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2월호

좌표 140319

  • 이호철

    입력2008-12-02 14: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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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표 140319
    야자열매와 수류탄

    1972년 중부 베트남 전장에 스콜(열대지방 특유의 세찬 소낙비)이 내렸다.점심때가 지나자마자 하늘이 어두워졌다. 뜨거운 햇살이 검은 뭉게구름에 가리더니 천둥이 울렸다. 여진처럼 작은 천둥소리가 꼬리를 물었다. 망고샤워라 부르는 소나기가 쏟아졌다. 세상을 집어삼킬 기세였다.

    온몸에 비누질을 하고 뛰어나가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연병장에는 커다란 기포가 둥실 생겨났다. 황톳물을 따라 노점을 하는 마마상들처럼 이리저리 떠돌아다녔다. 비릿한 물 냄새가 퍼지자 기진하여 처져 있던 야자수 잎들이 다시 살아나 너풀거렸다.

    12중대 기지를 보호하는 작전을 나갔다. 내게는 두 번째 실전이었다. 적의 보급로에서 야간 매복을 섰다. 앞서 얼굴에 번득이는 개기름을 감추려고 까만색 로션을 발랐다. 목덜미와 손등에도 발랐다. 종이를 태워 나온 재로 로션을 대신하기도 했다. 위장을 끝냈다. 마주 보면 이빨만 하얗게 보였다.

    교대로 밤을 새웠다. 전장에 항상 목덜미를 지나는 써늘한 긴장만이 감도는 것은 아니었다. 작전 마지막 날, 수상한 기척에 사격 명령이 내려졌다. 배를 땅바닥에 끌고 다니는 돼지들의 비명이 들렸다.



    “꾀에 꽥! 꾀에 꽥!”

    연이은 툭툭 소리와 동시에 무엇인가 참호 안으로 떨어졌다.

    “수류탄! 엎드려엇!”

    절박한 외침이 터졌다. 나는 철모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납작 엎드렸다. 한참이 지났다.

    ‘불발탄인가?’

    철모를 살며시 쳐들고 내 몸 가까이를 더듬어보았다. 크고 둥근 딱딱한 물체가 손에 잡혔다. 야자열매였다. 바로 옆 참호의 신참이 겁에 질려 바짝 엎드려 총구가 들린 채 쏘아대는 바람에 야자나무 꼭대기를 맞힌 것이었다. 그것도 얼떨결에 연발로 불을 뿜어 M-16소총의 30발들이 탄창 하나가 순식간에 날아가 야자열매에 박혔던 것이다.

    병아리 한 마리

    그러던 중 적을 한 명 생포했다. 가까이 숨어 있던 적이 그쪽으로 떨어진 야자열매를 아군이 던진 수류탄으로 오인하고 얼떨결에 용수철처럼 튀어 나온 것이었다. 그는 두 손을 번쩍 들고 항복했다. 중대장은 굴러들어온 전과에 고무됐다. 특히 포로의 몸에서 나온 빨강 표시가 여럿인 지도는 모두를 흥분시키고도 남았다.

    “놈들의 아지트나 침투 루트를 알게 될지도 몰라.”

    누군가 나지막하게 소리를 냈다. 무공훈장이 눈앞에 가까이 왔다고 계산하고 있을 터였다.

    날이 밝아왔다. 참호 둔덕에서 뻣뻣한 몸뚱이를 일으켰다. 밤새 엎드려 거총 자세를 하고 있은 탓에 흙 바닥에는 내 몸에 눌린 자국이 그대로 거푸집처럼 선명하게 드러났다. 우리는 서둘러 헬기를 불렀다.

    “여기는 080, 060 나와라. 오버.”

    “여기는 060, 귀소는 송신하라. 오버.”

    “독수리들은 병아리를 한 마리 낚아채 둥지로 간다. 오버.”

    우리 중대는 해지고 남루한 검정 파자마 차림의 깡마른 포로를 앞세우고 부대로 돌아왔다.

    포로가 연병장 팔각정 기둥에 묶여 널브러져 있었다. 3일째였다. 중대장은 민사병을 통해 포로를 취조했다. 정보를 캐내려 온갖 방법을 동원했으나 쉽지 않아 보였다. 포로는 보기 드물게 뿔테안경을 쓰고 있었다. 그의 앙다문 입술은 여간 고집스러워 보이지 않았다.

    우리 중대에서 잡아두고 있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상급부대로 넘겨야 하기 때문이다. 포로의 입에서 훈장을 상신하는 데 기여할 정보를 얻지 못했다.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중대장은 화가 났다. 포로 근처에는 아무도 접근하지 말라는 엄명에 바람조차 얼씬하지 못했다. 물도 주지 말라고 했다. 생리적인 볼일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하기야 이틀이나 입에 넣은 게 없으니 나올 것도 없을 터였다. 포로는 죽은 듯 미동도 하지 않았다.

    스콜이 내렸다. 아열대 몬순기후의 소나기였다. 포로가 눈을 떴다. 따라서 몸뚱이도 움직였다. 몸을 버둥거려 쏟아지는 빗줄기 쪽으로 기어갔다. 빗줄기를 만나자 겨우 입을 벌렸다.

    “야! 보초! 저 새끼 빗물도 못 처먹게 해!”

    중대장의 고함소리는 대나무를 쪼개듯 빗줄기를 갈랐다. 나는 얼른 걸치고 있던 판초 우의를 벗어 포로에게 덮어씌워버렸다. 후드득 빗소리가 났다. 그 위로 태권도 유단자인 중대장의 발길질이 몇 번이나 지나갔다.

    나는 보초교대 시간이 다가오자 잔뜩 긴장했다. 보초를 서다 보면 언제 불똥이 튈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나와 전우들은 소대장을 원망했다. 중대장의 비위를 맞추느라 자청하여 포로를 감시하는 보초 임무를 맡았기 때문이다.

    “젠장 중대장 따까리는 말릴 수가 없어.”

    우리 소대원들은 비탈길을 오르는 전차의 궤도 소리처럼 투덜거렸다.

    ‘이건 명백한 제네바협정 위반이야. 포로에 대한 협약 위반이라고.’

    나는 파병 전에 포로를 다루는 교육을 받았었다.

    베트남전쟁을 끝내고자 열린 파리평화협상은 겉치레로 맴돌고 있었다. 양쪽 진영은 서로의 욕심으로 그어놓은 북위 몇 도 선을 한 뼘이라도 더 차지하기 위해 전투가 더욱 격렬해질 뿐이었다. 그래서 전사자가 어느 때보다도 많이 발생한다는 기사가 신문 지면을 장식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죽으면 효도를, 산다면 공부를

    1971년 베트남전쟁은 막바지로 치닫고 있었다. 나의 군대 복무기간도 오래 남아 있지 않았다. 나는 입대할 때부터 전쟁터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아버지께서 하시던 원동기 사업이 실패해 집안 사정이 어려워 학업을 중도에 그만둔 터였다. 제대를 하면 학비가 필요했다. 돈을 만들 다른 방법이라고는 없었다. 마음이 급해질 수밖에 없었다. 한마디 상의도 없이 베트남전쟁에 지원하고 말았다. 그러다 보니 어머니께 불효를 저지르고 말았다.

    그해 화천군 간동면의 오음리 파월교육대에는 눈이 자주 내렸다. 무릎이 눈 속에 푹푹 빠지는 것은 보통이었다. 사격장에서 엎드려 실탄을 장전하면 가늠자 너머 어머니 얼굴이 보이기도 했다. 미군에 맞춰 만들어서인지 무거운 M-1소총 대신 가벼운 M-16소총은 그나마 작은 위안이었다.

    우리나라 남자들은 자신의 이름 남기기를 좋아하는 모양이었다. 훈련장 곳곳의 벽면에는 파월 초기부터 지나간 선배들의 흔적이 눈에 띄었다. 마치 서로 다투어 고개를 내밀고 있는 듯 보였다.

    ‘조국이여 영원하라’

    ‘부모님전상서’

    ‘그대여 사랑한다’

    ‘사랑하는 베트남’

    ‘굿바이 베트콩’

    ‘쳐부수자 공산당’

    ‘조지 워싱턴 고마워’

    ‘모두들 잘 있거라’

    ‘전우를 두고 결코 돌아오지 않는다’

    나도 불현듯 한 줄 남기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강스파이크

    이튿날 박격포탄이 날아 떨어졌을 의심지역에 수색을 나갔다. 산간으로 이어지는 마을이었다. 논에서 일하던 머리에 낡은 누를 쓴 여자들이 눈치를 보다가 뒷걸음질로 도망을 쳤다. 소대가 마을로 들어서자 카오를 씹던 아낙들은 팜나무 잎으로 만든 들창문을 닫느라 정신이 없었다. 깡마른 촌장은 두 손을 합장하고 우리를 맞았다.

    “따이한 남바완, 남바완.”

    마을 구석구석을 살폈지만 별 이상이 없었다.

    “소대장조 이상무!”

    “선임하사조 이상무!”

    마을 뒷산을 수색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소대는 다시 두 개조로 갈라졌다. 우리는 선뜻 내키질 않았지만 도랑을 건너 산으로 들어섰다. 먼저 새들이 날아올랐다. 놀란 원숭이들이 이 나무 저 나무로 곡예를 하면서 소리를 질렀다.

    그런 중에 유령 같은 물체를 발견했다. 검은 복장의 적이었다. 바로 시야에서 사라졌다. 수색 끝에 은신처를 찾아냈다. 땅굴이었다. 입구에 마른 나뭇가지를 미처 치우지 못한 것이 아군에게는 행운이었다. 소대장은 땅굴 안으로 들어갈 지원병을 물었다.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서 병장이 나섰다. 철모를 벗고 머릿수건을 동여맸다. 자신의 화기를 내게 맡겼다. 소대장으로부터 권총을 넘겨받았다. 좁은 굴 속에서는 철모도 소총도 장애물이었다. 소대원들을 한번 돌아본 서 병장은 손전등을 켜고 엎드려 굴 안으로 기어 들어갔다. 정글화 바닥이 사라진다 싶더니 다시 보였다. 백지장 같은 그의 얼굴이 돌아섰다. 입구에 있던 내 옆에 나뒹굴었다. 그 순간이었다.

    “꽈앙!”

    폭발음이 들렸다. 왼쪽다리 정강이에 쥐가 나는 느낌이 왔다. 피를 보자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다. 깨어 보니 소독약 냄새가 코를 찔렀다. 야전병원이었다. 옆 침대에는 서 병장이 웃고 있었다.

    “아니, 내 다리가?”

    붕대가 친친 감긴 왼쪽 다리를 내려다보았다. 서 병장은 한동안 웃기만 했다. 권총을 겨누고 굴 안으로 들어섰는데 엎드린 적이 방망이 수류탄을 들고 있더란 것이었다. 총을 쏘았다간 같이 죽을 것 같아 망설였다. 그러자 적은 수류탄을 던졌다. 본능적으로 서 병장이 손으로 쳐서 막아냈다는 것이었다.

    수류탄은 굴 안 초입에서 터졌다. 둘은 날아든 파편에 심하지 않은 부상을 당한 것이다. 서 병장은 오른쪽 팔뚝에 붕대를 감고 있었다. 다리를 다친 나를 헬기장까지 업고 뛰었다고 했다. 그렇게 냉철한 구석이 있었다니 놀라운 일이었다.

    “야, 서 병장. 너 배구 선수였냐? 강스파이크를 맨손으로 막게.”

    키다리 서 병장의 별명이 강스파이크가 되었다. 나는 안경이 못쓰게 되어 다시 만들었다. 다리 부상보다 더 오래 걸렸다. 우리 둘은 열흘 정도 병원 신세를 지고 원대복귀했다. 우리는 진정한 전우가 되었다. 하늘에서 스콜이 시원스레 쏟아져 내렸다. 갑자기 샤워를 하고 싶어졌다.

    국수사건

    적군이 흔히 써먹는 박격포 공격은 간헐적이었다. 그들은 게릴라전의 명수였다. 한 달이면 한두 차례 기지 안으로 쏘아대곤 했다. 적의 포신은 아군 것에 비해 1mm가 컸다. 예를 들어 61mm, 82mm로 우리 포탄도 사용할 수 있었다. 적들은 포판이 무거워 아예 들고 다니지 않았다. 철모나 돌멩이 위에 포신을 올려 잡고 포탄을 집어넣어 날렸다.

    본부와 떨어져 있는 독립 중대에서는 대부분 강물을 정수해서 식수로 사용했다. 적군이 소련제 독약을 풀었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적군 출몰지역에는 연합군이 강물에다 독극물을 탄다고도 했다. 고엽제를 뿌리는 미군기를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개의치 않았다. 아니 다른 방도가 없었다. 물이 없으면 절박해지기 때문이었다.

    작전지역 대부분에 뿌려졌던 고엽제. 시야를 가린 정글은 연합군으로서는 눈엣가시였다. 정글만 사라지게 한다면 바로 전쟁을 끝장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영화에서 미국의 드넓은 농장에 비행기로 약제를 뿌리듯 그렇게 에이전트 오렌지라는, 생태계를 망가뜨리는 독성 강한 고엽제를 뿌렸다. 어떤 전우는 모기를 쫓는다며 맨몸으로 나가 고엽제를 비처럼 맞기도 했다. 나뭇잎만 고사하였겠는가. 다이옥신이 녹아든 빗물은 강으로 흘러들었을 것이다. 우리는 그 강물을 퍼다 마시고 샤워도 했던 것이었다.

    우리 분대가 정수차를 호송하게 되었다. 서 병장이 물어보지도 않은 말을 한마디 던졌다.

    “겨울에 눈 치우는 것이 죽기보다 싫어 파월을 지원했다. 이 말씀.”

    물론 흰소리였다. 나보다 제대가 빠른 그는 분위기 맨이었다. 음울하고 긴장이 흐르는 전쟁터의 분위기를 곧잘 반전시켜주었다.

    “야! 이 병장, 너는 뭣 땜에 월남 왔냐? 안경까지 꿰고.”

    “쌀국수가 먹고 싶어서 왔지.”

    “정말? 나도 국수 좋아하는데.”

    어디에서든 식성이 같다는 것은 소중한 교감이었다. 사람 사이를 금방 가깝게 만드는 계기가 될 수도 있었나 보다. 그것은 하나의 연대감이었다. 국수 얘기를 하다 보니 갑자기 패티 생각이 간절해졌다. 그리움이 퀴뇬항의 파도처럼 밀려왔다. 어머니가 보고 싶어 참기가 어려웠다. 어머니의 국수도 먹고 싶어졌다. 문득 고국에서 소동을 빚었던 국수 사건이 떠올랐다.

    논산의 연무대에서 훈련을 받을 때나, 전방부대에 배치를 받았을 때 참 힘들었다. 그보다 더 힘든 것은 국수를 먹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일요일에 한 번씩 나오는 불어터진 라면으로는 식성을 다스릴 수가 없었다. 고된 교육도, 잠이 천근같이 내리 쏟는 보초근무도 견뎌냈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도 잠시 접어둘 수 있었다. 그러나 국수를 먹고 싶은 유혹을 참기란 그리 쉽지 않았다.

    달도 없던 어느 가을밤. 나는 기어이 부대 담을 넘고 말았다. 개울 건너 민간인 가게에서 국수를 사 먹기 위한 모험이었다.

    “아니, 막걸리라면 몰라도 이깐 국수를 먹으려고 담 넘은 쫄따구는 첨보네.”

    가게 아주머니는 혀를 끌끌 찼다.

    “그래도 탈영하는 것보다는 낫지요.”

    까까머리 일등병이던 나는 국수 몇 그릇을 게 눈 감추듯 하여 아주머니를 다시 한 번 놀라게 했다.

    마마상

    그러나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 새로 전입해 온 보초한테 들키는 바람에 중대장 앞으로 불려가서 혼쭐이 났다.

    “야, 이 새끼야! 그까짓 국수 땜에 부대 담을 넘어! 넌 임마, 군법회의에다 영창깜이야! 영창!”

    첫 휴가가 늦어지는 징계를 받는 대신 영창행은 가까스로 면할 수 있었다. 그러다가 파월을 지원하게 되었다. 학비 때문이었지만 국수사건으로 인한 곱지 않은 눈초리도 영향을 끼쳤는지도 모른다.

    소대원들은 알 철모를 깨끗하게 닦아 개울 건너 가게에서 국수를 담아다가 환송 파티를 해주었다. 철모의 턱걸이를 채워 양손에 들면 안성맞춤이었다. 이번에는 중대장의 허락을 받은 공식적인 환송파티였다고나 할까. 시원섭섭한 밤이었다.

    지나간 국수 얘기를 듣고 난 서 병장은 피식 웃었다.

    “야! 너도 정말 웃긴다. 정말 그깐 국수 땜에.”

    그는 고개를 갸우뚱하는 시늉을 해 보였다.

    “야, 우리 그러지 말고 여기서 쌀국수 좀 해먹자.”

    내가 슬쩍 유혹해보았다.

    “걸리면 영창 갈라고?”

    정수장 주변에는 좌판을 벌이고 노점을 하는 여자인 마마상들이 진을 치고 있어 쌀국수 재료를 구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다. 그들은 언제나 우리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곤 했다.

    “따이한 넘버원!”

    하지만 마마상 중에는 헤픈 웃음으로 위장한 첩자들이 섞여 있어 항상 조심해야 했다. 그들은 대부분 이중적 사회분위기에 익숙했다. 아들은 정부군에, 조카는 붉은 군대에 있는 경우도 허다했다. 양민들은 별로 관심이 없었지만 정치가들이 권력 유지를 위한 방편으로 이데올로기 싸움을 하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가슴 아픈 일이었다.

    ‘열 명의 적을 놓치더라도 한 명의 양민을 구해야 한다.’

    주월 한국군사령부의 작전 지침이었다.

    달콤한 전쟁도 있었다. 연애사건이 터졌다. 마마상 중에 유독 나와 서 병장에게 잘해주는 여자가 있었다. 손짓 발짓을 보태 알게 된 얘기지만 딸이 하나 있다고 했다. 남편은 군청에 다녔다. 폭격에 아이들을 방공호로 데려다 놓고 나오다가 운동장에서 죽었다고 했다.

    맞선을 보듯 수줍은 딸은 순박하게만 보였다. 이름이 랑이라 했다. 마마상은 전쟁터에서 딸을 구해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우리도 6·25전쟁 통에 부모들이 자식들을 다른 나라로 보내고 싶어 안달하지 않았는가 말이다.

    “야! 네가 양보해라. 내 여동생하고 과일 통조림은 무조건 다 줄게.”

    서 병장은 웃으며 내게 강요했다. C-레이션 중에 B-3의 과일통조림과 누이동생을 맞바꾼다는 우스갯소리가 유행하던 참이었다. 그만큼 맛이 있다는 얘기였다. 랑이 내게 관심을 더 많이 보였다. 전우애(?)를 발휘하여 한 발 뒤로 물러났다. 아니 내 마음속에는 패티가 자리 잡고 있어 그냥 해본 소리였다. 둘은 한자를 적어가는 필화까지 동원하여 사랑을 속삭였다.

    전선 없는 전쟁

    그런데 나는 국수뿐만 아니라 커피까지 좋아하게 되었다. 야간 매복을 나가면 적군보다 더 자주 엄습하는 잠을 쫓기 위해 커피를 마셨다. 일회용으로 만든 C-레이션 커피는 향이 진했다. 허기진 적들은 우리가 매복한 지점을 커피 향으로 알아낼 정도인 걸 보면 그들의 후각은 어쩌면 동물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C-레이션 커피를 타고나서 빈 봉지를 접으면 남은 가루가 날아 손가락에 묻었다. 손가락을 코에 대어보면 그 진한 향이 나를 또 한 번 매혹시켰다. 나도 모르게 그만 커피 향에 포로가 되어가고 있었다.

    어쩌다가 반합에 담긴 끊인 커피를 거울 대신 들여다보았다. 철모를 쓴 내 얼굴이 흔들거리며 낯설어 보이기도 했다. 얼굴 뒤로는 구름이 흘러갔다. 구름 사이로 지옥문이 금방이라도 열릴 것만 같았다. 공포가 스쳐 지나갔다. 어느 변방의 적소에서 받아든 사약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그러나 마시지 않으면 잠결에 죽을 수도 있었으니 사약이라기보다는 보약이었는지 모를 일이다. 커피와 뗄 수 없는 관계를 맺은 것이라고나 할까.

    작전 중에 비를 만났다. 비란 비는 다 맞아볼 때도 있었다. 얌전한 비, 따끔한 비, 치고 달아나는 비, 미친 듯 휘몰아치는 비, 옆에서 때리는 비, 밑에서 쳐 올라오는 비까지. 따라서 철모와 판초를 때리는 빗소리도 달랐다. 어머니를 보고 싶게 하고 연인을 그리워하게 했다. 고향마을이 떠오른다싶더니 놀라 언덕에서 구르게 하다가 벼랑 끝에서 밀어 떨어뜨리기도 했다.

    날이 새고 참호 둔덕에 박혀 있던 젖은 몸을 빼내면 진흙 위에 내 몸과 똑같은 모양이 생겼다. 빗물에 흥건한 거푸집. 아니다. 전장에 나갈 병사를 다시 찍어내는 형틀이었다.

    베트남은 전선 없는 전쟁이었다고들 한다. 하긴 그 말이 맞았는지도 모른다. 북으로 갔던 가족 중에는 휴가를 오듯 이따금 남쪽의 고향집에 머물다 돌아가는 경우도 있었으니까. 그리고 적들은 언제 어디서든 출몰하여 놀라게 만드니 그럴 만도 했다.

    또 베트남전쟁은 헬리콥터 전쟁이었다. 헬기가 없으면 꼼짝을 할 수가 없었으니까 하는 말이다. 작전지 투입은 물론이고 마시는 물, 전투 식량이며 탄약에 이르는 운송수단은 헬기가 아니면 어려움이 많았다. 육로는 언제 어디서 기습공격을 받을지 몰랐기 때문이다.

    베트남전쟁이 막바지로 치닫던 1972년. 중부 베트남은 우기에 접어들었다. 매캐한 냄새가 온몸에 배어들어 자극적이었다. 한편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베트남전쟁의 평화회담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었다. 양측 대표들은 테이블에 앉아 연신 담배만 피워대고 있었다. 미군의 지상군은 뒷걸음질로 꽁무니를 빼기 시작했다. 다른 연합군도 마찬가지였다. 전쟁은 점점 메콩강의 흙탕물 수렁으로 빠져들었다.

    미국의 주월대사 그레이엄 마틴과 주월 미군최고사령관 웨스트 모얼랜드 장군은 고민에 빠졌다. 1954년에 프랑스군이 거의 전멸하다시피 한 ‘디엔 비엔 푸’ 전투를 악몽처럼 떠올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 죽음의 계곡에서 패전하여 프랑스가 인도차이나에서 철수하게 되었던 것이다.

    미군도 케산 계곡의 ‘페가수스작전’에 3만여 명의 병력을 투입했다. 그럼에도 날개 달린 말이란 작전암호가 무색하게 해병 6000명이 한 달이나 고립된 적이 있었다. 미 본국에선 모종의 철수 시나리오가 진행되고 있었을 것이다.

    병사와 헬기

    소총소대에 배치되고 두 번째 작전이었다.

    D-1일이었다. C-레이션 B3에서 과일 통조림을 고르고 입맛에 맞는 것만으로 배낭을 꾸렸다. 그리고 사격장에 올라 소총의 성능을 확인했다. 가늠자 끝에 패티의 얼굴이 잡혔다. 어머니의 얼굴도 가물거렸다. 세상에서 보고 싶고 그리운 사람이 하나 더 는 셈이었다.

    “탕!탕!탕!”

    개머리판이 요동치며 뺨이 얼얼해졌다. 패티의 웃는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의 걱정스러운 얼굴도 사라졌다.

    “야, 임마! 어따 대고 총질을 해 쌌는겨!”

    선임하사의 쇤 목소리가 탄피처럼 귓가에 떨어졌다. 그는 사선에 엎드려 있는 내 엉덩짝을 군홧발로 짓밟고 지나갔다. 1종계에서 밀려난 나를 유독 미워했다. 정도가 심하여 나는 그에게 살의를 느끼기도 했다. 그 바람에 총알이 어디로 날아갔는지 타깃이 구멍 하나 없이 멀쩡했다.

    D데이가 밝았다. 전날 챙긴 군장은 M-16 소총실탄 300발, 수류탄은 4발이었다. 크레모어 둘을 어깨에 대각선으로 걸쳤다. 거기에다 수통을 탄띠에다 여섯이나 달았다. 생명수였다. 나무를 붙들고 가까스로 일어섰다.

    헬기가 퍼덕거리며 높이 올랐다. 독수리가 병아리를 채듯 내리꽂는 에어쇼를 몇 차례 반복했다. 간담이 덜컥 내려앉을 지경이었다. 베트남에 온 지 얼마 안 된 신참병은 속옷을 버리기 십상이었다. 헬기의 조종간을 한국군에 넘기지 않는 미군 조종사들이 흔히 써먹던 더티 플레이였다. 더군다나 고국에서 온 여성 연예인들로 구성된 위문단을 태우고 하늘을 날 때는 더 고약했다. 다분히 의도적이라 볼 수 있었다.

    “엄마아야! 사람 살려!”

    하면서 다급하게 체면도 없이 아무나 끌어안고 매달린다나 어쩐다나. 모두들 헬기에서 내리자마자 화장실로 뛰어가야 했다. 그런 진풍경을 선글라스 너머로 훔쳐보며 낄낄대던 미군 조종사들. 한미 군사협약을 아무리 따져보아도 소용이 없었다. 그들에게도 C-레이션을 몇 박스 안겨주어야 이빨을 드러내 보이곤 했다.

    나는 H-43 헬기에 실려 작전 지역 한복판에 짐짝처럼 던져졌다. 미군 조종사는 안전 때문이라며 헬기를 땅바닥에 선뜻 착륙시키지 않았다. 바닥에서 사이를 두고 공중에 떠 있었다. 주저하면 서슴없이 등을 떠밀었다.

    병사들은 지뢰를 밟아도 상관없고 헬기만 안전해야 한다는 역설이 참담했다. 그 상황에서도 헬기는 확성기를 크게 틀었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로큰롤이 귀가 아플 정도로 울려댔다. 전쟁터에 나온 건지 소풍을 나온 건지 구분을 하지 못하는 표정들이었다. 어찌 보면 다행스럽게도 느껴졌다. 늘 전쟁의 공포만 따라다녔다면 하루를 버티기에도 힘들었을 테니까 말이다.

    6종을 정돈하라

    D+2일째 밤. 비가 멎은 참호에서 판초 우의를 입은 채 적을 기다렸다. 침을 삼키는 긴장이 감돌았다. 야자나무가 머리에 이고 있던 빗물을 주르륵 쏟아 부었다. 조명탄이 높이 올랐다. 포성이 들리는가 싶더니 이내 조용해졌다. 깜박 졸았나 싶은 순간 그리운 얼굴들이 스쳐지나갔다. 패티와 어머니. 그러다가 급작스러운 총소리에 나도 모르게 철모를 바짝 낮추었다.

    “사격 개시! 사격 개시!”

    “따다따다따다!”

    연이어 M-16 총구가 연발로 불을 뿜었다.

    “따쿵! 따쿵! 따쿵!”

    적들의 AK-47 총구가 단발로 응사해왔다.

    교전의 공포가 물밀듯 몰려왔다. 전장의 긴박함이 조여왔다. 크레모어가 터지면서 정글을 뒤흔들어놓았다. 칼을 찬 채 뛰어들던 적들이 나뒹굴었다. 매캐한 포탄 연기를 따라 무서움이 머리끝을 곤두서게 했다.

    미군 팬텀기가 굉음을 내며 지나갔다. 네이팜탄의 파편을 따라 선혈이 사방으로 튀었다. 적군과 아군의 처절한 울부짖음이 짐승의 외마디처럼 들렸다. 피비린내와 화약 냄새 그리고 모든 것이 불타는 전쟁의 고약함이 진동했다. 아군의 피해도 속출했다. 적십자를 가슴에 그린 헬기의 프로펠러 회전 속도가 더욱 빨라지고 군목의 기도가 이어졌다.

    “주여, 이 불쌍한 어린 양들을 굽어 살피소서.”

    사상자들을 후송하기 위해 헬기를 다시 불렀지만 오지 않았다. 병사들의 목숨보다 헬기 값이 훨씬 더 나가기 때문이었을까. 병사의 몸값이야 당시로서야 몇 달러나 나갔겠느냔 말이다. 전사자는 가매장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흙을 조금 덮어 묻어놓았으니 하루만 지나도 냄새가 진동했다. 6종계의 무전이 날아들었다.

    “내일 09시에 6종을 반납받을 예정이니 물건을 잘 정돈하기 바란다. 오버.”

    우리는 판초 우의에 싸서 묻은 시신을 들어냈다. 우의를 들자 시신이 한쪽으로 쏠렸다. 상해서 미끈거리는 검붉은 핏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6종을 정돈하라는 말은 ‘죽은 육신의 구멍마다 나오는 구더기를 잡아내라’는 뜻이었다. 처음에는 대나무로 만든 젓가락을 사용했다. 젓가락으로 집으면 이놈들이 몸을 움츠리는 바람에 놓치곤 했다. 결국에는 외과용 고무장갑을 끼고 하는 수밖에 없었다.

    스콜이 지나가고 수색작전이 계속되었다. 나는 왼눈을 감고 소총의 가늠자를 겨누고 있었다. 첨병 뒤에 선임하사의 철모가 보였다. 그의 철모에 그려진 유별난 그림 때문에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마릴린 먼로의 누드였다. 순간 살의가 발동했다.

    “미운 놈이라도 등 뒤에서 쏘면 의심을 받게 돼.”

    1종계시절 암거래를 하던 롱의 말이 떠올랐다. 가늠자 위에 그의 가슴이 오도록 기다려보았지만 정글에 묻히고 말았다. 내 초점이 흐려졌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제네바협약

    두 번째 작전 마지막 날에 생포한 포로는 여전히 팔각정 기둥에 개처럼 묶여 있었다. 근방에선 고약한 냄새가 났다. 소대장은 중대장에게 점수를 따려는 충성심에 우리를 계속하여 보초를 서게 했다.

    “이건 명백한 제네바협약 위반이야. 포로에 대한 예우를….”

    서 병장이 끝내 투덜거렸다.

    “야! 조용히 못해. 너 죽고 싶어? 이게 무슨 전쟁영환 줄 아냐?”

    “임마! 이딴 거 걱정 말고 넌 생머리 아가씨나 잘 챙겨. 알았어?”

    나는 그의 입을 틀어막다시피 말렸다. 하기는 파병 전에 제네바협약에 대해 받은 교육이 무슨 필요가 있나 싶었다. 포로는 어떻게 대하여야 하고 만약 내가 포로가 되었을 때는 어떻게 대처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나도 이율배반적인 마음에 갈등이 일었다.

    “아이뗀지! 아이뗀지!”

    잡아둘 여유가 별로 없는 상황에서 통역병이 이름을 대라고 소리쳤다. 하지만 포로의 눈은 겁을 먹지 않은 듯 보였다. 야자나무 열매 떨어지는 소리에도 놀라 손을 들고 나온 포로의 어디에 그런 용기가 숨어 있었는지 모를 일이었다.

    “…로안, 로안….”

    며칠 동안 심문으로 알아낸 것이라고는 포로의 이름 정도였다. 서 병장은 다시 한 번 중얼거렸다.

    “맞아. 협약에도 소속과 군번에다 이름만 대면 되는 거야.”

    포로가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옆에서 누가 소총 개머리판으로 포로의 말라빠진 어깨를 내려쳤다. 마른 바나나 잎마냥 푸석거릴 뿐이었다. 한쪽 다리가 성치 않던 그의 안경이 굴러 떨어지고 말았다. 흐트러지지 않는 포로의 눈빛은 이념의 외피가 얼마나 견고한지 실감나게 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측은하게 쳐다보는 내 눈을 알아챘는지 작은 신음 소리를 내기도했다.

    “포 보 따이, 포 보 따이….”

    포로는 배가 고프다고 하소연했다. 나는 포라는 말에 귀가 열렸다.

    “이 친구가 쌀국수가 먹고 싶다네. 정말 모를 일이야.”

    “초콜릿이라도 하나 줄까?”

    나는 패티와 사귀면서 베트남말을 조금 익힌 덕분에 말귀를 알아들을 수 있었다. 포로는 통역병 앞에서 초연하던 모습과는 너무 대조적인 모습을 보여 놀라웠다. 내가 평소에 밥보다 더 좋아하는 국수를 찾으니 아무리 적이라도 동정이 가기 시작했다. 머릿속이 헝클어진 실타래 같아졌다. 전쟁터에서 회의가 들면 무서움이 가슴을 비집고 들어왔다.

    ‘빌어먹을 더러운 전쟁. 싫다 싫어.’

    나의 독백은 핏기 없는 공허함으로 맴돌았다. 베트남 파병 하루 전에 국수를 삶아 눈밭을 헤치고 부대까지 찾아왔던 어머니가 생각나 그만 눈물을 참지 못했다.

    한편으로 나는 어렵고도 심각한 갈등에 빠졌다. 이데올로기를 떠나 전쟁의 수행이냐 인간성의 회복이냐 사이에서 딜레마에 봉착한 것이었다. 아니다. 애국행위냐 이적행위냐에 대해서 말이다. 서 병장도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 당시 우리 두 사람의 생각이 너무도 비현실적인 휴머니즘이었을까.

    쌀국수

    나와 서 병장은 고심 끝에 엉뚱한 결정을 하기에 이르렀다. 다음 야간 보초시간에 제네바협정 중에 포로에 대한 인도적 협약을 준수(?)하기로 결심한 것이었다. 물은 수통을 열어 몰래 몇 번 준 적이 있었다. 그러나 쌀국수는 예삿일이 아니라 망설이길 몇 차례였다. 보초 근무를 교대하기 전에 반합을 솥처럼 걸었다. 크레모어 뒤판에서 뜯어낸 말랑한 화약을 수제비처럼 뜯어 불을 지폈다. 파란 불꽃이 일었다. 파란 불꽃에 내 얼굴이 저승사자같이 보였다. 파란 눈, 파란 코, 파란 입술 그리고 형광색깔을 내는 손. 야간에 초소로 나가는 근무자가 라면을 끓이는 일은 흔한 일이라 의심을 받지는 않았다.

    “얌마! 불 보고 콩이 박격포 때리면 다 죽어!”

    보이지도 않는 선임하사가 잔소리를 했다. 도둑이 제발 저리다고 나는 깜짝 놀랐다. 선임하사는 내가 무엇을 하든지 시비를 걸곤 했다. 또다시 살의를 느꼈다.

    ‘언젠가는 네 목숨을 거두리라.’

    그러면서 나는 내 마음에게 타일렀다.

    ‘지금 적에게 베푸는 자비는 어디 가고 아군에게 살의를 품다니….’

    반합 안의 쌀국수를 젓는 대나무 젓가락이 덜덜거렸다. 면발 위에는 쇠고기 대신 C-레이션 고기를 얹었다. 하늘에는 별이 총총했다.

    포로는 내 발소리를 알고 있었다. 꼼짝도 않다가 보초 교대를 하자 눈을 떴다. 희미한 웃음을 보였다. 아마 오랜 게릴라전에서도 살아남은 육감이었으리라. 서글퍼 보이는 웃음이 낯이 익었다. 어디서 본 듯한 얼굴. 아무래도 기억이 나질 않았다. 어디서 만났을까. 혹시 C-레이션을 내다 팔 때 암시장에서 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나는 사방을 살폈다. 소금자루 같은 포로를 팔각정 기둥뿌리에 앉혀 기대게 했다. 앙상한 어깨뼈가 상했는지 한쪽으로 기울었다.

    반합 뚜껑을 열었다. 포로의 눈도 같이 열렸다. 처음엔 의심을 했다. 내가 먼저 한입 먹어보았다. 그제야 안심하는 눈치였다. 굵은 젓가락으로 먹이자니 쉽지 않았다. 그렇다고 뒤로 묶인 손을 풀어줄 수야 없는 노릇이 아닌가. 급하기도 하고 주위를 살피자니 마음이 앞섰다. 맨손으로 먹여주는 수밖에 없었다. 뜨거운 국물에 손가락이 얼얼했다. 멀리서 들려오는 인기척에 몇 번이나 감추기를 했다. 포로는 국물 한 방울 남기지 않았다. 이빨과 손이 떨려서 도무지 진정이 되질 않았다. 전투복이 밤비를 맞은 듯 흠뻑 젖어들었다.

    “꽁 가 옹온 탐 파이 콤?”

    주워들은 말로 맛이 있느냐고 물었다.

    “응온 탐, 응온 탐.”

    맛있다고 고개를 연방 끄덕였다.

    “깜 온, 깜 온….”

    포로의 고맙다는 혼잣말은 보초근무 내내 이어졌다. 군홧발에 짓밟혀 못쓰게 된 안경을 무척 아쉬워하는 눈치였다. 적군이나 아군이 하는 행위들이 전쟁이란 이름으로 묻히고 정당화될 수 있다는 말인가. 이데올로기가 무엇인지 총을 들고 서 있는 나를 슬프게 하는 길고도 긴 밤이었다.

    회오리바람

    새벽이었다. 내가 보초를 서고 난 후 두 번째 근무자가 당했다. 포로가 묶인 줄을 풀고 달아난 것이다. 되레 보초에게 재갈을 물리고 손도 묶어놓았다. 포로는 소총까지 빼앗아갔다. 붉은 훈장을 꿰차고 달아난 셈이었다. 보초 둘이 교대로 볼일을 보고 돌아오는 순간 송곳 같은 것에 찔렸다고 진술했으나 설득력이 없었다. 상처 자국은 송곳의 굵기보다 훨씬 커 보였기 때문이다. 급소를 비켜간 것이 다행이었다.

    중대가 발칵 뒤집혔다. 기지 주변을 이 잡듯 뒤졌으나 포로의 머리카락 한 올도 찾지 못했다. 상급부대의 정보팀이 모두 들락거렸다. 월남군은 물론 연합군에서도 나왔다.

    밤새 보초를 선 열 군데도 넘는 외곽초소 근무자들도 곤욕을 치렀다. 부상을 당한 보초 근무자 중에 선임인 김 병장은 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불려다녔다. 중대장은 무장해제를 당하고 심문을 받았다. 소대장도 자유로울 수 없었다. 포로는 회오리바람을 일으키고 사라진 셈이었다.

    나는 새 안경을 고쳐 써보았다. 고산족이 사는 캄보디아 쪽 호치민루트로 통하는 먼 산을 바라보았다. 시야는 여전했다. 내가 여분으로 가지고 있던 안경으로 바꿔 쓴 것을 눈여겨보는 아군은 아무도 없었다. 은장도처럼 항상 명찰 아래 주머니에 지니고 다니던 맥가이버 칼이 잡히지 않아 멈칫했다.

    “이건, 군법회의 깜이야! 아니, 총살 깜이야! 총살 깜!”

    그만 들통이 나고 말았다. 순간 심장이 멎는 그런 느낌을 받았다. 정보팀에서 포로가 묶여 있던 팔각정 주위를 살피던 중에 쌀국수 흔적을 발견했던 것이다. 보초 근무조가 모두 불려나와 횡대로 늘어섰다. 정보팀장은 권총까지 꺼내들고 분함을 참지 못했다.

    “내가 쌀국수를…. 이 병장이 화장실 갔다 오는 사이에….”

    서 병장의 단호한 자백에 나는 침묵을 지켜야 했다. 비겁하다는 생각이 들어 당장이라도 소리치고 싶었다. 그렇지만 서 병장의 너무도 강렬한 눈빛에 압도당하고 말았다. 나는 얼떨결에 안경을 벗어 주머니에 넣었다. 무심코 주머니칼이 들어 있던 왼쪽 가슴을 만져보았다.

    서 병장은 2주일간 영창을 다녀와야 했다.

    “야! 넌 랑을 내게 양보했으니 이제 우리는 빚을 갚은 셈 치자.”

    그는 영창을 갔다 와서도 태연하여 놀랄 지경이었다. 나는 죄인처럼 몸둘 바를 몰랐다.

    “이 병장, 헛구역질을 안 해도 임신이 되는 건가?”

    서 병장이 뒤통수를 긁적이며 말을 꺼냈다.

    “야, 그게 뭔 소리냐? 생머리가 애 가졌어?”

    나는 놀라 도끼눈을 해 보였다. 그의 사랑 전선에 이상 기류가 흐르는 기미가 엿보였다. 고민하는 눈치였다. 사실이 그렇다면 큰일인 셈이었다. 국제적인 외교 마찰이 생길 수도 있었으니까 말이다. 평소의 모습과는 달리 이래저래 골치를 앓는 모습이 역력했다.

    “야! 만약에 내가 깨꿀랑 하거든 그 자리에 철모를 묻어주라. 유언이다. 이상!”

    서 병장은 내게 척하니 거수경례까지 부쳤다. 철모 안의 사진 때문이었으리라.

    “야 임마. 너나 내가 죽으면 내 철모, 네 철모 같이 묻어주라. 이 바보야.”

    나도 질세라 핀잔을 주었다. 나도 철모 안의 사진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었다.

    새벽이슬

    며칠이 지났다. 패티가 연락도 없이 찾아왔다. 공산당 색깔 같은 코카콜라 깡통에다 쪽지를 담아 철책 안으로 던졌다. 나는 그날 밤에 모험을 강행했다. 보초들의 눈을 피해 일곱 줄의 철조망을 자른 것이었다. 금방이라도 암호를 대라고 할 것 같았다. 포로가 도망간 뒤라 보초들도 눈에 불을 켜고 있었을 것이다. 아군이 갈긴 총알이 금방이라도 날아올 것만 같았다. 밖으로 나왔다. 어디서 그런 힘이 나왔는지 내가 생각해도 모를 일이었다. 어쩌면 광대놀이에 대한 미련은 아니었을까.

    패티는 낮에 마마상들이 음료수나 과일을 팔던 초막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떨고 있었다. 우리는 뜨거운 포옹을 했다. 그녀는 깊은 파정을 하고도 두 팔을 풀지 않았다. 고맙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뚱시 리…깜온, 깜온…….”

    눈가를 타고 번지는 희미한 미소가 누구를 닮아 보였다. 얼기설기한 마른 야자수 잎 사이로 푸른 별이 총총하게 보였다. 두 사람의 머리 위로 수만의 별빛이 쏟아져 내렸다.

    큰 전투가 벌어졌다. 우리 중대는 대포나 차량을 매달고 다니는 치누크 헬기에 올랐다. 또다시 전투지역에 군수물품처럼 떨어뜨려졌다. 내가 선두에 서야 하는 첨병으로 나설 차례였다. 적군이 파놓은 함정을 지나야 하고 아군이 설치한 부비트랩을 통과해야 했다. 위험한 일이지만 누가 해도 해야 할 일이었다.

    철모 대신 머릿수건을 동여매고 방탄조끼도 벗었다. 그러지 않고서는 몇 발자국 옮기지도 못할 형편이었다. 정글도를 휘둘러 앞을 가로막는 장애물은 닥치는 대로 잘라냈다. 적군이 놓은 덫에 걸리지 않기 위해 새로운 길을 내야만 했다. 얼마 가지 않아 지칠 대로 지쳤다. 땀이 흘러 정글화도 질펀하게 젖어 들었다.

    나는 어렵게 헤쳐나갔다. 그러다가 발을 헛디뎌 넘어지는 바람에 발목이 삐는 사고가 났다. 진격에 문제가 생겼다. 소대장은 첨병 지원자를 물었으나 누구도 대답을 하기가 쉽지 않았다. 서 병장이 선뜻 자원을 했다. 정글도를 잡은 그는 종횡무진 터널을 만들어나갔다. 첨병을 교대하는 사이에 적들은 우리의 동태를 미리 알아차리고 있었다.

    7부 능선에서 그만 복병을 만나고 말았다. 우리는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참호를 파서 진지를 구축했다. 꼼짝없이 고립되고 말았다.

    며칠이 지났다. 수통이 말라붙었다. 서 병장은 마지막 물을 내게 아끼지 않았다. 노란색 연막을 피우면 하늘 높이 맴돌던 헬기에서 물과 C-레이션을 떨어뜨려주었다. 하지만 손에 넣을 수 없었다. 얼씬만 해도 총알이 불을 켜고 날아들었다. 적들은 우리가 가까이 가도록 보고만 있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포위된 지 4일째. 이슬이 맺히는 시각을 알아냈다. 밤중에 참호 둑 위로 빈 수통과 발가벗은 알 철모를 올려놓았다. 대검도 칼집에서 나와 번득였다. 새벽에는 소총의 개머리판마저 눕혔다. 이슬을 받기 위해서였다. 숨죽여 기다렸다. 편평한 면에 이슬이 맺혔다. 이슬방울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타이밍을 잡은 보초가 대검으로 철모를 두드려 작은 소리로 신호를 보냈다. 나와 전우들은 백태가 끼어 소금밭의 가래와도 같은 혓바닥을 내밀어 이슬을 핥고 또 핥았다. 새벽에서 아침으로 넘어가는 짧은 순간. 바람이 일고 해가 뜨기 전에 해치워야 했다. 엎드려 적진을 살피던 몸을 떼면 흙 위에 내 몸 자국이 도장처럼 찍혔다. 이슬이 묻지 않은 내 몸 자국. 소금기에 전 형틀이었다.

    브로큰 애로

    갈증은 오히려 더해갔다. 시원한 동치미 국물에 살얼음이 떠 있는 국수가 신기루처럼 헛보였다. 그런 국수를 한 그릇만 먹을 수 있다면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았다. 하늘이 인내의 한계를 시험하는 것 같기도 했다. 우리는 한계에 다다르고 말았다. 레이션 깡통에다 자신의 붉은 오줌을 받았다. 거기에다 아껴두었던 커피를 탔다. 코를 막고 들이켰다.

    하늘도 무심한지 소나기 한번 지나가는 일이 없었다. 나는 죽음이 가까워 오는 걸 느꼈다. 수첩에다 어머니께 드리는 마지막 쪽지를 남겼다.

    어머님 전에

    먼젓번 유서대로 하시고, 저를 다시 보지 못하시더라도 부디 건강하게 만수무강 하십시오. 나라에서 돈이 나오면 아버님 제사와 어머님을 위해서만 꼭 쓰길 바랍니다. 김장김치가 무척이나 먹고 싶습니다. 부디부디 안녕히 계십시오.

    불효자 올림.

    들고 있던 레이션 깡통에 메마른 눈물방울이 떨어졌다.

    얼마나 지났을까. 적들의 공격이 재개되었다.

    “따쿵 따쿵.”

    적들은 실탄을 아끼느라 단발로 쏘아댔다.

    “따다따다따다.”

    우리는 가지고 있던 실탄이 거의 떨어질 때까지 사격을 멈추지 않았다.

    “격발! 격발!”

    “꽈앙! 꽈앙!”

    크레모어가 터져나갔다. 맞기라도 하면 누구의 몸이든 벌집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사방으로 사람의 살점이 튀어 날았다. 흡사 덜 익은 수박의 속살 같아 보였다.

    화약 연기 속에서 들려오는 피아 간의 신음소리가 어느 쪽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차라리 불구덩이 지옥이 나을지도 몰랐다. 아비규환. 아수라장. 이것이 적절한 표현일지 모르겠다. 그것도 모자라면 사람이 겪을 수 있는 고통의 백과사전이라고나 할까.

    끝내 전선은 무너지기 직전이었다.

    “무전병! 브로큰 애로야! 브로큰 애로!”

    누군가 소리를 쳤다. 무전병은 응답이 없었다.

    “시익… 시익….”

    무전기만 잡음을 내고 무전병은 피를 흘리고 있었다. 손에는 지도가 들려 있었다. 가까이에 있던 나는 무전기를 들었다. 지도에 표시된 좌표를 확인했다.

    “브로큰 애로! 브로큰 애로!”

    “귀소의 위치를 알려라. 반복한다. 좌표를 불러라.”

    “좌표, 140319. 반복한다. 좌표 1,4,0,3,1,9. 이상!”

    “알았다. 부디 살아 있기를 바란다. 오버!”

    알파, 브라보, 찰리 포대에서 거의 동시에 포를 쏘아 올렸다.

    “장전!”

    “발사!”

    포대사수들은 웃통을 벗어던졌다. 155밀리 포탄은 아군의 머리 위에도 무차별로 떨어졌다. 미군의 팬텀기가 폭격을 했다. 사람의 몸뚱이를 태워 날렸다. 사방에서 단말마의 비명이 들렸다.

    좌표 140319

    능선은 초토화되고 말았다. 초록색깔이 보이지 않았다. 그제야 적의 포위망이 흐트러졌다. 아군은 전열을 재정비할 틈을 찾았다. 화약 먼지를 털어내고 돌격 준비를 했다. 첨병은 여전히 서 병장이 맡았다. 적들의 저항도 만만치 않았다. 고지는 슈바이처 모자를 닮은 무컹을 쓴 적들이 장악하고 있었다. 고지를 눈앞에 두었다. 몸을 도사리지 않고 나서던 서 병장이 적탄에 맞았다. 위생병이 압박 붕대로 지혈을 해보았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야! 서 병장 임마! 죽으면 안 돼. 나는 어떡하라고….”

    “내가 왜 죽어. 동치미 국수가 먹고 싶은데….”

    “이 사진이나…, 내 철모 안에….”

    단발머리의 여동생 사진이었다. 내 발목이 문제가 아니었다. 그를 들쳐 업었다. 임시로 만든 헬기장으로 정신없이 뛰었다. 그를 살려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한참을 뛰는데 내 가슴께에 철썩대는 것이 있었다. 그의 뱃속에서 무엇인가 한 뼘이나 삐져나와 있었다. 흔들거리는 창자가 그새 말라붙고 있었다.

    “아아 서 병장! 이 일을 어찌하나…….”

    들것으로 옮겨져 헬기에 실린 그의 맨발 바닥에선 핏기가 가셨다. 시리도록 하얗게 보였다. 헬기가 뜨자 나는 서 병장이 쓰던 철모를 가슴에 안았다. 거수경례를 부쳤다. 헬기가 멀어져갔다. 포탄이 떨어지고 파편이 사방으로 튀는데도 엄폐물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두려움이 없어져버렸다. 나는 자욱한 유황연기 속에서 멍하니 서 있었다. 가시지 않은 충격으로 한동안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아군의 희생이 따르고 난 뒤에야 고지를 탈환할 수 있었다. 우리는 적군이 황급하게 빠져나간 고지에 올랐다. 먹고 버린 C-레이션 깡통이 어지럽게 굴러다녔다. M-16소총의 탄피도 수북했다. 미군의 PX 표시가 선명한 맥주 깡통도 구석구석 나뒹굴고 있었다.

    좌표 140319는 단순한 지구의 위도와 경도의 만남이 아니었다. 또한 지도에서 남북을 가르는 날줄과 동서를 가르는 씨줄의 만남도 아니었다. 참호에서 며칠을 거총자세로 엎드렸다 일어나면 흙 위에 자국으로 남아 있던 거푸집에 내 몸을 다시 태어나게 한 자리였다. 젊은 병사가 이데올로기를 만나 갈등하며 전장을 지켜보던 참호의 위치였다.

    적군이 쓰던 빨간 별이 새겨진 피 묻은 슈바이처 모자를 하나 주웠다. 모자 옆면에는 빛바랜 성조기에 해골이 그려져 있었다. 뒤집어보니 그물망 안에는 잡지에서 찢어낸 큰 사진이 들어 있었다. 인민 배우인지 한 여자의 미소가 소금기에 절어 있었다. C-레이션 커피봉지가 하나 끼워져 있었다. 적들도 쏟아지는 잠에는 어쩔 수 없었나 보다.

    서 병장이 남기고 간 철모를 보았다. 그들의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하트모양 가운데 큐피드의 화살이 그려져 있었다. 옆으로 낙서가 이어졌다.

    ‘AK접근금지·불사조·조국아!’

    바르는 모기약이 위장포 끈에 꽂혀 있었다. 뒤집어보니 눈이 크고 생머리인 랑의 사진이 들어 있었다. 그녀의 얼룩진 웃음이 철모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나는 철모와 슈바이처 모자를 양손에 든 채로 심한 현기증을 느꼈다.

    겨우 정신을 가다듬고 참호를 파듯 구덩이를 팠다. 서 병장 철모와 내 철모를 묻었다. 전우를 잃은 슬픔도 같이 묻었다. 무심하게 들고 있던 슈바이처 모자도 던져넣었다. 큰 돌을 굴려다 구덩이 흙을 눌렀다.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천둥이 울리고 때늦은 비가 쏟아졌다. 돌 사이로 황톳물이 스며들었다. 나는 무너지듯 주저앉고 말았다.

    당선소감



    좌표 140319는 지구의 위도와 경도의 단순한 만남이 아니었습니다. 또한 지도에서 남북을 가르는 날줄과 동서를 가르는 씨줄의 단순한 만남도 아니었습니다. 좌표 140319는 베트남전쟁 당시 내가 죽음의 문턱에서 전투를 치렀던 참호 위치였습니다. 참호에서 밤을 새워가며 적진을 향해 거총자세로 엎드렸다 일어나면 흙 위에 내 몸 자국이 그대로 찍혀 거푸집이 생겨났습니다. 그 자국은 전쟁터에 다시 내보낼 병사를 찍어내는 또 하나의 형틀이었습니다.제네바협정을 위반한 아군의 잔혹함에 반감을 가진 적도 있었습니다. 알량한 휴머니즘으로 적군 포로의 탈출을 도우면서 어렵고도 심각한 갈등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세상의 복잡한 문제들을 떠나 전쟁의 수행이냐 인간성의 회복이냐 사이에서 딜레마에 봉착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애국 행위냐 이적 행위냐에 대해서 말입니다. 좌표 140319는 한 젊은 병사가 이데올로기를 만나 고민하며 전장을 지켜보던 참호의 자리였습니다.선생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문우들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가족에게 사랑을 보냅니다. 졸작을 선해준 심사위원과 ‘신동아’에 감사의 뜻을 표합니다.


    좌표 140319
    이호철

    1948년 창녕에서 태어나

    27세에 대구에 있는 고교를 마치고

    32세에 서울에 있는 대학을 졸업

    20여 년을 건설업에 종사하였음

    현재 충북 괴산에서 집을 짓고 과수원을 만들고 있다



    ‘죽으면 효도를 산다면 공부를’

    마지막 훈련은 40km 야간 행군이었다. 말로만 듣던 100리 길이었다. 저녁 식사가 끝나자마자 군장을 꾸렸다. 양말 바닥에 비누질을 하였다. 그래야 발이 덜 부르튼다고 했다. 자정이 넘자 행군 중에 앞뒤 사람들과 줄을 이어 서로 묶었다. 깜박 졸다가 길 밖으로 추락할 것이 염려되어서였다. 가다 보면 한 번씩 다리가 꼬인다 싶은 순간에 꿈을 꾸기도 했다. 고향 마을의 감나무 과수원도 보였다. 다니던 학교의 운동장도 지나갔다. 친구를 부르며 뛰어다니기도 했다. 그러다가 눈물짓는 어머니 모습에 화들짝 깨어났다.

    뽀드득, 뽀드득…. 밤새 눈 밟는 소리가 귓전을 떠나지 않았다.

    “이 하얀 눈도 마지막이 될지 모르니 실컷 봐라! 알았나!”

    선임하사가 한마디 던졌다. 앞서 가는 행렬이 마치 열대 우림의 큰 뱀이 꾸물대며 헤엄쳐 지나가는 것처럼 보였다. 눈길이 강물처럼 보였기 때문일까. 내가 그날 밤을 오래도록 잊지 못하는 것은 도사리고 있는 죽음을 보았기 때문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 전쟁에서 죽고 살고는 반반일지 몰라. 전우 중 누가 죽을지, 아니면 내가 죽을지도 모르지.’

    먼동이 트면서 어둠이 걷힐 무렵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밀국수

    이튿날 저녁에 어머님이 눈길을 헤치고 마지막 면회를 왔다. 호적에서조차 파내겠다고 하시던 감정은 다소 가라앉은 눈치였다. 정말 다행이었다. 마음속으로 어머니의 얼굴도 못 보고 고국을 떠나게 된다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태산 같았으니까 말이다. 나는 철모를 쓴 채로 어머니를 끌어안았다. 그런데 깜짝 놀랄 일이 있었다. 국수였다. 어머니는 삶은 국수를 기름종이에 싸 가지고 불을까 조바심치며 서울에서 춘천고개를 넘어 오음리까지 한달음에 온 것이었다.

    평소에 어머니와 나는 국수를 좋아했다. 내가 첫 휴가를 나갔을 때도 어머니는 단 한마디만 했다.

    “응 왔어?”

    그러고는 아들의 얼굴도 제대로 보지 않고 부엌으로 가서 국수부터 삶았다. 흐르는 눈물을 닦지도 않은 채로.

    “엄마, 우시는 거예요?”

    “아니야, 울긴. 김이 올라서 그래.”

    국수 솥에서 부풀어 오르는 뜨거운 거품을 찬물로 주저앉히면서 당신의 복받치는 감정도 가라앉혔다. 찬물에 국수를 헹구며 몇 가닥을 돌돌 말아 맛보기로 내 입에 먼저 넣어주었다. 맹물에 몇 번 헹구는데도 간이 배어 있었다. 눈물이 들어가서였을까.

    “우리 엄마 국수는 양념이 없어도 제맛이지. 하하하!”

    그제야 어머니는 눈물을 멈추었다. 국수는 집안에 어려운 일이 있을 때 가족들을 이어주는 마음의 끈이었다.

    어머니는 부대 앞 여관방에서 삼베보자기를 펼치고 기름종이를 벗겨냈다. 어머니의 국수였다. 여관주인에게 냄비를 부탁해보았다. 면회 온 사람이 많은 탓에 뜻대로 되지를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철모를 사용하기로 했다. 얼룩무늬 위장포를 벗기고 파이버를 빼낸 다음 알 철모의 안쪽을 잘 닦았다.

    철모를 놓고 베개로 양쪽을 받쳐 세웠다. 국수를 담은 다음 양은주전자에 담아온 동치미 국물을 부었다. 철모에 거의 절반이나 차올랐다. 그 위에 어머니의 굵은 눈물이 간을 더해주었다. 이른 새벽에 삶아 저녁에야 먹으니 면발이 뒤엉켰다. 젓가락에 제대로 올라붙지를 않았다. 국숫발이 이어지지 않고 중간에 뚝뚝 끊길 정도였다. 퉁퉁 불어 끊어진 국수와 내 눈물이 철모 안으로 함께 떨어졌다.

    “많이 먹고 꼭 살아서 돌아와야 한다. 알았지.”

    어머니는 국수의 긴 면발처럼 내 목숨이 길게 이어지길 바랐을 것이다. 끼고 있던 금반지까지 호신용 부적으로 내게 건네주었다.

    밤새도록 눈이 내려 아침에는 눈속에 정강이까지 빠졌다. 어머니는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나도 표정관리 하기가 쉽지 않았다. 어머니가 탄 버스가 보이지 않고도 한참을 눈밭에 그대로 서 있었다. 오음리의 마지막 밤이었다. 눈발이 그치지 않았다.

    모포부대

    그해 12월까지의 봉급이 몽땅 나왔다. 조국은 전사할지도 모를 우리에게 가불을 해준 셈이었다. PX 안은 샴페인 터지는 소리로 요란했다. 뚜껑이 날아 천장에 부딪혀 소리를 냈다.

    “탕!탕!”

    마치 총소리처럼 들렸다. 고국에서 가지는 마지막 회식자리였다. 교육대에 오기 전 같은 부대에서 온 박 상병은 잔뜩 취해 있었다.

    “야! 친애하는 이 상병! 우리 모포부대에 한번 가볼래?”

    “아니, 모포부대가 몇 사단인데?”

    나는 영문을 몰라 되물었다.

    “모포부대도 모르는 바보등신 같은 자식! 날 따라와 봐!”

    박 상병은 나를 끌다시피 하여 부대 담장 쪽으로 나왔다. 성벽처럼 쌓인 돌담 위에는 보초가 왔다갔다하고 있었다. 박 상병이 가리키는 손가락을 따라 담 너머 밖을 내다보았다. 영화 ‘닥터지바고’의 배경 같은 눈밭에 군데군데 점이 박혀 있는 듯했다. 점박이마다 무엇인가 움직이는 물체가 보였다.

    “야, 이 상병! 저게 모포부대다. 알겠냐?”

    이동식(?) 사창가였다. 여자들이 모포를 사등분으로 접어 말아 겨드랑이에 끼고 다닌다 해서 붙은 별칭이었다. 모포부대에서는 남자가 바지를 벗는 것이 아니고 반쯤만 내려야 된다고 했다. 박 상병의 입에서는 연신 침이 튀었다.

    이튿날 춘천역에서 환송식이 있었다. 군악대가 힘찬 행진곡을 연주했다. 여학생들이 꽃다발을 장병들 목에 걸어주었다. 하늘에서 색종이가 흡사 오색의 눈인 양 휘날려 플랫폼에 쌓였다. 기차는 북한강을 따라 서울로 향했다.

    용산역은 환영식 인파로 붐볐다. 군악대와 의장대가 더욱 번쩍거렸다. 여학생들이 꽃처럼 양쪽으로 서 있었다. 우리는 차창을 모두 열었다. 피켓을 흔드는 가족들, 이름을 외쳐대는 아버지들, 눈물이 가득한 어머니들. 그 사이로 내 어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이거 줄라고 다시 안 왔나.”

    김치와 고추장이었다. 기차가 움직일 때까지 어머니는 내 손을 놓지 않았다. 기차가 기적소리를 고르더니 서서히 움직였다. 바람결에 이슬 같은 물기가 내 볼에 와 닿았다. 앞 칸에서 누가 그토록 복받쳐 눈물을 날렸는지. 내 눈물도 다음 칸으로 날아갔을 것이 분명했다.

    부산항 제3부두. 미국의 퇴역군함 업셔호에 올랐다. 마지막 환송식이 있었다. 피켓은 더욱 큼직해졌다. 메가폰까지 동원되었다. 다윗처럼 골리앗같이 생겨먹은 배 위로 돌팔매질을 해댔다. 가족들이 편지에 돌멩이를 싸서 갑판 위로 던져 올리는 것이었다. 힘이 모자라 배 위까지 채 오르지 못하여 바다에 떨어지는 것이 더 많았다.

    뱃고동소리가 길게 울리고 닻이 올랐다. 영화의 한 장면을 연출하듯 움직이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정연하던 대열이 이리저리로 술렁대기 시작했다. 수많은 아들의 이름이 불렸다. 또한 선상에서는 어머니라는 이름이 한 목소리로 외쳐졌다. 애국가가 울려 퍼지자 모두들 젖은 눈을 어찌하지 못했다.

    좌표 140319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항해 이틀째. 불청객으로 찾아온 멀미 때문에 성한 사람이 별로 없을 정도였다. 선실에서 식당까지 가는 일이 고역 중에 고역이었다. 심호흡을 하고 숨을 멈춘 채로 한달음에 복도를 지났다. 미군들의 조크를 들으며 식당 문을 붙잡아야 했기 때문이다. 음식을 먹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 멀미를 심하게 하던 나로서는 고통이 이만저만한 게 아니었다. 토스토 한 조각과 커피 한잔으로 식사를 마쳤다. 그것도 같은 동양인이라고 봐준 필리핀 출신 취사원 덕분이었다. 기다시피 겨우 침대로 돌아와 꼼짝 않고 누워 있어야만 했다.

    항해 닷새째. 축구장의 절반 정도는 됨직한 갑판에 나와 드러누워 하늘을 보고 있었다. 가까스로 난간을 잡았다. 은빛 날치 떼가 파도를 가르며 곡예비행으로 뱃길을 따라왔다. 한쪽에서는 멀미 때문에 바다로 뛰어들어 날치를 따라가겠다고 엄살을 부렸다. 그 바람에 모처럼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극장에서 게리 쿠퍼와 잉그리드 버그만이 나오는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보았다.

    “우리는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려고 가는가?”

    “누구긴 달러를 위하고 조국을 위해서지.”

    “엄마의 가난을 벗겨주기 위해서지.”

    극장에서 나오면서 저마다 한마디씩 남겼다.

    항해 일주일째. 새벽에 퀴논 항에 들어섰다. 작은 고깃배들이 한가롭게 오가는 풍경은 평화롭게 보이기까지 했다. 멀리 산 너머 포성 뒤에 번쩍거리는 번갯불 같은 섬광마저 아름답게 보였다. 이곳이 전쟁터라니 믿기지 않았다. 그것도 잠시였다. 배에서 내리자마자 펄럭이는 태극기 아래 엎드렸다. 갑자기 달라붙은 동남아 특유의 후텁지근한 매캐함 때문이었을까. 뱃속에 겨우 한 모금 남아 있던 커피를 토해내고 말았다.

    야자수가 너풀대는 도로를 따라 맹호사단 보충대에 들어섰다. 입을 한껏 벌린 호랑이 마크가 긴장을 더해주었다. 막사 천장에 매달려 삐걱거리며 돌아가는 선풍기가 인상적이었다. 아침이었는데도 간간이 포성이 들렸다. 우리들은 얼굴을 마주 보았다. 너 나 할 것 없이 불안한 기색이 역력했다.

    “모두 잘 들어라! 이곳 베트남에 왔다가 살아서 고국 땅을 밟아보려면 처음 두 달, 마지막 두 달을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검게 그을린 선임하사의 목소리가 자못 진지하게 들렸다. 무엇을 어떻게 조심해야 한다는 주의사항을 늘어놓았지만 제대로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예하부대 보충대로 넘어갔다. 신고를 마치자 인사계는 전입 신병들에게 유서를 남기게 했다.

    ‘아니 유서를 쓰다니….’

    나는 갑자기 한기를 느꼈다. 모두들 ‘부모님전상서’로 시작하는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쓰고, 지우고 다시 쓰면서 누런 편지지 위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누구도 막을 수 없는 뜨거운 감정이 흘러내렸다. 군인답지 않게 여러 번 울었다. 태극기를 보기만 해도, 애국가를 듣기만 해도 그랬다. 고국 얘기만 나누어도 그냥 알 수 없는 눈물이 나곤 했다.

    1종계

    더위가 절정에 이르렀다. 며칠을 보내면서 적응훈련을 끝내고 차차 전장으로 밀려들어갔다. 전쟁터에는 살인 더위, 살인 정글, 거기에다 살인 모기, 살인 거머리 등 여기도 저기도 온통 살인이라는 명찰이 붙어 다녔다. 그리고 쌍방에서 전쟁이라는 이름 아래 저지르는 살생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어머니가 빼어준 세 돈짜리 반지를 항상 품고 다녔다. 금반지를 유용하게 써먹을 기회를 엿보았다. 고국의 부대에서부터 같이 온 박 상병의 정보에 기댄 셈이었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모두들 살기 위한 방편이었을까. 전쟁터에서는 병과로 받은 주특기는 크게 작용하지 않는 셈이었다. 야합의 뇌물로 일컬어지는 ‘짜옹’을 해서 연줄을 놓았다. 사령부 예하부대의 1종계를 맡게 되었다.

    1종계 일이란 장병들의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물품을 공급하는 것이었다. A, B, C-레이션은 물론 K-레이션에서 담배까지 다양했다. 근무중대 행정반에서는 눈독을 들이는 자리였다.

    어머니께 편지를 썼다. 내내 눈물이 떨어졌다. 다 쓰고 나서 편지지를 접는데 물에 젖은 것을 말린 것처럼 면이 곱지 않았다.

    ‘아들아! 무슨 일이 있더라도 살아서 돌아와야 한다.’

    어머니의 답장은 짧았다. 대신에 여러 권의 책을 같이 보내주었다.

    1종계의 사수는 탁구선수였다는 김 병장이었다. 그의 귀국 일정이 갑자기 앞당겨지는 바람에 예정에 없던 자리가 났던 것이다. 제대로 하자면 미리 조수를 들여 업무를 배워 익히게 한 다음에 인수인계가 이루어지는 법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고위층 상급자와 심각한 마찰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1종계 업무를 인수인계하면서 거래가 있었다. 그동안 파월 초기부터 내려온 관례라고 했다. 나는 김 병장에게 일제 산요 선풍기와 소니 텔레비전 그리고 히타치 냉장고를 건넸다. 물론 귀국 박스의 이름도 빌렸다. 국산인 금성사의 전자제품 티켓도 끊어주었다.

    1종계는 본연의 임무보다 우선 처리해야 할 일이 있었다. 실체가 없는 가공인물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유령 병력을 만들어 식수인원을 한껏 부풀려야 했다. 미군 병참부에서 C-레이션을 더 타내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만들어진 C-레이션을 암시장에 처분하여 비자금을 만들었다. 그래야 보름마다 떠나는 귀국선에 상급자들의 박스를 채울 수가 있었다. 대신 미군 병참부의 선임하사에게는 정해진 커미션과 마리화나를 대주는 조건이 붙었다. 그 작전(?)은 거의 유일하게 손발이 맞는 미군과의 공조였을지 모르는 일이다. 당시 연합군 중에는 일부지만 마리화나가 일상 깊숙이 자리 잡고 있었다.

    초우

    암시장 유통에는 검은 손이 필요했다. 그래서 1종계 사수의 파트너였던 여자도 같이 넘겨받았다. C-레이션을 암시장에 거래하자면 어쩔 수가 없다고 귀띔해주었다. 김 병장의 귀국 선물을 준비하는 데 든 달러가 모두 여자에게서 나왔다. 선불인 셈이었다.

    그녀는 비엣족의 여느 여자들처럼 들창코도 아니었다. 어딘가 슬퍼 보이는 쌍꺼풀진 큰 눈과 탄력 있는 가슴을 지닌 여자였다. 이름이 쑤언이라고 했다. 작지 않은 키에 반 아름의 허리를 가졌다. 엉덩이까지 내려오는 윤이 나는 검은 머릿결이 빛났다. 아오자이를 입었을 때는 자태가 더욱 고혹적이었다.

    나는 일주일에 두세 차례 ‘정보수집’이란 명목으로 철조망 사이로 난 개구멍을 드나들었다. 상급자의 묵인하에 이루어졌다. 처음에는 겁이 나기도 했다. 잔뜩 긴장되어 몸이 굳을 정도였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암시장 거래처를 소개해주었다.

    쑤언은 내게 헌신적이었다. 전쟁터의 고독과 공포를 달래주는 데 아낌이 없었다. 밤 9시면 끊어질 듯 공급되던 전기가 나갔다. 그때부터는 자가 발전기를 돌렸다. 자정이 넘으면 발전기도 꺼졌다. 선풍기도 돌릴 수가 없으면 머리맡에서 밤을 새워 부채질로 바람을 만들어야 했다. 어릴 때 어머니가 부채를 흔들어 모깃불 사이로 내주던 바람처럼 감미로웠다.

    쑤언은 고물이 다 된 카세트로 우리 노래를 흥얼거렸다. 얼마나 연습을 했던지 동백아가씨를 부르면 구성졌다. 내가 좋아한다고 끊임없이 부르더니 ‘초우’도 제법 잘 넘어갔다. 나는 그녀를 패티라 불렀다. 초우를 부른 가수 패티 김에서 따온 것이었다. 패티가 안쓰러운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주둔군에 따라 제 이름도, 부르던 노래도 바뀌었을 것이지만 차마 물어볼 용기가 나질 않았다.

    패티의 가족은 복잡했다. 아버지는 프랑스군과 싸우다 죽었다. 어머니는 미군의 폭격으로 죽었는데 시신조차 찾지 못했다. 오빠는 월남군 장교로 복무하다 전사했으며 남동생은 월북하여 월맹군이 되었다고 했다. 베트남의 많은 사람이 피붙이에서부터 골육상쟁을 하고 있었다. 6·25전쟁 때의 우리와 닮은꼴이었다. 땅덩어리조차 남북으로 길게 생긴 것이 그랬다.

    그녀는 퀴논에서 초등학교 교사를 하고 있었다. 월북한 동생의 사상이 문제가 되어 쫓겨나는 바람에 여기까지 흘러왔다고 했다. 누군가 밀고해 경찰이 들이닥쳤다고 했다.

    “야, 이 병장. 다음달에 마누라 생일이니 마빡을 세 개만 쳐라. 알겠지?”

    은밀하고도 낮은 상급자의 목소리가 뱀처럼 감아 돌았다. ‘마빡’은 군수물품을 암시장에 내다파는 것을 뜻하는 은어였다. 목구멍에 뭔가 걸린 기분이었다. 아니다. 생선가시가 목에 걸린 듯했다.

    요술상자, C-레이션

    C-레이션. 미군의 전투식량이었다. 아군이나 적군이 모두 노리는 식량이었다. 아군에게는 내다팔면 돈이 되었다. 그것을 사간 적군은 전투를 수행하는데 유용하게 써먹었다. 한 박스에 열두 톨이 들어 있었다. B1, B2, B3 세 가지로 내용물이 모두 달랐다. B3는 과일 통조림이 들어 있어 다들 좋아했다. 그래서 고참용이란 말도 있었다. 메인 음식말고도 보조 물품이 많았다. 껌, 커피, 치즈, 크래커, 화장지 거기에다 성냥, 네 개비짜리 담배. 보물상자에다 요술상자였다. 다들 탐을 낼 수밖에 없었다.

    처음 마빡을 치던 날이었다. 어둠 속의 헬기장은 적막만이 흘렀다. 트럭에는 세 팔레트의 C-레이션이 그물망째로 실려 있었다. 헬기장에서 수령할 때 부대로 반입하지 않고 작업을 해둔 것이었다. 그래도 얼마나 긴장했던지 옆구리가 결릴 정도였다. 트럭은 큰길까지 라이트를 켜지 않고 움직였다. 중간에서 패티가 동승을 했다. 그래서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거래대금은 달러로만 받았다.

    혼자서 하기엔 어려운 일이었다. 상급자에게 부탁해 소총소대에 가 있던 박 상병을 불러올렸다. 그는 그 사이에 병장으로 진급해 있었다. 미국과 전투수당을 계산할 때 몇 달러라도 더 받기 위해 진급을 시켜준 덕분이었을 테다. 나 또한 수혜자였다.

    박 병장은 어디서 38구경 리볼버 권총을 구해왔다. 베트콩들이 잘 입는 검정색 인조파자마도 준비했다. 어느 사이에 시장에 밝은 정보원이라며 마리라는 여자도 구해 왔다. 프랑스 혼혈이었다.

    한국군 상급부대는 A-레이션이나 B-레이션을 급식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급부대에서는 평상시의 급식으로는 쌀밥을 먹었다. 본국에서 공급된 K-레이션이 부식이었다. 그때만 해도 우리의 통조림 제조기술이 완벽하지 않아 K-레이션의 김치나 고추장이 상하는 경우가 많았다. 미군 고문관이 알까 봐 쉬쉬하며 먹기도 했다. 자칫 그들의 눈에 잘못 비쳤다간 공급을 중단시킬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작전을 나갈 때나 비상시에는 끼니를 계산해 C-레이션이 지급되었다. 그렇지만 상황이 끝나고 나면 C-레이션이 자취를 감추기 일쑤였다. 전투원들이라면 항상 가지고 있는 불만요소였다.

    미군 병참부로부터는 전투부대 식수 인원에 따라 하루 세 톨씩 C-레이션을 계산하여 수령해왔다. 수령해온 물량을 그대로 공급하지 않았다. 하급부대로 내려가면서 일정량을 줄여 계산해서 넘겼다. 줄이는 핑곗거리가 열 가지도 넘었다. 여기서도 다소의 유령 병력이 오고갔다.

    각급 단위부대의 1종계끼리 몰아서 처분하는 담합이 이루어졌다. 작전이 자주 있는 것도 아니어서 C-레이션이 남아 물량이 쌓이면 내게 위탁판매를 부탁하기도 했다. 마지막 단계인 보급계는 기지 앞에서 좌판을 벌인 마마상들과 거래를 했다. 그들도 현금이 필요했다. 부대원들의 생일에다 귀국 선물이다 하여 씀씀이가 만만치 않았다. 그래서 전쟁터에서도 돈이 필요했는지 모른다.

    차츰 마빡에 이력이 붙어갔다. 1종 창고는 우리의 아지트였다. 상급자의 지시로 아무나 드나들 수 없는 곳이었다. 박 병장은 그 일이 체질에 맞았다. 키도 얼굴도 월맹군 총사령관 지압을 닮아 보였다. ‘박지압’으로 통했다. 불같은 성격도 닮았다.

    “미국은 베트남을 너무 몰라 이 전쟁에서 지고 말 거야. 두고 보라고.”

    박지압은 졸병에 지나지 않았지만 보는 눈이 있었다. 꿰뚫고 있던 전략도 보 구엔 지압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전쟁 당시 월맹군총사령관이던 지압 장군은 전쟁을 간단하게 정의했다. 미국이 전쟁에서 진 이유를 미국 지도부는 똑똑했지만 그들은 베트남이 대대로 이어온 오래된 역사와 전통적인 문화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라 했다.

    박 병장은 민첩하기도 하지만 선글라스 너머로 암거래 장사꾼들을 다루는 솜씨가 탁월했다. 민사나 정보계통에도 로비가 통했다. 월남군이나 연합군과도 ‘짜옹’을 잘했다. 미국 정보국의 CIA가 친구라며 찾아오기도 했으니까.

    나는 선글라스를 쓰는 데도 시간이 걸렸다. 왠지 쑥스럽고 민망해서였다. 용의주도한 패티 덕분에 베트콩의 저격 대상에서 빠졌다. 모르긴 해도 그것은 내가 죽었다간 암시장이 한동안 마비될 것이고 그러면 좀 곤란해지기 때문일 것이라 했다.

    “저기… 뚱시 리가 깨꿀랑 하문 안 뙨 뙤요.”

    패티가 농담반 진담반으로 일러주었다.

    38구경과 러시안룰렛

    미군들과 주로 거래하던, 롱이라는 콧수염을 기른 브로커를 만났다. 새로운 거래를 트기 위해서였다. 패티와 마리가 다리를 놓았다. 롱 일당은 퀴뇬 지역의 지하경제를 쥐락펴락했다. 마피아였다. 싸움닭과 러시안룰렛 게임장도 운영했다. 빈 권총에 실탄을 한 발부터 시작하여 수를 늘려가며 장전하고 자신의 머리통을 쏘는 룰렛이 대유행이었다. 그 장면은 영화 ‘디어 헌터’에도 선보인 적이 있다.

    롱은 인도에서 오는 마리화나도 직접 거래했다. 나로서는 미군 병참부에 건네줄 마리화나를 중간 상인 없이 구매하는 이점도 생겼다. 나는 항상 38구경 권총을 가슴에 품고 다녔다. 박 병장은 서부극의 히어로처럼 보란 듯 허리에 건벨트를 비스듬히 묶었다. 상대를 제압하려는 의도적인 행동이었다.

    거래는 종전의 영세업자들과 할 때보다 수월한 편이었다. 롱의 영향력은 대단해서 월남군이나 미군의 MP들도 지분거리지 않았다. K-레이션이 인기를 끌었다. 아마 같은 동양인으로 입맛에 맞았는지 모른다. 그러나 내 마음은 그리 편하지 않았다.

    ‘그래도 우리가 있어 달러로 경부고속도로를 만들었으니 괜찮은 장사가 아닌가.’

    애써 나 자신을 위로해보았지만 가슴 한구석이 휭한 것은 감출 수 없었다.

    롱으로부터 정보를 많이 입수했다.

    “따이한이 양민을 학살한 사진을 보았다.”

    “소대원이 한 여자아이를 윤간하여 죽였다.”

    “양민의 귀를 자르고 AK소총을 사서 훈장을 받았다.”

    “구형 AK는 100불이면 OK, 얼마든지 살 수 있다.”

    “마리화나를 피우는 따이한이 늘어났다.”

    “병사가 상급자를 등 뒤에서 쏘았다.”

    “북조선 군인들이 월맹군에 합류했다.”

    롱은 미군 보급선에서 M-16소총을 밀매한다고 했다. 그런 다음 월맹군에게 넘긴다고 어깨를 으쓱거렸다. 나트랑 외항에서 로프에 매달아 작은 배로 옮겨 나른다고 물어보지도 않은 사업까지 털어놓았다. 어디까지 진실이고 과장인지 종잡을 수 없었다.

    하기야 월맹군 중에는 분대에 3번인가 4번이 M-16 사수라고 들은 적이 있는 것 같았다. 마치 우리 화기분대의 1번 M-60 사수같이 말이다. M-60은 영화 ‘람보’에서 주인공이 들고 다니던 기관총이다. 결국 미군의 식량과 무기가 적에게도 흘러들어갔다고 해야 할까. 서로 나누어 같은 무기로 겨누고 전쟁터를 만든 것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베트남 땅이 미군의 신무기 실험장이라는 것은 공공연한 소문이었다.

    나의 상급자는 예전에 보지 못한 ‘마빡의 성과’에 크게 만족했다. 귀국 박스에는 친지들 이름이 동이 났던지 몇 번인가 연예인 이름을 빌리기도 했다.

    ‘최무룡, 김진규, 박노식….’

    상급자는 비자금으로 넉넉하게 준비한 쿠폰이나 면세 티켓을 돌려 수하들에게 생색을 냈다. 또한 그 작은 종이 조각들은 유용하게 사용되었다. 어쩌다 들이닥치는 위문 공연단에도 건네지고 진정한(?) 위로를 받기도 했다.

    교전규칙

    떡 장사를 하다 보면 고물이 떨어진다는 말이 맞는 것이었을까. 나도 씀씀이가 커져갔다. 마빡을 치고 나면 패티에게 줄 선물도 챙겼다. 처음에는 선풍기와 카세트녹음기 정도였지만 차차 텔레비전에서 냉장고로 덩치가 커져갔다.

    박 병장은 통이 커졌다. 배짱이 나보다 두둑한 탓이었을 게다. 그는 마리화나를 피우는 것 같았다. 그가 자는 1종 창고 목침대에서는 지독한 풀냄새가 나곤 했다. 담배와는 다른 냄새였다.

    호앙이라는 동네 건달 때문에 골치가 좀 아팠다. 패티에게 추근대는 녀석이었다. 월남 정부군 출신이었다. 중부 고원지대인 풀레이쿠 전투에서 지뢰를 밟아 다리가 하나 없었다. 그는 낡아빠진 목발에 의지하고도 잘도 휘젓고 다니며 낮술에 찌들어 살았다. 도로 옆으로 늘어선 가게에 들락거리며 마치 원숭이처럼 망고나 바나나를 집어갔다. 쌀국수도 주인의 허락 없이 제 맘대로 말아먹는 게 다반사였다. 푼돈을 뜯어다가 아리랑거리의 뒷골목에 있는 사창가에서 여자를 사거나 도박판을 기웃대는 것으로 일과를 삼았다.

    그러다가 궁하면 패티를 찾아와 지분거렸다. 월북한 동생의 전력을 들추었다. 호치민을 찬양한다는 둥 외국군에 붙어먹고 산다는 둥 하면서 빈정거렸다. 그 바람에 나는 선풍기를 몇 대나 사다 날라야 했다.

    호앙은 낮에는 월남정부군 편이었고 밤에는 민족해방전선인 베트콩 편이었다. 양쪽으로 정보를 팔아먹었다. 결과적으로 양쪽 진영이 그를 먹여 살린 셈이었다. 오두막 하나 없었지만 그물 침대인 해먹을 나무 사이에 걸고 활처럼 휘어져 머리를 눕혔다. 그가 온몸으로 베트남전쟁의 실상을 보여주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베트콩의 교전 규칙 중에는 저격 대상이 대략 정해져 있다고 했다. 우선 저격대상은 통신병이었다. 통신을 두절시켜 작전을 마비시키려는 목적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통신병의 군복은 늘 새것처럼 보였다. 그 다음은 장교였다. 지휘관의 유고를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그래서였는지는 몰라도 장교나 사병의 명찰이 똑같았다. 같은 색깔에다 크기도 같고 계급 표시도 없었다. 다만 이름 밑에 LEE처럼 성만 영문으로 표기되어 있을 뿐이었다. 그렇지만 적군은 장교를 용케도 알아보았다.

    반면에 저격하지 말아야 할 대상도 있었다. 먼저 연합군의 1종계였다. 만약 1종계가 변을 당하면 후임자가 업무를 파악하는 동안 암시장에 물건이 공급되지 않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바로 자신들의 전투식량 확보에 차질이 생긴다는 뜻이었다. 아무튼 나는 그 덕을 톡톡히 본 셈이었다.

    다음은 통역병인 민사병이었다. 연합군은 민사병이 없는 자리에서는 말이 통하지 않았다. 검문을 한답시고 양민들에게도 턱밑에다 총부리를 갖다 대곤 했다. 그러다 보니 남녀를 가릴 것 없이 손부터 번쩍 들었다. 비무장을 증명해 보이려고 속옷도 없이 바지를 내렸다. 아오자이를 서슴없이 올려 치부까지 드러내보였다. 부끄러워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나보다 윗세대들도 6·25전쟁 때 그러지 않았나 싶어 서글퍼졌다. 전쟁이 낳은 또 하나의 비극이었다.

    좌표 140319
    패티의 노래

    베트남을 남북으로 관통하는 1번 도로에 서서히 어둠이 깔렸다. 가끔 조명탄을 쏘아 올리는 포성이 멀리서 들렸다. 다리목마다 바리게이트가 쳐지고 검문이 시작되었다. 나는 통행금지 시간에도 별 제약 없이 돌아다녔다. 영국첩보원 007의 제임스 본드와 같은 폼으로 가슴에 붉은 가죽벨트를 맸다. 리볼버 권총을 차고 보초들의 묵인 아래 비밀루트(?)를 드나들었다.

    사병들은 귀국박스를 채우려면 사격장에 올라가 며칠을 두고 총질을 해대야 했다. 탄피와 탄착점 흙구덩이에 뭉쳐진 납덩어리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고국에서는 돈이 된다는 얘기였다. 그리고 일제 선풍기 한두 대와 소대에서 생필품을 아껴 모아준 SP박스가 전부였다. SP박스에는 담배만 해도 카멜, 켄트, 셀렘, 윈스턴, 말보르 등 자그마치 열 보루나 들어 있었다.

    그뿐인가. 커피, 홍차, 설탕, 소금, 치약, 냅킨, 비누, 모기약 그리고 말라리아 예방약까지 들어 있었다. 귀국 장병이 이 박스를 열어놓으면 온 동네가 잔치를 했다. 고국에선 남녀노소를 즐겁게 해주는 박스였지만 정글에 남은 소대원들은 그달에 입이 그리 즐겁지를 않았을 테다.

    그렇게 해서 채워도 병사들의 귀국 박스는 언제나 그들의 가슴처럼 허전했다. 그도 그럴 것이 봉급 중에 집으로 강제 송금되는 액수가 많아 수중에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시내에 나가 일제 카세트나 포터블 텔레비전을 거래처인 마피아보스 롱의 이름을 팔고 싸게 사다주는 일이었다. 또 귀국박스 공간을 C-레이션으로 채워주는 일에 인색하지 않았다.

    이런 일은 달마다 날짜가 잡혀 있는 행사였다. 번거롭긴 했지만 전우들을 위한 작은 봉사였다. 우스개지만 그들이 보초를 서면서 내가 무단외출을 할 때 묵인해준 대가를 치른 셈이랄까.

    거리에는 가끔 붉은 색 삐라가 널려 있었다. 월맹군을 지원하는 북한 요원의 소행이라고 정보팀이 말했다. 롱의 말이 맞는 것이었을까.

    ‘남조선 동무들. 양키들을 위해 헛된 피를 흘리지 말라. 누이와 어머니가 기다리는 남조선으로 돌아가라.’

    패티는 나를 위해 감정을 살려 초우를 불러주곤 했다.

    “까스음 쏙에 쓰며드는 꼬독이 몸뿌림 찌일 때에….”

    노래를 듣고 나면 어머니가 더욱 보고 싶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엉엉 울 때도 있었다. 패티도 따라 울었다. 모성애의 발로였을까.

    그녀는 늦은 시각에도 어머니처럼 나를 위해 국수를 삶았다. ‘포’라 하는 쌀국수였는데, 그것은 단지 음식이 아니라 애정의 표현이었다. 패티는 내게 국수를 삶아주는 여인이었다. 그 메뉴에 관한 한 우리 둘은 쌍벽을 이루었다. 나는 다만 포에 향신료로 첨가되는 고수만 빼고 먹었다.

    그러고 보니 국수를 좋아하는 가계의 내력도 우리 집과 비슷했다. 패티는 특히 남동생이 쌀국수를 즐겼다고 일러주었다. 며칠을 연달아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고 하니 나와 막상막하인 셈이었다. 한 번도 보지는 못했지만 왠지 친근감이 들었다.

    같은 음식을 좋아하는 것은 정서의 교감이었다. 그런 날은 그녀의 감정이 한층 고조되었다. 가슴이 검붉은 빛깔로 융기하여 더욱 단단해지곤 했다. 새벽녘에는 입을 벌린 호랑이 부대마크가 선명한 속옷을 머리맡에 챙겨두기도 했다. 손수건에는 수를 놓아 내 이름을 새겨주기도 했다.

    한번은 로션을 찾다가 그녀의 화장대 서랍에서 낯선 남자의 사진을 본 적이 있었다. 월맹의 황성적기 앞에서 AK-47소총을 들고 안경을 쓴 젊은이였다. 눈이 패티와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차마 물어볼 수는 없었다.

    외줄에서 떨어지다

    광대놀이 같은 시간이 흘렀다. 외줄 타기는 줄을 건너지 못하면 결과가 너무도 뻔한 일이었다. 그동안 잠든 시간을 빼고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살아온 것이 사실이었다. 다만 돌아가는 톱니바퀴처럼 돌아가지 않을 수가 없었을 뿐이다.

    외줄에서 떨어졌다. 박 병장이 술기운이었는지 아니면 다른 기운이었는지는 몰라도 사고를 쳤다. 마리의 숙소에서 오발사고를 낸 것이었다. 평소에 앙숙이던 마마상과 시비가 붙었다. 위협사격을 한다는 게 총알이 발끝을 관통하고 말았던 것이었다.

    발가락이 두 개나 크게 상했다. 낭패였다. 무마를 시도했지만 화살은 과녁을 항해 날아가고 있었다. 그의 가족은 물론 촌락의 주민들도 횃불을 들고 부대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횃불시위였다. 부대가 발칵 뒤집혔다.

    마리의 말대로라면 암시장 누군가의 각본에 의한 것이 분명하다고 했다. 롱의 라이벌이 아닐까 싶었다. 아니면 그 시간에 레이션을 몇 박스 주지 않는다고 시비를 걸지는 않았을 거란 추측이었다. 정보를 주었을 것이라는, 목발 짚은 남자가 먼발치서 지켜보더란 대목이 마음에 걸렸다.

    이튿날 빈딘성과 군청에서 나온 월남군 장교들이 촌장을 데리고 부대를 드나들었다. 그들은 대부분 내게 뇌물을 먹은 적이 있었지만 모른 척하고 다녔다. 치료비와 위자료로 쌀 10가마와 몇 가지 조건이 따라붙었다. 사망사고 정도의 대가를 요구했다. 그러나 피해자에게 다 건너가는 것도 아니었다. 뒤를 봐준 장교들과 나눌 것이 불을 보듯 뻔했다.

    박 병장은 영창에 수감되었다. 나는 상급자의 비호로 영창행은 가까스로 면했다. 마빡의 전모가 드러날까 우려했을 것이다. 평소 같으면 보상해주고 넘길 일이었다. 하지만 단체로 시위를 하는 바람에 일이 커졌다. 1종계의 공백이 있더라도 여론의 악화를 막는 일이 급선무였다. 그래서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을 것이다. 꾸물거리다간 상급자 자신의 인사 고과에도 영향을 줄 것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보직에서 해임되고 소총소대로 떨어지고 말았다. 암시장은 한동안 금수 조치로 수급 불균형 상태가 되었을 터이다. 영창을 갔다 온 박 병장은 수색대로 배치받았다. 우리 둘은 갈라지면서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지고 만 것이었다.

    패티가 소대로 면회온 것은 한참 지나서였다. 얼굴이 수척해져 검은 눈이 더 커보였다. 정이란 게 남았는지 둘은 마주 보고 눈물을 찔끔거렸다. 며칠 전에 호앙이 다리 밑에서 죽은 채 발견되었다고 전했다. 그녀는 롱의 보복일거라고 나름의 분석을 해주었다.

    내가 외곽 초소로 나가 보초를 서면 어떻게 알았는지 얼굴을 내밀었다. 캔 맥주나 음료수를 끈으로 묶어 철조망 안으로 던져주기도 했다. 보일 듯 말 듯한 슬픈 미소도 같이 던져주었다. 그녀의 애칭도, 애창곡도 바뀌었을 텐데 안타까웠다.

    “이게 무슨 꼴이람.”

    나는 죽음을 생각해보았다. 마시지도 못하는 맥주를 잔뜩 들이켰다가 이틀이나 인사불성이 되기도 했었다. 총구를 목에 대고 엄지발가락을 방아쇠뭉치에 걸었다 빼곤 했다. 어머니가 떠올라 차마 실행에 옮길 수는 없었다.

    죽음의 그림자

    소총소대에 배치되고 첫 번째 작전이 벌어졌다. 며칠간의 전투식량인 C-레이션과 수백발의 M-16실탄만 해도 무거웠다. 혼자서는 메고 일어서기조차 힘들 정도였다. 거기에다 방탄조끼에 수류탄이 네 발, 탄띠에는 수통이 여섯. 겨우 올라탄 미군의 헬리콥터는 이런 사정을 아랑곳하지 않았다. 짓궂게 곡예비행까지 해대는 바람에 고문이 따로 없었다.

    가까스로 매복지점에 진입하면 바로 참호를 파야 했다. 적보다 먼저 다가오는 정글 모기가 우리를 괴롭혔다. 모포도 뚫는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로 지독했다. 그뿐인가. 판초 우의를 때리며 추적거리는 빗소리는 차라리 효과음이었다. 뼛속까지 저며오는 공포가 온몸을 떨게 하고도 남았다.

    “절대로 긴장하지 마라. 평소 훈련 받은 대로 하면 된다.”

    당부하는 소대장의 목소리도 떨렸다. 소용없는 당부였다. 너무 긴장한 나머지 이빨이 덜덜거리는 것을 도저히 막을 수가 없었다. 같은 참호에서 서 병장을 만나게 된 것은 다행이었을지도 모른다. 전화선으로 팔뚝을 묶어 긴급 상황이 벌어지면 당겨서 옆 참호와 서로 연락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커피를 억지로 마시고 눈을 부릅뜨고 귀를 모았다.

    “야, 이 병장. 모기약 발랐어?”

    “잃어버렸는데.”

    “이런, 한심한. 밤을 어찌 보내려고.”

    서 병장은 철모 위장포에 끼워져 있던 금쪽같은 모기약을 내밀었다. 전투에는 왕초보였던 나를 일일이 챙겨주었다. 전장에서 모든 것이 생소한 나는 그의 조언에 충실히 따랐다.

    “어떡하든 우린 살아남아야 한다. 정신 차려. 아님 죽는 거야!”

    자꾸만 허물어지는 나를 붙잡아 세워주었다.

    그때였다. 휘파람 소리가 나는가 싶더니 천지가 진동하는 소리가 났다. 적의 박격포 탄이 날아온 것이었다.

    “꾸앙 꿍!”

    “따다따다따다….”

    참호마다 M-16 자동소총이 불을 뿜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방아쇠를 당겼다. 소총이 말을 듣지 않았다. 누가 철모를 때렸다. 옆자리 서 병장이었다.

    “야! 자물쇠! 자물쇠!”

    너무 긴장한 탓이었다. 안전 자물쇠가 채워진 채로 방아쇠만 연신 당긴 것이었다. 참호 앞에 무언가 얼씬거렸다. 크레모어 격발기를 눌렀다. 흙먼지가 날렸다. 수백개의 쇠구슬이 정해진 각도에 따라 날아갔다. 적과의 교전은 한동안 이어졌다. 서 병장의 M-60 자동화기는 신들린 듯 춤을 추고 있었다. 잠깐 동안에 수백발의 뜨거운 탄피가 참호 바닥에 쏟아져 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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