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대만 문제 언급은 中 레드라인 넘은 것
위험 완화(derisking) 아닌 위험 재강화(rerisking) 중
中, 한국 배제 비동조화(decoupling) 정책 추진 정황
‘위협에 대한 균형’ 대신 ‘이익 균형’이 목표 돼야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15일 인도네시아 발리 한 호텔에서 열린 한·중 정상회담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악수하고 있다. [뉴시스]
중국과의 관계도 문재인 정부가 표방한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의 내실화’와는 거리가 멀다. 소통은 단절됐고, 무역관계는 구조적 역조에 접어든 단계다. 북한 문제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몰입과 집착은 이 같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거나 마땅한 대응책을 찾기 어렵게 했다. 비단 문재인 정부뿐 아니라 김대중 정부 이후 오랫동안 외교를 사실상 방치하다시피 한 한국이 처한 현주소다.
지정학적 파쇄 지대에 놓인 대한민국
정치지도자들은 외교에 문외한이었고, 외교 분야에는 당파성 있는 인물이 검증도 없이 채워졌다. 위정자들의 무지와 무관심 속에 내세울 만한 싱크탱크 하나 없다. 지정학적으로 가장 위협적인 중국과 지척거리에 있으면서도 국제경쟁력을 갖춘 중국연구소 하나 없다.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담당 보좌관을 지낸 즈비그뉴 브레진스키가 지적한 대로 대륙 세력과 해양 세력의 접점에 위치해 지정학적으로 파쇄 지대에 놓여 있는 대한민국으로서는 아이러니한 일이다.그동안 이 같은 현실이 가능했던 것은 패권국 미국과 강력한 한미동맹을 유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이래 미·중 전략경쟁 격화와 미국의 국내정치 상황은 더는 그 같은 전제에 의존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역사적으로 대(大)변혁기에 강대국에 대한 지나친 의존과 집착은 우리에게 재앙과 같은 결과를 가져왔다. 이는 국제정치의 악마성을 잘 이해한 마키아벨리가 일찍이 강하게 경고한 일이다.
북한은 한국이나 미국의 어떤 방어기제로도 방어가 어려운 핵미사일 역량을 구비하고 있다. 미국을 향해 발사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을 개발하고, 핵의 소형화 역량을 강화하면서 실전 배치는 물론 이를 사용하겠다는 전략 변화를 공표했다. 러시아는 미국과 서방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동진에 대응해 우크라이나를 침략했다. 20세기 국제사회가 두 차례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합의한 ‘영토와 주권 존중’이란 유엔(UN)헌장 원칙을 사문화한 것이다. 동시에 핵 사용 위협도 불사하고 있다. 핵보유 국가가 비핵국가에 대해 핵사용 위협을 해서는 안 된다는 국제정치의 일반적 묵계가 깨지고 있는 것이다. 이는 핵보유국 북한이 한국에 대해 핵 위협을 가할 수 있는 국제정치적 제약을 풀어주는 효과가 있다.
더 큰 문제는 미·중 전략경쟁의 격화다. 오랫동안 한미동맹에 의지해 생존과 번영을 구가해 온 대한민국은 미·중 전략경쟁과 새로운 국제정치 상황의 도래가 곤혹스럽다. 1990년대 초 사회주의권 붕괴는 미국 중심 자유주의 패권 질서라는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자유민주주의 체제와 시장 확산은 인류 역사의 최정점에 도달한 듯했다.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말한 ‘역사의 종언’은 이를 극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그 같은 기대는 오래가지 못했다. 30년 천하였다. 미국은 중국이라는 도전자의 부상을 억제하지 못했다. 독일, 소련, 일본 등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40%에 도달하는 국가는 반드시 굴복시킨다’는 묵언의 법칙은 미국 스스로 야기한 2008년 금융위기로 인해 실현하지 못했다. 중국은 2021년 미국 GDP의 70%를 넘어섰고, 현재의 발전 속도로 비춰볼 때 중국이 미국을 추월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미·중 전략경쟁은 결말을 알 수 없는 새로운 국제질서 수립을 향해가고 있다.
세계는 지금 미국이 제시한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의 ‘천하양분론’과 중국이 추진하는 미국·중국, 그리고 중간지대의 ‘천하삼분론’, 러시아의 전통 지정학적 이해를 반영한 ‘4대 영향권론’이 각축하면서 합종연횡하고 있다.
안미경미(安美經美) 전략
국내에서는 그 대응책으로 한미동맹 강화, 복합외교론, 균형외교론 등이 제기되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미국이 제시한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라는 ‘천하양분론’을 수용한 듯하다. 한미동맹을 확고히 하며 한·미·일 안보협력도 강화하고 있다. 대일 외교 개선을 위한 윤 대통령의 결단은 미국이 미일동맹을 중심으로 새로운 공급망을 재편하려는 비전과 신념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그동안 안보는 미국에, 경제는 중국에 의존하던 안미경중(安美經中) 전략 방향을 미국과 전적으로 협력하는 안미경미(安美經美) 일변도 전략으로 바꾼 것이다. 북한의 위협에 강하게 대응하면서, 미사일 전력을 핵심으로 한 자체 군사 역량도 강화하는 조치를 취하고 있다.
문제는 국제정치 현실이 한국 조야가 쉽사리 수용한 천하양분론과는 사뭇 다른 양상이라는 점이다. 북·중·러는 가치적으로 흡사해 보이지만 동맹은 아니다. 그들 나름의 견제와 전략적 이해를 안고 각자도생의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국내외 비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전략 주권과 자율성을 강조하면서 중국을 포용하는 정책 기조를 발표했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도 중국공산당 20차 당대회 직후 수많은 기업인을 대동하고 중국을 방문, 3연임에 성공한 시진핑의 권위를 세워줬다. 일본도 중국을 견제하면서도 무역 증대나 에너지 협력 등에서 결코 실리를 포기하지 않았다. 일본은 고립된 섬나라가 아니다. 변화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항상 기민하게 반응하면서 네덜란드, 영국, 독일, 미국 등 당시 가장 강력한 국가와 동맹을 맺어왔고, 실리적 부강책을 추구해 왔다. 현재도 예외가 아니다.
그에 비해 조선은 예와 신의의 나라였다. 명나라에 대한 보은을 중시해 병자호란과 정묘호란을 겪었다. 조선조 말까지 청나라에 대한 예를 다하고자 했다. 예와 신의를 지키고자 했던 그 주류 세력은 나라의 참화와 멸망을 막지 못했다.
중국의 4大 불가 방침
윤석열 정부는 미국 중심 국제질서가 여전히 유지될 것이라는 강한 믿음으로 미국에 대한 예와 신의를 다하려고 하는 듯하다. 대통령실 도청 사태에서조차 미국 정부보다 더 나서서 미국의 입장을 옹호했다.‘분열된 세계’라는 영국 케임브리지대 2022년 보고서는 세계 다수 국가가 미국 중심 국제 질서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퓨(PEW)리서치의 2021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서방 주요 국가 모두 미국의 경제적 리더십은 지속하기 어렵다고 믿고 있다. 미국조차 경제를 운용하는 데 중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완전히 절연한 세계를 만들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이해한다. 사우디-이란 타협에서 알 수 있듯 중동에서 중국 영향력은 급속도로 커지고 있다. 중앙아시아에서는 중국이 러시아의 영향력을 넘어 일대일로의 획기적 돌파구를 열고 있다. 특히 청나라 시절 지린성에 속했으나 1860년 중국과 러시아 간 베이징 조약에 따라 러시아에 편입한 블라디보스토크 항구 사용권을 러시아가 중국에 내준 것은 의미심장하다.
미·중 전략경쟁 시기에 한미동맹 강화와 한·미·일 안보협력 강화는 상당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윤 대통령은 미국 국빈방문 전 로이터통신과 인터뷰하면서 중국의 핵심 이익 중 핵심으로 간주하는 대만 문제를 언급함으로써 중국의 레드라인을 넘어섰다.
현실적으로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은 우크라이나가 이길 수 없는 전쟁이다. 서유럽과 미국의 우크라이나 지원도 점차 약화될 전망이다. 가치를 중시하는 윤석열 정부는 그럼에도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서 우크라이나 군사지원 가능성 발언으로 러시아와 거의 적대적 관계로 전환했다. 이는 그간 한국 외교에서 보수·진보 정권에 관계없이 묵계라고 할 수 있는 한미동맹 최우선, 중국·러시아와 적대관계 전환 불가라는 원칙을 깨버린 것이다.
당분간 러시아가 동아시아에 전력을 집중할 여력이 없다는 점에서 윤석열 정부 최대 외교·안보 도전은 한·중관계에서 올 것이다. 중국은 2022년 10월 열린 20차 당대회에서 시진핑 지도부 3연임을 공식화한 이후 미국이 주도하는 일극 중심의 국제질서를 더는 수용하지 않고 새로운 다극화된 국제질서를 추진할 것을 천명했다. 글로벌발전구상(GDI)·글로벌안보구상(GSI)·글로벌문명구상(GCI)을 연이어 발표하고, 수동적 자세에서 벗어나 더욱 적극적 자세로 중국과 러시아가 주도하는 새로운 다극화된 국제 질서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중국은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이 상호 적대적 대결을 유발하고 있다며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대응해 나갈 것임을 천명했다.
문제는 윤석열 정부의 이념과 가치 중심 외교가 중국과의 대립을 심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윤석열 정부가 친미 노선과 한·미·일 안보협력을 공개적으로 천명하면서 중국과 디리스킹(derisking) 아닌 리리스킹(rerisking) 위험이 크게 상승하고 있다.
실제 중국이 한국을 배제하는 대(對)한국 비동조화(decoupling) 정책을 추진하는 정황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5월 22일 방한한 류진쑹 중국 외교부 아시아 담당 국장은 한·중관계 개선이 아닌 관계 악화 방지와 관리를 위해 한국을 방문했다고 한다. 특히 중국의 마지노선인 △중국 핵심 이익 침해 시 협력 불가 △친미·친일 일변도 정책으로 나갈 경우 협력 불가 △한중관계 긴장 지속 시 고위급 교류 불가 △악화된 정세 아래 한국의 대북 주도권 행사 불지지 등 4대 불가 방침을 전달했다고 한다.
중국은 한국과의 접촉선을 정리해 나가는 조치를 취하고 있다. 올해 내 시진핑 주석 방한이나 윤석열 대통령 방중 모두 어려워 보인다. 심지어 올해 말 한국에서 개최 예정인 한·중·일 3국 정상회담 개최 여부도 불투명해졌다.
중국의 대(對)한국 정책은 중국이 대만을 억제하기 위해 그간 전개한 방식을 채택할 가능성이 높다. 러시아와 더불어 군사적으로 한국을 포위하고(圍韓), 정치외교적으로 한국을 괴롭히고(困韓),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직면(窮韓)하게 하는 정책을 종합적으로 전개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과의 완전한 디커플링은 실현 가능한 방안이 아니다. 한국은 통상국가로서 장차 전 세계 인구의 80%를 차지할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 서구 경제권보다 더 커질 브릭스(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 경제권에 대한 접근권을 반드시 확보해야 한다. 한미, 한일관계를 개선한 윤석열 정부가 앞으로 중국과의 관계 개선에 나선다고 하더라도 전통적 수준의 판단과 접근으로는 쉽지 않을 것이다.
‘세력균형’ 아닌 ‘이익 균형’ 꾀해야
극심하게 요동치는 불확실하고 불안정한 세계에서는 신념과 믿음보다 정확한 분석과 유연하고 기민한 대응 역량이 국익에 부합한다. ‘세력균형’이나 ‘위협에 대한 균형’으로는 부족하다. 환상과 기대를 최대한 배제한 ‘이익 균형’이라는 목표를 갖고 실질적 성과를 거둘 수 있어야 한다.4차 산업혁명에서 한국의 생존 공간을 확보하고, 북핵 위협에 대한 군사적 대응 방안을 마련하는 것, 그리고 중국·러시아와 충돌을 억제하고 관리하는 것이 우리 국가 이익에 속하는 실리다. 윤석열 대통령이 앞으로 이 같은 분야에서 얼마만큼의 결실을 거두느냐에 따라 역사적 평가가 달라질 것이다.
사회화되고 규범화된 개인의 삶과 국제정치의 그것은 확연히 다르다. 국제정치의 본질은 약육강식 법칙이 통하는 정글에 더 가깝다. 궁극적으로 자신의 운명은 결국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 그런 점에서 동맹은 수단일 뿐 타인의 자비에 나의 생존과 번영을 기댄다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국가의 생존과 주권 존중을 보장한 20세기 국제 규범이나 규칙은 강대국 이익이라는 이름 앞에서 너무 미약한 기제다. 트럼프 행정부 시기 미국 대외정책이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자국 이익 보호를 우선시하는 경향이 점차 강해지는 미국 국내정치 경향 역시 앞으로 윤석열 정부 외교가 대단히 어려운 상황에 직면할 수 있음을 예고한다.
신동아 7월호 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