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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도는 영혼을 지닌 작가 윤후명

“문학은 패자(敗者)에게 피어나는 연꽃, 난 죽어도 써요”

떠도는 영혼을 지닌 작가 윤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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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삶 자체가 현대사의 질곡과 고스란히 맞닿아 있는 소설가 윤후명. 그는 떠도는 영혼을 가진 나그네이고, 존재의 진실을 보게 해주는 술이며, 우주를 온몸에 품은 ‘늙은 꽃’이다. 그래서일까. 그의 소설은 외따로 떨어진 곳에서 피어난 꽃처럼 향기롭고 고독하다.
떠도는 영혼을 지닌 작가 윤후명
7월28일 토요일 오후에 만나기로 한 약속을 확인하기 위해 윤후명(尹厚明·61) 선생과 통화를 했다. 오랜만에 선생의 마음이 고여 있는 소설집을 기쁘게 받아들고 마치 목마른 이가 샘물을 마시듯 읽어 나가던 중이었다. 소설 속에서 선생은 여러 나라를 오가며 분주했지만, 그것은 무척 여유롭고 한가해 보였다. 오랜 세월 고인 자신의 마음을 퍼내는 자의 무서움일 것이다.

조금만 인기가 있으면 온갖 현란한 과대선전에 시달리는 이 천박하고 경박한 시대에 선생의 소설은 외따로 떨어진 곳에서 조용히 피어난 꽃처럼 향기롭고, 고독하다. 몇 번의 신호음이 울리고 통화가 되었다. 선생은 전날에 술을 많이 드셨다. 몇 달 만의 과음이라고 하셔서, 그럼 어떻게 하나 우물쭈물하는데 선생이 말씀하셨다.

“옛날에 고(故) 박정만 시인과 보름 동안 내리 술을 마신 적이 있지요. 박 시인은 통뼈였고 나는 왜소하지만 한번 마시면 둘이 끝까지 가다가 무너졌지. 그렇게 무너지는 거야. 오랜만에 무너진 것 같아. 인터뷰고 뭐고 술이나 한잔합시다.”

인사동에 있는 주점 ‘시인’에서 오후 2시에 만나기로 했다. 그날은 내 생일이었다. 친구에게 윤후명 선생을 만나기로 했는데 취하신 것 같다고 했더니 선생의 건강을 걱정했다. 우리 문단을 위해서라도 선생은 건강하셔야 하는데, 또 술에 발동이 걸렸으니 며칠은 가지 않을까 염려했다. 필자 역시 문단 생활 20년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문인들의 취중 모습이다. 그건 모두 가슴에 담아두어야 할 아픔이고 상처이기도 하다.

소설 쓰는 시인



오랜만에 인사동을 찾았다. 최근에는 일산에서 거의 모든 만남이 이루어져 시내 외출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인사동 사거리에 들어서니 마침 토요일이어선지 인파가 쏟아졌다. 파도에 밀려 떠내려가듯 길을 헤맸지만 ‘시인’을 찾지 못했다.

위치를 정확하게 알아오지 못한 나를 원망하면서 부끄럽지만 다시 선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약속시간이 조금 지나 미안한 마음이었는데, 선생 역시 오는 길이라고 했다. 이제 거의 다 왔다고 한다. 길이 막혀 조금 늦는다며 자세한 위치를 알려주어 골목길 깊숙이 들어가 있는 주점에 먼저 가서 앉았다. 어딜 가나 낯선 곳에서 길을 찾는 것은 곤혹스러운 일이다. 수많은 인파 속에서 헤매는 것도 오랜만이다.

문득 청년시절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그땐 부딪히고, 깨지고, 넘어지고, 자빠졌다. 그렇게 비틀거리면서 40대 중반에 다다랐다. 나는 요즘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 두 바퀴를 안전하게 굴려 목적지에 도착하듯이, 내 삶도 어느 정도는 단정하다. 인사동 거리에서 길 찾기를 하느라 나는 잠시 헤맸고, 그 헤맴 속에서 문득 내가 잃어버린 시간의 어디쯤에 와 있는 것 같았다. 한 때 인사동에서 얼마나 술을 마셔댔던가. 같은 시절을 보낸 친구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을까. 어떤 이는 죽고, 어떤 이는 병들었고, 어떤 이는 출세해서 잘산다. 그렇게 어울려 산다.

그간 이런저런 문단 모임에서 선생에게 몇 번 술을 친 적은 있지만, 따로 만나는 사이가 아니어서 약간 어색하기도 하다. 인터뷰라는 형식이지만, 사실 이 연재는 나의 산문일 따름이다. 선생의 말에 빗대어 선생의 삶을 살짝 엿보는 것이다. 부담감을 털어버리기로 마음먹자 선생이 들어왔다. 그리 취하신 것 같지는 않아 일단 안심했다.

이제부터 새의 말을 듣는 것인가? 선생이 최근에 낸 소설집 제목이 ‘새의 말을 듣다’이다. 제목에서부터 울려오는 어떤 소리가 있다. 선생은 항상 시인이었던 이력이 떠오르는 소설가다. 시를 쓰다가 소설가로 변신한 작가는 의외로 많다. 성석제, 장정일을 비롯해서 원재길과 김형경에 이르기까지. 그런데 그들에겐 소설가라는 이름이 참으로 어울린다.

윤후명 선생을 대하면 왠지 ‘소설을 쓰는 시인’ 같다는 선입관이 든다. 궁금한 것을 책갈피에 넣어두고 근황을 여쭸다. 국민대에서 겸임교수로 강의를 하고 있으며 선생이 직접 운영하는 ‘소설학당’을 여전히 꾸리고 계셨다. 소설가의 근황은 최근에 낸 소설집을 빼면 별로 변한 게 없다. 작년이 육순이셨는데, 그때 나올 소설이 육순과 연결되어 번거로운 일이 있을까봐 올해 냈다고 한다. 그리고 그림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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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재훈 시인 whonjh@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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