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대만과 연대해 일본 압박해야
- 정부가 나서서 피해자 배상 받아내길
위안부피해자 법률지원 활동을 해온 양정숙 변호사.
이러한 태도는 4월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과 정상회담차 방미한 아베의 일정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그는 미국 상·하원 합동연설에서 과거사 언급을 건너뜀으로써 ‘역사적 양심’을 외면했다. 올해가 제2차 세계대전 종전 70주년인 만큼 전범국 총리로서 입장 표명을 할 만도 했건만.
한일관계에서 풀리지 않은 앙금인 위안부 문제 해결에 매달려온 양정숙 변호사를 만나 견해를 들어보았다. 양 변호사는 한국여성변호사회 활동을 통해 피해자들에게 법률 지원을 하는 등 이 문제에 깊숙이 관여해왔다.
▼ 세계의 지식인들이 과거사 문제와 관련해 아베 총리의 방미 행보를 지켜봤으나 그는 기존의 편협한 자세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가 방미 일정을 끝낸 후 각국 역사학자 187명이 경고성 성명서를 전달한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세계적으로 권위를 인정받는 에즈라 보겔, 앤드루 고든 하버드대 교수와 브루스 커밍스 시카고대 교수 등이 두루 서명에 참가하지 않았는가.”
일관성 없는 일본
▼ 아베 총리는 미국과 관계를 개선하는 데는 상당한 공을 들였다. 그 결과 전범국 딱지를 떼고 동맹국 반열에 드는 성과를 거두었다.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닌가.
“백악관 만찬이 일본 음식으로 차려지고, 오바마 대통령이 하이쿠(俳句)를 읊었다는 기사를 읽었다. 그러나 아베 총리가 식민통치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알링턴 국립묘지를 참배하고 홀로코스트 기념관을 찾은 것은 역사적 진실을 외면한 처사다. 일본 총리로서는 사상 처음인 미 의회 합동연설에서, 과거사 유감 표명이 있을 것으로 예상했던 피해국들의 기대를 여지없이 무너뜨렸다.”
▼ 아베 총리는 위안부 문제의 본질을 부인한다. 어떤 방식의 대응이 필요하다고 보나.
“일본 정부가 위안부를 강제 동원한 사실을 인정하고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나 일본은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으로 위안부 문제가 완전히 해결됐다고 주장한다. 양국의 견해가 평행선을 달리는 이유다.”
▼ 1995년 무라야마 총리나 그에 앞서 고노 관방장관이 공식적으로 역사적인 과오를 인정하지 않았는가.
“그것이 중요한 사실이다. 일본은 이 문제에 관한 입장을 계속 번복해왔다. 한일청구권 협상 때는 국가적 차원의 책임은 인정하면서도 손해배상은 다 끝났다고 주장했다. 1993년 고노 담화에서는 불법행위를 인정했다. 지금 와서 아베 총리는 고노 담화가 잘못됐다며 이를 수정·번복한다. 그동안의 공식 견해를 뒤집는 것이다. 일관성이 없다는 점에서도 과거 식민통치 시절 범죄행위를 하지 않았다는 일본 정부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 일본 정부의 주장에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일본 정부는 군대를 동원해 위안부를 모집하지 않았다고 하다가 민간업자가 인신매매를 한 것이라고 주장을 바꿨다. 국가 차원에서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 정부는 일대일로 일본을 상대하기보다는 비슷한 피해를 입은 중국, 대만 등과 연대해 일본 정부를 압박해야 한다.”
▼ 한센병 보상법을 원용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일본은 태평양전쟁 때 한국과 대만에서 저지른 범죄 가운데 유일하게 한센병인들에 대해서는 ‘한센병보상법’에 의거해 보상했다. 대일항쟁기 때 일본은 한센병인들을 소록도에 격리하고 강제노동을 하게 했다. 이에 대해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자, ‘한센병보상법’을 개정해 1인당 약 1억원의 보상을 해준 것이다.
‘한센병보상법’은 그 전문에, ‘우리는 이러한 비참한 사실을 회오와 반성의 마음을 담아 심각하게 받아들이면서 깊이 사죄한다’고 밝혀놓았다. 또한 ‘한센병환자였던 사람들이 치유하기 어려운 심신의 상처를 회복하는 것과 향후 생활이 평온에 이바지하는 것을 희구하면서, 한센병요양소 재원자들이 이제까지 당한 정신적 고통을 위자한다’라고 규정해놓았다.
이 법에 따라 지급한 보상금이 일본이 국가로서 저지른 죄과에 대한 사죄로 판단할 수 있는 위자료임을 명기해놓은 것이다. 강제노동을 해야 했던 한센병인들에 대한 보상은 문자 그대로 전후(戰後) 보상 의미를 갖는다. 이는 일본이 전쟁 중에 저지른 죄과를 법적으로 인정했다는 증거가 된다.
한센병인 보상 문제가 국제연대 강화로 해결됐듯, 위안부 문제도 동아시아에서 연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일본에 전쟁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점에서 우리는 북한, 중국, 대만과 연대를 강화해야 한다.”
양 변호사는 지난해 4월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국언론문화포럼 주최 ‘일본군 위안부 해법을 모색한다’ 세미나에 참석해 같은 해법을 제시한 바 있다. 피해자들이 강제로 동원됐다는 사실을 뒷받침할 자료를 지속적으로 발굴하려는 노력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고 그는 강조했다.
인권유린 시설을 등재하겠다고?
▼ 중국 정부는 위안부 문제에 갈수록 강경해지는 것 같다.
“중국은 시진핑 정부가 들어서고 지린(吉林)성 국가보존소에서 위안부 관련 새로운 자료가 발견되면서 활발하게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대만은 전후 일본의 경제 원조를 많이 받아서인지 소극적인 편이다. 홍콩은 중국과 같은 태도다.”
▼ 일본 정부가 메이지 시대 근대화 산업시설물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려 시도한다. 조만간 독일에서 열리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통과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것은 또 다른 역사 왜곡이다. 일본의 근대화 산업시설이라는 게 결국 탄광, 조선소 같은 위험 시설 아닌가. 6만 명에 가까운 한국인이 강제 징용돼 노역에 시달렸다. 노역 중 사망했거나 생사불명인 사례도 수두룩하다. 일본 정부는 이런 사실을 희석하거나 무마하려고 근대화 산업시설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시도하는 것으로 보인다.”
▼ 그들의 만행을 ‘문화유산’으로 덮어 숨기려는 꼼수라는 얘긴가.
“그렇다. 세계문화유산 등재에는 보존할 가치가 있는 역사적 유물을 통해 대대로 교훈을 얻자는 뜻이 담겼다. 하지만 일본이 내세운 근대화 산업시설은 이러한 뜻과는 동떨어진, 비인도적인 만행이 저질러지고, 인권이 유린됐던 곳이다.”
▼ 일본의 이런 움직임을 효과적으로 저지하지 못하는 우리 정부의 외교력 부족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작지 않다.
“대일투쟁기 일본이 저지른 불법행위가 지금까지 이어지며, 이에 대한 반성과 피해 배상을 하지 않는다. 우리 정부가 나서서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을 받아내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지정 움직임에 대해서도 희생자들이 직접 부당성을 지적할 수 있는 통로는 거의 막혔다. 정부 차원에서 실체적 진실을 밝혀야 한다.”
▼ 정부 차원에서 외교력을 발휘해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말인가.
“그렇다. 강경한 대처가 필요하다. 계속 지금처럼 나가다간 과거사 문제에서 국제적으로 왕따를 당하게 될지도 모른다.”
아베 총리는 방미에 앞선 4월 23일,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아시아·아프리카회의(반둥회의) 60돌 기념행사에 참석해서도 “일본의 과거 전쟁에 대해 반성한다”고 했을 뿐 식민 지배와 침략에 대해서는 사죄의 뜻을 표명하지 않았다. 미 의회 합동연설에서도 과거사 사죄는 물론이고 위안부 강제동원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백악관 주변에서는 아베의 이런 태도에 공감한다는 반응이 나온다. 우리 정부의 외교력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다.
역사교육의 중요성
▼ 일본 정부는 독도가 일본의 고유 영토라는 내용을 교과서에 넣겠다고 했다.
“지난 역사를 새롭게 인식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 교육이다. 자라나는 후세에게 교육을 통해 인류의 보편적 가치가 무엇인지, 다른 나라 백성을 비인격적으로 다룬 것이 얼마나 수치스러운 역사인지 깨우쳐줄 수 있다. 그런데도 일본이 교과서에서 독도 도발을 멈추지 않는 것은 부끄러워할 일이다.”
▼ 일본 정부도 문제지만 일본 지식인의 역사인식이 한심하다고 느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위안부 문제에 대해선 일본 지식인들도 제대로 모른다. 그들은 한국 정부의 주장에 대해 ‘몇 십 년이 지난 일을 왜 이제 와서 꺼내느냐’ 하는 식이다. 그래서 인식 차이가 큰 것이다. 우리 국민도 투철한 역사의식을 갖춰야 한다. 과거에 대한 정확한 인식 없이는 앞으로 나가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