠질 뻔했다. 공무원은 한번 늘리면 줄이기 어렵다. 당시엔 이미 인구 감소, 인공지능(AI) 등장 등 이유로 더는 공무원을 늘릴 필요가 없다는 예측이 나오고 있었다. 다른 건 차치하고, 국가라는 조직을 운영하고자 하는 사람이 직원을 늘리겠다는 것인데, ‘인건비를 생각해 보긴 했나’ 하는 의문부터 들었다.
평생 남의 돈 받기만 하니까…
수산시장은 새벽 시간부터 생선을 싸게 구입하려는 도·소매상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사진은 2021년 1월 부산 서구 부산공동어시장에서 고등어 경매가 진행되는 모습. [동아DB]
왜 비용에 대해선 관심이 없을까. 평생 남의 돈만 받으며 살아 인건비 무서운 것을 몰라서 그렇다. 한국의 수많은 사람이 공무원이 되거나, 공공부문과 맞닿은 일을 하거나, 국가의 도움을 받아 생활을 영위하고 싶어 한다. 강력한 중앙관료제 전통으로 인한 인습을 타파하지 못하면서 한국은 국민이 공무원이 되거나 공무원처럼 살고 싶어 하는 나라가 돼버렸다.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이 경제적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두면서 이런 현상은 더 심화하고 있다.
오늘날에도 “할 일이 많다”며 각종 위원회, 외청, 산하연구소나 재단 등이 우후죽순 생기고 있다. 지역구 의원들은 국가 예산을 지역에 편성했다고 자랑한다. 이들은 각종 지원책과 보조금을 나눠주는 것이 국가의 일이고 정치인의 임무라고 생각한다.
해마다 ‘대한민국 수산대전’이 열린다. 이때 수산물을 사면 할인해 준다. 수산물 소비 진작을 명분으로 정부가 보조금을 뿌리는 사업인데, 참가할 수 있는 업체가 포털과 온라인 유통 대기업뿐이다. 한국 곳곳에 시장이 있고 영세 상인이 장사를 하고 있음에도 이들에게 보조금을 뿌리는 데는 행정상 불편하니 대기업을 통해서 국가 사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루하루 몇백, 몇천 원을 두고 판매가 결정에 고심하는 영세 상인은 외면하고 포털과 대기업 유통망을 이용하는 소비자에게 보조금을 뿌리면 당연히 중소시장에서는 파리만 날리게 된다. 이래놓고 정부는 “수산물 소비를 진작했다”고 성과를 과시할 테다. 이런 일이 비단 수산대전뿐일까. 자신의 돈이라면 이렇게 나눠주는 데 열심일까. 이런 일을 볼 때마다 또 묻게 된다. “네 돈이면 그렇게 쓰겠느냐”고.
상공인이 주도하는 나라에 활력 생겨
국가재정은 국민 세금으로 조달된다. 이를 함부로 쓰지 못하게 국회의원 및 도·시·군·구 의원을 뽑아 예산을 편성하고 집행을 감시한다. 정치인이나 공무원이 주인의식을 가졌다면, 또는 주인을 대리하는 사람임을 자각하고 있다면 공공사업을 추진할 때 비용을 생각해야 한다. 이들은 혜택을 나눠주기만 하는 사람이 돼선 결코 안 된다.평생 월급과 연금에 의존해 살아가려는 사람이 많아지는 나라가 돼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 2010년 무렵 심각한 재정위기를 겪은 그리스를 들여다보면 그전부터 너도나도 국가의 돈으로 편하게 살려는 풍조가 국민 전체에 만연했다. 스스로 위험을 감수해가며 사업체를 이끌어 부자가 되기도, 실패를 겪기도 하는 상공인이 주도하는 나라에 활력이 생긴다. 수산시장에서 매일매일 벌어지는 치열한 경쟁으로 인해 오히려 국민은 값싸고 질 좋은 생선을 먹을 수 있다는, 삶의 현장에서 얻은 생생한 깨우침이다.
함운경
● 1964년 출생
● 서울대 물리학과 졸업
● 前 서울대 삼민투 위원장
● 前 자주평화통일민족회의 조직부장
● 現 네모선장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