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다단계는 피해자, 피의자 경계 희미해
둘째, 어디까지가 범죄수익인지 모호한 사모펀드
셋째, 해외로 범죄수익 빼돌리면 사실상 회수 불가능
2018년 범죄수익 약 4조 중 2.8%(1000억)만 환수
검·경 환수 조직 만들고 있으나 역부족
대신증권을 통해 라임자산운용의 투자 상품을 산 피해자들이 2020년 11월 5일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피해자보호 분쟁 조정 촉구 집회를 하고 있다. [동아DB]
네 사건의 양상은 비슷하다. 이들은 외환, 채권, 비상장 주식 등에 투자해 수익을 내겠다며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투자금을 모았다. 이 돈은 투자 대신 다른 곳에 쓰였다. 새로 들어온 투자금은 선순위 투자자의 이익금으로 지급됐다. ‘돌려막기 방식’으로 사기 행각을 벌인 것. 돈을 모은 방법만 서로 달랐다. IDS홀딩스와 VIK는 가짜 금융상품을 다단계 모집 방식으로 팔았다. 라임과 옵티머스는 각각 전환사채와 공기업 채권 등에 투자한다며 사모펀드를 설립하고 돈을 모았다.
피해자들은 피의자의 처벌만큼이나 범죄수익 환수를 원한다. 법적 근거도 있다. 2008년 4월부터 시행된 ‘부패재산의 몰수 및 회복에 관한 특례법’에 따라 금융범죄 사건 피해자는 범죄수익 환수로 피해액을 돌려받을 수 있게 됐다. 그렇지만 범죄수익을 환수하는 일은 쉽지 않다. 법무부 집계 2018년 기준 범죄수익 추징금은 3조9992억 원. 이 중 환수된 금액은 1106억 원뿐이다. 범죄수익 중 환수된 금액의 비율은 2.76%에 불과하다.
피해자가 피의자도 되는 다단계 사기
우선 IDS홀딩스, VIK 사건을 보자. 두 사건은 주모자 처벌은 이뤄졌지만 범죄수익 환수가 제대로 되지 않은 경우다. 김성훈 IDS홀딩스 대표는 총 1만207명에게서 1조960억 원의 투자금을 가로챈 혐의로 기소돼 2017년 12월 징역 15년형을 받고 복역 중이다. 피해액은 1조 원이 넘지만 돌아온 금액은 692억 원에 불과하다. 전체 피해액의 6% 정도다. 2018년 2월 서울회생법원은 김 대표의 개인 파산을 선고하며 그의 재산 일부인 472억 원을 7509명의 피해자에게 나눠줬다. 2020년 4월에는 IDS홀딩스 법인 파산 선고를 내리며 현금 220억 원을 추가로 확보했다.이철 VIK 대표는 3만여 명의 투자자에게서 투자금 7000억 원을 불법 유치해 사기, 유사수신규제법 위반 등의 혐의로 2015년 10월 구속 기소됐다. 2016년 4월 법원에서 보석을 허가해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게 됐는데 이 와중에 2000억 원대 투자금을 또 불법 유치하다 2016년 10월 같은 혐의로 다시 기소됐다. 7000억 원 불법 유치에 관해서는 2019년 8월 징역 12년의 확정 판결을 받았다. 2000억 원의 불법 유치에 관해서는 1심 재판부가 2020년 2월 징역 3년 4개월형을 선고했다. 현재 2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IDS홀딩스, VIK 사건 피해자들의 변호를 맡은 이민석 금융피해자연맹 고문 변호사는 “VIK 사건은 범죄수익이 전혀 환수되지 않고 있다. 관련 수사를 하고 있는지도 미지수다”라고 주장했다. VIK 사건을 수사했던 검찰 관계자는 “(IDS홀딩스와 VIK) 두 사건 모두 다단계 사건이다. 다단계 사건은 피해자와 피의자를 구분하기 어렵다. 피해자 중에는 직접 투자자를 모으러 다닌 모집책도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모집책이 모집 수당으로 받은 돈은 환수가 어렵다. 모집책이 불법성을 인지하고 해당 금액을 받았다면 이 돈도 범죄수익 환수 대상이 된다. 하지만 불법성 인지 여부를 확인하는 일이 어렵다. 앞서의 검찰 관계자는 “(모집책의) 불법성 인지 여부를 증명하는 일이 거의 불가능하다. 이외에도 범죄수익으로 추정되는 금액이 이미 다른 투자자들의 배당금으로 가 있는 경우가 많다”며 피해액 중 범죄수익을 특정하기 어려운 이유를 밝혔다.
사모펀드는 자금 확인 어려워
원종준 라임자산운용 대표이사(오른쪽)와 이종필 부사장이 2019년 10월 14일 서울 여의도 국제금융센터(IFC)에서 펀드 환매 중단 사태 관련 기자회견을 했다. 펀드 환매 중단은 사실상 파산 선언이다. [뉴스1]
라임 사건 수사는 범죄수익이 얼마인지 추산하는 단계다. 검찰은 라임이 모집한 1조6000억 원대 투자금의 세부 사용 내역을 추적하고 있다. 2020년 10월 30일 검찰은 라임 측이 국내 펀드 투자금 중 최소 1250억 원을 해외로 빼돌린 정황을 찾았다. 나머지 금액은 아직 오리무중이다.
라임 사건 일부 피해자 측 법률 대리인을 맡고 있는 김정철 법무법인 우리 대표 변호사는 “라임 사건의 주모자가 처벌된다 해도 범죄수익 환수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현재 라임에 남아 있는 자금이 거의 없다. 사모펀드 특성상 ‘투자’라는 명목으로 다양한 회사나 펀드에 자금이 퍼져 있다. 이 자금 중 어디까지가 범죄수익인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 투자 실패로 공중분해된 자산도 많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사모펀드 경제범죄 피해를 배상받으려면 민사소송을 제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구현주 법무법인 한누리 변호사는 “라임 관련 펀드의 부실을 알고도 판매한 일부 증권사에도 책임이 있다. 배상 능력이 있을지 모르는 라임에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는 것보다는 판매 증권사에 책임을 묻는 편이 낫다”고 설명했다.
법무법인 우리와 법무법인 한누리는 라임 사건 피해자를 대리해 신한금융투자, 대신증권 등 라임 관련 펀드를 판매한 회사를 특정경제범죄법, 자본시장법 등의 위반 혐의로 형사고소했다. 서울남부지방법원은 2020년 9월 신한금융투자에서 라임 관련 펀드를 판매한 담당자에게 1심에서 징역 8년형에 벌금 3억 원을 선고했다. 대신증권 판매 담당자는 39일 뒤 열린 1심에서 징역 2년형을 선고받았다. 피해자 측은 “추후 해당 증권사들을 대상으로 손해배상 소송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수사기관만으로는 범죄수익 추적 역부족
해외로 빼돌린 자금도 사실상 추적이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증권범죄합동수사단 초대 단장을 맡았던 문찬석 전 광주지검장은 “범죄수익이 해외로 나가버리면 회수가 거의 불가능하다. 이를 막기 위해 수사 초반에 범죄 관련 계좌를 추적해 입출금을 막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최근 사모펀드, 다단계 등 경제범죄 수단이 발전해 수사 초기에 범죄수익을 묶어두기 어렵다. 자금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 어디까지가 범죄수익인지 특정할 방법이 없다”고 설명했다.범죄수익 환수가 어려운 만큼 수사기관은 범죄수익 환수 전문 기관을 만들어 대응하고 있다. 검찰은 2018년 1월 서울중앙지검에 범죄수익환수부를 신설하고 전국 검찰청에 범죄수익환수 전담반을 설치했다. 2019년 1월에는 경찰청 범죄수익 추적수사팀이 출범했다.
수사기관의 노력에도 범죄수익 환수는 쉽지 않다. 문 전 지검장은 “수사가 사건의 과거를 돌아보며 범법행위를 찾아내는 일이라면 범죄수익 환수는 미래를 예측하는 일이다. 피의자나 사건 관계자는 수사가 시작되면 빠르게 범죄수익을 숨긴다. 이들이 어떻게 돈을 숨길지 예측하고 그 길목을 막아야 한다. 수사기관의 역량만으로는 쉽지 않은 일이다. 금융 관련 공공기관과 수사기관의 협력 등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1989년 서울 출생. 2016년부터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 4년 간 주간동아팀에서 세대 갈등, 젠더 갈등, 노동, 환경, IT, 스타트업, 블록체인 등 다양한 분야를 취재했습니다. 2020년 7월부터는 신동아팀 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90년대 생은 아니지만, 그들에 가장 가까운 80년대 생으로 청년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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