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민법‧호적법의 가치관
출생신고, 자율에 맡긴 이유
‘병원 외 분만’ 0.2%의 의미
‘익명출산제’와 ‘신뢰출산제’
모성애에 모든 것 떠넘겨서야
영아 2명을 살해하고 냉장고에 시신을 유기한 친모 고 모씨가 6월 30일 경기 수원시 영통구 수원남부경찰서 유치장에서 나와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뉴스1]
요즘은 뉴스를 보기 두려울 정도다. 이런 끔찍한 영아 살해 사건 소식이 줄이어 등장한다. 편차가 있지만 내용은 대체로 비슷하다. 어떤 여성이 아기를 낳는다. 기를 수 없다는 판단 하에 아기를 집 안에 방치하거나, 살해하거나, 어딘가에 버린다. 아기는 죽고 엄마는 뒤늦게 법의 심판을 받는다. 대중의 여론은 들끓는다. 모성을 포기한 여자들! 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가?
잘못된 질문이다. 대체 왜 이런 일이 지금 이 시점에 연이어 보도되고 있는지, 그것을 먼저 물어야 한다. 영아살해 혹은 유기라는 범죄와 별도로 왜 지금 ‘보도’되고 있느냐고 묻는다면 그 이유는 분명하다. 태어났지만 출생신고 되지 않은 이른바 ‘미등록 아동’에 대해 감사원에서 대대적인 조사를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5년부터 지금까지 병원에서 출산했다는 기록은 있지만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사례는 총 2236건. 아기를 정상적으로 기른다면 출생신고를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따라서 이 아기들은 어떤 ‘비정상적’ 상황에 놓여 있다고 볼 여지가 충분하다. 앞서 우리가 살펴본 것처럼 입에 담기 힘든 비극으로 끝난 경우가 적지 않은 것이다.
이러한 사례가 보도되면서 보호출산제에 대한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태어났지만 등록되지 않은 아기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여론이 확산했다. 여기서 한 가지 반전이 있다. 아기의 목숨을 구하자는 취지이니 그 누구도 반대할 리 없는 일이어야 할 것 같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는 점이다. 더 충격적인 건 그러한 반대에도 귀 기울일만한 대목이 없지 않다는 것이다. 사태의 전모를 살펴보도록 하자.
가장이 다스리는 ‘가족’의 구성원
필자는 1983년생이다. 필자가 어릴 때에도 호적상의 생일이나 생년이 실제와 다른 사람이 그리 드물지 않았다. 신생아의 출생등록이 부모 내지는 보호자의 자율에 맡겨져 있었기 때문이다.이는 1960년 민법과 함께 호적법을 제정할 당시의 가치관을 반영하고 있다. 일본 제국의 식민지에서 벗어나 건국한 대한민국은 미국의 영향을 받아 근대적 법 체계를 갖추고 있었으나, 정작 그 구성원 대다수는 구시대적 가치관을 그대로 간직했다. 어떤 사람을 개별적이고 독립적인 ‘개인’으로 보는 대신, 어떤 가장 내지는 호주가 다스리는 ‘가족’의 구성원으로 보고 있었던 것이다.
현실적인 제약도 있었다. 건국 당시 대한민국은 현대 의학을 공부한 의료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나라였다. 휴전 후 10년이 지난 1960년에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기 중 상당수는 산부인과 병원이 아닌 집에서, 의사가 아닌 산파의 도움을 받아 태어났다. 영아사망도 높아서 태어난 아이가 건강하게 자란다고 보장할 수도 없었다. 물론 옳고 바람직한 일이었다고 할 수는 없으나, 출생신고를 보호자에게 일임한 것은 당시의 현실을 반영한 정책이었다.
그러나 1960년에서 2023년 사이, 대한민국은 후진국에서 (적어도 경제적으로는) 선진국이 됐다. 2023년 현재 대한민국의 신생아 중 99.8%가 병원에서 태어나고 있다. 또한 2006년 당시 영아사망률은 1000명당 4.1명으로, 2007년 당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 4.9명보다 낮다. 출생신고를 병원에서 자동적으로 하지 않을 이유가 모두 사라진 셈이다.
다른 나라들은 어떨까. 2015년 국회입법조사처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미국·영국·캐나다·독일은 부모가 직접 출생 신고를 하는 것과 별도로 아동이 출생한 의료기관에 출생 통지 의무를 부여해 신고 누락이나 허위 신고를 막고 있다.” 당시만 해도 의료기관에 출생 통지 의무가 없던 한국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의료기관에 출생 통지 의무를 부과한다 해서 미등록 아동이 완전히 사라질 수는 없다. 2023년 현재 대한민국의 신생아 중 99.8%가 병원에서 태어나지만, 나머지 0.2%의 ‘병원 외 분만’이 존재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중 상당수는 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에서 묘사된 바와 유사한, 나름대로 준비된 가정분만이겠으나 그렇지 못한 경우도 드물지 않다. 준비되지 않은 가정분만 내지 ‘병원 외 분만’은 출생신고 미비로 이어질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다.
그러므로 21세기 대한민국의 정책 목표는 분명하다. 첫째, 가능한 모든 아기가 의학적으로 대비된 상황에서 출생하도록 할 것. 둘째, 태어난 모든 아기가 호적에 등록돼 육체 뿐 아니라 법적으로 현실에 존재하는 한 사람이 되게끔 할 것. 셋째, 이른바 ‘정상 가정’ 여부와 무관하게 아이들이 필요한 양육을 받아 건전한 성인으로 성장할 수 있는 여건을 제공할 것.
‘위기 임산부’의 경우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조건을 생각해 보자. 첫째, 현행 출생신고제는 반드시 개선돼야 한다. 둘째, 의학적으로, 법적으로, 경제적으로 한계 상황에 놓인 임산부가 부담 없이 병원에 가고 관공서를 통해 필요한 도움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셋째, 부모에게 버림받은 아이들은 기존의 가정이건 새로운 가정이건 시설보다 가족의 품에서 자라날 수 있도록 사회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현실은 어떨까. 일단 첫째 요건은 갖춰졌다. 6월 30일 아동의 출생신고 누락을 방지하기 위해 출생통보제를 도입하는 내용의 ‘가족관계의 등록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내년 7월 1일부터 산부인과 의사가 진료기록부에 출생기록을 입력하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은 그 기록을 지방자치단체의 장에게 통보함으로써 출생신고가 이뤄진다.
하지만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볼 수는 없다. 병원에서 사실상 자동적으로 출생신고가 이뤄진다는 것은 그 사실을 알리고 싶어 하지 않는 혼전 임신, 청소년 임신, 불륜 임신, 가정폭력 피해 임신, 빈곤, 고령, 정신장애, 노숙, 장애인, 약물복용, 기형아 임신 상태인 ‘위기 임산부’가 병원 밖 출산으로 내몰릴 수 있다는 말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진짜 ‘논점’이 등장하는 것은 바로 이 대목이다. 임산부의 선택에 따라 본인의 신원을 감춘 채 의료기관에서 출산할 수 있도록 한다면 위기 임산부도 병원에서 의료인의 도움을 받아 출산할 수 있고, 태어난 아기 역시 출생신고 될 것이다. 하지만 엄마는 아기를 원치 않는다. ‘내 자식’으로 출생신고하고 싶지 않다. 이 경우 국가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
가장 급박하게는 익명으로 아이를 낳을 권리를 보장할 수 있다. 프랑스의 경우 친생모의 익명성을 최대한 보장하는 ‘익명출산제’를, 독일은 아이의 알 권리를 상대적으로 더 보장하는 ‘신뢰출산제’를 운영 중이다.
현재 국회에서 논의 중인 보호출산제 법안들도 큰 방향에서 볼 때 유사하다. 김미애 국민의힘 의원은 세 명의 아이를 입양해 기르고 있는 미혼 싱글맘으로서 이 문제에 가장 적극적이다. 그가 대표발의한 ‘보호출산에 관한 특별법안’은 성년이 됐거나 친권자의 동의를 받은 아동에게 출생증서 열람을 허가하되, 친생부모가 동의하지 않거나 동의가 확인되지 않을 경우 친생부모의 인적사항은 제외하도록 정하고 있다(안 제15조제2항). 조오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위기임산부 및 아동 보호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안’은 친생부모의 권리와 아이의 권리의 조율을 대법원 규칙에 일임하고 있다.
6월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보건복지위원회 제1법안심사소위원회에 보호출산에 관한 특별법안 자료가 놓여있다. [뉴스1]
움베르토 ‘에코’
반발의 목소리가 없지 않다. 진보와 보수 양쪽에서 나오고 있다. 진보에 해당할 여성주의 진영의 반론은 이렇다. 현재 대한민국은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의해 낙태죄가 비범죄화 된 상태다. 하지만 국회에서 손을 놓고 있는 탓에, 여성이 안전하게 임신 지속 여부를 선택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의 마련은 미비하다.‘과도한 페미니즘이 나라를 망친다’는 원성이 드높지만 현실은 그와 괴리가 있다. 가령 사후피임약의 경우 일본에서도 빠르면 올 여름부터 의사 처방 없이 약국에서 구입 가능하다. 국내에서는 여전히 의사의 처방을 요한다. 원치 않는 임신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의 접근성만 보더라도 한국은 서구권 국가 뿐 아니라 가까운 아시아권 국가인 일본에도 뒤쳐져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애를 익명으로 낳을 권리’만을 두텁게 지키는 것은 어폐가 있다는 지적이다.
허나 보호출산제는 아이의 생명 뿐 아니라 친생부모, 특히 친생모의 인권을 위해 도입되는 제도다. 그 점을 감안해본다면 여러모로 귀 기울여 제도적으로 미비한 부분을 막아내는 일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문제는 보호출산제의 개념 자체를 거부하려 드는 우리 사회의 보수성이다. 최근 충격적인 뉴스가 연이어 보도된 탓에 출생통보제와 보호출산제를 뭉뚱그려 옹호하는 여론이 높아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보호출산제는 더 널리 홍보될수록 ‘엄마가 애를 버리기 쉽게 법을 만들다니!’ 라는 식의 감정적 반발을 쉽게 불러올 수 있는 사안이다.
바로 그런 시각, 소위 ‘정상가족’에 집착하며 모성애에 모든 것을 떠넘기는 관점이 문제다. 이 글을 시작하며 언급했던 수원의 비극만 해도 그렇다. 두 영아의 생모였던 고 씨는 이미 아이 셋을 낳아 기르고 있었다. 고 씨는 경제적으로 궁핍했다. 낙태 시술을 받을 돈이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더 이상은 낳아 기를 수 없다’는 판단을 했을 때, 고 씨가 위기 임산부로서 필요한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면 상황은 크게 달라졌을 수 있다.
혹은 출생통보제와 보호출산제가 이미 시행중이었다면 어땠을까. 물론 두 아이는 성인이 될 때까지 자신의 친생부모를 모른 채 자라야 했을 것이다. 그래도 값진 두 생명이 덧없이 끝나는 비극은 피할 수 있던 게 아닐까. 아이와 엄마를 지킬 수 있는 다양한 법과 제도를 고민하면서 우리의 경직된 문화 역시 바꿔나가야 하는 이유다.
이탈리아가 낳은 세계적인 학자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움베르토 에코. ‘에코(Eco)’라는 희귀한 성에는 놀라운 기원이 있다. 버려진 아이, 업둥이였던 에코의 할아버지에게 담당 공무원이 ‘천국에서 온 선물(ex caelis oblatus)’이라는 뜻의 라틴어 앞 글자를 따서 붙여준 이름이다. 우리에게는 그 선물을 반품할 권리가 없다.
노정태
● 1983년 출생
● 고려대 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석사
●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 저서 : ‘불량 정치’ ‘논객시대’ ‘탄탈로스의 신화’
● 역서 : ‘밀레니얼 선언’ ‘민주주의는 어떻게 망가지는가’ ‘모던 로맨스’ 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