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싱하이밍에 한방 먹은 민주당, 중국 어이할꼬
더불어민주당 혁신위원회가 출범했습니다. 6월 20일에 혁신위 1차 회의가 열렸는데요. 위원장을 맡은 김은경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혁신위는 민주당의 근본을 바꾸는 대전환에 시동을 걸고, 국소 수술이 아니라 전면적 혁신을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첫 번째 혁신안으로 ‘민주당 의원 전원 불체포특권 포기 및 체포동의안 가결 당론 채택’을 당에 요구했고요. 민주당 최고위에서도 “혁신위의 제안을 존중한다”(6월 26일)는 입장을 냈습니다.
사실 불체포특권 포기는 그리 중요한 어젠다가 아닙니다. 이미 이재명 대표가 특권 포기를 선언하면서 메시지의 힘도 빠졌고요. 일각에서 ‘투항 노선’(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이라는 반발도 나옵니다만, 불체포특권 포기를 놓고 당이 쪼개지는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외려 민주당 혁신의 시금석은 대외 노선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에 있습니다. 오늘 ‘여의도 머니볼’에서 다루는 주제는 민주당과 중국 그리고 민주당과 북한입니다.
“푸틴은 시진핑의 승인이 없었다면…”
최근 민주당의 최대 악재는 ‘싱하이밍 주한중국대사 발언 파동’입니다. 싱 대사는 6월 8일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대사관저로 초청해 “미국이 전력으로 중국을 압박하는 상황 속에 (한국) 일각에선 미국이 승리하고 중국이 패배할 것이라는 데 베팅을 하는 것 같다”면서 “앞으로 반드시 후회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하필 이 장면을 민주당이 유튜브로 생중계를 했습니다. 발언 내용이나 공론화의 모양새에서 민주당에는 패착이 돼버렸죠.탈냉전 이후 민주당의 대외 노선은 명확합니다. 중국과 북한에는 유화적이고 일본에는 강경한 태도를 보였죠. 반대로 국민의힘을 비롯한 보수 계열 정당은 미국과 일본에 유화적이고 중국과 북한에는 강경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한국현대사를 통틀어보면 국민의힘의 노선이 주류에 가깝겠지만, 탈냉전 이후에는 민주당의 노선이 나름 각광받았습니다.
1992년 노태우 정부에 의해 전격적으로 한중수교가 이뤄졌습니다. 양국 간 경제협력의 규모와 범위가 비약적으로 발전했습니다. 그 사이 한중교역은 약 47배가 늘었고 2021년 기준으로 양국 간 교역액은 3000억 달러를 넘겼습니다. 중국이 한국의 최대 교역국으로 자리매김한 건 당연한 일이고요. 2000년 6·15 남북 공동선언을 통해 남북관계에도 일대 전환기가 마련됐습니다. 대북 강경노선보다는 대북 화해협력 노선이 지지를 얻은 시기였죠. 그러니 민주당의 대중, 대북 유화 노선이 실리적으로도 득이 되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한국이 수교를 맺을 때의 중국과 지금의 중국은 위상이 다릅니다. 세계적인 경제사학자인 니얼 퍼거슨 스탠퍼드대 후버연구소 교수는 이에 대해 제2차 세계 냉전(Cold War Ⅱ)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과거 미국과 소련 사이의 냉전이 제1차 세계 냉전이었다면 이제는 미‧중 사이에 2차 냉전이 발발했다는 겁니다. 이 상황에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습니다. 퍼거슨 교수는 이 전쟁을 한국이 겪은 6·25전쟁에 비유합니다. 5월 1일 후버연구소 홈페이지에 올라온 장문의 퍼거슨 교수 인터뷰(Cold War II: Niall Ferguson On The Emerging Conflict With China) 중 일부를 소개합니다.
The war in Ukraine is the first hot war of Cold War II. And just as the Korean War was the first hot war of Cold War I, it's the moment of revelation in which people in the United States begin to see that this is serious. Remember, Putin would not have invaded Ukraine without a green light from Xi Jinping. He would not still be able to prosecute his war without the substantial economic support he gets from trade with China.
(“우크라이나에서의 전쟁은 2차 냉전의 첫 번째 뜨거운 전쟁이다. 그리고 한국전쟁이 1차 냉전의 첫 번째 뜨거운 전쟁이었던 것처럼, 미국인들이 이것의 심각성을 알기 시작한 계시의 순간이다. 푸틴은 시진핑의 승인이 없었다면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을 기억하라. 그는 중국과의 무역에서 얻는 실질적인 경제적 지원 없이는 여전히 그의 전쟁을 수행할 수 없을 것이다.”)
퍼거슨 교수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6·25전쟁과 거의 비슷한 형태로 진행될 것이라고도 했습니다. 심각한 싸움이 일어난 뒤 교착 상태에 이르고, 결국 휴전 절차에 돌입한다는 겁니다. 이를 두고 퍼거슨 교수는 실제 평화에는 이르지 못하는 것(“you never actually get to peace”)이라고 표현했고요.
중국의 대만 침공 가능성도 여전히 상수입니다. 퍼거슨 교수는 이를 두고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를 떠올립니다. 세계 최고의 시스템 반도체 기업인 TSMC가 대만에 있다는 점을 들어 “대만 반도체 위기”라고 말하기도 했고요.(I think we could get to 1962 a lot faster than they did in Cold War I, and we'll call it the Taiwan semiconductor crisis.)
제가 최근에 인터뷰한 신기욱 스탠퍼드대 아시아태평양 연구소장 역시 중국이 5년 내로 대만에 군사 조치를 취할 가능성을 우려합니다. 그는 “신냉전 구도로 가는 건 막아야겠지만,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고 북한이 무력행사에 나서면 (동아시아에) 두 개의 전선이 형성된다. 그럴 경우 한국이 전략적 모호성을 취할 수는 없다”고 말했습니다.(관련기사: 신동아 7월호 “제국이 세계를 운영한다면 중국보다는 미국이 낫다”)
탈냉전 구도가 무너지다
즉 민주당의 대외 노선이 힘을 받던 탈냉전의 구도는 무너져가고 있습니다. 민주당이 표를 받아야 하는 유권자 사이에서도 중국, 북한에 대한 정서는 좋지 않습니다. 옳고 그름을 따지려는 게 아닙니다. 숫자는 그렇게 말하고 있다는 겁니다. 2021년부터 2023년까지 각기 다른 기관이 조사해 발표한 지표 3개를 소개하겠습니다.동아시아연구원(EAI)이 한국리서치의 액세스 패널(2020년 10월말 기준 전국 62만여 명)을 활용해 전국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2021년 11월 8~10일 실시한 조사를 보겠습니다. 이에 따르면 중국에 좋지 않은 인상을 갖고 있다는 응답률이 73.8%로 일본에 좋지 않은 인상을 갖고 있다는 응답률(63.2%)을 크게 앞섰습니다. ‘중국의 부상이 한국의 경제적, 안보적 이익’에 ‘위협’이라는 응답자는 69.2%로 ‘기회’를 택한 응답자(21.9%)를 크게 앞섰고요.
이번에는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모노리서치에 의뢰해 1000명을 대상으로 국민이 바라는 신정부의 경제외교안보 정책을 조사한 결과를 소개합니다. 이 자료는 대선 직후인 2022년 4월 4일 공개됐습니다. 그 결과, 한중관계에 단기적인 어려움을 겪더라도 한국 정부가 주요 갈등 현안에 대해 당당한 입장을 표명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84.9%가 찬성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올해 4월 18일 한국리서치가 발표한 ‘주변국 호감도’ 조사를 보겠습니다. 조사 대상자들에게 한반도 주변 5개국에 대해 평소 느끼고 있는 감정을 0도에서 100도 사이(0에 가까울수록 차갑고 부정적인 감정, 100에 가까울수록 뜨겁고 긍정적인 감정)로 표기하게 했는데요. 이에 따르면 미국에 대한 감정온도가 57.2도로 가장 높았고, 다음으로 일본(34.9도), 북한(27.3도), 러시아(25.5도), 중국(25.1도) 순이었습니다. 중국에 대한 감정이 ‘김정은의 북한’은 물론 ‘푸틴의 러시아’보다도 낮습니다.
젊을수록 北과 中에 호감도 낮아
특히 한국리서치 조사를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조사에 따르면 젊을수록 북한과 중국에 대한 호감도가 낮았습니다. 18~29세 응답자의 북한 호감도는 22.3도였고, 중국 호감도는 15.1도였습니다. 퍼거슨 교수의 표현대로라면 1차 냉전 시대에 청춘을 보낸 60세 이상의 북한 호감도(30.3도)와 중국 호감도(31.8도)보다 도드라지게 낮은 수치입니다. 대신 이들은 전 세대를 통틀어 미국(62.3도)과 일본에 대한 호감도(42.4도)가 가장 높았습니다. 30대에서도 북한 호감도는 25.9도, 중국 호감도는 20.2도에 그쳤습니다. 러시아에 대한 호감도(22.1도)는 전 세대에서 가장 낮았고요.사실 청년 사이에서 반중(反中) 및 반북(反北) 담론이 커지는 이유는 진보 시민사회 일각에서 말하듯 청년들이 ‘미국화 된 교육을 받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1980년 이후 출생 세대는 민주주의 체제에서 성장했습니다. 중국과 북한, 그리고 러시아에 대한 비호감도가 공히 큰데서 나타나듯 권위주의 체제에 대한 반감을 표출하는 겁니다. 자유와 민주를 공기처럼 누리고 자란 세대이기 때문입니다. 1986년생인 저만 해도 태어날 때 대통령은 전두환이었지만 그에 대한 기억은 없습니다. 노태우 정부에 대한 기억도 희미합니다. 외려 제 머릿속에 떠오르는 첫 번째 정부는 김영삼 ‘문민정부’입니다.
굳이 표현하자면 ‘민주주의 세대’라 할 1980년 이후 출생 세대가 가진 정서와 민주당의 전통적인 대외 노선이 어긋났다고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용외교’나 ‘실리외교’라는 멋들어진 말로 포장하기에는 현실의 상황도 녹록치 않습니다. 굳이 한국이 나서서 중국이나 러시아를 도발할 필요는 없지만, 갈등상태가 되면 할 말은 해야 한다는 정서가 확산하고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 한국이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할 수 없는 상황에 내몰릴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민주당 입장에서 거대한 딜레마입니다. 탈냉전 시대에 보수는 냉전 시대와 마찬가지로 중국과 북한에 공세적인 레토릭을 쏟아내면서 대중의 정서와 멀어졌습니다. 민주당의 대외노선이 ‘세련됐다’는 평을 받은 배경이고요. 반면 신냉전 혹은 2차 냉전 시대에는 민주당의 대중‧대북 레토릭이 고루해 보입니다. ‘싱하이밍 주한중국대사 발언 파동’이야말로 대중의 정서와 따로 움직이는 민주당의 현주소를 반영합니다. 관성대로 갈 것이냐, 시대의 조류에 몸을 맡길 것이냐. 민주당이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숙제에 직면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영상에서 확인해 주십시오. ‘구독’ ‘좋아요’도 부탁드립니다.
* 이 기사에 나온 조사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각 기관의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