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친아 끝판왕이자 매력적 신상
연예인 커뮤니티에서 한동훈 팬덤 주도
정치적 이념 아닌 개인 매력에 주목
비판적 지성·젠틀한 인품·세련된 스타일
[영상] 한동훈의 능력주의는 ‘세련됨’이다
[영상] 이준석은 한동훈이 될 수 없다
책 ‘73년생 한동훈’을 펴낸 심규진(46) 스페인 IE대 교수. [지호영 기자]
여권 위기 팀워크에서 비롯
“핏이 좋은 슈트발로 멀쑥한 왕자님을 연상시키는 강남 신사 스타일의 한동훈은 감정에 호소하지 않고 자신만의 능력으로 586 정치 카르텔의 부당한 탄압에 맞서왔다. 정적의 탄압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이 직접 나서 위엄을 지켜내는 모습을 대중에게 보여준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정치적 계파나 특정 팬덤이 지켜준 게 아니다. 오로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개인기, 즉 탁월한 전문성과 시대를 읽어내는 남다른 직관과 혜안으로 돌파한 것이다.”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대중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보나.
“윤석열 대통령이 등장한 것과 유사한 점이 있다. 윤 대통령은 보수에서 키운 인물이 아니다. 더불어민주당이 조국 사태와 추미애-윤석열 갈등으로 키웠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 생존 기로에 서 있던 보수 진영이 마땅한 대안이 없어 정치 신인 윤석열을 영입해 대선후보로 선출했다. 그런데 윤 대통령 당선 이후 지방선거까지 이기고 나니 보수 기득권층끼리 헤게모니 쟁탈전을 벌였다. 한동훈이 지금 주목받는 것은 보수 기득권층 사이에 벌어진 권력다툼을 정리해 낼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2023년 12월 13일 법무부-성남시 업무협약식에 참석한 한동훈 당시 법무부 장관. [박해윤 기자]
“전제가 잘못됐다. 문재인 정부 때 문 대통령 지지율이 상대적으로 높았는데, 그때는 청와대와 당의 관계가 수평적이라 인기가 높았나. 그게 아니었다. 오히려 일사불란하게 역할 분담을 했기에 지지율이 유지된 거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미디어에 비치는 이미지 관리를 잘해 지지율이 좋게 나왔다. 실제로 문재인 정부 때 이견에 재갈을 물리는 소프트 파시즘적 양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지금 용산과 당의 수평관계를 얘기하는 것은 전제가 잘못됐을 뿐 아니라 현실을 외면한 비판을 위한 비판일 뿐이다. 지금 여권의 문제는 수평적 관계의 문제가 아니라 팀워크의 문제다. 리더가 확실한 리더십을 발휘해 당과 대통령실이 각각의 탤런트를 발휘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지지율 하락을 겪은 것이다.”
한동훈 위원장이 제2의 윤석열이 될 수 있다고 보나.
“보수 진영이 위기에 처했을 때 정치를 하지 않던 외부 인사가 구원투수처럼 영입돼 난국을 타개했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다. 검사 출신이라는 점도 공통점이다. 다른 점은 윤 대통령이 직면했던 도전과 한동훈 위원장이 직면한 현실이 다르다는 점이다.”
어떤 점에서 다른가.
“윤 대통령은 자신이 대선후보로 선출돼 승리하는 게 과제였다. 치열한 당내 경선에서 승리하기 위해 부산 장제원, 강원 권성동, 충청 정진석 등 탄탄한 지역 기반을 가진 정치인과 연대해 돌파했다. 그에 비해 한동훈은 반대 상황이다. 자신이 직접 출마해 승리하는 게 아니라, 전국적으로 이길 만한 후보를 내세워 선거를 승리로 이끌어야 한다.”
진영 넘어설 새로운 세대
심 교수는 책에서 한 위원장의 강점을 이렇게 묘사했다.“지금 한동훈은 강성 보수층과 중도층 모두에게 점수를 얻고 있다. 강성보수층에는 우파적 이념과 윤석열의 정치적 후계자로서 이미지가 각인돼 있지만, 중도층은 한동훈을 진영을 넘어서는 새로운 세대의 정치인으로 인식한다. 여러모로 젊은 보수의 탄생에 목말랐던 보수층에게 한동훈은 4050 보수 정치인이라는 희소가치를 구현하는 인물이다. (…) 한동훈은 최고 권력인 대통령과의 두터운 브로맨스 서사, 1970년대생의 젊음, 이준석이 보여줬던 어떤 말싸움에도 지지 않는 민첩한 언변, 오세훈처럼 신사 같은 매너와 태도, 그리고 홍준표와 같은 확고한 이념적 선명성과 투쟁력을 모두 겸비하고 있다.”
심 교수 분석에 따르면 한 위원장은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 이후 위기에 처한 보수 진영을 구해 낼 백마 탄 왕자인 셈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1월 3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24년 신년인사회’에서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발언을 듣고 있다. [뉴시스]
“86세대와 다른 X세대라는 점을 강조하려고 했다.”
심 교수는 한 위원장이 주목받는 이유를 책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극좌 세력에는 절대적으로 악마화되고 있지만, 중도층을 포함한 보수층은 한동훈을 상당히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1970년대생으로 강남 8학군 출신이고, 경제적·문화적·지성적 결핍 없이 유복한 환경에서 바른 가치관과 반듯한 매너를 체화한 듯 보이는 그의 배경은 분명한 강점이다. 한마디로 대한민국 교육 시스템의 최고 아웃풋이라 할 수 있는 지덕체를 갖췄다. 요즘말로 풀어보면, 비판적 지성과 젠틀한 인품, 세련된 스타일 모든 면에서 빠질 것 없는 ‘엄친아의 끝판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심 교수는 “엄친아의 끝판왕과 같은 한동훈 위원장이 셀럽을 넘어 우리 사회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인사로 주목받는 것 자체가 한국 정치 패러다임의 전환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기존의 한국 정치 지형은 소위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이 양분해 주도해 왔는데, 어느 사이 시대적 소명을 다해버린 이들은 이권 카르텔을 형성하며 사익 추구에만 몰두해 우리 사회의 구태, 적폐 세력으로 변질됐다. (…) 그러나 한동훈은 기존 정치 세력, 어느 곳에도 부채가 없는 개인의 매력과 능력으로 정치 셀럽이 된 새로운 현상을 상징하고 있다. 전에 본 적 없는 신선한 정치적 자산으로 자신을 어필하고 있는 것이다. 즉 정치 시장의 매력적 ‘신상’이라 할 만하다.”
한덕수 국무총리와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1월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16차 고위당정협의회에 참석해 대화하고 있다. [뉴스1]
한동훈 팬덤은 유례없는 현상
그는 팬덤 현상에 대해서는 이렇게 풀이했다.“한동훈 팬덤은 여러 면에서 유례없는 현상이다. 첫째로는 정치에 본격 데뷔 전부터 팬덤이 생겨났다는 것이고, 둘째로는 팬덤을 주도하는 세력이 박정희 신드롬이나 노무현 신드롬을 계승한 고관여 정치세력이 아니라, 비정치적 계층, 즉 아이돌이나 연예인 팬덤 커뮤니티 같은 곳에서 주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기존 정치인 팬덤은 정치 고관여층이 대중에게 ‘정치적 아이돌’을 스타 마케팅을 통해 상품화함으로써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와 기반을 넓히는 프로세스였다면, 한동훈 팬덤은 정치에 관심 없던 연예인을 좋아하던 여성층이 자연스럽게 특정한 개인의 스타성이나 대중성을 발굴하고 정치적 고관심층이 됐다는 점에서 분명한 차이가 있다. 이런 점에서 한동훈 팬덤은 정치적 이념에 대한 충성심이 아닌, 개인의 매력에 대한 순도가 강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심 교수는 국민의힘이 총선에서 승리하려면 두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총선을 앞둔 여당에 있어 두 가지 의제는 얼마나 신선한 공천을 하느냐, 얼마나 일사불란한 리더십으로 잡음 없이 합의된 공동체의 힘을 보여주느냐다. 박근혜의 정치적 실패는 그 두 가지에서 모두 실패했기 때문이다. 친박근혜계 정치인들은 구시대적 인물이었고 한동훈이나 원희룡 같은, 박근혜 외의 존재감을 갖는 진영의 스타가 전무했다. 더욱이 유승민, 김무성 등과 불화와 갈등이 대중에게 그대로 노출되면서 리더십마저 무너졌기에 정치적으로 자멸한 것이다. 따라서 구태의연한 보수 지역 정가에 신선함을 불러일으키는 새 인재를 발굴하는 것, 대통령의 리더십과 당의 요구가 충돌하지 않는 일사불란한 팀워크를 구축하는 것이 총선 승리의 전제조건이다.”
심 교수는 총선에 대통령실 출신 인사가 출마하는 것에 대해서도 긍정적 입장을 보였다.
“대통령실이 인재 배양을 하는 플랫폼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정치의 활력과 변화가 생겨야 하며 이를 통해 대통령이 확실한 국정의 이니셔티브를 갖고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 수 있다. 따라서 용산의 젊은 행정관이나 비서관의 차출을 단순히 대통령과의 친소관계나 일방적 밀어붙이기로 부정적으로 볼 일만은 아니다. 대통령은 기본적으로 국민의 ‘표’로 국정 방향에 대한 심판을 받는 존재다. 단순히 용산에서 차출한다는 시각이 아닌, 대통령이 얼마나 제대로 된 능력 있는 인재들을 내놓는지 그 실질적 부분에 대해 평가하고 이를 선거에서 심판하면 될 일이다.”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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