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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만에 52kg 뺀 정찬민의 ‘사생결단 다이어트’

“생명보험도 못 들어 주겠다고? 오냐, 내가 빼고 만다!”

1년 만에 52kg 뺀 정찬민의 ‘사생결단 다이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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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내가 어색해한 건 배역 때문이 아니다. 언제나처럼 내 ‘강렬한’ 이미지 때문에 다른 배역을 선택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아서다. 연극을 하거나 장기자랑, 혹은 운동회를 할 때마다 나의 배역은 뭔가 ‘크다’ 혹은 ‘뚱뚱하다’는 이미지와 관련이 있었다. 내게도 뚱뚱한 사람이 아닌 무언가 다른 배역을 해볼 기회를 달란 말이다!

하고 싶은 역할이 있어도 사람들은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며 내 인생의 무대를 자기들 멋대로 재단했다. 인생에서 자신의 역할을 스스로 결정할 수 없다는 것은 얼마나 슬픈 일인가. 마음에 드는 목표가 있어서 달려가고 싶을 때도 언제나 나를 막아섰던 것은 ‘그건 너한테 안 어울린다’는 사람들의 충고였다.

이보다 더 심각했던 건 내 겉모습만 보고서 나도 모르는 나를 그들 속에 입력시키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면접관이나 업무상 만난 사람들에게 나는 절대 지적이거나 명철한 이미지의 사람이 아니었다. 그들의 머릿속에 각인된 나는 조용히 시키는 일이나 하는, 앞에는 절대 나서지 않고 나설 능력도 없는 인물이었다. 심지어 게으르고 멍청하다고 비춰질 때도 있었다.

만약 세상 모든 사람들이 뚱뚱한 사람에 대한 편견을 갖지 않았더라면 나는 살을 뺄 생각도 안 했고, 빼지도 않았을 것이다. 내가 살을 뺀 데에는 세상이 한 순간에 변하지 않는다는 현실적인 판단도 포함돼 있었다. 모두 바뀌기를 기다리는 것보다 나 혼자 변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닐까 싶어서 말이다.

‘당신은 오래 살 수 없습니다’



2년 전, 주위 사람들이 당뇨병이나 불의의 사고 등으로 하나 둘 세상을 떠나는 일이 생겼다. 죽음에 대한 나의 불안감은 나날이 커졌다. 특히 비만이 만병의 근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던 나는 질병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 내가 선택한 것은 운동이나 생활습관의 개혁이 아닌 생명보험이었다.

이런저런 보험회사들을 알아본 후 보험회사 직원에게 연락을 했다. 질병·상해·생명보험이 한꺼번에 되는 보험상품에 가입하고 싶다고 하자 직원은 친절하게도 직접 찾아오겠다고 했다.

보험사 직원이 사무실에 찾아온 후에야 나는 보험에 들기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서명만 하면 되는 줄 알았지만 가입을 위해 체크해야 할 사항들이 너무나 많았다. 신체관련 사항은 물론이고 병력(病歷)에서부터 심지어 취미까지 적어야 했다. 수없이 많은 V표를 한 후, 보험사 직원에게 서류를 건넸다.

그러자 계약 한 건을 성사시켜 즐거워해야 할 그의 얼굴에 일순간 난처한 표정이 감돌았다. 내가 솔직하게 적어놓은 몸무게가 문제가 된 것이다. 직원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체중이 100kg 이상이면 보험 가입이 어렵다고 했다.

아니, 이게 도대체 말이나 되는 소린가? 어려울 때 힘이 돼준다던 광고 문구는 다 어쩌고 겨우 그깟 몸무게 때문에 보험에 가입할 수 없다니. 그의 말인즉 보험 가입 여부는 확률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므로 회사에서 위험부담을 가질 확률이 높은 고객은 가입을 거절한다는 논리였다.

그렇다면 내가 보험금을 탈 확률이 높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더할 수 없이 우울했다. 보험회사 직원으로부터 ‘당신은 오래 살 수 없습니다’라는 판정을 받은 기분이었다. 죽음이나 병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삶에 대한 최소한의 보완장치를 만들어두려 했지만, 살을 빼기 전에는 그마저도 불가능했다. 결국 나는 무엇보다 살을 빼야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살을 빼리라.

그러던 어느 날 저녁, 한 홈쇼핑 TV의 광고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먹기만 하면 체지방이 뭉텅뭉텅 줄어든단다. 평소에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하던 나는 그날만은 웬일인지 다른 채널로 돌릴 수가 없었다. 대학교수의 인터뷰가 나오고 연구원들이 체지방 감소에 대한 과학적인 근거까지 설명하고 있었다. 설명에 따르면 단 몇 달 만에 완벽하게 살을 뺄 수 있다고 한다. 게다가 효과가 없으면 100% 환불까지 해준다지 않는가!

만약 저 말이 사실이라면 아주 짧은 기간에 나는 비만의 상태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다. 잠시 후 나는 ‘물건은 직접 사야 제 맛이며, 홈쇼핑 회사의 물건을 어떻게 믿고 구입할 수 있냐’는 평소의 생각, ‘운동하지 않고 건강하게 살을 빼는 것이 과연 과학적으로 가능하냐’는 평소의 의문과는 반대로 홈쇼핑 회사의 주문 전화번호를 누르고 있었다. 지금 화면에 나오는 저 약만 사면 큰 고통 없이 살을 뺄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까지 두근거렸다.

하지만 세상에는 뚱뚱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자정이 넘은 시각이었는데도 전화는 계속 통화중이었다. 거의 몇십분간 전화와 씨름하다 지쳐버린 나는 그만 잠이 들고 말았다.

다음날 아침, 내 자신이 참으로 한심하게 느껴졌다. 나는 노력을 통해 살을 뺄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인터넷에서 자료를 살펴보니, 전날 홈쇼핑에서 봤던 상품은 의약품이 아닌 식품으로 등록되어 있었다. 결국 거짓말처럼 살을 빼는 신약이 아니라 식품보조제에 불과했고, 그나마 아직 실험중이었다. 역시 믿을 만한 것은 운동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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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정찬민 AMC 프로덕션 PD jolp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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