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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에서 돌아와 발 뻗고 여행책을 읽다

몽골에서 돌아와 발 뻗고 여행책을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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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에서도 그랬다. 몇 시간이고 비슷한 풍경을 바라보다 보면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착각을 하게 된다. 며칠 지나면 날짜도 요일도 잊어버린다. 그곳에서는 시간의 흐름이 우리와 다르기 때문이다. 시인은 이렇게 썼다.

“티베트의 시간은 비유하자면, 말과 야크가 걷는 속도로 흘러간다. 한국에서는 서울에서 목포까지 4시간 반이 걸리지만, 여기서는 그 정도의 거리를 가자면 꼬박 하루가 걸린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서두르는 법이 없다. 우리는 한 시간 늦는 것에 안달을 하지만, 여기에서는 한 시간쯤 늦는 것은 늦는 것이 아니다. 비행기도 제시간에 떠나는 적이 없고, 버스는 아예 시간표가 무의미하다. 티베트에서 급하다고 발을 동동 구르는 사람들은 십중팔구 외국인들이다.”

시인이 해발 5008m 둥다라산을 넘으면서 시동이 제대로 걸리지 않는 차를 타고 배터리가 떨어질까봐 전조등을 켜지도 못한 채 천길 낭떠러지 위의 좁은 길을 마음 졸이며 갔다고 할 때, 울란바토르에서 하르호린으로 가는 도중에 버스(첫 이틀 동안은 대형관광버스를 타고 다녔다)가 비포장도로를 달리다 진창에 빠졌던 일이 떠올랐다. 그때 우리는 차에서 내려 그 큰 버스를 무모하게 밀어보기도 하고, 지나가던 지프를 세워 밧줄로 연결해 끌어도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오히려 바퀴는 더 깊이 진창에 박혔다. 결국 운전사와 가이드가 마을로 걸어가 트랙터를 빌려와서 ‘몇 초 만에’ 버스를 꺼냈다.

서두르지 않아도 인생은 짧다

그 뒤로도 버스는 타이어가 펑크 나고, 왼쪽 쇼바(쇼크업소버)가 나가서 30도쯤 기울어진 채로 거의 기다시피 해서 밤길을 갔다. 우리는 별빛밖에 안 보이는 초원에서 날밤을 새우는 게 아닐까 싶어 마음을 졸였지만, 그 와중에도 이내 눈꺼풀은 중력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처졌다. 어느새 몽골의 시간이 몸에 밴 것일까.



밴을 타고 이동할 때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야트막한 언덕만 나와도 끄윽끄윽 트림하는 차를 위해 내려 걷는 일이 다반사이고, 비포장도로의 뾰족한 돌에 채이고 채인 낡은 타이어는 수시로 이상 신호를 보냈으며, 갑자기 불어난 물에 급류가 흐르는 강을 차가 한 대씩 무사히 건널 때마다 우리는 박수로 환호했다.

그러니 티베트의 란창강을 따라 포우싼 마을로 가는 비포장도로에서 흘러내린 토사물로 길이 막히자, 불도저가 치울 때까지 무작정 기다리던 시인의 심정을 이해하고도 남는다. 그곳서 여행자가 기다리는 것 외에 무엇을 할 수 있으랴.

“애당초 차마고도를 따라가는 여행은 ‘느림’과 ‘불편함’을 경험하는 일이다. 차마고도에서 너무 늦게 가는 것을 탓한다면, 차마고도를 따라갈 이유가 없다. 서울에서 출근하듯 여행하기를 바라는가. 그렇게 서두르지 않아도 인생은 충분히 짧다. 마땅치 않은 숙소를 탓하거나 입에 맞지 않은 음식을 탓해서도 안 된다. 본래 여행이란 제 입맛대로 굴러가기가 어려운 법이다. 다른 건 몰라도 차마고도에서 나는 느림과 불편과 덜컹거림과 숨참을 즐긴 것만큼은 확실하다”(‘하늘에서 가장 가까운 길’의 에필로그).

사람들은 대부분 여행을 떠나기 전에 여행책을 본다. 하지만 ‘하늘에서 가장 가까운 길’은 집 떠나 고생해본 뒤 느긋하게 읽어야 제맛이 나는 책이다. 아니, 떠나기 전에 보는 여행책과 돌아와서 다시 보는 여행책에서는 확연히 다른 맛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요즘 여행책에는 성수기, 비수기가 따로 없다.

신동아 2007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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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미 동아일보 출판팀장 khmzi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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