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호

“우리는 SK·LG와 다르다, 7년 후 전고체 배터리 양산”

[Special Report | 이건희 新경영 30년 시점에서 대한민국 ‘미래 30년’ 보다] 초격차 노리는 삼성SDI

  • 조은아 더벨 기자

    goodgood@thebell.com

    입력2023-07-12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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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G·SK 덩치 키울 때 내실 다져

    • 배터리 戰 최종 승자 가늠쇠, ‘전고체 배터리’

    • 배터리 3사 중 상용화 속도 가장 빨라

    삼성SDI는 LG에너지솔루션, SK온 등 경쟁사와 다른 길을 선택했다. 양적 성장을 강조한 두 곳과 달리 기술경쟁력을 바탕에 둔 ‘질적 성장’을 강조해 왔다. 외형 확대를 위해 공격적으로 수주에 나서기보다는 ‘초격차’로 대표되는 고품질 제품을 기반으로 수익성 위주 사업 전략을 택했다.

    최근 1~2년 사이 전기차 배터리 수요가 급증하면서 삼성SDI도 이전보다는 적극적으로 수주에 나서는 모양새다. 그럼에도 본연의 전략은 그대로다. 수익성 및 품질 초격차에 중점을 두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꿈의 배터리’로 통하는 전고체 배터리가 있다.

    전고체 배터리는 안전성과 용량 등 여러 조건에서 뛰어난 이상적 배터리로 통하지만 갈 길은 멀고 험난하다. 삼성SDI는 전고체 배터리 상용화 목표 시기를 2027년으로 제시했지만 업계에선 현실화 가능성에 대해 꾸준히 회의적 시선을 보낸다. 일각에서는 전고체 배터리 자체를 비관적으로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삼성SDI의 전고체 배터리 뚝심은 결실을 볼 수 있을까.

    안전성·용량 모두 갖춘 ‘꿈의 배터리’

    배터리 업계에선 규모가 곧 경쟁력으로 통한다. 대표적 자본집약형 산업으로 ‘규모의 경제’ 실현이 중요하다. 기술집약적 반도체, 바이오와 달리 많은 자본을 투자해 시장을 선점해야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이 최근 몇 년 사이 다소 무리하다시피 증설에 나선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삼성SDI는 이와 같은 ‘무한 증설’ 행보에 동참하지 않고 있다. 글로벌 시장점유율이 5위 밖으로 밀려나 있는 상황에서도 점유율에 연연하지 않고 여전히 수익성을 중심에 둔 질적 성장을 내세우고 있다. 기술력을 통해 경쟁사 대비 확실한 차별성을 보여주겠다는 목표다. 삼성SDI는 일찌감치 전고체 배터리 연구를 시작했다. 차세대 배터리 시장의 주도권을 쥐는 쪽이 배터리 전쟁의 최종 승자가 될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전고체 배터리는 배터리의 주요 요소가 모두 고체로 이뤄진 배터리를 말한다. 영어로는 ‘All Solid’다. 전고체 배터리는 향후 배터리 시장 판도를 흔들 ‘게임체인저’로 꼽힌다. 차세대 배터리 가운데 지난 10년간 기술개발이 가장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전고체 배터리가 각광받는 까닭은 핵심 요소인 안전성과 용량에 있다. 전고체 배터리는 가연성 액체 전해질을 비가연성 고체 전해질로 대체하기 때문에 폭발·화재 위험성이 매우 낮은 편이다. 덕분에 안전과 관련된 부품을 줄이고 그 자리에 배터리 용량을 늘리는 활물질을 채울 수 있어 주행거리가 늘어난다. 전기차가 대세로 자리매김하려면 현재 내연기관차와 비슷한 수준의 주행거리를 구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배터리 용량을 늘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전고체 배터리는 아직 ‘꿈의 배터리’로 통한다. 그만큼 이상적이라는 뜻이면서도 아직 현실화까지 갈 길이 멀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기술적 난도가 높다. 배터리는 양극의 리튬이온이 액체 전해질을 지나 음극으로 흘러가며 전기가 발생한다. 고체 전해질은 액체 전해질보다 리튬이온 이동 속도가 떨어진다. 물속을 뚫고 지나가는 게 흙속을 뚫고 지나가는 것보다 쉬운 것과 같은 원리다. 속도가 감소하면 출력도 약해지는 치명적 단점이 있다.

    3월 17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개최된 배터리 산업 전시회 ‘인터배터리 2023’에서 관람객들이 삼성SDI 원통형 배터리 2만8000여 개가 들어간 볼보 전기트럭 ‘FM 일렉트릭’을 보고 있다(위). 삼성SDI 부스에서 한 관람객이 전고체 배터리에 대한 소개 패널을 살피고 있다. [박해윤 기자·뉴스1]

    3월 17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개최된 배터리 산업 전시회 ‘인터배터리 2023’에서 관람객들이 삼성SDI 원통형 배터리 2만8000여 개가 들어간 볼보 전기트럭 ‘FM 일렉트릭’을 보고 있다(위). 삼성SDI 부스에서 한 관람객이 전고체 배터리에 대한 소개 패널을 살피고 있다. [박해윤 기자·뉴스1]

    2027년 양산, 배터리 3사 中 가장 앞서

    삼성SDI는 국내 배터리 3사 가운데 전고체 배터리 개발에 가장 앞서 있다. 2013년 이미 배터리 전시회에서 전고체 배터리를 공개한 바 있다. 삼성SDI는 2027년 황화물계 전고체 배터리를 양산한다는 계획도 세웠다.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보다 1~3년 앞선 시기다. LG에너지솔루션의 양산 목표 시기는 2030년, SK온의 양산 목표 시기는 2028년이다. 고체 전해질은 크게 황화물계, 산화물계, 폴리머계 세 가지 종류로 나눌 수 있다. 가장 기술적으로 진보했다는 평가를 받는 것은 황화물계다. 생산 규모를 확대하기 쉽고 급속 충전을 적용하기에도 유리하기 때문이다.

    삼성SDI가 양산 목표 시기를 밝힌 해는 2020년이다. 당시는 물론 지금까지도 업계는 반신반의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기술적 난도가 있는 만큼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것. 그럼에도 삼성SDI는 지금까지 목표 시기를 수정한 적이 없다. 최윤호 삼성SDI 대표이사 사장은 3월 열린 정기 주주총회에서 다시 한번 양산 시기를 2027년으로 못 박았다. 자신감의 표현임과 동시에 개발이 계획대로 순조롭게 이뤄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삼성SDI는 상반기 국내 유일 전고체 배터리 파일럿 라인 ‘S라인’ 완공도 앞두고 있다. 해외에는 전고체 배터리 파일럿 라인을 지은 배터리 회사가 몇 개 있지만 국내에선 삼성SDI가 유일하다. 파일럿 라인을 확보하면서 시범 생산을 통해 연구 성과를 검증하고, 개발에 속도를 낼 수 있게 됐다는 데 의미가 있다. S라인은 ‘Solid(고체)·Sole(독보)·삼성SDI’의 앞 글자를 땄으며 약 6500㎡(약 2000평) 규모로 지어졌다.

    S라인에는 전고체 배터리 전용 극판 및 고체 전해질 공정 설비, 배터리 내부의 이온 전달이 원활히 이뤄지도록 만들어주는 셀 조립 설비를 비롯한 신규 공법과 인프라가 도입된다. 삼성SDI는 이곳에서 올 하반기에 전고체 배터리 소형 샘플을 제작해 테스트에 본격적으로 돌입한다는 계획이다.

    삼성SDI에 전고체 배터리가 차지하는 의미는 올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행보에서도 엿볼 수 있다. 2월 말 이 회장은 삼성SDI 수원사업장을 방문해 전고체 배터리 파일럿 라인을 둘러봤다. 비슷한 시기 삼성디스플레이 아산사업장, 삼성전자 천안·온양캠퍼스를 찾아 삼성디스플레이의 QD OLED(퀀텀닷 유기발광다이오드) 라인과 삼성전자의 반도체 패키지 라인도 둘러봤다. 모두 삼성그룹이 전략적으로 키우는 사업이다.

    이 회장의 방문이 갖는 대외적 메시지를 볼 때 전고체 배터리에 거는 삼성SDI, 나아가 그룹 차원의 자신감과 기대감을 알 수 있다. 이날 이 회장의 삼성SDI 방문 이후 국내 전고체 배터리 관련주 주가가 동반 급등하기도 했다.

    압도적 R&D 투자로 경쟁 우위 노려

    지난해 12월 17일 인천 영종도 BMW 드라이빙 센터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가운데)이 올리버 집세(오른쪽) BMW CEO와 대화하고 있다. 이 회장은 삼성SDI의 ‘P5’ 배터리셀이 적용된 BMW 전기차 ‘뉴 i7’를 살펴보며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뉴스1]

    지난해 12월 17일 인천 영종도 BMW 드라이빙 센터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가운데)이 올리버 집세(오른쪽) BMW CEO와 대화하고 있다. 이 회장은 삼성SDI의 ‘P5’ 배터리셀이 적용된 BMW 전기차 ‘뉴 i7’를 살펴보며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뉴스1]

    삼성SDI가 전고체 배터리 개발에서 가장 앞설 수 있던 배경은 연구개발(R&D) 투자 규모다. 삼성SDI는 지난해 R&D 비용으로 1조764억 원을 썼다. 처음으로 1조 원을 넘겼다. 이는 배터리 3사 가운데 가장 많은 액수다.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해 R&D 비용으로 8761억 원을, SK온은 2346억 원을 썼다.

    매출 대비 비중을 살펴봐도 삼성SDI가 5.4%로 월등히 높다. LG에너지솔루션은 3.4%, SK온은 3.08%로 모두 3%대 수준이다. 삼성SDI가 다른 두 곳과 달리 배터리 사업만 하는 건 아니라 단순 비교는 어렵다. 삼성SDI는 배터리를 담당하는 에너지솔루션 사업부문과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소재를 담당하는 전자재료 사업부문으로 나뉘어 있다. 다만 지난해 에너지솔루션 사업부문의 매출 비중이 87%에 이르렀다는 점을 보면 사실상 R&D 비용 역시 대부분 배터리 분야에 쓰이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가파른 투자 증가세도 눈에 띈다. 삼성SDI의 R&D 비용은 2011년까지만 해도 2000억 원 수준이었으나 이후 급격히 늘었다. 2012년 3270억 원에서 2014년 6205억 원으로 2년 만에 두 배 가까이 뛰었다. 매출 대비 비중도 4%대를 꾸준히 유지했다. 2016년에는 10%를 넘기기도 했다. 제조업계에선 거의 볼 수 없는 수치다.

    물론 삼성SDI만 전고체 배터리 개발에 힘을 쏟고 있는 건 아니다.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 역시 전고체 배터리 개발에 한창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황화물계와 폴리머계를 동시에 개발하는 ‘투 트랙’ 전략을 펴고 있다. 상대적으로 기술 난도가 높지 않은 폴리머계 전고체 배터리를 2026년에 먼저 양산하고, 2030년 이후 황화물계 전고체 배터리를 양산한다는 구상이다. SK온은 2025년 황화물계 전고체 배터리 시제품을 개발하고 2028년 양산에 돌입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해외에도 경쟁자가 있다.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시장 부동의 1위인 중국 기업 CATL이 전고체 배터리를 개발하고 있다. 2025년까지 1세대 전고체 배터리를 개발하고, 2030년 이후 2세대 제품을 선보일 계획이다.

    일본 기업도 빼놓을 수 없다. 일본은 전고체 배터리 관련 특허를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국가다. 올해 7월 니혼게이자이신문의 조사에 따르면 전고체 배터리 특허 건수 글로벌 10위 기업 가운데 6개가 일본 기업으로 나타났다. 특히 토요타는 1331건의 특허를 보유한 것으로 집계됐다. 일본은 현재 리튬이온 배터리 시장의 주도권을 한국과 중국에 내준 만큼 차세대 배터리 시장에서 전고체 배터리를 통해 다시 패권을 쥐려 한다.

    스타트업들도 전고체 배터리 개발 경쟁에 뛰어들었다. 미국의 퀀텀스케이프가 대표적이다. 퀀텀스케이프는 지난해 12월 전고체 배터리 시제품들을 전기차 회사에 보내 성능 시험에 들어갔다고 발표했다.

    가격경쟁력 확보가 관건

    전고체 배터리에 대한 회의적 전망 극복은 숙제다. 전고체 배터리 양산에 성공하더라도 비싼 가격으로 경쟁력을 갖추기 어렵다는 지적이 적잖기 때문이다. 증권업계에 따르면 전고체 배터리의 제조단가는 2028년 1㎾h(킬로와트시)당 160달러인 반면 같은 기간 기존 리튬이온 배터리의 제조단가는 1㎾h당 80달러대다.

    4월 에너지 전문 시장조사업체인 SNE리서치는 전고체 배터리 양산이 시작돼도 2035년 전체 2차전지 시장에서 차지하는 점유율이 10~13%에 불과할 것으로 내다보기도 했다. 배터리 업계 내부에서도 회의적 시각이 존재한다. 가격이 비싸고 쓰임새 역시 한정돼 의미 있는 점유율 달성이 어렵다는 것이다.

    장학진 LG에너지솔루션 TI(기술지능)전략팀장은 4월 ‘넥스트 제너레이션 배터리 세미나(NGBS 2023)’에서 “전고체 배터리는 가격경쟁력을 갖추기 힘들다”며 “전고체 배터리 개발에 가장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던 일본 기업들도 양산 시점이 계속 늦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같은 날 최영민 LG화학 전무도 “다른 배터리의 발전 단계처럼 전고체 배터리 또한 소형 전지 분야에서 먼저 도입되고 전기차 분야에는 늦게 쓰일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기존 리튬이온 배터리의 성능이 점차 개선되고 있고 가격은 점차 낮아지고 있다는 점 역시 변수다. 차세대 배터리로 전고체 배터리가 아닌 ‘업그레이드’된 리튬이온 배터리가 낙점될 수도 있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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