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6월호

고구려 고분 벽화의 사상적 고찰

하늘의 빛에서 생명을 얻은 자 빛의 세계로 돌아가니…

  • 글: 유재신 토론토대 동아시아학부 석좌교수

    입력2004-06-01 10: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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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구려 고분 벽화에는 한국 고유의 사상과 도교 및 불교사상이 곁들여져 있다.
    • 동아시아의 종교사상에 한국적 특색을 가미한 셈이다.
    • 특히 도교가 한국으로부터 중국에 전래되었음을 시사하는 부분도 눈에 띈다.
    고구려 고분 벽화의 사상적 고찰

    ‘삼족오(三足烏)’가 일본 축구국가대표팀의 엠블렘으로 사용되는 바람에 일본의 상징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으나 실은 고구려 고분 벽화에서 유래한 것이다.

    내가 고구려 고분 벽화를 눈으로 직접 본 것은 1988년 지안(集安)에서였다. 짧게는 1500년, 길게는 1700년 가량 된 작품들이었지만 나는 한눈에 그 화려한 빛깔과 훌륭한 솜씨에 빠져들고 말았다. 이 벽화들은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광개토대왕비와 더불어 우리 민족의 얼과 뿌리를 이해하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다.

    또한 21세기 회화에 영감을 주고 동아시아 미술사 연구에 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동양미술과 종교의 뿌리를 연구하는 데도 소중한 재료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고려시대에 편찬된 ‘삼국사기(三國史記)’와 ‘삼국유사(三國遺事)’도 훌륭한 역사적 재료이지만 고구려 고분 벽화는 그보다 훨씬 이전에 그려졌기 때문에 우리는 이 벽화들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고구려 고분 벽화는 한국 역사의 뿌리를 찾는 데 중요한 의미가 있다. 발전된 채색 기술과 우수한 회화 기법을 통해 미술사를 고증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기도 하다. 그런 만큼 고구려의 고분 벽화 연구는 고구려의 역사, 풍속, 해외정책, 음악, 미술, 그리고 종교사상적인 측면을 아우르는 연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삼족오(三足烏)’로 이야기를 시작해 보자. 세 발 달린 까마귀, 즉 삼족오는 일본이 축구 국가대표팀의 엠블렘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일본은 1930년부터 삼족오를 상징물로 사용했는데 특히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일본축구협회가 삼족오를 상징물로 사용하면서 외국인들은 삼족오가 일본의 고유 상징으로 오해하는 일도 생겨났다.

    하느님의 자손, 고주몽



    그러나 실상 삼족오는 고구려 고분 벽화에서 유래한 것이다. 고구려 고분 벽화에 나타나는 다리가 셋 달린 까마귀, 즉 삼족오는 태양 숭배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3’이라는 숫자는 동양철학에서 신성한 숫자로 여겨지며 ‘천지인(天地人)’을 가리키기도 한다.

    그렇다면 해 안의 세 발 까마귀와 달 안의 두꺼비는 어떤 사상적인 의미를 담고 있을까.

    고구려 건국신화에 따르면 시조 고주몽은 하느님의 자손, 해와 달의 자손이다. 해 안의 까마귀는 신비한 출생과 관계가 있다. 고주몽은 천제(하느님)로 칭하는 해모수(天神)와 지모신(地母神)이라는 유화가 만나서 태어난 신인(神人)이라는 것이다.

    고주몽이 알에서 햇빛을 받고 태어났다는 것은 하늘, 즉 하느님으로부터 태어났음을 의미한다. 이는 한편으로는 무교의 천신(天神)과 천조(天鳥)신앙, 즉 알에서 새가 나온다는 사상과도 일치한다. 다시 말해 이는 일신(日神)신앙과 천조신앙의 결합을 의미한다.

    해와 달은 도교의 음양사상과도 무관하지 않아 중국의 복희씨와 여와씨의 신상(神像)에서도 이를 볼 수 있다. 한국에서 건너간 무당이라는 설이 있는 일본의 첫 여황(女皇) 천조대신(天照大神)은 일신(日神)이면서 황조신(皇祖神)으로 이 역시 삼족오(三足烏) 설화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곧 고대 동이(東夷)족의 태양숭배 신앙이 조류숭배 신앙과 합쳐진 결과다.

    고구려 고분 벽화에 나오는 새들은 무속의 천조(天鳥)신앙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새는 이 세상과 하늘세계를 연결하는 매체라고 할 수 있다. 즉, 고분 벽화는 동이계의 조류숭배와 태양숭배의 샤머니즘, 즉 원시신앙에 근거를 둔 것이다.

    고구려인들은 사람이 죽으면 몸은 사라지지만 영혼은 하늘로 올라가 삶이 계속된다고 믿었다. 무덤 주인은 생전에 자신의 일족이 받들던 조상신의 일원이 되어 계급 신분이 그대로 이어진다고 여겼던 것이다. 고구려인에게 사후에 영혼이 도달하는 곳은 광명의 신(神)이 지배하는 ‘빛의 하늘’이었다. 그들은 하늘의 빛에서 생명을 얻고, 죽은 후에는 자신의 근원인 빛의 하늘로 돌아간다고 믿었다.

    고구려인들의 이러한 세계관, 즉 하늘은 광명의 세계이자 아래 세상에 복을 베푸는 선한 신의 세계라는 사상은 단군신화와도 관계가 깊다. 하느님의 아들 환웅이 웅녀와 결혼하여 단군을 낳고 ‘홍익인간’의 이념으로 이 세상을 잘살게 했다는 단군신화와, 해모수와 유화가 결혼해서 고구려 태조 고주몽을 낳아서 고구려를 건국하게 하고 이상적인 나라를 이룩하여 복을 내리게 한다는 고구려 건국설화는 모두 샤머니즘에서 유래한 우주관에 그 맥이 닿아 있다.

    고구려 고분 벽화에 성스럽고 큰 나무가 그려져 있는 것은 천신(天神)신앙이 산신(山神)신앙으로 연결되는 대목이다. 나무에는 곰과 호랑이가 기대고 있는데 이는 단군신화에서 인간이 되기를 꿈꾸었던 웅녀(熊女)와 이곳을 드나드는 신(神) 환웅의 상징이었던 것 같다. 또 나무, 곰, 호랑이 그림은 죽은 사람이 다음 세계로 진입하는 과정에 반드시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를 의미하는 것으로 추정할 수도 있다.

    벽화에 그려진 나무들은 고구려인들이 전통적으로 수목(樹木)을 숭배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단군신화에서도 환웅이 내려온 곳은 태백산의 신단수(神檀樹) 아래이고 웅녀가 잉태한 곳도 단수(檀樹) 아래다. 시베리아 지역에는 인간의 영혼이 벌거벗은 몸으로 나뭇가지에 앉아 있다가 인간으로 태어난다는 신화가 내려오고 있다. 단군은 세상에 내려와 1500년 동안이나 오늘날 무당과 마찬가지로 생산, 수명, 질병을 다스리던 산신이었다. 옛 사람들이 산에 가서 산신제를 지낸 풍습도 모두 여기에 연유한다고 볼 수 있다.

    나무는 종교적으로 하늘과 땅을 잇는 통로였다. 또한 생명의 근원이며 창조의 근원이며 재산의 근원이었다.

    구약성서를 보면 유대교의 창시자로 볼 수 있는 모세가 불타는 떨기나무에서 하느님을 만난 후 이스라엘 백성을 애급에서 구원했고, 신약성서에서는 예수가 나무 십자가에 매달려 인간의 구원을 성취시켰다고 했다.

    불가에서는 불타가 보리수 밑에서 깨달음을 얻은 후 불교를 창시했다고 하였다.

    단군은 나무의 임금이란 뜻이며 죽은 후에 산신(山神)이 되었다고 하였다. 신목(神木)신앙은 천신(天神)신앙의 구체적인 형태라 할 수 있다. 삼국유사의 단군신화에 나오는 신시(神市)는 신단(神壇)이 있는 성지(聖地)이고 신단수(神檀樹)는 신목신앙에 말미암은 것이다.

    단군신화의 신목신앙은 고구려의 목수(木隧)신앙으로 이어지고 다시 마한의 소토(蘇土)신앙으로 연결되었다. 고구려의 목수신앙은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10월에 국중(國中)에서 대회를 가졌다. 수신(隧神)을 영접해 나라 동쪽으로 돌아오게 하여 제사를 올리는데 수신이 앉는 자리에 나무를 세운다. 또 10월에는 농사일을 마치고 목수(木隧)신앙에 따라 귀신을 받든다. 천신에게 제사를 올릴 목적으로 나라의 도와 읍에 각각 한 사람씩을 두어 이름을 천군(天君)이라 했다.

    또 제국(諸國)에 각각 특별한 도읍을 정하여 소토(蘇土)라 이름짓고 큰 나무를 세워 방울 달린 북을 달고 큰 장대 끝에 새 모양을 장식하여 귀신을 섬겼다. 무당은 죽은 사람의 혼이 자기에게 내렸다고 말하며 고구려 시조인 동명왕(東明王)의 사당에서 제사를 지냈다. 만주의 무당은 천신에게 제사드리는 것을 주관하였다. 사좌(師坐-스승무당)는 왕에게 권장하여 덕을 닦고 재앙을 물리치라고 했다. 소토는 근세까지 부락제로 계승되었다.’

    고구려 고분 벽화에는 제단이 그려져 있는데 이는 그들의 일신(日神)인 고주몽에 대한 제사는 말할 것도 없고 무덤 속 가족 선조신에게도 제사를 지냈음을 시사한다. 고주몽을 위한 제사가 국민의 단합을 위한 것이었다면 가족 선조신을 위한 제사는 가족의 단합과 복을 비는 의미를 띠었을 것이다. 또 춤추고 노래하는 그림으로 보아 제사 때는 춤과 노래, 악기 등이 사용되었으리라고 짐작할 수 있다.

    천장 내부에 그려진 수렵도

    고구려 고분에 남아 있는 수렵도 또한 제사의 한 형태로, 수렵 후에 그 희생제물을 통해 하느님과 교통하기 위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수렵도는 천장 내부에 그려졌는데 그 위치로 보아 일상적인 수렵이 아닌, 하늘에 바치는 희생물을 잡기 위한 제의(祭儀)적인 성격을 띤 것으로 해석된다. 고구려에서는 왕이 친히 사슴을 사냥한 후에 군신들이 참석하여 희생 동물을 매개로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다. 사냥의 대상은 짐승이나 물고기였으며 제사행위를 위한 제물로 삼았다.

    고구려 고분 벽화에는 연꽃을 비롯해 불교사상을 상징하는 그림들도 눈에 띈다. 동아시아에서는 원래 연꽃을 불교와 관계없이 생각해왔다. 중국 은나라 이래 연꽃은 세계의 중앙이나 천제(天帝-하느님)를 상징했다.

    연꽃은 淨土세계 상징

    연꽃은 불교가 공식적으로 고구려에 수용되기 이전부터 고구려 고분에 그려졌다. 연꽃은 재생의 개념으로 정토의 세계를 상징한다. 즉 정토신앙 및 아미타 신앙과 연관이 있으므로 연꽃 안에 있는 남녀 인물상은 보살과 석가라고 볼 수 있다. 연화를 벽면에 뿌린 것은 현실(玄室)을 불세계화(佛世界化)하자는 의도이며 각각의 연화는 불상과 동일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연꽃 봉오리의 특이한 모양은 고구려의 독특한 기법의 산물이다.

    5세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고분에서 다수의 연꽃장식분(墳)이 출현하는 것은 당시 사람들이 묘실 내부를 정토세계의 상징인 연꽃으로 장식함으로써 사자(死者)의 정토화생(淨土化生)을 소망했음을 알려준다. 무덤 주인이 생전에 쌓은 선한 공덕에 의하여 연꽃 속에서 새롭게 태어나 정토세계의 일원이 되기를 기원한 것이다. 정토세계에서는 무덤 주인이 단순한 하늘 사람으로 회생할 수도 있고 보살이나 천왕으로 태어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연화문(蓮花紋)에 대해서는 두 가지 해석이 있다. 첫째는 무덤 주인공의 유해와 영혼이 있는 묘실을 왕생서방정토(往生西方淨土)로 구상했다는 해석이다. 묘실 전체가 연꽃으로 장식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는 묘실이 연화정토(蓮花淨土)이며 불국토(佛國土) 자체로서 연꽃은 불토(佛土)이자 무수한 불(佛)의 상징이라는 것이다. 둘째는 천정(天井)은 불천(佛天)의 구상으로 죽은 사람의 영혼이 승천하여 천계(天界)에 머무른다는 뜻을 표현했다는 해석이다. 왕생무량수국(往生無量壽國)의 의미로 연화문 장식을 그렸다고 본다.

    고구려인들이 가지고 있던 태양의 광명과 연결된 천상신앙(天上信仰)의 태도는 단군, 주몽, 해모수 신화를 통해서 알 수 있듯이 동이족(東夷族)에게 보편적으로 나타나 있다.

    고구려 고분 벽화에 있는 화연문은 자연적인 빛의 형태만을 간단히 암시한다. 부처나 불법을 상징한 불성(佛性)을 빛으로 이해하는 것인데 암흑을 밝히는 태양과도 비교되며 조로아스터교의 아후라 마즈다 신(神)의 속성, 즉 광명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삼각화연문은 천상의 테두리에 있는데 이는 천상세계로 들어가는 입구의 경계지역을 나타낼 뿐 아니라 천상세계를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천상의 화연문은 전통적 사후관에 기반을 두고 있어 새로 수용된 불교적 사후관과 비슷하다고 하겠다.

    고구려인은 햇빛인 태양의 정(精)을 인식했기에 시조인 주몽을 가리켜 ‘천하를 지배하는 태양의 아들’이라 일컬었다. 이러한 신화를 통하여 시조를 천신으로 모셨는데, 이는 고구려인이 하늘의 빛, 즉 햇빛을 새 생명으로 이해하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생명 상징하는 고사리 문양

    불성(佛性)을 표현한 삼각화연문은 불상의 광배(光背)를 닮은 삼각형 연화문인데 천장에서부터 시작된다. 그 안에는 고구려의 전통적 태양 빛인 고사리 무늬가 표현되어 있다. 고사리 문양이란 일정(日精), 즉 생명을 상징하는 문양으로 고구려인이 그들의 전통적 사후관인 영혼불멸사상에 바탕을 두고 불국토에서 재생하기를 기원했음을 볼 수 있다.

    이렇듯 고구려식 화연문은 하늘에서 복을 내려 하늘에서 내려온 천손(天孫)이 개국한다는 시조신앙을 뒷받침한다. 고구려의 삼각화연문보다 시대적으로 앞선 것이 중국에는 보이지 않으니 화연문은 한국에서 중국에 영향을 주었을 개연성이 높아 보인다.

    그러다가 5세기 후반에서 6세기 중반에 이르러 불정토관과 고구려식 세계관이 혼합되어 ‘불법(佛法)은 따르되 귀신을 함께 제사하라’는 경향이 생긴 것으로 추측된다. 정토의 영향력이 약해지고 재래의 계세(繼世)적인 내세관이 고구려의 독자적이고 새로운 모습으로 표현되기 시작했다.

    이와 관련해 한 가지 생각해볼 것은 도교사상에 관한 것이다. 도교사상은 유교와 함께 중국의 고유사상으로 이해되어왔다. 하지만 중국의 주(周)와 한(漢)을 중심으로 발전한 유교와 달리 중국적인 성격이 미미한데, 은(殷) 및 제(齊)와 관계가 깊은 동이족에서 비롯돼 발전했다는 견해가 있다. 고구려 고분에 적지않게 출현하는 도교의 산해경(山海經) 신화는 이런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즉 중국문화에 있어 도교는 비(非)한족적 성격인 동방의 변경문화에서 유래했다고 볼 수 있다.

    고구려 고분, 그 중에서도 덕흥리 고분 벽화에는 북두칠성을 중심으로 무수한 별들이 그려져 있고 도교적 맥락의 남두육성(南斗六星) 별자리도 그려져 있다. 북두칠성은 도교적 성수관념을 내포하고 있으며 불교 사찰의 칠성각을 연상케 한다.

    고구려 고분 벽화에 그려진 성숙(星宿) 그림과 삼림(森林)을 보면 그 기저에 하늘과 달과 별을 숭상하던 고구려인의 샤머니즘이 깔려 있음을 알 수 있다. 당시 고구려인들은 숭상의 대상이 되는 천공(天空)도 죽은 사람을 위해 존재한다고 보았다.

    신선이 그려진 3~4세기의 고구려 벽화에는 하늘의 세계를 노니는 선인 선녀들, 악기를 연주하는 신선들, 선조(仙鳥)를 탄 천왕이 깃발을 휘날리며 하늘을 나는 승선(乘仙) 장면, 승조(乘鳥)의 신선이 학을 타고 있는 모습 등이 등장한다.

    이는 모두 무술적인 비상(飛上)을 의미한다. 날개 돋친 인간, 즉 조인(鳥人) 형상은 후대 도교에서 우인(羽人), 우사(羽士), 비천(飛天)의 모양으로 발전한 조인일체(鳥人一體)의 형상이다. 해모수가 쓴 깃털관은 곧 까마귀의 깃털을 의미하고 이는 태양을 상징하는 삼족오를 연상케 한다.

    해모수는 동이족 신화에 등장하는 태양신이며 도교의 설화가 담긴 그림이라 하겠다. 또 죽은 사람을 하늘로 보내는 표현은 도교의 신선사상에 영향을 받은 것이라 하겠다. 이처럼 죽음의 세계에서 영혼이 계속 존재한다고 여기는 계세(繼世)적 사상은 고구려의 후기 특징으로 나타난다.

    장생불로한다는 도교의 신선은 반드시 수양을 쌓고 술(術)을 체득해야만 비로소 하늘을 날 수 있다. 즉 신선사상이 그들에게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채색 구름과 풍악 속에서 수많은 존재의 호위를 받으며 오륜거(五輪車)를 타고 내려오는 모습은 이를테면 도교에서 말하는 신선의 강림이다.

    또 고구려 고분 벽화에 나오는 야장신 그림은 예로부터 중국 민간에서 믿어오던 대장간의 직업신 행신(行神)이 노자에 등장하는 태상노군(太上老君)의 인괘로(人掛爐)에서 금단(金丹)을 제련하는 장면과 비슷하다.

    고구려 고분(각저총과 무용총)은 천장이 팔각을 이루어 올라갈수록 좁아진다. 필자는 이것이야말로 팔각정 건물의 원형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여덟 면으로 뻗어나가는 우주를 상징하는데 다분히 도교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고구려 고분 벽화의 사상적 고찰

    고구려 고분 벽화에는 태양신 사상, 조화사상, 선비사상 등이 모두 담겨 있다.

    사신도(四神圖)가 그려진 고분은 고구려에서만 발견되는데 고구려의 옛 수도였던 지안 지역과 후의 수도인 평양 지역에서 모두 34기가 발견되었다. 사신도는 도교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는 4방천, 즉 ‘청룡(靑龍), 백호(白虎), 주작(朱雀), 현무(玄武)’를 상징하는 것으로 동서남북을 가리킨다. 사신은 사상적으로 오방성두(五方星斗)의 신앙, 신성신앙, 음양오행 사상의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사신오행도(四神五行圖)는 일월도(日月圖)와 함께 승선선(乘仙船)인 용이나 학을 탄 장수불로의 도교적 종교사상을 나타낸다. 사신을 천장에 그려넣은 것은 하늘 세계의 구성요소의 하나임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전형적인 사신도는 오행설에 바탕을 둔 사신신당의 표현, 즉 풍수지리설에 입각해 남향 무덤칸에 그렸다. 즉 풍수지리설의 사세(四勢)를 염두에 두었다. 사신도는 천장과 벽면에서 무덤을 지키는 수호신의 역할을 한다. 6세기 이후 것으로 추정되는 사신도는 종교 사상적인 배치보다는 보안관계에 중점을 두었다.

    고구려인이 고분 벽화에 사신을 그린 것은 주술적인 목적에서다. 그 형태는 여러 가지이나 특히 현무처럼 뱀과 거북이 서로 엉킨 그림은 찾아보기 어렵다. 보통 주작과 현무는 상대적으로 작고 어색한 모습으로 그려져 있어 벽화 속에서 그 존재가 뚜렷하지 못한데 아마도 일종의 부적 같은 역할을 한 것으로 짐작된다.

    四神과 五行說

    고구려의 사신(四神)과 관계가 깊은 오행설(五行說)은 유교의 오륜(五倫)· 오상(五常)과도 관계가 깊다. 오행설은 자유정치이념의 정비와 정치구조의 개편, 지배이념의 강화 목적에 널리 활용되어왔다. 오행설의 기초가 된 오상(五常)의 덕치주의가 고구려에 수용되었다. 오행방위 개념은 고구려 정치제도 5부에 영향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고구려를 이은 발해의 정치제도에도 창조적으로 활용되었다. 그 한 예로 발해는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을 정부 부서의 이름으로 사용했다.

    이런 점들을 감안할 때 고구려 고분벽화는 다음과 같은 사상적 특징을 갖고 있다 하겠다.

    첫째, 고구려 고분벽화는 한민족의 역사적 신앙적 뿌리인 태양신 사상, 즉 ‘인격적인 유일신’ 사상을 표현했다. 물론 무속적인 다신교의 개념이 함께 들어 있지만 단군이나 고주몽을 천제지자(天帝之子)라 할 때의 천제는 인격적인 하느님이고 왕은 천제의 자손이므로 왕실의 조상신이다. 하느님은 해와 달로 표현되었지만 이 하느님은 자연현상의 이법(理法)이 아니라 인격적인 하느님이며 왕실의 조상이었다. 이러한 면에서 고구려인이 인격적인 유일신을 섬겼다고 할 만한 근거가 되는 것이다.

    태양 안의 삼족오는 태양숭배 사상과 조류숭배 신앙이 동일화된 우주사상이라 하겠다. 세 발 까마귀는 고주몽이 햇빛을 받아 알에서 태어났다는 사상으로 해(日)와 알(鳥)은 우주사상의 표현이다. 이것은 고구려 고분 벽화에서 가장 잘 표현되어 있는 그림이다.

    고구려 태조 고주몽에 대한 신앙은 광명한 하늘에서 영원히 사는 영혼의 삶을 지향하고 고대 한국적인 종교행사를 거행함으로써 민족의 뿌리를 제시했다는 점에 큰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울러 고구려 고분 벽화에 나타나는 동심도문의 둥근 무늬도 태양신 사상, 하느님 사상을 뒷받침한다.

    중국의 천(天) 개념은 처음에는 인격적인 신(神) 개념(天帝)으로 시작했지만 후에는 천륜(天倫), 천리(天理), 천공(天空)처럼 비인격적인 개념과 같이 쓰여지면서 오히려 비인격적인 면이 강조되었다.

    고구려 王名의 유래

    일본의 신(神) 개념은 처음에는 천조대신(天照大神)에서 볼 수 있듯 인격적인 면이 강했지만 팔백만신(八百萬神) 같은 다신교적인 신을 섬겼으며 천황마저 신으로 숭배하였다. 대체로 인간이 신보다 강한 것으로 해석되었으며 무속의 다신교적인 면은 한국과 비슷하지만 단군이나 고주몽처럼 뿌리(근본)는 해이며 인격적인 유일신의 자손이라는 점과 비교할 때 그 의미가 훨씬 약하다.

    앞에서 말했듯이 고구려의 시조 고주몽은 단군과 더불어 하늘에서 내려온 천손(天孫)이라는 사상이 강했으며 고구려인은 그를 ‘하느님’으로 제사지내며 숭배했던 것이다.

    고구려의 역대 왕들은 천손인 시조 동명왕과 더불어 그들도 천손이라는 믿음으로 초월적인 권력에 기초한 정치를 행했다. 그들은 왕인 동시에 종교행사를 하는 신인(神人)이라 하여 제사를 주관했던 것이다. 광명을 강조하고 신성한 왕권을 하늘로부터 받은 천손으로 하늘의 덕을 발휘한다 하여 왕명(王名)도 동명왕(東明王), 유리명왕(琉璃明王), 대무신왕(大武神王) 등으로 지었다. 그들이 지냈던 동맹제(東盟祭)는 신에 대한 감사제인 동시에 천손국(天孫國)으로서 단합하는 힘의 근원이 되었다.

    고구려인은 고구려가 신국(神國)이라고 여겼으며 자신들은 하느님의 자손으로 천하의 중심이라 자부했다. 이것은 곧 고구려인이 힘있게 단합하는 요인이 되었다. 이러한 뿌리에 기초를 둔 사상은 신의 자손이라는 정신이 깃들여 있어 우리 민족에게 주는 교훈이 크다고 생각된다.

    둘째로, 고구려 고분 벽화는 앞에서 말했듯이 인간이 죽으면 몸은 없어지지만 영혼은 하늘의 광명한 세상에서 영생한다는 ‘계세사상(繼世思想)’이 담겨 있었다. 조상을 후장(厚葬)하여 명계(冥界)에 가게 하면 신격화(神格化)된 조상이 그곳에서 후손을 잘 보살펴주리라고 믿는 사상이다. 고분의 벽면에도 사자(死者)의 생시(生時) 생활을 묘사한 그림들로 가득 채워놓았다는 것은 사후 세계에서도 현세의 그것과 같은 삶을 누릴 것이라는 계세적인 내세관(來世觀)을 가졌음을 보여준다.

    사후세계는 윤리적인 공덕과 선악에 의해 결정된다는 불교의 윤회사상이 들어오기 전까지는 현세에 살던 모습 그대로 사회적 지위나 부귀의 삶이 이어진다고 보았던 것이다.

    사후의 영혼이 도달하는 곳은 고분 벽화의 ‘해 속의 까마귀’나 하늘 세계를 상징하는 무덤에서 보듯이 광명의 신이 지배하는 빛의 하늘이었다. 고구려인은 하늘의 빛에서 생명을 얻었으니 죽은 다음에는 다시 자신들의 근원인 빛의 세계로 돌아간다고 믿었다. 이렇게 하늘의 세계를 광명의 세계, 그리고 아래 세상에 복을 베푸는 선신(善神)의 세계로 보는 것은 단군신화나 해모수 신화에 반영되었던 샤머니즘의 우주관에서 비롯된 것이다.

    조화와 선비 사상

    후에 불교가 수입된 후 연꽃으로 상징되는 불(佛)이나 정토생명을 화생(化生)하는 정토가 일월(日月)과 같은 밝은 빛의 존재로서 여기에 첨가되었고 또 하늘을 나는 신선의 장생불사 사상이 들어와 다 함께 조화되어 발전했다. 불교의 화연문은 불상의 광배(光背)와 닮은 삼각 화연문인데 고구려의 전통적인 태양빛의 표현인 고사리 같은 무늬가 포함되어 있다.

    고구려식 화연문은 도솔천에 산다는 미륵의 전각 등 천상에 관련된 부분에만 표현되어 있는 것이 특징인데 이는 불국토 재생의 의미가 있었기 때문으로 본다. 여기에서 고구려인의 내세는 빛의 하늘과 불교에서 말하는 빛의 정토, 도교의 장생불사하는 신선세계 등이 조화되었다고 본다.

    셋째로, 고구려 고분 벽화에 나타난 사상은 ‘조화사상’과 ‘선비사상’이다. 중국은 문(文)을 강조했고 일본은 무(武-사무라이)를 강조하였으며 고대 한국은 문무를 조화하는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고대 한국의 이러한 사상은 화랑도의 ‘유불선’을 조화하는 현묘의 사상과도 맥을 같이한다.

    고구려 고분 벽화는 중국으로부터 도교가 수입되기 이전에 그려진 것인 데도 이미 도교적인 사상을 기반으로 삼고 있다. 우리는 여기서 도교의 근원이 중국이 아니라 한국이었다는 학설을 주의깊게 살펴보아야 한다.

    삼각연화문이 상징하는 불교의 극락세계와 도교의 우화선인(羽化仙人)이 한민족의 뿌리인 태양빛 사상에 흡수 조화되어 계세사상으로 발전해왔음을 고분 벽화를 통해 이해하여야 한다.



    고구려 고분 벽화에 나타난 종교사상은 한국 고유사상의 뿌리에 도교사상과 불교사상이 곁들여 조화를 이루면서 발전한 것으로 보여진다. 이는 곧 고구려가 동아시아의 종교사상을 모두 조화시키면서 한국적인 특색을 가미시켜 이를 바탕으로 동북아시아권 문화의 원류를 형성했다는 사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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