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서 보는 삼성과 안에서 보는 삼성 달라
삼성 잘못되면 대한민국에 직격탄
이재용 준법경영 체질화… “준감위에서 논의됐는지부터 물어”
준감위=준법 경영 정착 돕는 기구
삼성은 항공모함, 컨트롤타워 필요
준법 경영, 기업 롤 모델 될 것
6월 9일 이찬희 위원장은 ‘신동아’와 인터뷰하면서 “삼성의 발전은 곧 한국의 발전과 같다”고 말했다. [조영철 기자]
6월 9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법무법인 율촌에서 만난 이찬희(58) 삼성준법감시위원회(이하 준감위) 위원장의 말이다. 이 위원장은 지난해 2월 김지형 전 대법관에 이어 위원장을 맡아 준감위 2기를 이끌고 있다. 임기는 2년. 3분의 2지점을 지났다.
준감위는 2019년 12월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파기환송심 재판부가 삼성에 준법체계 감시 제도 마련을 요구하면서 이듬해 출범했다. 외부 독립기구로서 삼성 주요 계열사 7개(삼성전자·삼성물산·삼성SDI·삼성전기·삼성SDS·삼성생명·삼성화재) 최고경영진의 준법 위반을 감시·통제하고 위반 리스크가 큰 사안에 대해 의견을 개진한다. 준감위 1기는 4세 경영승계 포기와 무노조 경영 종식을 이끌어냈다.
준감위 1기가 대대적 혁신에 초점을 맞췄다면 준감위 2기는 내실을 다지는 데 방점을 두고 있다. 이 위원장은 지난해 1월 위원장 선임 관련 기자회견에서 추진 과제로 △인권 우선 준법경영 확립 △공정하고 투명한 준법경영 정착 △지배구조 개선을 통한 ESG(환경·사회·지배구조)경영 실현 3가지를 꼽은 바 있다. 특히 “지배구조 개선 문제는 삼성이 도약하기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라며 지배구조에 주목했다.
이 위원장은 연세대 법과대학을 나와 사법시험에 합격한 후 쭉 법조계에 몸담았다. 서울지방변호사회장, 대한변호사협회장 등을 맡으며 그 나름 한 획도 그었다. 현재도 법무법인 율촌 고문변호사다. 그래서인지 법조인으로서의 정체성이 강하다. 인터뷰하면서 수차례 법조인으로서의 원칙, 준법을 강조했다. 애초 삼성에 준법경영을 정착시켜 환골탈태를 이끌어내겠다는 게 위원장을 맡을 당시 품었던 포부다.
이런 그가 약 1년 4개월간 지켜본 삼성은 다른 어떤 기업보다 지배구조 개선·준법경영 의지가 강한 기업이다. 이 위원장은 “밖에서 본 삼성과 안에서 본 삼성엔 차이가 있더라”며 “무조건 1등만 지향하는 기업이 아니다. 스스로 갖는 사회적 무게에 대해 책임을 질 줄 아는 기업”이라고 했다. 이어 “신경영 30년을 맞아 삼성이 국내 1위를 넘어 세계 1위로 도약할 때”라며 “이를 위해선 속도와 성과를 따지기보다는 단단한 내실로 토대를 만드는 게 더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삼성, ‘일단 해봐’ 할 수 없는 기업
2월 14일 서울 서초구 삼성생명 서초타워에서 2기 삼성준법감시위원회 첫 번째 정기회의가 진행되고 있다. [뉴스1]
“지배구조는 기업 투명 경영의 원칙이자 출발점이다. 범위가 넓다. 대개 수직적 지배구조에 주목하지만 수평적 지배구조도 중요하다. 예컨대 이사회가 독립적으로 운영되고 있는지, 사외이사가 객관적·독립적 활동이 가능한지, 감사위원회 등 견제 기구들이 제대로 운영되고 있는지 등이다. 중장기적 해법이 필요한 부분이 많다. 전반적으로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고 본다.”
지난해 9월 15일 삼성전자는 신(新)환경경영전략을 발표했다. RE100(Renewable Electricity 100·기업이 사용하는 전력량 10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겠다는 캠페인) 가입 및 2050년 탄소중립 선언이 골자다.
‘글로벌 수준’에선 뒤처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구글과 애플이 각각 2015, 2016년, TSMC는 2020년에 RE100에 가입한 바 있고, 삼성전자는 국내 대기업 가운데에서도 늦게 동참했기 때문이다. 탄소중립 목표 시점이 2050년인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그린피스에 따르면 RE100 가입 기업의 평균 탄소중립 목표 연도는 2030년이다. 당시 그린피스는 “발표를 환영한다”면서도 “삼성전자에 요구되는 책임과 역할에 비해서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환경운동연합도 “다소 늦은 감이 있다”고 평가했다.
삼성의 ESG경영이 두드러지지 않는다는 시각이 있다. RE100 선언도 비교적 늦었다.
“알고 있다. ESG경영은 시대 흐름이자 대세다. 기업으로선 할 수밖에 없다. 준감위도 담당 부서에 ‘왜 이리 늦느냐’고 물었다. ‘삼성은, 삼성이 말한 것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 RE100이 현실적으로 가능성 있는지 확신이 들기 전까진 쉽게 말할 수 없다’고 답하더라. ‘삼성이 말하면 지켜야 한다’는 말에서 선두 기업의 무게를 느꼈다. 솔직히 놀랐다. 이전엔 삼성이 무조건 1등만 추구하는 기업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사회적 책임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더라. 사실 현재로선 국내 재생에너지 공급 기반이 부족해 RE100 실현이 쉽지 않다. 삼성이 섣불리 선언했다가 지키지 못하면 그만큼 여파가 커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얼마나 잘 실현하는지가 중요하지, 언제 선언했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고 본다. RE100은 마라톤과 같다. 초반에 선두로 달리는 선수는 우승하지 못한다. 일정한 페이스를 유지하며 끝까지 가는 자가 승리한다.”
지배구조 개편도 준감위가 풀어야 할 숙제로 꼽힌다. 삼성의 지배구조는 크게 이재용 회장→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지는 형태다. 이 회장은 삼성물산 최대주주로서 지분 17.97%를 보유하고 있고, 삼성물산은 삼성생명 지분 19.34%를 가진 최대주주다.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지분 8.68%를 소유하고 있다. 이 회장은 삼성생명 지분 10.44%를 갖고 있지만 삼성전자 지분은 1.63%에 불과하다. 이런 상황에서 이른바 ‘삼성생명법’으로 불리는 보험업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지분을 총 자산 가운데 3%만 보유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이 회장의 삼성전자 지배력이 약해진다. 올해 초까지 업계에선 삼성물산을 지주사화하는 방안이 가장 유력한 것으로 평가됐지만 2월 삼성물산이 자사주를 전량 소각하기로 결정하며 수그러든 상태다.
지배구조 개편 방안에 대해 세간의 관심이 크다. 내부적으로 결정된 사항이 있나.
“성급히 말할 수 없는 부분이다. 삼성이 국가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하면 삼성이 잘못된다는 것은 곧 한국 경제에 직격탄이기 때문이다. 물론 전문가마다 ‘설’은 있다. 그런데 이들을 모아 토론을 하면 정답이 안 나온다. 반론을 제기하면 ‘일단 해보고 얘기하자’고 말하는데…. 삼성이라는 기업과 한국 경제를 마치 손바닥 안 장난감처럼 생각하는 것 아닌가 싶다. 되레 묻고 싶다. ‘뒷감당을 할 수 있겠느냐’고. 농담이긴 하지만 내가 ‘해결책을 제시하는 사람은 나라를 구하는 사람’이라고 말하곤 한다. 그 정도로 복잡하다.”
삼성물산 지주사화가 유력한 방안으로 거론되기도 했다.
“그 역시 방안 가운데 하나였을 뿐이다. 그래서 될 것 같으면 벌써 해법이 나오지 않았을까. 임기 중에 정답을 내면 좋겠지만 그러지 못하더라도 정답을 찾아가는 방향등 정도는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삼성 망하길 바라는 사람 있을까
2020년 5월 6일 서울 서초동 삼성사옥에서 이재용 당시 삼성전자 부회장이 경영권 승계 및 노동조합 문제 등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고 있다. 이는 같은 해 2월 출범한 삼성 준법감시위원회가 권고한 데 따른 것이다. [뉴스1]
“지배구조 개편 방안 가운데 어떤 것을 염두에 두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준감위가 2기까지 이어졌고, 사측에서 전폭적 신뢰와 지원을 보내주고 있다. 준법 경영·ESG 경영 의지만큼은 확실하다는 증거로 본다. 준감위 존재 자체가 곧 삼성의 준법 및 지배구조 개선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일각에서는 2기 준감위의 독립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지난해 6월 이 위원장의 이재용 회장 사면 촉구가 근거다. 당시 준감위·삼성 계열사 경영진 간담회에서 이 위원장은 취재진에게 “코로나 사태 이후 경제가 어려운데 기업 경영진이 재판 때문에 제대로 경영할 수 없으면 결국 국민이 피해를 본다”고 말했다. 경영진에 대한 ‘감시’가 임무인 준감위 특성을 감안할 때 적절치 않은 발언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당시 김경율 회계사(경제민주주의21 대표)는 “이 위원장의 발언은 지배구조와 내부통제 구조를 개선하겠다는 준법위의 약속을 스스로 뒤엎는 것”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준감위에 사측의 외압이 있나.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랬다면 나를 포함해 모든 위원이 사퇴했을 것이다. 오히려 반대다. 준감위 운영과 관련해 이재용 회장을 몇 차례 만났고, 준감위의 독립성을 보장받았다. 이 회장은 준법 경영이 이미 체질화됐다. 간담회, 이사회 등 논의가 있으면 가장 먼저 ‘준감위에서 논의된 사항인가’라고 묻는다. 이하 경영진도 마찬가지다. 준감위는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제도다. 이처럼 자리를 잘 잡는다면 경영진의 사법 리스크를 예방하는 데 큰 역할을 할 듯하다.”
지난해 이재용 회장 사면을 주장해서 논란이 일었다.
“위원장으로서가 아니라 개인적 신념에 따른 발언이었다. 어떤 비난을 받을지 예상하지 못한 게 아니다. 알면서도 그리 한 건 삼성과 준감위가 ‘건강한 긴장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믿음 때문이다. 감시도 회사의 성장을 위한 것이지, 회사가 망하길 바라서 하는 게 아니다. 세계 각국 기업과 각축을 벌이는 상황에, 기업 총수의 발목을 묶어놓고 일주일에 한 번 재판을 받게 하며 해외 출장을 갈 때엔 법원의 허가를 받도록 하는 게 맞나 싶었다. 당시 내 발언에 대해 한 언론에서 ‘사법권 침해’라고 했을 땐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사면은 사법부 권한을 침해하는 게 아니다. 사법부의 판결을 존중하되, 대통령이 국가원수로서 권한을 행사하는 것이다. 기본적 법리도 모르면서 무작정 비판한 셈이다. 단지 삼성이라는 이유로 덮어놓고 비난과 견제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삼성이 발전해야 국가경제가 발전한다. 삼성의 발전을 위해 비판할 것은 비판하고, 도울 것은 돕는 게 준감위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과연 삼성이 망하길 바라는 사람이 있을까. 시간을 되돌린다 해도 내 선택은 변함없을 것이다.”
컨트롤타워 부활에 대한 관심도 크다. 2017년 국정농단 사태 이후 삼성은 그간 그룹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온 미래전략실을 폐지하고 사업 부문별로 삼성전자 사업 지원, 삼성 생명 금융경쟁력 제고, 삼성물산 EPC(설계·강화·시공) 경쟁력 강화 3개의 태스크포스(TF)를 운영하고 있다. 근래 주력 사업인 반도체산업 위기와 배터리·바이오 등 신사업에 대비해 일원화된 컨트롤타워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해 10월 준감위 간담회를 앞두고 이 위원장은 “컨트롤타워 재개에 대해 논의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컨트롤타워 부활 논의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배에 비유하자면 삼성은 항공모함과 같다. 개인적 의견으론 작은 돛단배라면 컨트롤타워가 필요 없겠지만 항공모함엔 필요하다. 삼성 내부에서도 비록 3개의 TF가 있으나 중심 역할을 할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다. 다만 상황이 여의치 않다. 이재용 회장이 여전히 재판을 받고 있고, 준감위 위원들의 생각도 모두 같다고 보긴 어렵다. 공식적으로 컨트롤타워 부활을 말할 순 없는 상태다. 또 과거 컨트롤타워에 권력이 집중되며 많은 문제를 야기했다. 삼성 스스로의 통제와 다시는 그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약속이 전제돼야 할 것이다.”
삼성전자는 4월 27일 1분기 영업이익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95.5% 감소한 6402억 원을 기록했다고 공시했다. 같은 기간 매출도 63조7454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8.1% 줄었다. 반도체 부문에서 4조5800억 원 적자를 봤다. ‘반도체 위기론’에 컨트롤타워 부활 필요성이 제기된다. 사진은 이날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전경. [뉴스1]
좋지 않은 토양에 꽃 자랄 수 없다
과제가 산적한데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화려함보다 내실을 더 추구한다. 삼성에 준법 경영이 최우선이고, 이윤 추구에도 도움이 된다는 인식이 더 뿌리내리길 바란다. 한국 기업문화에서 처음엔 잘했다고 박수를 받다가 나중엔 ‘해가 되는 일’이라며 비난받는 일이 빈번했다. 성과 위주 성장 문화 때문이다. 기초가 튼튼해야 오래갈 수 있다. 아무리 예쁜 꽃이라도 토양이 좋지 않으면 금방 죽는다. 준감위가 삼성에 좋은 토양을 제공할 수 있다면 족하다.”
이 위원장이 말하는 토양이란 한국이 선도하는 ‘글로벌 스탠더드’와 맞닿아 있다. 그는 “ESG경영도 외국에서 들여온 원리다. 삼성의 준법경영 정신이 국내 기업 정착은 물론 세계 기업에 경영 원칙으로 수출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에게 삼성의 발전은 곧 한국의 발전이며 삼성의 변화는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삼성의 지배구조 개선이 한국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나.
“한국 국내총생산(GDP) 상당 부분이 삼성에서 나온다. 삼성 관련 주주는 약 700만 명에 이른다. 삼성이 성장하는 것은 한국이 성장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고(故) 이건희 회장이 신(新)경영을 선언한 지 30주년이 됐다. 삼성이 국내 1위를 넘어 글로벌 1위로 성장해야 할 때다. 이를 위해선 외적 성장뿐 아니라 내적 성장을 함께 이뤄야 한다. 이른바 ‘재벌’로 여겨지는 한국 대기업엔 이사회·위원회·계열사 위에 하나의 최고 경영진, 즉 오너가 있다. 감시의 사각지대다. 삼성의 준법경영은 이에 대한 개선 의지이자 한국 기업문화에 최적화된 원칙이다. 삼성은 이미 재계 지형을 바꿔나가고 있다. 하나의 롤 모델이 되리라고 본다.”
이현준 기자
mrfair30@donga.com
대학에서 보건학과 영문학을 전공하고 2020년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했습니다. 여성동아를 거쳐 신동아로 왔습니다. 정치, 사회, 경제 전반에 걸쳐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관심이 많습니다. 설령 많은 사람이 읽지 않더라도 누군가에겐 가치 있는 기사를 쓰길 원합니다. 펜의 무게가 주는 책임감을 잊지 않고 옳은 기사를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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