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1월호

“낮에는 밭 갈고 밤에는 연구하는 ‘농부 학자’의 일상”

‘인생삼모작’ 펴낸 안병영 전 교육부 장관 [저자와 차 한 잔]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21-11-03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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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호영 기자]

    [지호영 기자]

    10월 초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안병영(80) 전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은 넥타이를 맨 단정한 정장 차림이었다. 그는 “요즘 이렇게 입는 날이 1년에 한두 번 있을까 말까 한데 마침 오늘 만나게 됐다”며 웃어 보였다.

    안 부총리는 거의 평생 정장에 익숙했을 사람이다. 서울에서 태어나 연세대·한국외대 등에서 30년 넘게 교수로 일했고, 김영삼 정부와 노무현 정부에서 두 차례 장관 및 부총리로 국정에 참여했다. 그러나 정년을 맞은 2006년, 강원 속초·고성으로 귀촌하면서 그의 앞에 “여름엔 농사짓고 겨울엔 글을 쓰는” 새로운 삶이 열렸다. 하루를 기준으로 하면 “낮에는 농사짓고, 밤이면 글을 쓰는” 삶이다. 안 부총리가 최근 출간한 책 ‘인생삼모작’은 그 과정에서 길어 올린 ‘사유의 편린’을 모은 것이다.

    책장을 넘기면 그가 정치인 조소앙의 ‘광팬’으로 선거유세장을 열심히 따라다니던 열 살 꼬마 시절 추억부터, 참된 의미의 ‘중도’를 찾고자 숙고를 거듭하는 오늘날 학자로서의 일상에 이르기까지, 시간과 장소를 넘나드는 다양한 삶의 이야기가 빼곡히 담겨 있다. 안 부총리는 “모든 글은 데드라인의 압박 없이, 마음이 내켜 쓰고 싶을 때, 머리와 가슴에 와닿는 주제에 대해, 마치 창공을 나는 종달새처럼 자유롭게, 그리고 먼 들판을 바라보는 허허로운 심경으로 부담 없이” 썼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문장마다 스며 있는 그의 “평소 생각과 관점, 세계관, 그리고 무엇보다 전 생애”의 힘이 곳곳에서 시선을 붙든다.

    안병영 지음, 21세기북스368쪽, 2만4000원

    안병영 지음, 21세기북스368쪽, 2만4000원

    인상적인 것은 안 부총리가 이 책을 ‘진실한 노동’과 더불어 썼다는 점이다. 그는 채소와 과수가 어우러진 약 300평 규모 밭을 직접 일군다. 비료·농약을 일절 쓰지 않는 농부의 일상은 결코 평화롭지 않다고 한다. 매 순간 잡초와 벌레, 비·바람·새와 맞서 근육을 움직이고, 땀을 흘린다. 그는 만 15년째 이 삶을 이어가고 있다. 안 부총리는 “한여름 뙤약볕 아래서 밭일에 매달리다 10월 무렵이 되면 ‘이제 정말 지쳤다. 더는 못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겨울을 보내고 이듬해 봄이 찾아오는 걸 느끼면 다시 밭 일굴 생각에 가슴이 설렌다”고 했다. “그렇게 진짜 농부가 돼가는 듯하다”며 너털웃음도 지었다.

    안 부총리는 여전히 학자이기도 하다. 매일 새벽 4시면 일어나 아무도 범접하지 않는 ‘절대 시간’을 즐기며 책을 읽고 글을 쓴다. 인문·사회과학자에게 연구의 절정기·전성기는 60세 이후 찾아온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안 부총리는 “이때가 돼야 비로소 갖가지 공적 의무에서 벗어나게 된다. 자유로운 영혼으로, 그간 축적한 학문적 역량과 다양한 삶의 체험을 바탕 삼아 내면의 소리를 담은 글을 쓸 수 있는 시기”라고 설명했다. “큰 학자들의 대작이 노년기에 나오는 경우가 많은 것도 이 때문”이라고 하는 그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안 부총리 또한 이를 목표로 삼고 있다. 농한기에 접어든 요즘은 평생 붙들어 온 ‘민주주의’와 ‘중도’ 등의 연구 주제에 더욱 집중하고 있다고 한다. “학자로서 사유의 세계를 ‘보다 넓게, 깊게, 그리고 유연하게’ 가꾸면서 높은 경지의 지적 통찰력과 영감을 추구하고 있다”고 하는 그의 다음 저작이 궁금해진다.

    #인생2막 #귀농귀촌 #고성속초 #무농약농업 #주경야독 #신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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