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호

“이만기, 농구는 허재에 져… 정의선 세계 1위? 판 바꿔라”

이무원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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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현준 기자

    mrfair30@donga.com

    입력2023-07-06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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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 3위 비결? “적확한 리더십 트랜지션”

    • ‘패스트 폴로어’ 정몽구, ‘발전적 계승자’ 정의선

    • 내수 독점·노조 문제 해결은 숙제

    • 혁신, 선택 아닌 의무… “두려워 말고 계속 가라”

    • 더는 롤 모델 없어, 선구자로 ‘게임 룰’ 선점해야

    6월 12일 이무원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신동아’와 인터뷰하면서 “현대차그룹이 세계 1위로 도약하기 위해선 게임의 룰을 선점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상윤 객원기자]

    6월 12일 이무원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신동아’와 인터뷰하면서 “현대차그룹이 세계 1위로 도약하기 위해선 게임의 룰을 선점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상윤 객원기자]

    1967년 12월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가 1억 원을 들여 ‘현대자동차주식회사’를 세웠다. 현대차그룹 모태다. 완성차를 만들 기술이 없어 미국 포드의 차를 떼어 와 조립생산해 팔았다. 1968년 탄생한 ‘코티나(Cortina)’. 현대차 최초 생산 모델이다. 이로부터 8년이 지나 일본 미쓰비시 자동차에서 기술을 구해 와 1976년 최초 자체 제작 차 ‘포니’를 내놓았다. 이때만 해도 현대차는 미국·일본·독일 자동차회사에 한참 처진 ‘변방 삼류’ 취급을 면하지 못했다. 현재 ‘글로벌 기업’의 면모를 상상한 사람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리라. 한 증권가 애널리스트는 말한다. “한국에 글로벌 수준이라고 할 만한 기업은 딱 3개다. 삼성전자, LG에너지솔루션, 그리고 현대차”라고.

    1998년 현대차는 기아차를 합병했다. 2000년 현대그룹으로부터 독립해 현대차그룹으로 탈바꿈한 후 발전을 이어왔다. 자동차업계 및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현대차그룹은 총 차량 684만5000대를 팔았다. 일본 토요타(1048만3000대), 독일 폭스바겐(848만100대)에 이어 세계 3위로 도약했다. 다만 4위 르노닛산미쓰비시연합(615만7000대)보다 1, 2위와의 격차가 더 크다. 턱밑 추격자를 뿌리치며 선행 주자를 앞질러야 하는 숙제가 남았다.

    6월 12일 서울 연세대 신촌캠퍼스에서 만난 이무원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지금까지 현대차그룹은 훌륭한 ‘패스트폴로어(Fast Follower)’로서 성과를 거뒀지만 이젠 ‘게임체인저(Game Changer)’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자동차업계, 특히 현대차그룹에 조예가 깊은 학자로 평가받는다. 2003년 박사학위 졸업 논문에서 현대차그룹을 다룬 이후 시리즈로 2008년·2022년 현대차그룹 경영에 대한 사례 연구를 발표했다. 5월 11일 그의 수업에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참석해 지난해 이 교수가 발표한 사례 연구를 주제로 학생들과 토론한 사실이 알려져 주목받기도 했다.

    이 교수는 “자동차업계는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이를 잘 인지하고 있다고 본다”고 평가하면서도 “내수 독점, 노사 갈등은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현대차그룹이 게임체인저로서 세계 1위를 노리기 위해선 스스로만의 길을 개척해 룰을 선점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시대에 맞는 리더십

    지난해 현대차그룹이 세계 3위 자동차기업이 됐다. 비결이 무엇이라고 보나.

    “현대차그룹은 경쟁을 피하지 않았다. 치열한 각축이 벌어지는 전쟁터로 향했다. 경쟁이 있는 곳에 들어가 싸움을 통해 학습하고 발전하는, 이른바 ‘레드 퀸’ 전략이다. ‘블루오션’ 전략과는 반대 개념이다. 과거 현대차그룹은 브랜드가치 최하위를 전전하는 후발 주자였다. 동남아나 남부아시아 같은 블루오션을 노릴 만했음에도 미국 진출을 택했다. 미국이 어떤 곳인가. BMW·벤츠·토요타 등 일류 기업 간 경쟁이 치열해 자국 기업 GM과 포드조차 힘들어하는 시장이다. 현대차그룹은 이런 곳에서 경쟁하며 학습했다. 2008년엔 중국으로도 진출했다. 당시 중국 자동차 시장 역시 포화 상태였다. 거기서도 성과를 냈다. 이런 과정을 거쳤기에 세계에서 인정받는 기업이 될 수 있었다고 본다.”

    이 교수는 또 하나의 이유로 ‘적확한 리더십 트랜지션(Transition)’을 꼽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자동차업계는 하드웨어를 중시하던 과거에서 소프트웨어를 중시하는 미래로 나아가고 있다. 정몽구 명예회장과 정의선 회장은 각각 과거와 미래, 자신의 시대에 필요한 리더십을 갖췄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왼쪽)과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이무원 교수는 “정몽구 명예회장은 훌륭한 ‘패스트폴로어’, 정의선 회장은 ‘발전적 계승자’”라고 말했다. [현대차그룹]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왼쪽)과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이무원 교수는 “정몽구 명예회장은 훌륭한 ‘패스트폴로어’, 정의선 회장은 ‘발전적 계승자’”라고 말했다. [현대차그룹]

    두 오너는 어떤 차이가 있나.

    “정몽구 회장은 1980~1990년대에 필요했던 ‘패스트폴로어’ 전략에 최적화한 인물이었다. 패스트폴로어 전략엔 지향점, 즉 정답이 있다. 간단하다. 미쓰비시나 토요타를 따라 하면 됐다. 키워드도 명확했다. 품질과 글로벌이다. 정몽구 회장은 2003년 품질경영, 2008년 글로벌경영을 선포했다. 가성비 좋은 상품을 세계에 많이 팔면 됐다. 정몽구 회장의 강력한 리더십이 제격이었다. 자동차산업이 ‘모빌리티’ 산업으로 변모하는 지금은 다르다. 소비자가 원하는 기준이 제각각으로 모호하다. 이럴 땐 강력한 리더십 대신 조직 구성원의 역량과 의견 모두를 담아낼 수 있는 ‘보텀-업’ 문화가 필요하다. 정의선 회장은 ‘게임체인저’ 경영을 표방한다. 이 역시 모호한 개념이다. 수장이 모호한 개념을 제시하는 것은 조직 구성원 모두가 함께 고민해 보자는 의미다. 그런 점에서 정의선 회장은 정몽구 회장을 발전적으로 계승했다고 생각한다.”

    약점 아니라 도약 시험대

    그렇다면 현대차그룹의 약점은 뭘까.

    “약점이라기보다는 ‘과제’라고 본다. 변화하고 있지만 여전히 패스트폴로어 전략을 쓸 때의 ‘톱-다운’ 문화가 남아 있다. 예컨대 하드웨어에 최적화된 인재를 소프트웨어형 인재로 갑자기 바꾸기는 힘들다. 그렇다고 내보낼 수도 없지 않나. 현재 인력을 업그레이드하며 새 인재를 영입해야 하는데…. 쉬운 일이 아니다. 위기다. 이를 도약의 기회로 바꿀 수 있느냐 없느냐 시험대에 놓인 게 작금의 현대차그룹이다.”

    6월 7일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1~4월 글로벌 전기차 인도량이 40.1% 성장한 가운데 현대차그룹의 판매량은 소폭 늘어나는 데 그치면서 5위에서 7위로 밀려났다. 현대차그룹의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불과 0.3% 성장한 반면 순위권에 자리한 다른 업체들은 모두 두 자릿수 성장률을 기록했다.

    과제 해결이 쉽지 않은 듯하다.

    “이전이 기대 이상이었고, 지금도 나쁘지 않다고 본다. 현대차그룹 같은 대기업이 신사업을 벌일 땐 빠르게 전환하기가 쉽지 않다. 결과물도 늦게 나오고, 실적도 떨어지는 게 정상이다. 그렇다고 멈추면 미래는 없다. 당장의 실적에 연연하지 않고 혁신을 이어가야 한다. 한국 기업 생태계는 미국과 다르다. 미국은 GM이나 포드가 못하면 다른 기업이 한다. 테슬라가 등장했지 않나. 한국은 삼성·현대·LG가 못하면 ‘제2’가 안 나온다. 그래서 현대차그룹은 더 잘해야 한다. 혁신이 의무임을 받아들이고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현대차그룹은 내수 부문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기준 현대차·기아의 합산 내수 점유율은 89.2%다. 2018년 81.1%에서 2019년 82.3%, 2020년 83.4%, 2021년 88%로 매년 늘었다.

    현대차그룹의 내수 독점이 혁신 저해 요인이 되지 않을까.

    “큰 저해 요인이 되진 않을 것이다. 내수를 독점했다고 해도 세계시장에서 경쟁은 이어지기 때문이다. 다만 한국 자동차 시장과 소비자에겐 좋지 않을 수 있다. 실제로 한국 자동차 시장 발전이 더딘 편이다.”

    독점을 깰 만한 기업이 딱히 보이지 않는데.

    “협력업체를 강화하는 방안이 있다. 이른바 ‘강소기업’이다. 강소기업도 글로벌 기업이 되면 현대차그룹도 이들과 제휴하기 위해 경쟁해야 한다. 국내시장에도 더 노력하게 된다. 현대차그룹을 찍어 누를 것이 아니라, 이와 같이 간접적 경쟁 구도를 조성하는 게 바람직하다. 그래야 ‘윈-윈’한다.”

    노조 문제는 어떤가. 현대차그룹 관련해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사항이다.

    “난제(難題)다. ‘노조가 발목을 잡는다’는 지적이 나오곤 하지만 노조를 적(敵)으로 규정해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그러는 순간 노조는 더 독해질 것이다. 현대차그룹 혼자서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정부·사회단체가 도와줘야 한다. 정치·정책·법이 함께 가야 해결할 수 있다. 다만 노조도 ‘청사진’을 제시할 필요는 있어 보인다. 기업은 시대의 변화에 맞게, 시대가 원하는 청사진을 그려왔다. 노조도 조직이다. 조직은 비전이 있어야 하는데, 보이지 않는다. 노조는 투쟁하면서 ‘노동자가 주인 되는 세상’을 말하지만 주인이라면 지금과 같은 모습이어선 안 된다. 한국 자동차산업 발전 혹은 한국 노동자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한 비전을 보여줬으면 한다.”

    지난해 현대차그룹은 자동차 판매량에서 세계 3위를 기록했다. 사진은 현대차 프리미엄 브랜드 ‘제네시스’의 G90모델. [현대차그룹]

    지난해 현대차그룹은 자동차 판매량에서 세계 3위를 기록했다. 사진은 현대차 프리미엄 브랜드 ‘제네시스’의 G90모델. [현대차그룹]

    “내가 1등인 판 설계하라”

    해외보다 국내에서 현대차그룹에 대한 인식이 더 좋지 않은 듯하다.

    “해외에서는 현대차그룹의 제품만 보는데, 한국인은 현대차그룹의 일거수일투족을 알아서 그렇다. 독점·노조 문제는 기본이고, 현대차그룹에서 일하는 사람이나 협력업체 직원도 있으니 당연하다. 원래 알수록 매력이 떨어지는 법이다. 재미있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스탠퍼드대에서 학생들에게 이른바 ‘잘나가는’ CEO 10여 명을 후보로 인기투표를 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꼴찌를 했다. 한국에선 ‘괴팍하지만 멋있는 천재’ 이미지로 좋아하지 않나. 테슬라 본사가 스탠퍼드대 뒤편에 있다(웃음).”

    현대차그룹이 세계 1위까지 갈 수 있을까.

    “전제돼야 할 것이 하나 있다. 1위를 정하는 기준이다. 현대차그룹이 세계 3위라는 기준은 매출이다. 생각해 보자. 이 기준으로 1위가 토요타인데, 정말 소비자가 세계 1위 자동차기업으로 토요타를 떠올릴까. 가능하다면 테슬라 자동차를 타는 것을 더 선호하지 않을까. 이런 관점에서 현대차그룹의 지향점이 양적 1위가 돼도 되는지 의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벤츠·BMW나 테슬라 같은 회사가 돼야 한다고도 말할 수 없다. 정의선 회장은 인류의 행복에 공헌하는 회사가 목표라고 말한다. 양적 1위 혹은 질적 1위 어느 쪽이든 되면 그런 회사가 되는지도 알 수 없다. 1위가 되고자 한다면 내가 1위를 할 수 있는 게임으로 바꿔야 한다.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이만기·허재 등 과거 자신의 종목에선 내로라하던 선수들이 게임을 바꾸니 너무 못하더라(웃음). 마찬가지다. 현대차그룹에 롤 모델이 더는 없다. 현대차그룹만의 판을 만들어 게임의 룰을 선점해야 한다. 게임의 지배자가 되면 그게 곧 1위다.”



    이현준 기자

    이현준 기자

    대학에서 보건학과 영문학을 전공하고 2020년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했습니다. 여성동아를 거쳐 신동아로 왔습니다. 정치, 사회, 경제 전반에 걸쳐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관심이 많습니다. 설령 많은 사람이 읽지 않더라도 누군가에겐 가치 있는 기사를 쓰길 원합니다. 펜의 무게가 주는 책임감을 잊지 않고 옳은 기사를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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