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7년 5월17일 5·18민주화운동 제27주년 기념일을 앞두고 광주 금남로에서 열린 전야제 행사에서 시민들이 당시 상황을 재현하며 횃불행진을 하고 있다.
5·18민주화운동을 정면으로 다룬 영화 ‘화려한 휴가’에서 여주인공 신애(이요원 분)가 계엄군과 시민군의 마지막 대치를 앞두고 울먹이며 가두방송을 한다. 애써 감정을 억누르던 관객조차 눈물을 쏟고 마는 애잔한 장면이다.
“말로만 듣던 ‘5·18’이 이 정도로 끔찍한 사건인 줄 몰랐어. 자기는 알았어?”
지난 8월 초. 서울 강남의 한 극장에서 ‘화려한 휴가’를 보고 극장 문을 나선 20대 초반의 남녀가 나눈 대화다. 한때 ‘광주사태’로 불렸던 5·18민주화운동은 가슴에서 가슴으로 전해지던 시절을 지나 교과서에서 ‘배워야’ 하는 역사로 자리매김했다. 예기치 않은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사랑하는 가족과 광주를 지키기 위해 총을 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화려한 휴가’는 개봉 16일 만인 8월9일 오전 400만명의 관객을 끌어들였다.
빛고을. 예향(藝鄕). 광주 앞에 늘 따라다니는 수식어다. 그러나 1980년 5월18일 이후 ‘5·18민주화운동’에 그 자리를 내줬다. 8월8일 오전 서울 용산에서 광주행 KTX에 몸을 실었다. 광주역에 도착해 택시를 타고 곧바로 영화 ‘화려한 휴가’의 주 무대이자 광주민주화운동의 성지인 옛 전남도청(동구 광산동 금남로 소재)으로 향했다.
영화 속 27년 전 거리 풍경은 지금과 비슷했다. 영화 세트장을 따로 마련하지 않고 촬영한다 해도 무리가 없을 만큼 거의 그대로였다. 금남로 좌우에 길게 늘어선 건물들도 27년 전 광주의 면모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굳이 바뀐 것을 찾는다면 간판 정도.
썰렁한 ‘그날’의 거리
광주 시가지의 중심지이자 금융가인 금남로와 충장로는 썰렁했다. ‘화려한’ 휴가철이라는 점을 감안한다 해도 오가는 사람이 예상보다 훨씬 적었다. 손님을 기다리는지, 더위를 피해 가로수 아래서 잠시 휴식을 취하는지 도로 양쪽에 택시가 줄지어 서 있었다. 택시들의 주·정차가 교통의 흐름에 방해되지 않을 만큼 교통량도 적었고 택시를 이용하는 승객도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물동이를 쏟아 붓는 듯한 소나기가 한두 차례 지나간 이후 습한 열기가 거리를 점령했다.
“전남도청이 (전남) 무안으로 옮기고 난께 사람들이 더 없지라우. 도청이 옮겨지기 전까지만 해도 여그가 이렇게 안 생겼제. 사람들이 북적북적거리고 그랬는디. 밤 8시만 되믄 깜깜해라우. 도청, 그거이 있을 때는 잘 몰랐는디. 없어도 이 정도일 줄은 예측 못했어라우. 생각했던 것보다 심허요. 김대중 대통령이 목포가 지역구인 자기 아들(김홍일 의원)하고 한화갑 의원 때문에 무안 쪽으로 도청을 옮긴 거 아니요. 서민들은 (무안으로의 도청 이전에 대해) 그런갑다(그런가 보구나) 생각하지만 광주 지식인들은 다들 DJ 욕을 하지라우. 그러잖아도 먹고살 것 없는 광주가 도청 이전 때문에 이렇게 팍 죽어 분 것 같소.”
택시기사 강대현(49)씨의 말이다. 동구 광산동 13번지, 옛 전남도청사는 109년 동안 격동의 근·현대사를 지켜봤다. 1905년 을사조약으로 일본에 나라의 주권을 빼앗긴 이후 전남을 중심으로 전개된 의병활동과 1919년의 3·1운동, 1929년의 광주학생 항일운동 등 민족의 자주권을 찾으려는 외침을 말없이 지켜보았다. 5·18민주화운동 이후 전남도청은 광장 분수대와 함께 한국민주화운동의 본산이 됐다.
1986년 광주가 직할시로 승격하면서 광주시에 대한 행정권을 내놓은 전남도청은 그 위상이 크게 약화됐다. 이어 문민정부 시절인 1993년 5월13일 대통령 특별담화로 전남도청 이전 결정이 발표됨으로써 광주시대 마감이 예고됐다. 도청 이전 발표 후 치열한 유치 경합이 벌어졌다. 1999년 1월9일 신(新)도청 소재지 용역결과 보고회를 통해 전남 무안군 삼향면 남악리 1000번지가 선정됐다. 새 청사는 3년9개월 동안의 공사 끝에 완공돼 2005년 11월 정식 개청했다.
지난 5월31일 건설교통부 발표에 따르면 올해 전국의 개별 공시지가는 평균 11.6%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광주시 동구는 전남도청 이전 여파로 공시지가가 1.4%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